특별대담 / 원로수필가 서정범 선생을 찾아서

탈속한 언어 학자의 수필, 또는 강직한 스승의 길

김종회(평론가)

1. 국어학자요 수필가요 교수로 살아온 여러 얼굴의 거인

예로부터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이 있거니와, 서정범 교수는 그 제자들에게 그 모든 존중을 다 바쳐도 지나치지않은 스승이다. 때로는 ‘편달’의 엄중함이, 때로는 ‘사부’의 자애로움이, 제자들을 올곧게 인도하고 진취적 기상을 갖도록 격려해 왔다.

필자도 그 스승의 그늘에서 대학과 대학원 시절을 보냈고, 당신께서 명예 교수로 있는 지금도 교수 회관의 같은 층에서 여전히 가르침을 받으며 모시고 있다. 이처럼 좋은 스승을 만난 홍복이 필자의 것만이 아니라, 많은 제자와 후학이 공유하는 것이라면, 이 분이야말로 이 시대의 스승 가운데 한 사표가 아닐 수 없다.

돌이켜 보면 서 교수는 1957년 경희 대학교 국어 국문학과를 졸업한 이래 40여 년의 세월이 흐르도록 모교의 강단을 지켜왔다. 한 사람이 감당하고 있던 자리는 그가 떠나고 난 후라야 비로소 그 부피와 중량이 제대로 가늠될 터이지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가 펼쳐놓은 배움의 그늘아래에서 성장한 이들 중에 어느 누구도 서 교수의 학문적 역량과 후진 양성의 열정에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는 없을 것 같다.

오랜 평교수 생활과 문리과 대학장의 보직을 거치고 정년을 넘어서 이제 명예 교수에 이른 그의 학문과 문필의 세계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밤이 늦도록 연구실을 지키면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온 연구와 집필의 성과로써 어학과 문학의 양면에 모두 독자적인 영역이 확보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경희 어문학’과 ‘경희 문학’의 창간 및 계속적인 발행을 선도하여 후배와 제자들의 의욕을 고무하고, 학계와 문단에서 활동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데도 남달리 애써온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한국 특수어 연구’(1959)로 시작된 서 교수의 학문적 연구는 ‘15세기 국어의 표기법 연구’(1964) ‘현실음의 국어사적 연구’(1975) ‘음운의 국어사적 연구’(1982) 등으로 이어져 국어 학계에 새로운 이론적 충격을 가하였다. 최근에는 우리말의 조어 재구라는 획기적인 분야에 주력하여 원시 시대 언어의 원형을 추적하고, 우리와 동일한 문화권 안에 있는 다른 나라 언어들의 기원과 상관관계에까지 논의의 진폭을 확장하는데 이르렀다. ‘우리말의 뿌리’(1989)나 일본에서 출간된 ‘일본어의 원류’(1989) ‘한국에서 건너간 일본의 신과 언어’(1994) 같은 저술이 곧 그러한 연구 실적의 소산에 해당된다. 이러한 일은 이전의 어느 국어학자도 생각할 수 없었던 우리 언어의 주체성을 찾는 작업이었다. 또 필생의 역작이요 결정판인 ‘국어 어원 사전’은 국어 어원 연구에 하나의 에포크를 그은 저술이 되었다.

아울러 서 교수는 수필 문학에도 특별한 관심을 보여 첫 수필집 ‘놓친 열차는 아름답다’(1974)를 발간한 이래 ‘겨울 무지개’(1976) ‘무녀의 사랑 이야기’(1979) ‘그 생명의 고향’(1981) ‘사랑과 죽음의 마술사’(1982) ‘영계의 사랑과 그 빛’(1985) ‘무녀 별곡 1~7’(1992~1998) ‘한국 문학과 문화의 고향을 찾아서’(2001) 등을 내놓았으며 1981년에는 ‘무녀의 사랑이야기’와 ‘그 생명의 고향’으로 제18회 한국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수필집을 통해 그는 평범하고 사소한 일들에 대한 세미한 관찰력과 따뜻한 애정을 환기하고 있으며, 특히 한국의 샤머니즘에 대한 탁발한 일가견과 이들의 고통스럽고 신비하기도 한 삶에 깊은 연민과 이해를 내보이기도 한다.

한편 반생을 캠퍼스에서 학생들과 함께 지내며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 현상을 탐색해 온 결과로 ‘학원 별곡’(1985)을 필두로 하여 ‘어원 별곡’(1986) ‘이바구 별곡’(1988) ‘가라대 별곡’(1989) ‘허허 별곡’(1990) ‘너스레 별곡’(1991) 등 14권의 ‘별곡’ 시리즈를 발간하여 당대 젊은이들의 언어 현실을 총체적으로 집대성하는 역할을 수행한 바 있다. 십수 년의 결코 짧지 않는 기간을 두고 매해 거르지 않고 속어 ․ 비어 ․ 은어들의 시리즈를 집약해 온 배면에는 남 모르는 끈질긴 노력이 숨어 있을 터이거니와, 우리는 이로써 그의 끊임없는 탐구 정신의 한 단초를 볼 수 있겠다.

지금까지 서 교수의 연구와 문필 활동을 대략적으로 살펴보았는데, 여기서 우리가 집중적으로 검토해 보고자 하는 대목은 수필가로서 그가 제작해온 작품들의 내면 세계가 될 것이다. 다양성과 깊이를 함께 포괄하고 있는 그의 실적 및 성과를 부족한 식견으로 모두 해명할 수 없으며, 다른 부분은 그 부분의 연구자들 몫으로 남겨두는 편이 온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2. 여유있고 재미있고 지성적 수준 갖춘 수필 문학의 세계

이 글에서 필자는 서 교수의 수필 가운데서도 초기의 서정적인 분위기와 진솔한 인간에가 가장 잘 드러나는 ‘그 생명의 고향’을 주된 논의의 대상으로 하려 한다. 이 수필집은 그보다 앞서 나온 세 권의 수필집에서 특색있고 우수한 작품들을 가려 수록한 선집이라는 장점이 있다.

폴 발레리는 ‘시가 춤이라고 할 때 산문은 도보’라고 표현했다. 일상적인 동작에 비유 ․ 상징 ․ 생략 ․ 율동의 미학적 움직임을 부가할 때 춤이 성립되는 것이라면, 그에 대응하는 도보는 있는 그대로의 걸음걸이를 크게 변형하지 않고 진실성있는 모습으로 드러내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은 비교법이 문장 장르에 효율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면, 도보로서의 산문은 특히 수필의 성격적 특성을 잘 설명해 주는 서술이라 할 수 있겠다.

서정범 교수의 수필을 읽어내려 가자면, 우선 평지를 여유를 갖고 걸어가듯이 크게 힘이 들지 않는 도보를 느낄 수 있다. 그의 문체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구절이나 억지로 꾸민 구석이 없다. 수미 상관하고 일관된 논리의 틀을 좇아 문맥과 행간을 함께 붙잡으려 애써야 하는 긴장감도 필요하지 않다. 쓰는 이 스스로 그러한 속박을 모두 내던져버린, 때로는 엉뚱한 동문서답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한정적인 언어 용법을 넘어서서 전혀 별개의 개념을 이끌어오기도 하는, 시치미를 뚝 뗀 분위기의 필법을 엮어낸다. 그리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가구가 흐트러진 실내에서 오히려 편안한 마음으로 거하듯 자유스러운 흐름에 젖어들게 한다.

‘나비 이야기’같은 작품을 보면, 처음에 잠깐 나비의 전설이 나왔다가 곧장 열대어 이야기로 넘어가서 끝 부분까지 계속되는데, 마무리와 동시에 열대어의 죽음과 나비의 환생을 오버랩시키는 교묘한 솜씨를 보여준다. ‘서귀포의 귤밭’에서도 옛날의 개 이야기로 시종하다가 그 끝을 거두 절미하고 아버지에 대한 추모의 정으로 바꿔놓고 있으며, 이 급작스러운 전환이 기실 개 이야기의 핵심을 축약한 결론에 이름을 보게 된다.

그러하다면 그의 무질서한 글쓰기의 행보가 두서없는 자료의 나열이 아니라 실상은 면밀히 계산된 해체의 형식이요, 포괄적인 시각으로 각 부분들을 방목하되 고삐는 모두 한 손에 다잡고 있는 수준있는 문리의 운용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면서 그의 수필은 새롭고 재미있다. 새롭다는 것은 단순한 생활의 소희나 감정의 기복을 표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서정적 심상의 열매와 더불어 국어 학자로서 학문적 관심의 낙수거리들을 곳곳에 저장하고 있어, 수필을 통해 일상과는 유다른 세계를 신선하게 접촉하도록 해준다는 뜻이다. 또한 재미있다는 것은, 1차적으로 세월의 이끼가 덮힌 옛 이야기나 그가 오래도록 공을 들인 무속 연구의 현장에서 캐낸 일화들을 수필속의 스토리로 만들어내는 데 있으며, 다음으로는 이 스토리를 재치있게 들려주는 이야기꾼으로서의 달변과 수완을 의미한다.

이러한 면모들은 서 교수가 써온 수필의 외양을 간략하게 추려볼 때 추출되는 특성이라 하겠는데, 이제 그 포장속에 담겨 있는 내면 풍경이 어떠한가를 분석해 볼 차례이다. 먼저 그의 수필이 끌어내고 있는 내포적 의미망 가운데로 진입하기 위한 통로를 마련하기 위해 ‘미리내’라는 작품을 살펴보기로 한다.

서두에 ‘미리내’라는 말의 어원과 어의에 대한 검색이 있다. 연이어 글쓴이가 자란 시골과 그 추억의 공간속에 살아있는 은하라는 소녀의 이야기가 서술된다. 그리고 열일곱 살 땐가 친구를 따라 두메에 놀러갔다가 멍석에 누워 기차-용-뱀-허물-은하수로 기억의 상관물이 변용되는 꿈을 꾸는 장면이 나온다. 마지막으로 낳은 지 사흘째 되는 딸애의 눈에서 은하수의 별을 찾아내는 사건이 있다.

이 요약은 전체적인 글의 진행을 돌보지 않은 채 함유된 부분들의 성향을 구별하기 위한 정리에 불과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그 네 가지 단락이야말로 이 수필집을 관류하여 반복적으로 출현하는 의미 구성 요소들의 표본 모델이라는 점이다.

어원과 어의에 대한 고찰은 서 교수의 수필 전반에 걸쳐서 수행되는 간과할 수 없는 항목이다. 그는 이 딱딱하고 지루한 학술적 편모들을 자연스럽게 적소에 배치하여 도리어 글의 객관성이 요긴하게 획득되도록 한다. 수필에 등장하는 꿈이나 그 해몽은 우리에게 익숙한 옛날 이야기와 연결되거나 무속의 화제로 전화되어 현실의 이면에 자리하고 있는 비일상적 세계의 존재 약식을 부각시킨다. 어린 딸애의 눈에서 발견되는 별빛은 그가 꾸려내는 스토리들이 가족 관계의 토대위에서 보다 심화된 의미를 산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비치며, 이는 다른 작품에서 아버지나 어머니에 대한 회상이나 실향민으로서의 감회를 드러내는 지점까지 나아간다. 그리고 은하라는 소녀가 발산하는 애처롭고 서정적인 이미지는 소녀나 여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걷어 올려지는 순정한 감성과 따뜻한 인간애를 배태하는 동력원이라 하겠는데, 이는 낚시를 통해 만나는 사람들이나 범상한 일상 속에서 마주치는 사람들로부터 삶의 외경스러움을 깨우치는 일과도 동궤의 맥락위에 있다.

이렇게 본다면 ‘미리내’는 그의 수필들이 표방하고 있는 의미 범주의 원형을 모두 포괄하고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으며, 이로써 확인된 내용의 구체적 세부에 접근하는데 유익한 이정표로서의 기능을 맡을 수 있다 하겠다. 그러면 그 네 단락을 순차적으로 구분하여 분석해 보기로 하자.

첫째로 어원 또는 어의 연구의 학술적 수확을 수필에 도입하는 경우이다. ‘둥근 마음씨’ ‘아빤 나빠’ ‘한줌의 재’ ‘섰다 사’ ‘도깨비’ ‘동동다리’ ‘내일의 리듬’ 같은 작품을 보면,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저 15세기 언어로부터 오늘날에까지 국어사 논의의 마당위에 펼쳐져 있는 쟁점들을 선별하고 이를 글의 주제에 걸맞도록 도입하여, 우리가 수필을 읽으면서 동시에 재기에 넘치는 언어학 강의를 듣는 것 같은 기분을 맛보게 한다. 그러한 지적인 기술이 상당한 분량으로 포함되어 있으면서도 식자의 우월감을 노출하는 법이 없고 시골 사랑방의 구수한 담화에 심취하는 듯한 뒷맛을 남기는 것은 곧 수필가로서 그의 역량이라 할 터이다.

둘째로 무속의 실상이나 전승 설화들이 글의 바탕을 흥미롭고 풍성하게 치장해 주는 경우이다. ‘두견새’ ‘서귀포의 귤밭’ ‘사과만 먹는 여인’ ‘그 생명의 고향’ ‘두꺼비’ ‘내일의 리듬’ 같은 작품이 이 항목의 서술부를 이룬다. 갖가지 설화들이 안고 있는 애절하고 비감한 이야기들이 이야기로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글쓴이 자신의 체험 가까이로 끌어당겨져서 생동하는 예표로서의 역할을 담당한다. 또한 무속의 주체로서 살아가는 신화를 호흡하며 살고 있는 샤면들에 대한 각별한 이해와 애정은, 그들의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마음의 문을 열고 숨겨진 보화처럼 기이한 의식의 결정들을 캐어내는 성과를 거두어들인다.

셋째로 글쓴이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가족들을 통해 삶의 본질적인 문제들에 대한 깊은 성찰을 수행하는 경우이다. ‘가을의 가슴’ ‘서귀포의 귤밭’ ‘겨울 무지개’ ‘놓친 잉어’ 등의 작품에서 이제는 유명을 달리한 어머니와 아버지의 기억과 회상이 단속적으로 그려진다. 이 작품들을 통해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연보 상으로 그의 출생이 1926년 충북 음성으로 되어 있으나 실제로 성장한 곳은 북녘땅이며 그가 거기에 가족을 남겨두고 온 실향 이산 가족이라는 사실이다. 제자가 가져다 준 풋밤에서 어머니의 포근한 사랑을 떠올리고 남과 북의 강이 서로 합치는 합수머리에서 잉어를 놓치고 고향을 그리워하는 그의 처연한 심사야 말로 우리 시대의 수도 없이 많은 실향민들의 통한을 대변한다. 혼자만 살겠다고 늙으신 부모를 떠난 불효가 지금도 가슴을 저미고 눈이 펑펑 내릴 때에는 어머니의 모습이 눈발속에 내리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는 그의 술회는, 그리하여 쉽사리 우리의 공명을 촉발하면서 우리를 글의 한가운데로 이끄는 힘을 발휘한다. 거기에는 글쓴이의 절절한 체험이 거느린 단단한 핍진성이 베어 있기 때문이다.

넷째로 소녀 ․ 여인 ․ 낚시친구 ․ 동료들을 글의 중심에 놓고 이들에 대한 티없는 애정으로 서정적 감성과 온정어린 교감을 추수하는 경우이다. ‘저 곱디고운 단풍잎’ ‘겨울의 문턱에서’ ‘겨울 무지개’ ‘놓친 열차는 아름답다’ ‘아름다운 준비’ 같은 작품에서 그러한 순후한 인간애를 잘 알아차릴 수 있다. 더구나 낚시에 관한 이야기들을 보면 그가 이 방면에 일가견을 이루었다는 인식보다는 낚시를 통해 가까워진 이들과의 애틋한 교분을 실감있게 드러내고 있어, 그의 낚시 행차가 지닌 탈속의 멋과 향취가 잔잔한 감동의 파문을 일으키기도 한다. 특히 ‘저 곱디고운 단풍잎’에 나타난 원응서 선생과의 친교는 역시 원 선생의 절친한 벗이었던 황순원 선생의 단편 ‘마지막 잔’에 필적할 만한 감동의 문양을 생산하고 있다. 그가 황 선생의 후학이자 오랜 강단의 동료라는 사실은 익히 알려진 대로지만, ‘겨울의 문턱에서’ 라는 작품에서 볼 수 있는바 용문산 은행나무의 회오리바람은 황 선생의 단편 ‘나무와 돌, 그리고’에서와 마찬가지로 깨우침으로 받아들여진다. 계절의 생명을 끝내는 은행나뭇잎의 장엄한 최후를 한 사람의 법도에 대한 경외감은 매한가지이다. 이처럼 사소하고 평범한 사건들로부터 깊이 있고 비범한 삶의 이치를 적출해 내는 방식은 서 교수의 수필이 붙들고 있는 또 하나의 강점이라 할 수 있겠다.

3. 학문적 업적과 심오한 문필로 남을 큰나무 한 그루

서 교수의 수필은 이제껏 검증해 본 바와 마찬가지로 수필만을 써온 수필가의 수필이 아니다. 우리 국어 학계에 비중있는 이름을 가진 학자로서 그 학문 연구의 실과들을 문맥속에 갈무리하기도 하고, 전공분야가 아니면서도 전문가 이상의 견식과 연구의 분량을 가진 무속의 현실을 글의 디딤돌로 삼기도 하며, 개별적인 정감과 따뜻한 인간에로써 이 모두를 포장하는 기법에도 능숙한 새로운 수피의 유형이 그와 더불어 가능한 셈이다.

그러면서도 어느 논자의 지적처럼, 근엄하지도 않거니와 신중한 체도 하지 않으며 더욱이 아는 체하거나 똑똑한 체하는 인상이 없다. 새뮤얼 존슨의 말을 빌리자면, 수필이란 마음의 자유분방이며 정상적이고 질서 정연한 작문이 아닐 비정상적이고 미숙한 것인데, 그는 이 비정론의 미덕에 충실하면서도 마무리에 이르러서는 여기저기 흩어놓았던 절목들을 효율적인 연결고리로 묶어서 전체적인 균형성을 놓치지않는다. 우리는 그의 수필을 통해 드물지않게 암반속의 보석처럼 반짝거리는 삶의 지혜와 깨우침을 얻기도 한다.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우리는 자기 분야의 학문에 있어 큰 업적을 남긴 언어 학자요 수필문학에 있어 강력한 자기 규정력과 유다른 성격적 특성을 가진 문필가로 그를 기억할 것이다. 그처럼 굵은 선을 그으며 지속적 활동을 해 온 학자요 문학인이 흔하지 않겠거니와 그러한 까닭으로 우리는 이제 7순의 후반에 이른 그의 남은 생애가 더욱 편안하고 유복한 것이기를 빌어마지 않는다.

근자의 그는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몸과 마음이 모두 튼실하여 일전에 일본 법정 대학의 ‘오끼나와 문학 연구소’초청으로 일본으로 출국했다. 일본어, 특히 유규어와 한국어와의 관계에 대한 특강, 그리고 상기 연구소의 양국 고대어 상관 관계 연구에 대한 자문을 해주기위해서였다.

그동안 ‘Good day 365'라는 잡지에 ’꿈은 왜 꾸는가‘라는 제목으로 1년이 넘도록 60회에 가량 글을 연재해 왔다. 앞으로 연말쯤 되면 77회로 이를 마감하고 단행본으로 출간할 예정으로 있다. 그는 여기서 꿈에 대한 정신 분석학적 해석을 부가한 프로이드나 융의 학설을 비판하고, 꿈은 욕구불만이나 갈등해소의 암시적 기능만 가진 것이 아니라 자기 보호 본능의 생체적 반응을 포괄한다는 새로운 논리를 내놓았다. 그리고 이를 실제적인 꿈의 해석에 적용하는 한편, 꿈이 잠자리의 수맥과 어떻게 연관되는가를 밝혀 보이고 있다.

서 교수의 수필 문학을 뒤따르는 후학들의 모임인 ‘미리내 수필문학회’와 ‘고황 수필문학회’는 요즈음도 그를 모시고 수필을 공부하며 작품의 품평회를 갖고 또 동인지나 작품집을 발간하고 있다. ‘미리내 수필문학회’는 서교수의 추천으로 문단에 나온 수필가들의 모임이며, ‘고황 수필문학회’는 서 교수가 경희 캠퍼스에서 가르친 제자 수필가들의 모임이다.

근래 그의 수필은 인생의 존재론적 의미에 대한 수준있는 천착을 보이면서, 세상살이의 여러 절목을 보는 시각을 한결 높여 잡았다. 70여년의 세월에 이르도록 학문과 문학의 큰 바다를 헤쳐온, 노 거목 같은 이분의 명호를 영예롭게 기억하면서 우리는 다시금 이 시대가 소명한 한 범상치 않은 인물의 생애 앞에 겸허한 마음으로 옷깃을 여미게 된다.

월간문학 2003년 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