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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관이라는 이름의 집 /최두현
  글쓴이 : 변영희 날짜 : 17-07-31 21:23     조회 : 887    
번역문

  하늘과 땅 사이에 사람은 모두 나그네다. 흙먼지 같은 삶을 빌려 살며 매일 말이 질주하듯 빠르게 변하는데, 그 와중에 조정이나 저자에서 산속에서 논밭에서 부와 명예를 좇아 허겁지겁하고, 앞사람이 떠나면 뒷사람이 이어서 태어나고 자라고 늙고 죽는다. 이것이 각지로 이어지는 큰 길로, 길 위의 객사로 사방의 백성들이 모두 몰리고 강물처럼 계속 흘러 매일 수백 명씩 끝없이 지나쳐가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그러니 옛날의 도에 통달한 사람이 높은 경지에서 넓게 관조하여 삶과 물거품, 죽음과 휴식을 동일시하고 세상을 여관에 비유한 것은 이 이치를 제대로 깨친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한 지방에 연연하고 집 생각이 절절하여 고향을 바라보며 기뻐하고 누추한 집에 살며 불만스럽게 여기니 너무 사리에 어두운 것이 아니겠는가.

원문

大都人生天地, 莫非客也. 假借塵垢, 日化如馳. 而其間或有于朝于市于山林于畎畝, 貴賤貧富, 岌岌營營, 前者逝後者繼, 生而壯老而死者. 亦何異於通衢大道之中, 郵亭驛舍之內, 五方之民, 幷至而輻輳, 川流環運, 日閱數百而無窮者乎. 故古之達人, 超然大觀, 等生死於浮休, 比天地以逆旅者, 誠悟此理也. 而或者拘拘於一鄕, 拳拳於懷土, 望故國而暢然, 處蓬藋而驚心, 則不亦惑之甚者乎.

- 이춘영(李春英, 1563~1606), 『체소집(體素集)』 하(下) 「역려재기(逆旅齋記)」
 
 해설

  어려서부터 이사를 많이 다녔다. 대전에서 태어나 화천, 춘천, 광주, 이천, 안양을 거쳐 서울, 파주와 고양, 의왕을 거쳐 지금은 다시 서울이다. 어디서도 그리 오래 있지는 않았다. 그래서 고향을 물을 때면 항상 난감하다. ‘본관은 화순이고 본적은 김천’이라고 대답한 적도 있지만 사실 살아본 적도 없는 곳들이다. 요즘은 그냥 고향이 없다고 말한다.

  잦은 이사의 영향인지, 어디에 있든 언젠가는 떠나가 다시 돌아가지 않으리라는 감각을 늘 가지고 있었다. 환경이 인격 형성에 미치는 영향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이러한 감각의 단점은 어디에 있어도 내 것 같지 않아 거리감이 느껴진다는 점이다. 장점은 어차피 내 것이 아니기 때문에 미련 없이 떠날 수 있다는 점이다. 어느 정도는 여관에 머무는 것과 비슷한 감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어디에서 무얼 하든 늘 여행 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위의 글을 쓴 이춘영은 1591년 당쟁에 연루되어 함경도 삼수로 귀양을 갔다. 다음 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정으로 복귀했다가 1595년 다시 죄를 지어 함경도 정평에 유배되었다. 정평은 4년 전 삼수로 가는 길에 지났던 곳인데, 전쟁으로 거의 폐허가 되어 예전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이춘영에게 배정된 집도 다 쓰러져가는 상태였다. 안쓰럽게 여긴 수령의 지원으로 작은 집을 다시 지었고 그 집의 이름을 ‘역려(逆旅)’, 즉 ‘여관’이라고 지었다. 이 글은 집이 완성된 직후에 지은 것이다.

    그리 길지 않았던 삶에 유배로 인해 전쟁으로 인해, 때로는 직무수행을 위해 한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끊임없이 먼 길을 오가는 경험을 하고서 그는, 인간은 결국 모두 정처 없이 떠도는 나그네라는 것을 깨달았다. 삶은 끝없는 여행이고 이 세상은 잠시 빌려 묵었다 떠나는 여관이며 돌아가 쉴 곳은 죽음뿐이다. 이 세상 어디든 내 것이 아닌데 무엇 때문에 고향을 그리워하고 집에 집착하는가. 당시 사람들에게는 고향의 의미가 매우 컸고 고향을 떠나 있을 때 느끼는 그리움도 당연한 것이었다. 이춘영은 그런 사람들을 향해 고향이란 없다고, 다 허상일 뿐이라고 말한다.

    20세기 중반 이후, 사회가 급속하게 산업화하면서 많은 사람이 고향을 떠나 서울로 몰려들었다. 고생 끝에 자리를 잡은 그들에게 서울은 제2의 고향이 되었다. 원래의 고향은 떠나온 것일 수는 있을지언정 돌아갈 곳은 아니게 되었다. 그런데 발전이 정점에 이르러 서울에서 살기 위해 치러야 할 부담이 늘면서 많은 사람이 서울에서 밀려나 다시 인근 도시로 옮겨 갔다. 누군가는 서울 생활에 환멸을 느끼고 아예 멀리 제주도로 혹은 해외로 떠나기도 한다.

  떠나는 것에 대한 부담은 점점 희박해져 갔다. 떠나온 곳을 그리워하기보다 더 살기 좋은 곳을 찾아 떠나기를 갈망하는 것이 익숙한 시대가 되었다. ‘정붙이고 살면 고향’이란 말이 있기는 하지만, 붙일 수 있다면 뗄 수도 있을 것이고 다른 곳에 붙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어디든 고향이 될 수 있다는 것은 결국 어느 곳도 진정한 의미의 고향일 수 없다는 말과 같다. 고향은 장롱 안에 깊이 숨겨두고 가끔 대청소할 때나 한 번씩 꺼내 먼지를 털어주는 골동품 같은 것이 되었다. 혹은 매스컴이 리포터의 호들갑과 함께 이상적인 형태로 재구성한 허구의 이미지로만 남았다.

    이춘영의 말은 그 당시보다 오히려 지금 시대에 더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질 것 같다. 다만 한 가지 점에서 지금의 우리와 생각이 달랐다. 이춘영은 죽음만이 진정한 고향이라 했지만, 우리는 죽음을 그런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최대한 멀리 거리를 두려 하고 생각하는 것조차 불편해한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우리는 이춘영보다 더 확실하게 고향을 지웠다. 조금 더 완벽한 나그네가 되었다.
 
출처 고전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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