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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어머니 /朴壽密
  글쓴이 : 변영희 날짜 : 17-05-01 22:09     조회 : 976    
나의 어머니 / 2017년 5월 1일 (월) /사백일흔일곱 번째 이야기
 
  번역문

  그릇을 씻다가 내 어머니를 생각하면, 아침저녁 끼니도 잇지 못할 양식으로 음식을 준비하시던 일이 떠오르지 않을 수가 없으니, 다른 사람도 그렇겠는가? 옷걸이를 어루만지다 내 어머니를 생각하면 못쓰게 된 솜으로 늘 추위와 바람을 막아줄 옷을 다 지어주시던 일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으니, 다른 사람도 나와 같겠는가? 등불을 걸다가 내 어머니를 떠올리면 닭이 울 때까지 잠 못 이루시며 무릎을 굽혀 삯바느질하시던 모습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으니, 다른 사람에게 이런 경험이 있겠는가?
    상자를 열다가 어머니의 편지를 얻어 자식이 먼데 나가 노니는 데 대한 마음을 술회하시고 헤어져 있는 괴로움을 말씀하신 대목을 보면 넋이 녹고 뼈가 저미지 않을 수 없어, 갑자기 차라리 몰랐으면 싶다. 손꼽아 어머니 연세와 내 나이를 세어보니 돌아가신 어머니 연세는 겨우 48세이시고 나는 24살이니, 슬피 머뭇거리며 소리를 놓아 길게 부르짖으며 비 오듯 눈물 흘리지 않을 수가 없구나.

원문

滌器而思吾親, 未嘗不念其或醎或淡, 朝夕不繼之食矣, 他人其然乎哉? 撫椸而思吾親, 未嘗不憶其敗絮不完, 歷盡風寒之衣矣, 他人其同乎哉? 懸燈而思吾親, 未嘗不想其雞鳴不寐, 曲膝傭針之狀矣, 他人其有乎哉? 發篋而得親之書, 見其述遠遊之情叙離別之苦, 則未嘗不魂消骨冷, 溘欲無知也. 屈指而算親之齡, 與已之生, 而四十纔八,二十逾四,則未嘗不悵然踟躕, 失聲長號, 而淚之無從也.

-박제가(朴齊家, 1750-1805), 『초정전서(楚亭全書)』, 「서풍수정기후(書風樹亭記後)」
 
 해설

  전주 이씨는 자식의 앞날을 위해 무엇이든 하리라 결심했다. 서얼의 자식으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가난과 차별을 경험한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의 아버지 우부승지 박평(朴玶)은 둘째인 제가(齊家)가 11살 때 세상을 떠났다. 이씨는 본가에서 나와 청교(靑橋), 묵동(墨洞), 필애(筆厓) 등지를 전전하며 이사를 다녔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남의 집 삯바느질로 생계를 꾸려가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이씨는 자식에게 공부를 시켰다. 아들인 제가는 총명하고 똑똑했다. 말수가 적어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고집이 너무 센 게 염려되긴 했지만, 어릴 때부터 입에 붓을 물고 다닐 정도로 책 읽고 글 쓰는 것을 좋아한 아이였다. 측간에 들어가면 모래에 그림을 그리고, 앉기만 하면 허공에 글씨 쓰는 연습을 했다. 열 살 무렵에 이미 『맹자(孟子)』 『시경(詩經)』은 물론 『이소(離騷)』 『진한문선(秦漢文選)』 『두시(杜詩)』 『당시(唐詩)』 등을 읽고 스스로 비점을 찍을 만큼 남다른 재능을 지녔다. 어머니로서, 가난 때문에 아이의 남다른 재능을 썩힐 수는 없었다.

  이씨는 동네 주변에 이름난 명사(名士)가 있다는 소문을 들으면 수소문을 해서라도 찾아내 집으로 초청했다. 술과 안주를 푸짐하게 차려서 자식과 어울리게 했다. 덕분에 박제가는 당시의 저명한 인사들과 친분을 쌓을 수 있었다. 푸짐한 상차림을 대접받은 사람들은 박제가가 가난하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박제가의 말에 따르면 어머니는 온전한 옷을 걸쳐본 적이 없고, 좋은 음식을 먹은 적이 없었다. 새벽까지 잠도 못 자면서 바늘 품을 팔아 자식을 공부시켰다. 그와 같은 어머니의 눈물겨운 헌신 덕분에 자식은 훌륭한 문장가로 성장해 갔다. 열일곱 살에 결혼도 했고 박지원(朴趾源), 홍대용(洪大容), 이덕무(李德懋), 유득공(柳得恭) 등 백탑(白塔) 주변 실학자들과 어울려 공부하면서 북학(北學)의 꿈도 키워갔다. 그는 경세제민(經世濟民)을 꿈꾸며 자신의 길을 걸어가리라 다짐했다.

  그러던 1773년 겨울, 박제가가 스물네 살이던 해에 어머니 전주 이씨가 세상을 떠났다. 날마다 늦은 밤까지 허드렛일로 생계를 꾸리다가 허약해진 몸을 이기지 못하고 끝내 스러진 것이다. 집안의 생계를 홀로 떠맡은 가장으로써, 자식의 성공과 살아갈 방도를 위해 새벽까지 삯바느질하던 어머니는 자식의 성공도 보지 못한 채 그렇게 눈을 감았다. 그때 이씨의 나이 마흔여덟이었다.

  박제가에게 어머니는 가난한 엄마, 자식 생계를 위해 새벽까지 잠 못 들고 일하시던 엄마였다. ‘다른 사람도 그랬겠는가?’ 라는 말을 세 번 반복하는데 이르면 자식 뒷바라지로 평생 고생만 하다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정한이 몹시 절실하다.

    박제가는 어머니 유품을 열었다. 편지 한 통이 나왔다. 예전 멀리 나갔을 때, 몸조심하라며 걱정하시던 어머니의 편지였다. 애타는 엄마의 마음을 읽자니 넋이 녹고 뼈가 저려와 차마 편지를 몰랐으면 싶다. 너무 일찍 떠나가신 어머니 나이를 떠올리니 한스러움이 밀려와, 박제가는 목 놓아 울었다.

    윗글 「서풍수정기후(書風樹亭記後)」의 시작은 이러하다. 부모가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세상의 온갖 영화를 누리며 오래 살다가 떠났을 때, 그 자식이 남 못지않게 서럽게 운다면 사사로운 욕심이 아닐까? 그렇지 않다. 하늘의 이치이다. 그렇다면 부모가 나면서부터 가난 속에서 굶주리며 이리저리 떠돌다 불행히 일찍 세상을 떠나갔을 때, 그 자식이 남보다 서럽게 우는 것은 하늘의 이치일까? 그렇지 않다. 사사로운 마음이다. 골육(骨肉)의 마음은 환경이나 조건에 따라 더하거나 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더 한스럽고 사사로운 마음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고 한다. 고생하신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릴 때면 남보다 더욱 서럽고 더욱 아프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예민한 감수성으로 자기만의 시 세계를 구축한 시인 박제가. 조선 지성사에서 가장 많은 외국인과 사귄 열혈남아 박제가. 그러나 이전에 그는 한 가난한 어머니의 자식이었다. 자식이 되어 가난한 어머니를 위해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다는 죄책감, 가난 가운데 고생만 하다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안쓰러움으로 박제가는 울고 또 울었다.

    이후 박제가는 중국을 다녀와 조선의 가난한 현실을 타개할 방도를 제시한 『북학의』를 저술하고 최초로 규장각의 검서관으로 발탁되었다. 정조의 편찬 정책을 돕던 박제가는, 정조가 승하한 이듬해 사돈의 옥사 사건에 연루되어 함경도 종성으로 유배를 갔다. 변방으로 귀양 온 박제가는 자신의 가련한 처지를 빗대어 ‘흠 가진 늙은이’라는 뜻의 뇌옹(纇翁)으로 호를 바꾸었다. 어릴 적 어머니께서 점을 치고 나서 “이름이 온 세상에 가득하지만 몸에 큰 흠이 있을 것이다”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려 한 것이었다. 사랑이 깊어지면 꺼리던 말도 그리움이 된다.

  어머니라는 이름은 사랑이고 헌신이다. 여든을 바라보시는 나의 어머니는 오늘도 흐릿한 한쪽 눈으로 새벽 어스름에 밭일을 나가신다.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으로 자식은 이 험한 세상을 잘 견디며 살아왔다. 비바람 부는 고단한 삶의 여정에서 몸소 우산이 되어주시던 분이 나의 어머니이다.
 
 
- 출처 : 고전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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