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LAY::
<문예비전 2005년 1-2월 32호 기 게재>
영혼의 자유인 반 숙 자 수필가와 함께
장소 : 충북 음성 반숙자 선생님 자택
일시 : 2004년 12월 20일 오전 11시
참가자 : 서정범 교수, 반숙자 수필가, 이정원 수필가, 한동희 수필가
사회/정리 : 김주안 문예비전 편집장(수필가)
겨울 햇살이 차창밖에 환하게 부서져 내리는 날이었다. 평소보다 다소 이른 아침 회기역에서 서정범 교수님, 한동희 수필가, 김주안 편집장이 대기한 승용차에 올랐다. 이정원 수필가가 마지막으로 합류를 하였다. 2004년 12월 14일 서정범 교수 산수기념 헌정수필집 미리내 출판기념회를 마친지라 화제는 연신 《미리내》를 발간한 이후의 후일담으로 이어졌다. 모두들 거사(?)를 치뤄낸 주역들이었기 때문이다. 문단사상 이렇게 많은 제자들이 결집이 되어 한 권의 책으로 출간한 일은 없을 것이라며 입을 모았다. 음성 톨게이트를 빠져 나오니 4차선 도로로 말끔히 단장되어 자동차 소통이 시원하다. 산과 개천을 끼고 나지막한 곳에 위치한 음성이 평화스럽고 아늑하게만 보인다. 반숙자 선생님 아파트 문 앞에서 초인종을 눌렀다. 이내 문이 열리자 두 팔을 벌리고 반색을 하시는 반 선생님. 일행을 일일이 안으면서 맞아주신다. 정스러움이 연신 묻어난다. 준비된 찻잔에 따끈한 차를 일일이 부으시면서 서정범 교수의 방문을 의외하시면서도 사뭇 반가워하시는 표정이다.
반숙자 : 글쎄요, 제가 뭐 인터뷰할 내용이 있어야지요.
김주안 : 선생님께서 평소에 생각하고 계셨던 것은 말씀해 주시면 되어요.
한동희 : 반 선생님께서는 수필을 쓰시게 된 동기는 무엇이신지요.
반숙자 : 처음부터 수필을 쓰겠다고 의도한 것은 아니었어요. 장티푸스를 앓게 된 후 청력을 상실했어요. 그래서 근무하던 학교를 그만두게 되고 세상을 비관하게 되고 부정적으로만 보게 되었어요. 과수원집에 살면서 마음에 있는 것들을 일기처럼 편지처럼 적어놓았어요. 그러기를 3-4년 하다가 81년도에 한국일보 신춘문예 공고를 보고 수필인지 뭔지는 모르지만 한 번 내보자 하고 작품을 냈어요. 그것이 계기가 된 거예요.
서정범 : 그때 김소운 선생하고 내가 심사위원이었지요. 윤모촌 선생하고 반 선생하고 두 작품이 올라왔어요. 김소운 선생은 대체적으로 고전적이고 보수적인 경향이 있어 윤모촌 선생 작품이 전통적인 수필적인 요소가 더 있다고 했고 나는 현대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어서 반 선생 작품이 수필성이 더 있다 했지요. 그러니까 김소운 선생도 선뜻 결정을 못하더라구요. 그래서 문화부와 의논해서 둘을 주는 방법은 없겠느냐 했는데 관철이 되지 않고 마지막으로 윤모촌 선생이 되었어요. 그런데 반 선생 작품이 무척 아쉬운 거예요. 문화부에 부탁을 해서 연락처를 알아냈지요. 그래서 인연이 되었고 알고 보니 나와 같은 충청도 음성 사람이었어요.
반숙자: 예, 얼마 후에 서 교수님께서 전화를 주셨어요. 한국수필로 등단하지 않겠냐고 하셨어요. <산이 걸어와서>, <가슴으로 오는 소리> 두 작품이 천료되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수필을 쓰게 되었어요. 그런데 그때 저와 작품경쟁을 하게 된 분이 윤모촌 선생님이신 줄 몰랐어요. 윤씨라는 것만 알았어요. 정확하게 윤모촌 선생님이시라는 것은 이번에 처음 아는 거예요. 헌정수필집 《미리내》를 보니까 윤모촌 선생님 약력에 표기가 되어 있더라구요. 그리고 오늘 서 교수님한테 처음 듣구요. 그랬다면 당연히 윤모촌 선생님이 되셨어야지요. 그 후 첫 수필집을 내고 윤모촌 선생님이 액자를 보내오셨어요(윤모촌 선생의 휘호가 새겨진 액자를 가리킨다). 그런 상황인줄을 모르고 감사하게 받았어요.
서정범 : 정말 처음 알았어요? 아, 그래요. 그때는 윤갑영이라는 본명을 써서 그랬을지도 모르죠. 이번에는 반 선생 작품을 한번 이야기 해 봅시다. 금번 헌정수필집 《미리내》에 나온 작품 <이슬의 집>은 상당히 시적이라고 봅니다. ‘이슬의 집’이라는 단어를 누가 또 썼는지는 모르지만 처음 보는 듯 합니다. 읽어보게 되면 산과 하늘이 다가오게 된다고 했는데 이는 작가가 자연에 몰입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또 하나의 집이 있는 것 같다고 했고 만약 죽으면 후세의 집은 또 어떠한 집일까 라고 했어요. 이슬의 집과 자연에 몰입되었을 때 또 하나의 집, 그리고 이 생을 떠났을 때의 집 등 여기서 세 집이 나와요. 반 선생의 사상적인 면이 집이라는 것에 가장 잘 축약되어 있는 것 같아요. 그러한 집에 대해서 설명을 좀 한다면 어떨까요.
반숙자 : 예,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를 벗어나면 논이 있고 그 옆에 하천둑이 있어요. 10월쯤이었을까. 운동도 할겸 논둑길을 따라 아침 일찍 산책을 하고 있는데 벼이삭에 무수한 거미줄이 쳐져 있는 거예요. 거기에 이슬이 반짝반짝해요. 목적지까지 갔다가 다시 그 길을 걸어오는데 아침 해가 중천에 떠있고 어느새 거미줄은 말끔히 걷혀서 하나도 눈에 띄지 않았어요. 아마 밤을 새워가며 짓고는 아침에 잠깐 있다가 해가 뜨면 말끔히 거두는 가봐요. 그것을 보면서 거미줄만 순간이 아니고 이 생에서 허락된 우리의 삶도 거시적인 안목으로 보면 순간적인 것이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런데 그러한 순간적인 삶속에서 나는 왜 이렇게 복잡하게 살까. 좀 자유스럽게 가볍게 살 수는 없을까 생각하게 되었어요.
뽕나무골에 가면 <몸으로 우는 사과나무>를 쓴 과수원집이 있는 곳 말이예요. 몸은 일을 하고 있는데 마음은 늘 딴 데로 가 있는 거예요. 하루는 농약호수가 터져 새고 있는데 마음이 여기저기 날아다니느라 모른 거예요. 남편이 아무리 고함을 쳐도 보청기를 빼고 있으니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요. 오직 내 안에 있는 소리만 들릴 뿐이예요. 남편은 그럴 때 소리를 지르면서 몸만 여기가 당신 집이지 마음은 딴 데 가 있으니 허당이라고 야단을 하지요. 그러면 저는 제 자신에게 물어봐요. 그럼 내 집은 어디인가. 한동안은 성당이 내 집이기도 했고 지금은 다른 곳이기도 하고, 마음이 가는 곳이 바로 내 집이 아닌가. 그래서 이 작품은 정말 내 집은 어디인가 하는 물음을 제 자신에게 묻고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안 듣고 싶은 소리가 많은데 보청기를 빼면 그 소리를 안 듣는 것이 제일 좋아요. 그때는 산도 내 것이 되고, 바람도 내 것이 되는 것 같아요.
서정범 : 반 선생은 마음이 참으로 자유로운 분이군요. 결국 잠자리가 춤추는 것을 보고 나도 자유로운 춤꾼이 되고 싶다 라는 강렬한 의욕을 보이고 있는 것 같아요. 유충은 추한 것이지만 몇 십 번 변해서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는 잠자리가 되는 것이 아니겠어요. 현실도 하나의 변화과정이라고 본다면 나도 잠자리와 같이 몇 번을 탈속했느냐 따라서 현실을 얼마만큼 완성했느냐 하는 문제도 되겠지요. 그리고 완성을 위한 현실이라면 현실은 이슬의 집이 아니겠는가. 이슬이 아름답듯이 현실도 아름답게 보는 작가의 아름다운 눈이 있다고 봐요. 이슬은 낮에는 없고 밤에 생성되며 아침에만 잠깐 있다가 사라지지만 그 속에는 영롱한 아름다움이 있잖아요. 이슬을 달의 오줌이 하기도 하고 여성 생리를 가리킬 때도 쓰지요. 그런데 이러한 집이 한 곳에만 있는 게 아니라 또 있다는 것은 작가의 내면적 세계는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지요. 세 곳에 있는 집들은 진부한 세계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새로운 집을 찾아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있는 작가의 독특한 문학세계라고 봅니다. 그렇다고 현실을 부정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작가가 아침 이슬 같은 것을 찾아내는 작업은 상당한 관찰력이 있다 라고 평하고 싶습니다.
반숙자: 그렇습니다. 현실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지금 내 영혼이 힘들고 아프더라 할지라도 영원을 위해 진화하는 과정이라면 안고 가겠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삶은 일회성이지만 아픈 것을 고스란히 안고 가겠다는 것입니다. 단지 내가 원하는 것은 현실은 아프지만 영혼만은 잠자리처럼 가볍게 되어서 훨훨 자유롭게 날고 싶다는 것입니다.
김주안 : 저도 영혼을 자유롭게 하고자 애를 쓰지만 생각처럼 잘 되지 않습니다. 현실의 상황을 벗어나기가 무척 힘들거든요. 선생님은 진정한 영혼의 자유인으로서의 삶을 사시고 계시다는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은 수필을 쓰실 때 주로 어디에 주안점을 두시는지요.
반숙자 : 수필을 쓰기 이전에 저는 삶이 우선이라고 봅니다. 삶의 테두리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삶의 반영이 곧 문학이고 수필이 아니겠습니까. 좋은 수필을 쓰겠다는 욕심이 크니까 묘하게 되지요. 아름답게 살려고 노력하면 수필도 아름답게 쓸 수 있다고 봅니다. 저는 그렇게 아름답게 살고 있지는 못하지만 노력은 하고 있어요. 그래서 늘 생각하기를 사람이 먼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필적인 삶을 살도록 노력하면 결국 좋은 수필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초점을 맞춥니다.
이정원 : 반 선생님과는 개인적으로 특별히 대화를 나눈 적은 없었지만 가슴으로 같은 느낌, 같은 생각을 할 것만 같다는 생각을 해 왔습니다. 오늘 그것을 새삼 또 알았습니다. 선생님은 글쓰기를 참 잘했다라고 생각할 때가 있으셨나요.
반숙자 : 언젠가 뽕나무골 농장 집을 비워두고 서울에서 산 적이 있었어요. 그때 가끔 과수원집에 들르면 현관 앞에 사탕바구니가 놓여있고 문에는 쪽지가 붙어 있는 거예요. 그 쪽지에는 이름을 밝히지 않고 <당신이 작품을 쓰는 곳을 다녀갑니다, 당신이 거닐었던 발자국과 당신이 보아온 달을 바라봅니다> 하면서 작품 속에 나오는 곳곳을 이야기하고 있었어요. 그 순간 수필을 쓰게 하셔서 고맙습니다 하는 감사가 저절로 나왔어요.
그리고 15년 전인가 독자 한 분이 녹음기를 가지고 와서 녹음을 해가면서 인터뷰를 하는 거예요. 그런데 수필에 관한 것만 묻는 것이 아니고 정치이야기까지 나오는 거예요. 인터뷰를 하면서 녹음기가 흔하지 않았던 시절이라 녹음기도 그렇고 질문내용도 그렇고 수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몰래 동네이장님에게 연락을 했어요. 그래서 그 사람은 파출소에서 조사를 받았어요. 나중에 보니까 목사님이셨는데 내 수필을 좋아하는 독자였어요. 지금 생각하면 무척 순진했어요(일제히 웃음이 터진다).
그리고 어디를 가면 <몸으로 우는 사과나무>를 쓰신 분이시지요 하고 물을 때면 고맙지요. 무엇보다도 제일로 고마운 것은 사람들이 인정을 해 주었다는 겁니다. 시골에 오니까 농사를 지어야 하는데 모든 게 서툴렀어요. 동네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거예요. 농사를 지을 줄도 모르면서 귀머거리가 되어 시골에 와서 다 포기하고 저러고 있다고요. 글을 쓰면서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했지요. 일일이 말로 못하는 것을 글로 쓰니까 그 마음을 드디어 사람들이 알아주더라구요.
또 막내에게 자랑거리가 되는 엄마가 되었어요. 우리 엄마는 다른 엄마와 다르다 하며 자부심을 갖더라구요. 당시 생모가 아니었던 내게 막내는 사춘기를 지나는 동안 무척 힘들게 하는 존재였는데 글을 쓰게 되면서 모든 게 화합이 되었어요. 당시 막내가 대학에 들어갔을 때 학비 대기가 무척 힘들었어요. 사과 한 상자 팔아야 1500원이었는데 무척 버거웠지요. 1달 동안 할아버지네 간다고 해놓고 복권을 팔아가지고 만오백 원인가를 봉투에 넣어가지고 이 돈으로 쌀 사세요, 그동안 미안 했어요 하는 거예요. 그렇게 속을 썩이던 아이였는데 아이와 새엄마인 내가 글로 인해 일체감을 가지게 되었어요. 지금 그 아이가 제일 효자노릇을 한답니다. 모두 글을 쓴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주안 : 흔히 들을 수 없는 반 선생님의 말씀 감사했습니다. 조금 화제를 바꾸어서 수필문학에 대해 논해볼까 합니다. 수필계에서 한국의 내로라는 작가들과 대 스승이신 서정범 교수님, 그리고 수필계의 대모로 불리어도 과언이 아닐 반 선생님께서 현재 타장르와 비교해 보았을 때 수필문학의 위상은 어떻다고 생각하십니까. 먼저 서정범 교수님부터 말씀해 주세요.
서정범 : 현재 많은 수필가들이 문학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쓰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고 봐요. 한마디로 문학정신이 없어요. 문학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평범한 소재이지만 독자가 공감하고 즐거움을 얻는 예술적인 기능차원까지 형상화해야 한다는 겁니다. 문학성에 대한 재인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봅니다. 문학은 살아가는 모습을 재구성하는 것이고 인생을 재해석하는 것이지요. 특히 수필문학은 현장을 통해서 얻은 소재를 가지고 그 소재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현재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독자에게 스스로 판단하게끔 이끌어 줄 수 있는 고도의 경지까지 올라가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야 수필이 문학으로서의 위상을 세워가며 탄탄한 자리매김을 해 나갈 것이 아닙니까.
반숙자 : 이제는 수필가들이 많이 양상되어 양적으로 볼 때는 상당히 커졌습니다. 그런데 수필을 쓰는 수필가들이 스스로 자신을 비하하고 있다는 겁니다. 모든 세상사는 내가 중심입니다. 내가 기뻐야 남도 기쁘지요. 우리 주위의 삶의 테두리도 중요한데 내 안의 기쁨이 더 소중합니다. 남이 어떻게 생각하든 자신을 높여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염려스러운 것은 수필을 쉽게 알고 너무 많이 대든다는 겁니다. 아무렇게나 써도 수필이라고 하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문학이란 삶을 풍요롭게 하고 정신세계를 확대시키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합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사람을 감동시키고 확대시키고 이 세상을 좀더 낫게 하기 위한 사람에게 주는 학문입니다. 문학적인 수필은 감동을 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한 문학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감동입니다. 순간적이지 않고 오래도록 기록으로 남아 영원성, 지적, 정서적, 의지적인 감동을 주는 것이어야 합니다. 말초신경만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두드리는 단계까지 올라가야 하는 것이 수필이 깊이 안고 있는 과제입니다.
이정원 :수필을 쓰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치열한 작가정신이 필요한 시기라고 봅니다. 어느 분은 쉼표 하나에도 작가정신이 깃들어 있지 않으면 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수필은 가장 고백적인 장르인 만큼 그것을 문학작품으로 승화시켜 완전한 작품으로 만들어내는 일이 필요하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지식이 담겨 있어야 함은 물론, 치밀한 구성력을 가지고 정한 테마를 향해 나가야 합니다. 단순한 고백이나 일기가 수필문학의 위상을 떨어뜨리는 한 요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동희 : 특히 소재를 선택하는 문제에 있어서나 주제를 정하는 문제에 있어서 주변의 영역을 벗어나 자신의 뚜렷한 작품세계를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앞서 말씀하셨듯이 신변잡기에 머무는 한 수필의 위상은 그다지 높아지지 않으리라 봅니다. 자기만의 안목과 지적수준을 스스로 높이는 방향으로 노력해야하고 세계관을 넓혀야 합니다. 그리고 구양수가 말한 삼다(三多),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보는 일에 게으르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수필문학의 위상이 현저하게 저하되고 있는 원인을 또하나 꼽자면 제도적인 문제를 들 수 있는데 각 문예지들이 다량의 수필가들을 배출한다는 것입니다. 엄선하여 역량있는 신인들을 배출하였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김주안 : 여러 선생님들의 수필문학의 현주소와 미래와 그리고 활동하고 있는 현역 수필가들에게 따끔한 일침을 놓는 말씀 감사합니다. 저도 문예지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 중의 한 사람으로서 겸허히 수용하겠습니다. 반 선생님의 현재 근황은 알고 싶습니다.
반숙자 : 외도를 좀 하고 있어요. 금년에는 모든 것을 내놓을 예정인데 음성예총회장을 한 2년 하다보니까 외도를 하는 셈이예요. 일 년에 치르는 행사도 많아요. 또 전국 산하에 70여 개의 예총에서 각종 행사를 하는데 일일이 참석해야 합니다. 그 외에 창작교실 두 곳에서 수필강의를 하며 문하생들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한동희 : 서정범 교수 101 제자들이 묶어낸 헌정수필집 출판기념회에 다녀가셨는데 보시고 느끼신 소감은 어떠신지요.
반숙자 : 이 시대에 본받을 만한 귀감이 되는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제간에 끈끈한 것이 없으면 그런 일이 있었겠습니까. 서 교수님께서는 복이 많으신 스승이시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 이러한 제자들이 있으시지요. 이러한 일들이 한국문단에 많이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김주안 : 바쁘신 중에 저희들을 환대해 주시고 긴 시간 대담에 응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더욱더 건강하시고 문단사에 길이 남을 좋은 수필을 많이 써 주십시요. 감사합니다.
인터뷰가 끝나갈 즈음 연신 전화벨이 울린다. 음성예총 직원들과 반 선생님 문하생이 점심식사 준비가 되어 있다는 전갈이었다. 현관문을 나서자 미리 준비해 놓은 쇼핑백 세 개를 각각 손에 들려주신다. 그리고 음성청결고추가루, 대추, 들기름을 조금씩 넣었다며 넉넉한 웃음을 지으신다. 친정집 다녀가는 것 같다며 모두들 좋아한다. 접시 가득 담겨있던 찐고구마도 나누어 싸서 또 넣어주신다. 고구마처럼 구수한 반 선생님의 마음이 흠뻑 가슴으로 젖어든다. 그래서인지 그날의 겨울 햇살은 더욱 따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