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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큰 어른을 여읜 허전한 마음으로 빈소에 다녀왔습니다. 올 3월에 선생님을 뵙고 나눈 말씀과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건만 선생님은 오늘 고통이 없는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올 3월 문학저널에 게재한 글 올리며 삼가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2005. 8. 5) ********************** <원로문인과 차 한 잔/조경희 수필가> 한국 현대 수필문학의 거장 -조경희 선생님과 차 한 잔을 나누며... 꽃샘추위가 옷깃을 여미게 하는 2005년 2월 24일 오후 4시에 조 선생님은 제3회 문화예술저작상을 수상하셨다. 분홍 한복을 곱게 차려 입으시고 수상 소감 말씀을 하시는 선생님의 목소리는 힘차고 위엄이 있었다. 늘 상을 주시는 분으로서 산타클로스처럼 많은 것을 베푸시던 선생님께 상을 드리는 것은 어쩌면 어울리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에 대한 작은 보답이라며 축사를 해주신 이어령 선생님과 심사위원, 주최 측 등에 감사하다는 말씀을 두루 챙기셨다. 반갑지 않은 친구 때문에 고생을 좀 했으나 이런 좋은 일로 여러분을 만나니 힘이 나서 이제 반갑잖은 친구도 깨끗이 물리치고, 앞으로 더욱 힘차게 살겠다는 인사 말씀을 하셔서 장내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 미수(米壽 88세)를 헤는 연세에 큰 병치레까지 하고 계신 분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힘이 넘쳐 보였다. 말솜씨 또한 어쩌면 그렇게 재치 있고 훌륭하신지 과연 제2정무장관을 지내신 여장부다우시구나 하는 찬사가 절로 나왔다. 20년 전에 한국일보사 주최의 행사에서 축사를 해주시는 조 선생님을 처음 뵈었고, 근래에는 한국수필가협회 사무실에서나 행사 때 가까이서 자주 뵙는 편이다. 오늘 예고도 없이 눈이 온 날이라 선생님께서 사무실에 나오셨을까 하는 염려를 안고 한국수필가협회 사무실로 전화를 해보니 나와 계신다기에 오후에 선생님을 뵈러 나온 것이다. 눈이 오는 날인데도 나오셨다며 인사를 드렸다. “이뿐이 왔구나. 김영이지? 눈 다 녹았어." 그 간단한 인사 속에 사람을 기분 좋게 해주는 말솜씨며 예지가 빛남을 느꼈다. 오늘은 선생님과 차 한 잔 나누며 선생님의 삶과 문학에 관한 귀한 얘기를 듣고 싶다고 말씀 드리니 편안하게 소중한 얘기 보따리를 풀어내신다. 선생님은 커피를 좋아하시는 편이다. 요즘은 건강을 생각해서 녹차를 선호하신다고 하시며 상냥한 김 간사가 내온 녹차를 드시며 내게 커피를 권하신다. 한국수필, 한국수필가협회와 함께 늙었다는 말씀을 하실 땐 1971년부터 지금까지 수필 문학의 근간인 한국수필을 위해 많은 노고를 아끼지 않으신 분의 감회가 서리는 듯싶었다. 몇 십 년 전 김동리 선생이 문인협회 회장을 할 때만 해도 이사를 맡을 사람이 없어서 선생께서 이사를 하셨다고 하시는 게 아닌가. 조경희 선생님의 업적이며 경륜을 짧은 지면에 어찌 다 조명하겠는가만 요약하면 조선일보, 한국일보 등의 기자 생활을 거쳐 장관을 역임하셨고 수필 문학의 뿌리 역할을 튼튼히 해 오신 분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다. 주요경력에서 보듯이 그런 화려한 경력들은 사단법인 한국수필가협회를 이끌어오고 글을 쓰는 데에 큰 기회였고 도움이 되었다고 하시는 게 아닌가. 장관직에 계실 때에도 공무원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장관 1위에 올랐으며 노인문제며 청소년문제, 여성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셨던 분이다. 생각과 이론으로서만이 아니라 지방 출장 때마다 양로원이나 소외된 노인들을 찾아가서 점심도 사고 얘기도 나누고 고충을 들어주며 실질적인 나눔의 기회를 가지기도 하셨다. 그런 삶이 있어서인지 조 선생님의 수필의 특징은 사물의 내면세계를 파악하면서 그 의미를 인생에 결부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철학이 깃들어 있다고 보겠다. 요즘은 수필가도 많고 문예지도 많아 너무 양산 되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냐고 말씀 드리니, 그것은 글 쓰는 여건이나 풍토에 장족의 발전이 있어서 그만큼 많은 사람이 수필에 애정을 가진 결과로, 독자층도 넓어지고 수필가도 많아진 게 아니겠냐며 긍정적으로 생각하시는 것 같아서 도량이 넓으신 분임을 엿볼 수 있다. 좋은 글을 발표할 땐 보람을 느끼고, 수상까지 하게 되면 영광스럽고 어린아이처럼 기쁘다고 하신다. 선생님 댁엔 책이 2층으로 오르는 계단에까지 빼곡하게 차있었다. 그것들은 이미 조 선생님의 고향인 강화로 보내졌다. 책뿐이 아니라 평생 모았던 그림이며 소장품들을 강화읍에 건립 추진 중인 ‘조경희 문학관’에 보내신 것이다. ‘조경희 문학관’은 강화 재경 향우회에서 설립을 추진하여 금년 8월에 기공식을 가질 예정에 있다고 한다. 또 가을에 책도 한 권 내실 계획이시라니 자서전 표제에 쓰인 ‘언제나 새길을 밝고 힘차게’ 내딛는 분이시라는 게 증명이 되고도 남는다. 끝으로 10여권에 이르는 작품집 중에서 가장 애정이 간다거나 대표작으로 꼽고 싶은 게 어떤 것이냐고 여쭈어보니 작품마다 나름대로의 애정이 다 깃들어 있다고 하신다. 어느 자식인들 사랑스럽지 않으랴. 내가 국어교사로 재직할 때 선생님의 수필 ‘얼굴’이 교과서에 실려 있어서 가르친 적이 있다. 그 작품은 철학이 깃들어 있는 격조 높은 작품으로 여겨져서 문학저널에 싣고 싶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흔쾌히 승낙하신다. 한국 수필계의 뿌리요 한국 현대 수필문학의 거장이신 선생님께서 부디 건강하셔서 백수를 누리시라는 축수(祝壽)가 절로 나왔다. *2005년 3월 2일 글 김영이(수필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