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그루 거목으로 서 계시어

변해명 (수필가)

앉아서 오줌을 누는 여자가 무슨 회장을

선생님은 1941년 첫 기자생활을 시작하여 지금까지 활동하고 계시니 60년간 사회활동을 하신 분이다. 그 많은 이야기를 다 담을 수는 없고, 예술분야에 큰 업적을 남기신 예총회장과 여성으로 공무원이 뽑은 가장 인기있는 장관 1호로 제2 정무장관을 하신 이야기를 먼저 듣기로 했다.

- 조경희를 예총회장으로 평가해야 오늘의 조경희를 평가할 수 있어.

선생님의 목소리가 한 음정 높아졌다.

- 앉아서 오줌 누는 여자가 무슨 회장을 하느냐고, 예술 단체 이사장들이 입을 모았어. 싸워야 할 상대는 영화계의 거물 스타였고, 그와 나는 대적할 수도 없는 입장이었는데, 그때 나는 문협 상근 부회장을 하고 있었는데, 문협 사무총장을 하던 오학영이가 청진동 음식점으로 문인들 20명을 대동하고 몰려와 예총회장을 하라고 추대하는 거야. 그 말이 얼마나 무모한 말인 줄을 알면서도 그렇게 밀어주는 그들이 너무 고맙고, 감격하고 떨려서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어. 국악협회 여성 원로들이 나를 밀어주겠다고 했지만 거물 상대로는 나는 역부족이었어. 회장 출마를 하고 뛰어다니던 어느 날 나를 설득하러 온 사람이 있었어. 700만원을 주겠다고. 운동한 자금 200만원에 문협에 500만원 기금으로 줄 것이니 포기하라고. 그뿐인가 엄청난 유혹의 손길도 있었지. 물러나면 1억을 주겠다고 하더라구. 돈을 보이면서 말이야. 그때 나는, 모두가 나를 지지하지 않아도 조경희 1표는 양보할 수 없다고 거절했지. 그때 문협 대의원 20명의 절반 이상이 나를 지지하지 않는 악조건 속에서 투쟁을 했는데 내가 어떻게 당선된 거야. 각 단체 이사들도 거의가 안된다고 믿었는데 해낸 거지. 존재가 투쟁을 통해서 강해지는 것처럼 나는 치열한 투쟁을 통해서 강해졌고 투쟁은 나를 존재하게 했지. 그때의 체험이 앞으로 살아가는 데 많은 보탬이 되고 힘이 되지. 그래서, 앉아서 오줌 누는 여자가 당선 축하 꽃다발까지 준비한 거물을 꺾고 예총회장이 된 거야.

선생님의 그때를 생각하며 통쾌하게 웃었다.

예총회장으로 당신의 자리가 달라졌지만 해낼 일이 그렇게 만만하지만은 않았다고 하셨다. 그 당시 예총회관은 세종회관 신축으로 그 곁에 있던 예총회관 건물이 헐리고 인사도(지금 새마을 본부?) 사옥에 있었는데 너무 비좁아 예총회관을 하나 마련해야 하는 입장이었고 예총회장 출마 공약이 예총회관 건물을 마련하겠다는 것이 될 만큼 꼭 필요한 사업이었다.

예총회장이 되자 청와대를 드나들 기회가 생기고, 여자는 혼자여서 남자들 속에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마련될 때마다 로비를 했다. 어느 날 서울시장(염보현)이 불러 예총회관 건립기금 10억을 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의 손에 키스라도 해주고 싶은 심정으로 고마웠다. 10억을 얻어낸 것에 힘을 얻어 30억을 마련하게 되었고, 지금의 동숭동 건물을 인수하고 10개 예술단체가 들어가는 공간을 마련하게 되었다. 그 어렵고 힘든 과정을 말로 어찌 다 할 수 있을까.

- 30년간이지만 사회활동을 한 일 중 가장 힘들고 가장 보람된 예총회장직이었어요.

공무원이 뽑은 인기 1위의 장관

선생님은 88년 제2 정무장관을 지냈다. 그때 공무원이 뽑은 인기 1위(월간 조선)의 장관이었다. 어떻게 공무원의 마음을 읽고 일을 하셨는지 장관시절의 말씀을 듣기로 했다.

- 장관이 뭘 하는 것인지 남이 하는 것을 봤어야 흉내라도 낼 것 아니요? 더구나 여성 장관이 선배도 없고. 처음 가보니까 여성부가 없고 체육부가 여성부가 되는 건데, 일을 하려니 책상도 사무 집기도 없고, 사람도 써야 하고. 그런 자리에서 장관을 시작했어요.

- 예를 들어 ‘가족법을 고치자’ 하면 내가 가족법을 알 수가 있나. 그러면 담당 직원들과 간담회를 열고, 권위 있는 교수와 언론기관의 사람을 불러 토론을 시켜 보고, 거기서 거론된 주제로 세미나를 열고, 공청회를 열고, 그렇게 해서 의견을 수렴하고 결론을 내리고 일을 처리했지. 문단에서 세미나를 하듯 말이야. 세미나가 끝나면 직원들과 식사하며 여흥도 베풀어 주고 서로 대화를 나누게 하고, 그게 1등 장관이 되는 방법이 될 줄 몰랐어.

- 또, 대통령의 공약사업 속에 들어있는 것인 줄도 모르고 ‘바구니 경제’가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물가가 오르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는데 어떻게 하면 안 오르게 할까 하는 문제를 여성부에서 팀을 구성하고 일을 해서 총리실로 올렸더니 A학점을 주더라구. 대통령 공약사업을 철저히 실천한 부서가 되었지. 그때 내가 쓰는 메모지는 앞면을 쓴 재활용 용지의 뒷면을 썼는데, 그것도 A4용지를 가져오면 4/1을 잘라 썼으니 그것을 보고 직원들이 바구니 경제의 알뜰함을 몸소 실천하는 장관으로 보았나 봐.

- 그것보다 내가 장관으로 큰 일을 한 것은 각 시도에 여성국장을 만들어 놓은 거요. 여성들이 과장에서 국장으로 진급하는 것은 거의 없고 평생을 노력해도 기대할 수 없는 일인데, 내무부장관(이춘구)을 찾아가 이야기를 했다. 예르 들어 보사부에 여성아동복지과의 국장이 남자가 하고 있는 것은 모순이 아니냐, 그러니 그런 분야에 여성국장을 발령을 내어 주어야 한다고. 그런 식으로 청하고 설득하고 우기고 해서 가정복지국장 자리에 13명이나 여성과장을 여성국장으로 승진시키는데 성공했지.

- 내가 직접 발령을 낸 것은 아니지만 여성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남자들처럼 진급하고 발전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는 것이 지금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야. 이런 정신으로 여성고위층이 여성의 적성에 맞는 일의 길을 열어 준다면 여성들도 훌륭한 일을 해낼 수 있을 터인데…….

선생님은 폭포가 쏟아지듯 쉴새없이 유창하고 빠른 말씨로 지난 시간의 업적들을 쏟아 놓으셨다. 내가 화제를 돌리려고 하니, 60년 살아온 것을 1시간에 다 담으려고 하면 무리라며 아쉬운 기색이었다.

그 외도 예술의 전당 이사장 시절, 워싱턴에 있는 국립 여성미술관에서 로뎅의 애인 카미뉴 크로델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보고(파리에서 마침 그녀가 정신이상으로 자신의 작품을 모두 부수어 버리는 영화를 보고 간 인상이 남은 대라) 유심히 미술관을 둘러보았는데 역시 일본이나 중국의 여류 작품들은 전시가 되어 있는데 한국 여성의 조각품은 한 점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때마다 참을 수가 없어서, 한국에 돌아와 한국 여성 조각가 10인을 오광수 관장(미술평론가, 현대미술관 관장), 고 이일식, 유준상 선생에게 부탁하여 워싱턴 여성 미술관에서 10인전을 할 수 있도록 주선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여류 작품을 그곳에 기증해야 남게 된다는 생각으로 조영자씨(지금은 이태리에서 활동 중)의 작품의 후원자를 찾아 그 곳에 작품을 기증할 수 있도록 힘썼던 이야기며, 한국여성의 세계 진출에 앞장섰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월간문학 2002년 2월호

다음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