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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나무의 대기만성 /선종순
  글쓴이 : 변영희 날짜 : 16-03-07 13:05     조회 : 1421    
[번역문]

  하늘과 땅 사이에서 풀과 나무가 생장하는 것은 모두 같은 기운에 의해서이지만 뿌리 내리고 싹 트고 꽃 피고 열매 맺는 데에는 어렵고 쉬우며 빠르고 늦는 차이가 있어서 유독 밤나무가 모든 초목 중에 가장 늦게 생장한다. 그래서 어린 싹은 자라기가 매우 어렵지만 자라기만 하면 금방 거목이 되고, 잎은 매우 더디게 나지만 나기만 하면 금방 울창해지며, 꽃은 가장 늦게 피지만 피기만 하면 순식간에 만개하고, 열매는 가장 나중에 열리지만 열리기만 하면 바로 수확한다. 아마도 밤나무의 성질에 기울면 차고 겸손하면 보태는 이치가 있는 듯하다.
  윤공은 나와 같은 해에 과거에 급제하였다. 그때 나이 이미 30여 세였고 40세가 넘어서 첫 관직을 받았다. 사람들이 모두 늦었다고 여겼으나 공은 관직에 나아가 더욱 조심하고 삼갔다. 급기야 선군(先君)의 인정을 받아 크게 쓰이자 하루에 아홉 번 승진하여 높은 지위에 오르고 사명(司命)을 지으니, 일부러 애써서 이뤄내지 않았어도 대단한 성공을 이루었다. 앞서 확립하기까지가 어려웠으나 뒤에 성취하기는 쉬웠으니, 대개 이 밤나무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과정과 동일한 점이 있다.

 [원문]

天地之間, 草木之生, 均是一氣, 然其根苗花實, 有難易先後之不一, 獨是栗最後於萬物之生. 栽甚難長, 而長則易壯; 葉甚遲發, 而發則易蔭; 花甚晩開, 而開則易盛; 實甚後結, 而結則易收. 蓋其爲物, 有虧盈謙益之理矣. 尹公, 與余同年登科. 年已三十有餘, 而踰四十始霑一命. 人皆以爲晩, 而公就仕尤謹. 及知遇於先君之大用, 一日九遷, 登顯仕作司命, 不待矯揉而蔚乎其達矣. 其所立者先難, 而其所就者後易, 蓋有同於是栗之花實.
 
- 백문보(白文寶, 1303~1374), 『담암일집(淡庵逸集)』 권2, 「율정설(栗亭說)」
 
 윗글의 등장인물 윤공은 1289년(충렬왕 15)에 태어나 1370년(공민왕 19)까지 살았던 고려 후기의 문신 윤택(尹澤)이라는 분이다. 이 글을 쓴 백문보보다 나이가 14세나 많다. 1320년(충숙왕 7)에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이 주관하는 수재과(秀才科)에 급제하여 백문보와 동년(同年)*이 되었는데, 이때 윤택의 나이는 32세였고 백문보의 나이는 18세였다. 과거에 급제하고도 10여 년이 훌쩍 지나서야 처음으로 검열이라는 가장 낮은 9품직을 얻었으니, 당시로써는 지도적 위치에 있어야 할 나이에 사회 초년생이 된 셈이다.

  윤택은 밤나무를 매우 좋아하였다. 봄에는 가지가 성글어서 가지 사이로 꽃을 엿볼 수 있어 좋고, 여름에는 잎이 우거져서 그늘에 쉴 수 있어 좋고 가을에는 열매가 좋아서 맛있게 먹을 수 있어 좋고 겨울에는 껍질을 모아 아궁이에 불을 때서 좋다며 밤나무 예찬을 아끼지 않았다. 결국 윤택은 생애 첫 주택을 밤나무가 울창한 곤강(坤岡) 남쪽에 마련하고 율정(栗亭)이라는 택호를 붙였다. 윤택의 손자 윤소종(尹紹宗)이 할아버지를 회상하며 지은 시**에서 “사직단 앞의 옛 율정이여! 노인들 모임은 간 곳 없고 풀만 무성하구나.[社稷壇前舊栗亭 耆英會遠草靑靑]”라고 했던 것을 보면 밤나무가 많은 곤강은 아마도 고려 사직단이 있었던 개경 서쪽 어름일 것이다.

  백문보는 14세나 연상인 동년이 그토록 밤나무를 좋아하는 것을 참으로 남다르게 바라보았다. 윤택은 그저 사시사철 밤나무가 주는 매력에 푹 빠져 있을 뿐이다. 그러나 백문보는 땅속에서 튼실한 뿌리가 내리도록 오랜 시간을 버텨 내고, 싹 트고 입 달리고 꽃 피고 열매 맺기까지 많은 시간을 들여서 어느 순간 최고의 모습으로 발휘되는 밤나무의 참모습을 통해 윤택의 무한한 내공과 내공을 이루기까지의 저력을 들여다본 것이다. 윤택의 내공은 그저 생긴 것이 아니다. 물이 흐르다가 웅덩이를 만나 그 웅덩이를 다 채우도록 머물러 있는 시간이 있었기에 큰 물줄기를 이루어 결국 바다에 도달하는 이치처럼 윤택의 머물러 있었던 오랜 시간에 의미를 두었던 것이다.

  윤택은 82년의 세월을 살았다. 윤택이 세상을 떠난 그해에 백문보는 68세의 나이로 윤택을 위해 「분묘기(墳廟記)」를 지었다. 그 글에서 과거에 「율정설」을 지었다고 말하며 윗글을 인용한 데서 짐작해 보건대, 이 글은 아마 백문보도 윤택도 이미 노년의 나이가 되어 그동안 살아온 인생을 돌이켜 보며 지은 글인 듯하다. 이 시기는 고려 말기에 가까운 때인 만큼 젊은이들의 사회 진출이 둔화되었을 것이고 미래의 전망도 밝지 못했을 것이다. 백문보는 이 글에서 밤나무의 느린 생장을 닮은 윤택의 인생을 드러내 밝힘으로써 젊은이들에게 빨리 가려고만 하지 말고 세월을 묻는 인내와 지혜를 가지라고 충고한 것은 아닐까?

  이 글을 읽으며 현대를 살고 있는 청년들을 생각해 본다.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청년실업이 큰 문제로 대두된 시기를 우리 청년들이 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때보다도 앞날이 고단한 이 시대의 청년들은 사실 지금까지 입시든 취업이든 뒤처지지 않기 위해 너도나도 전략적으로만 내달렸다. 그 결과 아무리 많은 스펙을 쌓아도 변별이 되지 않는 상황이 되었고 급기야 고스펙자를 오히려 배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제 출구를 전략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깊은 땅속에서 오래 뿌리를 내리는 밤나무처럼, 큰 웅덩이를 다 채우도록 흐르지 않고 머물러 있는 물처럼 오히려 안으로 자신을 성찰하고 내면의 발전을 위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 본다면 의외의 곳에서 출구가 보일지도 모를 일이다.

* 동년(同年)은 동방(同榜)과 같은 말로, 같은 때의 과거에 급제하여 방목(榜目)에 함께 적힌 사람, 즉 과거의 합격 동기생을 이른다.
 ** 『동문선』 22권에 실린 「율정」이라는 시로, “선조께서 정자에 밤나무를 심어놓고 인하여 자호로 삼았다. 매년 봄가을로 날씨가 좋은 날이면 반드시 노인들을 모시고 정자 위에서 술자리를 마련하였다.”는 자주(自註)가 있다.

출처 - 고전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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