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조(組)가 좋아야 된다
류인혜
2003년 11월 23일, 광주에 있는 한국수필작가회원들의 모임에 참석했다. 모인다는 소문만으로 그곳의 형편을 알 수 없기에 직접 동참하고자 마음을 먹었다. 그 먹은 마음이 변할까, 혹시 일정에 차질이 없을까, 노심초사하다가 전날인 22일 주영준 초대회장과 함께 광주행 버스에 올랐다. 광주 터미널에서 뒤쫓아 온 문형동 직전회장과 합류했다.
세 사람이, 출발한다는 소식을 듣고 낮부터 기다린다는 최은정 이사의 집에 여장을 풀고 있으려니, 전야제의 성격으로 자리가 흥겹다. 푸짐한 저녁식사는 평소 사람을 살갑게 대하는 최선생의 넉넉한 인심을 그대로 보여준다. 한분 두분 전화가 걸려온다. 시작의 조짐이 상쾌하다. 감기에 걸려 며칠동안 꼼짝도 못하며 고생하신다는 장정식 이사, 시골에 갈 일이 있어 마중을 못해서 미안하다는 오덕렬 이사(광주모임 회장), 김경순 회원(광주모임 총무)의 수줍은 웃음소리가 마음을 맑게 해준다. 고창의 이상인 전임회장은 내일 아침에 출발한다는 말씀이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외조가 돈독한 모습을 과시라도 하는 듯 남편들이 운전하는 승용차를 타고 송미심 전 총무와 김경순 총무가 아파트 근처까지 데리러 왔다. 버스가 출발하는 전남도청 앞에 도착하여 다른 일행을 기다리며 오래전 광주에서 일어났던 역사의 한 편을 듣는다. 신문으로만 읽었던 그 기가 막히던 사건의 현장에 와 있는 가슴 뜨거움을 느꼈다. 길 저편이 금남로라고 손짓하는 그 손끝을 바라보았다. 휴일아침의 한가로운 길에는 잔잔한 아침 햇살만 내려 쬐인다. 이곳 사람들이 사람에게 살뜰한 이유를 짐작해 본다. 죽은 목숨은 허망하지만 산 사람은 그래도 잘 살아야 되지 않겠냐는 당연한 물음에 대답이 나왔다. 그래 생명이 있는 한 열심히 살자. 그래서 편안한 마음으로 그날 하루, 그들을 따라 다니며 어린아이와 같이 천진한 즐거움에 동참했다.
남원을 지나다가 특산물 가게에 들려 평소에 장만하고 싶었던 목기를 샀다. 절에 있는 스님들이 사용하는 바릿대는 다섯 개의 둥근 그릇이 한질로 차곡차곡 들어가서 뚜껑을 덮으면 하나처럼 보였다. 옻칠이 잘 되어 검정빛으로 반짝거리는 수저도 두벌 넣었다.
먼저 최명희의 소설 <혼불>의 배경지인 노봉마을(전라북고 남원시 사매면 노봉리)에 들렸다. 이곳은 혼불의 작가 최명희의 고향이다. 청암저수지를 왼편으로 두고 길을 따라 올라가니 아직 문학관이 완성되지 않았다. 산 밑으로 대나무 숲이 조성되었다. 문학관 주변을 가장 소설적인 분위기로 만들려는 모양이다. 안쪽에 ‘ㄱ’자로 지은 집은 거의 완성되어가고 있었지만 입구에 있는 ‘ㄴ’자 모양의 건물은 어수선하다. 안내자를 찾았지만 아무도 문학관에 대한 설명을 해주는 사람이 없다. 다시 내려와서 건축개요를 읽어 문학관의 설립목적과 규모를 알아본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청암부인의 생가를 방문하러 골목길을 걸어 다시 올라갔다. ‘혼불문학의 집’으로 칭하는 그 집은 다시 복원을 하였지만 노봉마을 가장 안쪽에 자리하여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는 위치다. 뒤꼍으로 가서 장독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마당에 모두 모여 앉아 이 집에서 삼대에 걸쳐 운명적인 삶을 살다간 세 여인을 생각하며 사진(올려놓은 사진)을 찍었다. 마을을 떠나 큰 길로 나오니 가로로 길게 나있는 철로에 새로 생긴 듯 기차역(서도역)이 있다. 문학관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더욱 편하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다음에는 지리산에 올랐다. 올라가면서 산을 만나고, 올라가서 첩첩히 늘어선 산을 만나고, 내려오면서도 깊은 계곡을 안고 있는 산을 보았다. 푸른 잎을 떨어 낸 겨울 지리산의 우아한 자태와 장엄함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흥취가 오래 가시지 않는다. 어느 계곡의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섬진강을 끼고 달리다가 순창의 고추장 마을에 들렸다. 서울에서 온 사람들에게 고추장을 선물해 주었다. 맛있기로 소문이 난 집으로 들어가서 먼 곳에서 온 사람이라며 후한 대접을 받았다.
몇 달 동안 고민하던 문제가 쉽게 풀린다. 한국수필작가회 홈페이지의 <작가인터뷰>란을 누구로부터 시작을 할까, 첫 번째라는 부담으로 그 타당성을 염두에 두었는데, 이 사람들을 인터뷰하면 별 무리가 없겠다는 확신이 섰다. 엄격히 같은 식구이지만 그렇다고 늘 한 밥상에 마주 앉아서 대하는 것도 아니니 객관적으로 살펴 내어놓기에 적당하다. 그들을 눈을 부릅뜨고 살펴보다가 가늘게 감고도 보았다. 그리고 모임의 회장을 맡고 있는 오덕렬 이사께 질문을 했다.
- ‘한국수필광주작가회’는 어떤 계기로 시작되었습니까?
광주에 거주하는 분들로 『한국수필』 등단 작가가 하나 둘 늘어나자 한번, 서로 만나자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왔습니다. 만나서 무얼 할 것인가? 어렴풋한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 생각이 ‘정보를 교환하자. 친목을 도모하자. 우리 서로 수필로 말하자. 그리고 새로 등단한 우리 지역 작가를 격려도 해야지 …….’ 라고 뚜렷해지자 결정을 했습니다.
그래서 2001년 10월 25일에 첫모임을 광주시내 운암동 진흥고등학교 앞에 있는 ‘낙지한마당’ 식당에서 모였습니다. 제법 고풍스럽고, 원목 탁자, 등롱, 항아리 등으로 운치가 있게 장식된 그 곳에서 6명이 모여 시작했습니다.
- 지금까지의 활동 상황을 소개한다면?
이 모임은 딱딱하지 않고 회원의 의사를 십분 이해하는 방향으로 운영하기로 하였습니다. 일부러 회의 운영을 조금은 느슨하고, 헐렁한 맛이 나도록 하자는 데 의견일치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회칙도 만들지 않았습니다. 첫 모임을 가진 지 이제 2년. 그동안 14회의 모임이 있었으니 날마다 서로 만나고 싶은 마음이 새록새록 자라고 있는가 봅니다.
모든 여행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조(組)가 좋아야’ 하지 않을까요. 많은 모임 가운데서 우리 조인 ‘한국수필광주작가회’는 좋은 조라는 생각들을 갖고 있습니다.
하루 종일 그들을 따라다니면서 얻은 결론도 그랬다. 회원 서로가 잘 어울리고 있는 좋은 ‘조’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먼저 경향 각지의 문학행사에 적극 참여하려 했습니다. 한국수필작가회의 문학 행사는 물론 광주문협 등 지역에서 행하는 문학 행사에도 많이 참여했습니다. 덧붙여 소개한다면 회원 중에 광주광역시 문인협회의 직책을 맡은 분이 많습니다. 부회장으로 저와 최은정 회원, 이사로 박선님 회원, 수필분과위원장에는 장정식 회원이 있습니다.
그리고 계절에 따라 특색이 있는 모임이 되게 노력하였습니다. 가장 쉬운 예로 봄, 가을에는 문학기행을 계획하여 여수의 향일암, 구례 산동 산수유 마을을 방문하고, 이렇게 최명희의 <혼불>의 고향을 찾게 된 것입니다.
여름과 겨울에는 밖으로 움직이는 것보다, 차분히 앉아서 회원 작품의 합평회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함께 모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은 하면서도 그들의 사이좋음을 심술부리듯이 훼방꾼이 되고 싶은 마음이었다. 한국수필작가회의 다른 회원은 내버려두고 왜 광주사람들만 모여서 재미있게 지내느냐고 묻고 싶었다.
- 이렇게 모여야 될 필요성을 말해주세요. 이 모임이 모체인 한국수필작가회에 대한 기여도를 구체적으로 알고 싶습니다.
문학이 다 그렇겠지만 특히 수필은 사람 냄새나는 문학이 아닌가 합니다. 문학을 한다는 사람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반가운 일인데 그것도 장르가 같고 또 같은 ‘한국수필’을 통하여 등단한 작가가 한 지역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대단한 인연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번 만나보자고 하는 마음들이 있었습니다.
한국수필작가회의 행사(세미나, 출판기념회, 문학기행)가 있을 때마다 우리끼리 사전 모임을 갖고 어떻게 할 것인가, 뜻을 모으고 참석을 권장하는 등 일체감을 갖고자 노력하였습니다. 앞으로도 한국수필작가회의 집행부가 어떻게 구성되든 어떤 사람이 임원이 되든지 협조할 것이며, 여기 우리는 함께 열심히 수필을 공부할 것입니다.
- 이 모임을 한국수필작가회 광주지회라고 보아도 될 것인가?
앞에서 말했지만 우리는 회칙도 두지 않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그러나 명칭은 ‘한국수필광주작가회’로 하였습니다. 굳이 지회(支會)의 성격을 띨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광주 지역의 한국수필작가회의 회원이 똑같이 한국수필광주작가회 회원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각 지역마다 자생적으로 모임이 이루어져 활동하면 그만큼 한국수필작가회가 발전하게 되겠지요.
그렇게 모임의 회장으로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는 오덕렬 이사는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개인의 신상명세로 화제를 돌린다.
- 선생님께서는 어떤 계기로 수필을 만나게 되었습니까?
나는 고시검정으로 중등학교 국어교사가 되었습니다. 교과서에 나오는 문학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어느 장르 건 하나는 자신 있게 대해야 되지 않을까? 학생들에게 확실한 ‘믿음’을 주어야 권위가 생겨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되자 어렴풋이 어릴 적 성장 과정의 환경 체험에서 간직되어온 문학의 뿌리가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그때가 1970년대 초, 월간지 『수필문학』이 나오고, 윤오영 선생의 [수필문학입문]과 만나게 되어 수필을 공부하는 ‘계기’가 마련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세월이 십여 년 지난 83년 가을에는 내가 늦게 다니던 방송통신대학교의 문학상에 수필 <어항 앞에서>가 김우종 교수님의 추천으로 당선되어 수필에 대한 가능성을 엿보게 되었습니다. 이런 결과는 수필 공부에 눈을 뜨게 해 주신 고등학교 은사님이신 송규호 수필가를 모시고 문우 몇이서 합평회를 열심히 했던 덕이기도 합니다.
요즘은 수필을 지루하지 않고, 쉽고, 재미있게 그리고 상징성을 띠어 독자에게 어떤 울림을 주게 쓰는 것이 나의 과제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그동안의 개인적인 활동을 간단히 소개해 주세요.
1989년에 수필 ‘까배미’로 (한국수필 통권 51호) 초회추천을 받고 난후 1990년에 수필 ‘사랑방’ (한국수필 통권 55호)으로 추천을 완료 했습니다. 그리고 수필집으로는『복만동이야기』(도서출판 예원, 1992.)와 『고향의 오월』(문예운동, 2001.)이 있고, 광주문학상(수필부문) 수상 (2001.12.)을 하였으며, 광주문인협회 수필분과위원장 역임(1996.1-1998.12) 했습니다.
현재 광주문인협회 부회장의 직책을 맡고 있습니다.
- 이 인터뷰는 한국수필작가회의 홈페이지 <작가 인터뷰>에 실릴 것입니다. 우리 홈페이지의 운영에 대한 의견이 있다면요.
늘 발전적이고 독창적인 운영 방식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동인지의 작품을 올리고 있는데, 곁들여 동인 각자의 방에 자기의 작품만을 올려 쉽게, 작가와 작품을 만나게 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만합니다.
- 이제, 마지막으로 선생님께서 어떤 내용이든 평소에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해보세요.
문학은 결국에는 살아가는 이야기가 아닐까요. 한 번밖에 없는 삶을 헛되이 보내지 않는 방법으로 일기를 썼습니다. 연전(年前) 내가 써오던 일기를 소홀히 하자
“쓰소 써어…!”
하고, 단호하게 말씀해 주신 시조시인 재열이 형님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요새는 메모 형식으로 수필쓰기에 도움이 되게 ‘작품 메모 일기’라는 이름으로 생활의 조그마한 일이라도 금싸라기처럼 기록해 가고 있습니다.
광주를 떠나기 싫은 일행은 그날 밤 찜질 방에서 옷을 벗은 채 뒤풀이를 하고, 다음 날 새벽 버스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다. 그리고 며칠 동안 가슴 가득한 감동으로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이번 여행의 조(組)가 좋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