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대담 / 시인 구상 선생을 찾아서

예언자적 지성과 참회의 큰 시인 구상

김봉균 <문학평론가 가톨릭대 교수>

관수재 가는 길엔 늘 마음이 설렌다.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사실 선생님의 환대가 감격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인가? 한국 청․장년 모두의 영적인 아버지 구상 선생님을 몸소 뵙고 말씀의 언저리에나마 접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분에 넘친 기쁨이 아닌가.

늦가을인 11월 오후, 은행잎이 꽃처럼 떨어지는 관수재 앞뜰, 그 곳은 조락(凋落)의 무상감보다 고즈넉한 평온에 젖어 있었고, ‘관수재(觀水齋)’의 문은 잠기지 않았다. 마침 따님 자명(紫明)여사가 오셔서 선생님과 함께 자리를 권해 주신다. 지병으로 몹시 힘드실 터인데도, 선생님은 청수하신 풍모 그대로셔서 한결 마음이 놓인다.

선생님의 서재인 관수재는 이제 책으로 가득 차 있지 않은 채 비어 있다. 만 권의 서책은 이제 개관을 앞둔 왜관의 선생님 기념관 쪽으로 옮겨가 있고, 예수님의 십자가 고상(苦像)과 부모님의 기념 사진, ‘관수세심(觀水洗心)’의 묵향(墨香)이 서재에 가득하다.

함께 방문한 송세희 시인과 차 대접을 받고 잠시 침묵으로 뜸을 들인 다음, 찬찬히 선생님 말씀을 듣기로 하였다.

- 선생님, 오랜만에 찾아 뵙게 되었습니다. 요즈음 당뇨와 천식에다 수족의 통증까지 겹쳐서 고통을 당하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일생 동안 육신의 병환으로 신음하시면서 오히려 영적 각성의 깊이․넓이․높이를 더하여 오신 역설적 삶을 사신 줄로 압니다. 선생님의 병환과 생애, 특히 시업(詩業)과 관련하여 좋은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 속은 허한데 곁은 그럴듯해 보이니, 모두들 ‘외면보살’이라고 해요. 젊어서 폐결핵을 앓고 한쪽 허파를 제거한 것은 차지하고, 당뇨병 앓은 것만도 25년이 넘었으니 병치레 깨나 하고 산 셈이지요. 이것은 나의 십자가입니다. 나는 가톨릭 신자가 아닙니까? 나자렛 예수께서 ‘너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분은 석가나 노자․장자와 같은 ‘해탈’이나 ‘도통’이 아닌 삶의 고통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까?

선생님과 여러 차례 이런 기회를 마련한 적이 있지만, 오늘처럼 선명하게 선생님의 내면을 피력하여 보인 적이 없으신 것으로 기억된다.

* 예수께서는 겟세마네 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 하셨듯이 실은 나도 그런 심정으로 살았지요. 결국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 하신 말씀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분은 십자가 위에서 고통스럽게 외치셨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우리 말로 ‘하느님, 맙소사.’ 이런 말씀이지요. 그런 고통 속에서도 그분은 당신에게 고통 준 사람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까? 그분은 남을 탓하거나 미워하지 않고, 당신을 해친 사람까지 용서하신 채 끝까지 인간고(人間苦)를 짐지고 가셨습니다. 이것이 내가 크리스천인 이유입니다.

선생님의 신앙관을 여기까지 듣고 새삼 감동에 젖으면서, ‘선생님께서 이제 지력(知力)이 전과 달라지신 게로구나.’ 하고 염려치 않을 수 없었다. 시업 말씀은 잊고 계신 듯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 내 산문집 『그분이 홀로서 가듯』에도 썼듯이, 나도 그 인간고를 감소하기로 했지요. 내 시가 찬미․찬양의 말보다 내면에서 상충하고 갈등을 일으키는 인간고를 담고 있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선생님이 원산 문학가 동맹의 공동 시집 『응향』에 실었다가 필화 사건을 빚은 <여명도(黎明圖)>나 6․25전쟁의 비극적 체험을 담은 <초토(焦土)의 시>, <오늘>을 비롯한 선생님의 시편들이 삶과 역사의 ‘통고체험(痛苦體驗)’을 기반으로 하였음이 여기서 확인된다. 또한 데카르트 이후 분열되었던 감성과 이성이 선생님의 시에서 통합되며, 선생님의 이 관수재에 신부․수녀․목사․스님․화가 할 것없이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사형수까지 양자로 삼으신 그 연유도 여기서 실마리를 푼다.

- 선생님 서재 ‘관수재’에서도 다분히 도가적 기품(道家的氣品)이 느껴집니다. 이와 관련하여 선생님의 시를 ‘세심시(洗心詩)’라 평한 이도 있고, 그것은 일면 타당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연작시 <강(江)>에는 그리스도 폴의 구도설화(求道說話)가 오버랩 되어 얽힙니다. 선생님의 시적 상상력의 세계에서 ‘물’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독자들은 궁금하여 합니다.

* 나의 연작시 가운데 <밭 일기(日記)>는 생성과 소멸의 현상을 드러내 보이나, 강은 그렇지 않지요. 강의 기나긴 흐름은 과거-현재-미래의 지속성을 표상합니다. 우리들 현존(現存)의 의미가 강의 흐름은 함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 시는 ‘오늘에서 영원을 살자.’고 노래합니다.

그래서 필자는 선생님의 시를 <현존과 영원의 조응(照應)>이라는 표제를 평한 적이 있다.(『시문학』, 1999. 4.) 이것은 1994년 한국 재단이 발간하는 『KOREANA』에 영어와 일본어 번역본이 실려 해외에 널리 소개된 바 있다.

- 그리스도 폴의 설화 말씀도 해 주시지요.

* 그리스도 폴은 5세기 스페인의 성자가 아닙니까? 그는 깡패 무리의 부두목이라 두목 외에는 무서운 자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 두목과 함께 한 은수자(隱修者)의 거처를 찾아갔는데, 그 두목이 예수님의 십자가 고상을 보고 냅다 도망을 쳤다지요. ‘난 저 사람은 당할 수 없어.’ 하고 소리치면서 말이지요. 그래, 그 광경을 보고 그리스도 폴은 그 수도자께 물었답니다. “어떻게 하면 고상 속의 저 사람을 만날 수 있는가?” 하고. 그는 수도자가 시키는 대로 강가에서 오래도록 사람들을 업어 나른 끝에 드디어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었다는 이야기지요.

나도 한때는 정신적 깡패였어요. 소위 ‘민권(民權)’을 위한 투쟁에 앞장섰었지요. 자유당 때 『민주고발(民主告發)』에서 정권을 비판하다가 감옥살이까지 하지 않았습니까? 전진한, 엄상섭 같은 분들과 전․현직 두 김 대통령 분들과도 관계가 깊지요. 나는 북에서도 쫓겨왔으니, 남북 양쪽 정권에 다 박해를 받았지요. 감옥에서 나는 삶의 행로를 영적 통고의 길로 전환한 것입니다. 그리스도 폴처럼 존재론적 인식을 지향한 구도(求道)의 자세로 시를 쓸 결심을 한 것이지요. 4․19 후에도 정치에 참여하라는 권유가 빗발 같았습니다. 4․19 후에는 민의원 후보로 공천들을 하였고, 장면 박사나 조재천․정헌주 같은 각료들까지 참의원을 하라고 권하였습니다. 내가 민기식 사단장 숙소나 제주도 등지에 숨어 지냈어요. 고은(高銀) 시인이 그 때 정황을 잘 압니다.

필자는 1984년 선생님 자전시집(自傳詩集) 『모과(木瓜) 옹두리에도 사연이』의 평설을 감히 쓰면서 이 대목을 경이롭게 읽었던 기억이 새롭다.

* 그뿐인가요. 5․16의 주역 박정희 대통령과는 군에서 책상을 마주하고 근무한 적이 있는 18년 지기(知己)입니다. 그는 5․16 직후 상임 고문실을 내어 놓고 나를 불렀습니다. 나는 경향 신문 동경지국장으로 떠나고 말았어요. 또 전두환 대통령은 당총재 고문을 맡으라고 부르기도 했으나, 다 나와 상관이 없는 것들이 아니겠어요? 또 서라벌 예술대학․국민대학교․신구 전문대학 등의 학․총장직 수임을 권유받기도 했고, 지금도 허다한 단체에 내 이름이 올라 있으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은 현실 참여를 통한 세속사(世俗史)의 영예를 얻는 데 한결같이 손저어 오셨음이 여기서 확인된다. 한국 문인들 작품 중에 선생님의 번역본이 세계에 가장 널리 알려진 것도 선생님께서 자청하시어 된 것이 아니다. 영어권은 물론, 스웨덴․독일․이탈리아․일본 등에도 소개되어 있다. 1980년 PEN CLUB 회장이 스스로 찾아와 번역을 자청하였고, 여동찬(呂東贊), Roger Levetrier) 교수의 『초토(焦土, Terre Brulee)』(Paris, 1986), 앤소니 티크(Anthony Teague) 교수의『초토(Wastelands of fire)』(London, 1986), 『유치찬란(Infant Splendor)』(서울, 1990), 『강과 밭(A Korea Country, River & Fields)』(London & Boston, 1991) 역시 번역자들의 의욕에 찬 결실일 따름이다.

- 선생님의 세례명은 ‘요한’이십니다. 서구적 개념으로 볼 때 요한의 행적은 ‘예언자적 지성’의 귀감이요 지표입니다. <까마귀>를 비롯한 선생님 시의 어조(tone)에는 불의․부정 등 사회적 부조리를 질타하는 예언자적 목소리가 울려납니다. 이러한 시 정신은 현실의 권력 담당층의 일원으로 가담치 않으신 선생님의 일관된 인생관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시인은 정치에 가담하여서 안 된다고 보십니까? 만약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그것은 현실 정치의 윤리적 아나키즘 때문인지, 아니면 시인이라는 인간의 보편적 불안전성 때문인지, 또는 현실의 실상 때문인지 알고 싶습니다.

* 나는 역사 의식이 강렬한 사람입니다. 6․25 전쟁 때 국방부의 잡지를 맡아 일하였고, 민간인으로서 무궁화장까지 받았습니다. 전쟁 후에는 조지훈의 『역사 앞에서』, 유치환의 『보병과 더불어』와 대비되는 전생 체험 시집 『초토의 시』를 내었습니다. 나는 전략적 가치를 위한 시를 쓰지 않습니다. 역사적 현실에서도 영원의 의미를 묻습니다. 현실 그 자체에 생의 의미를 두지 않기에 현실 정치에 가담하지 않는 것이지요. 해방기의 시단도 대개 드러난 현상을 두고 환호하는 ‘해방 찬가’에 몰입해 있었습니다. 그때 나는 해방의 실체를 캐는 <여명도>를 썼습니다.

나는 P. 발레리의 <해변의 묘지>를 암독하였고, T.S. 엘리어트의 <황무지>는 주석서만도 세 번이나 읽었습니다. 나는 감각적 심상의 피상성, 소박한 리리시즘이나 고통 없는 지락(至樂)의 세계 같은 것과는 다른 정지를 열어 왔습니다. ‘논리적 심상’이라 할까, 이런 방법으로 윌 시의 관습과는 달리, 존재 내면의 비의(秘義)를 영원의 빛으로 조명해내는 시를 써 왔다고 하겠습니다. 이 정도면 질문에 대한 직․간접적인 답이 될까요?

선생님은 당신의 시집 『모과(木瓜) 옹두리에도 사연이』의 머리시를 누가 이해할 수 있겠느냐고 잇달아 물으셨다. 1984년 그 시집 평설을 쓰면서 필자가 ‘밧줄로 묶인 장롱을 싣고/뒤따르던 그 소의 얼굴’은 바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던 예수’ 그분임을 풀어 썼었다고 말씀드리려다, 말수를 줄이기로 하였다.

- 시가 언어 예술이라는 말을 꺼내는 것은 새삼스럽습니다마는, 시 이야기에 언어 문제가 빠질 수 없겠습니다. 선생님의 시어관(詩語觀)을 대변하는 어사(語辭)를,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M. 하이데거의 명제, 이른바 ‘언령(言靈)’의 신비, 불교 십악(十惡)의 ‘기어(綺語)의 죄’ 등이라 할 수 있을는지요? 말의 표상성이나 기호 이론과 관련하여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요새 시에는 표현주의적 기교가 성행하는데, 이런 경향은 시법(詩法)을 언어의 화장술로 아는 데서 옵니다. 시어뿐 아니라 말에는 등가량(等價量)의 진실이 담겨야 감동이 따릅니다. 그렇지 못한 달변보다 진실한 눌언(訥言)이 더 감동을 주지 않습니다. 이것은 ‘언령’의 시 정신에서 나온 시어론입니다. 일본 대학 재학 중의 강의 내용에 영향을 받은 이 언어관은 내 일생을 지배하여 왔어요.

생각과 언어는 2차원적인 것이 아닌 하나입니다. 화려하기만 한 말 곧 ‘기어’는 무정란(無精卵)에 비유됩니다. 언어는 단순할 부호나 기호가 아니라고 봅니다.

- 선생님의 시적 담론의 원리는 ‘질문․개방․종합’이라고, 앤소니 티그 교수(수사)께서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그것은 어떤 사상적 배경에 기반을 두신 것인지요? 애니미즘․범신론․불교사상 등과도 관련하여 말씀하여 주십시오.

* 현대인의 사유 양식은 지나치게 인간 중심, 지구 중심적입니다. 인식의 안목을 넓혀야 해요. 프랑스의 샤르댕이나 양산 통도사 경봉(鏡峰) 스님 같은 이의 말이 있어요. 샤르댕은 오메가(Ω) 포인트라는 말, 경봉 스님은 “심야 삼경에 대문 빗장을 열어라.”는 임종게(臨終偈)를 남겼습니다. 존재의 궁극적 완성의 자리에서는 다 만나게 되겠지요. 경봉 스님 임종시에 시봉 스님이 어딜 가시느냐고 물었을 때, 대답은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였다는 군요. 예수께서도 ‘내 영혼을 당신께 맡기나이다.’ 하였을 뿐이니까요. 인간의 영성(靈性)은 아직도 태아(胎兒) 그것에 지나지 않지요.

- 선생님께서는 <초토의 시>, <밭 일기>, <강> 같은 연작시를 쓰시고, 끊임없이 개작(改作)의 노고(勞苦)를 아끼지 않으시는데, 그 까닭은 무엇인지요?

* 시를 그냥 촉발생심(觸發生心) 적으로 써서는 존재의 실체에 도달할 수 가 없습니다. 존재의 다면성을 그때 그때 응시 소매격(應時 小賣格)으로 써 버려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나의 시는 관입실재(觀入實在)하려는 구도의 과정에서 나옵니다. 내가 연작시를 쓰고, 또 끊임없이 개작을 하는 까닭은 이 때문이지요.

사물이나 인간을 표피적 관찰만으로 알 수 있습니까? 나만 해도 그렇잖아요. 외양만으론 두 아들을 잃은 참척(慘慽)의 주인공으로 볼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 선생님께서는 진실로 구도(求道)의 시심(詩心)을 밝혀 오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영혼의 나환자’로 규정하여 고백의 시, 참회의 시를 쓰십니다. 그렇다면 사회의 부조리도 어떤 집단의 죄이기에 앞서 ‘내 탓’이라는 데 귀착됩니다. 우리 문학사에 희귀한 참회의 시에 대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 현대의 물리학․윤리학․사회학․사학 등 여러 지성의 주류가 일체 사회학의 책임을 타력적(他力的)인 데 돌리는 것을 당연시합니다. 그건 잘못입니다. 모든 사회 문제는 자기 참회에 그 해법이 있습니다. 시는 더욱 그러합니다.

필자는 이 대목에서 숙연한 감회를 누를 수가 없었다. 6․25 전쟁기, 1970~1980년대와 최근까지 칼과 총처럼 남무해 온 분열․증오․저주의 담론에 훼손된 우리 모국어와 상처 받은 시 독자들 생각에 가슴이 저렸다.

- 선생님, 그런 참회란 쉬운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 그렇지요. 내가 산문집 『그 분이 홀로서 가듯』에도 썼듯이, 참회는 고독한 자기 결단이지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매달렸을 때 제자들마저 다 가 버리고 없었던, 그런 고독에 비유될 것입니다.

대화가 절정에 이를 이즈음, 선생님께서 애지중지하는 손녀 향나 양이 학교에서 돌아오고, 또 다른 방문객이 와서 기다리는 중이다. 선생님 말씀을 더 듣기에는 시간이 많이 흘렀다.

- 선생님, 너무 피곤케 해 드려서 송구스럽습니다. 한 마디만 더 여쭙겠습니다. 이 시대를 정보 혁명기라 하고, 컴퓨터의 가상공간․영상문화가 인쇄 문화(종이책)의 위기를 알립니다. ‘문학의 위기’, ‘인문학의 위기’ 등을 알리는 징조가 완연합니다. 21세기 문학을 위하여 한 말씀 해 주시기 바랍니다.

* 기술적․전략적 세계관에서 해방되어야 합니다. 신령한 힘에 대한 믿음과 축도가 있어야지요.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자각이 클수록 문한에 대한 각성의 정도도 커집니다. 신령한 힘에 의지하여 원자연(原自然)의 삶을 회복해야 합니다. 최근 미국에서 일어난 불행한 사건도 바벨탑의 오만, 노아의 홍수, 소돔과 고모라 등 창세기의 사건과 함께 깊은 성찰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모든 인류가 창세기 기사의 깊은 뜻을 재음미하여야 하겠습니다.

- 선생님, 긴 시간 동안 우리 문학사에 남을 소중한 말씀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쾌유를 빕니다.

필자의 건강을 걱정하시며 아쉬운 작별의 손짓을 보내시는 선생님 모습을 뒤로 하고 나선 관수재 앞뜰에는 벌써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이 시대의 거인, 필자의 영적 아버지이신 시인 구상 선생님, 그분 곁을 떠나오며 필자는 삶과 역사와 시에 대한 깊은 상념에 젖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 주신 시첩 생각을 했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네가 시방/가시방석처럼 여기는/너의 앉은 그 자리가/바로 꽃자리니라.”

<강>에 이어 선생님께서 주신 두 번째 시첩이다. 필자를 통하여 이 땅의 시인과 지성에게 보내시는 ‘준엄하면서도 온유한’ 선생님의 메시지다.

- 월간문학 2001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