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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나지 않는 교유/김진옥
  글쓴이 : 변영희 날짜 : 16-01-11 19:46     조회 : 1404    
[번역문]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데에는 반드시 걸맞은 방법이 있습니다. 만약 저의 초라한 집에 화려한 행차가 이른다면 부덕한 저로서는 그것을 감당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옛날의 도리와 맞지 않아 필시 남들의 비난을 사게 되어 양쪽 모두에게 이롭지 않게 될 것이니, 이것이 그대와 제가 만나서는 안 되는 첫 번째 이유입니다.
  저에게는 친인척 중에 원래 벼슬한 사람이 없어 평소 담비 꼬리털이나 매미 장식의 갓끈을 본 적도, 대갓집 붉은 대문 근처에 가 본 적도 없습니다. 그런 제가 지금 옷을 치렁치렁 늘어뜨리고 의기양양하게 얼굴을 들고 그대를 찾아뵙는 짓은 감히 해서도 안 되고 차마 할 수도 없는 일이니, 이것이 그대와 제가 만나서는 안 되는 두 번째 이유입니다.
  혹 다른 사람 집에서 만나기로 약속하여 상봉하여 교유를 맺는다면 비록 서로 왕래했다는 말은 나지 않겠지만, 이것이 대갓집에 옷을 늘어뜨리고 가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이것이 그대와 제가 만나서는 안 되는 세 번째 이유입니다.

 [원문]
人我合幷必有其道. 假使蓬篳之門, 珂馬來摯, 不惟無德以堪之, 古今異宜, 必招人言, 俱涉不利: 此一不可也. 不侫內外姻黨元無達官, 一生目不見貂蟬, 足不到朱門. 今者曳裾揚揚, 抗顔参謁, 不敢而亦不忍也: 此二不可也. 或期會人家, 相逢托契, 雖無來往之名, 是與曳裾朱門, 何異也? : 此三不可也. ……”
 - 이덕무(李德懋 1741~1794), 『병세집(並世集)』, 「여인(與人)」
 
  옛날 분들은 거절의 편지도 참 우아하게 쓰셨습니다. 이 글은 이덕무(李德懋)가 그에게 교유를 청한 어떤 사람에게 준 글의 일부입니다. 아마 상대방은 고관(高官)이었던가 봅니다. 이덕무가 글 잘한다는 소문을 듣고 한번 만나 교유하자고 청해왔겠지요. 그러자 고귀한 신분의 상대가 초라한 자신을 방문하는 것도, 초라한 자신이 아첨하듯 상대를 찾아가는 것도, 중간에 다른 사람의 집에서 상봉하는 것도 다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럼 어떻게 하자는 것일까요? 윗글에 이어서 보겠습니다.

  해후(邂逅)라는 것은 약속하지 않고 만나는 것을 이르는 것입니다. 우연히 만나고 자연스럽게 교유하는 것이니, 이처럼 인위적으로 만난다면 해후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어려움들 때문에 저를 아껴주시는 그대의 지극한 마음을 저버리기보다는 차라리 왕래하지도 말고, 다른 곳에서 약속하여 만나지도 말며, 우연히 만나지도 말아서, 멀리서 서로 생각하며 마음에 두고 잊지 않으면서 영원히 서로 우호를 갖는 편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위대한 교유는 서로를 만나지 않고, 훌륭한 우정은 상대를 가까이하지 않는 법입니다.[夫邂逅者, 不期會之謂也. 忽漫相逢, 自然相契, 如此巧溱, 不可得也. 與其坐此數者之枳碍, 孤負愛我之苦心, 無寧不來往、不期會、不邂逅, 炯然相憶, 置心不眛, 永以爲好? 大交不面, 大情不近.]

  만나지는 말고 영원한 우호를 갖자는 것입니다. 이 글을 받은 상대는 기분이 어떠하였을까요? 짐작건대, 이덕무가 고관을 공연히 안 만나겠다고 하진 않았을 겁니다. 필시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만나고 싶지 않을 정도의 인성(人性)을 지닌 사람이었거나, 고관에게 빌붙어 이익을 꾀한다는 혐의를 받는 게 싫었을지도 모릅니다. 옛 말에 ‘배나무 밑에서는 갓끈을 고쳐 매지 말고, 오이 밭에서는 신발 끈을 고쳐 묶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혐의쩍은 행동은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지만 행여 배나 오이를 따는 것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당시 이덕무의 처지는 고관과의 이런 교유를 마다할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조선의 제2대왕 정종(定宗)의 서자인 무림군(茂林君)의 10세손으로 왕가의 자손이기는 하나 서자(庶子)의 자손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박학다식하고 문장이 뛰어났어도 출세에 제약이 많았고, 평생 가난한 형편을 벗어나지 못했던 듯합니다. 그가 벗인 이서구(李書九)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그의 처지를 알 수 있습니다.

  집안에 값있는 물건이라곤 『맹자』7편뿐인데 오랜 굶주림에 견디지 못해 200전에 팔아 밥을 지어 배불리 먹었소. 희희낙락 영재(泠齋 유득공)에게 가서 한껏 자랑하였더니 영재도 굶주린 지 오래라, 내 말을 듣자마자 『좌씨전』을 팔아 쌀을 사고 남은 돈으로는 술을 받아 내게 마시게 하였다오. 이야말로 자여씨(子輿氏 맹자)가 직접 밥을 지어 나를 먹이고 좌구명(左丘明)이 손수 술을 따라 내게 권한 것이나 진배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나는 맹자와 좌구명을 천 번 만 번 기렸다오.[家中長物, 只『孟子』七篇, 不堪長飢, 賣得二百錢, 爲飯健噉, 嬉嬉然赴泠齋大夸之. 泠齋之飢 亦已多時, 聞余言, 立賣『左氏傳』, 以餘錢沽酒以飮我. 是何異子輿氏親炊飯以食我, 左丘生手斟酒以勸我? 於是頌讚孟、左千千萬萬.] (『아정유고(雅亭遺稿)』, 「여이낙서서구서(與李洛瑞書九書)」)

  요새 신세대 말로 참 ‘웃픈’ 이야기입니다. 선비에게 서책은 말할 수 없이 소중한 물건인데, 그걸 팔아서 끼니를 때우고 거기다 술까지 사서 친구와 마셨다 하네요. 웃어야 할지 참 난감하면서도 가슴 한 편이 뻐근해집니다. 글로 쓰인 내용 틈새에 배인 이덕무와 그 벗들의 삶의 버거움이 느껴져서요. 그래도 기개(氣槪) 하나는 참 높이 사고 싶습니다. 형편이 어려워 소장한 책을 팔아 끼니를 때울망정 자신의 지조(志操)는 안 팔겠다는 것처럼 느껴져서 말입니다.

  하지만 어찌 보면 세상은 참 공평합니다. 당시에 배부르고 부귀를 누렸던 그 고관은 이름 없이 죽었습니다. 위에 제시한 글의 제목도 그냥 ‘어떤 이에게 주다[與人]’ 입니다. 하지만 그때 배곯고 어려웠지만 기개를 잃지 않았던 이덕무는 어떻습니까? 오늘날에도 여러 사람들이 그의 글을 읽고 나름대로 감회를 느끼지 않습니까?
 
 ㅡ 출처 고전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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