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필작가회
 
latest post | member list | registration of this day | search center
 
ID
PASS
자동 로그인
아이디 패스워드 찾기
회원에 가입하세요, 클릭

| 작가회 신입회원 가입 안내 |

신간 소개
동인지 출간 목록
회원 작품집 출간
문학상 수상 기록표
추천 사이트
예술 작품 감상
에세이 100편 고전 수필
국내 산문 해외 산문

오늘 방문자수
어제 방문자수
최고 방문자수
방문자수 누계

한국동인지문학관 바로 가기
한국수필가협회 바로 가기
 
  황사비와 구언전지(求言傳旨) /정출헌
  글쓴이 : 변영희 날짜 : 17-04-10 10:48     조회 : 923    
번역문
의정부에 전지하기를,

“하늘과 사람의 이치가 같아 드러남과 은미함에 간격이 없으니, 길흉과 선악의 응함은 오직 사람으로부터 감응되는 것이다. 과인은 한 나라의 임금이 되어 밤낮으로 부지런하며 맡은 임무를 다하지 못할까 두려워하고 있다. 그런데도 지난달엔 지진이 나고 이번 달엔 흙비가 내렸으니, 재변이 일어나는 것이 어찌 까닭이 없겠는가? 알지 못하겠노라. 세금이 너무 과했는가? 공사를 자주 했는가? 형벌이 적절치 못했는가? 사람 쓰는 게 잘못되었는가? 어질고 뛰어난 이가 혹 버려졌는가? 혼인이 혹 때를 잃었는가? 수령이 탐학한데도 감사의 출척이 혹 잘못되었는가? 백성들이 그 고통을 견딜 수 없는데도 아랫사람의 정이 위로 통하지 못했는가? 허물을 얻은 이유를 깊이 생각건대, 허물은 실로 내게 있도다. 이에 직언을 들어 하늘의 벌에 답하고자 하노라. 조정 안팎의 대소 신료로부터 민간의 일반백성에 이르기까지 나의 지극한 마음을 본받아 재이가 일어난 이유와 재이를 그치게 할 방도를 숨김없이 모두 진술하도록 하라.” 하였다.

원문

傳旨議政府曰: “天人一理, 顯微無間, 休咎之應, 惟人所感. 予以寡昧, 臨莅一國, 夙夜祗勤, 恐不克負荷. 前月地震, 今月雨土, 災變之來, 豈無所召? 予未知賦斂重歟, 工役煩歟, 刑罰不中歟, 用舍失當歟, 賢俊或遺逸歟, 婚嫁或失時歟, 守令之貪酷甚而監司之黜陟或謬歟, 民不堪其苦而下情不得上通歟. 深惟獲戾之由, 咎實在予, 欲聞直言以答天譴. 其中外大小臣僚以至閭巷小民, 體予至懷, 致災之由, 弭災之方, 悉陳無隱.”            -  『성종실록』 9년 4월 1일(임진)
 
 해설

  흐드러지게 핀 벚꽃 흩날리는, 봄날이 한창이다. 하지만 봄꽃을 제대로 감상할 여유가 없다. 봄이 되면 어김없이 황사와 같은 불청객이 함께 찾아오기 때문이다. 하늘이 파란 나라라고 자랑하던 건 아득한 옛말이 되고 말았다. 어디 그뿐이랴? 서양 사람들은 물을 사서 마시고, 심지어 물값이 석유보다 비싸다는 말을 믿지 못하던 때도 있었다. 우리가 그리될 줄 까맣게 모르고. 이러다가 봄을 화사한 봄꽃이 아니라 뽀얀 잿빛 하늘로 기억하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을 떨쳐 버릴 수 없다.

  예전에도 황사로 인한 흙비가 내리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천재지변으로 간주될 만큼 흔치 않은 현상이었다. 그런 가운데 성종 9년(1478) 4월 1일에 내린 흙비야말로 우리 역사에서 잊어서는 안 될 기념비적 사건이었다. 그때 스물두 살의 혈기왕성하던 성종은 그 흙비를 몹시도 두려워했다. 놀란 성종은 승정원에 곧바로 전지(傳旨)를 내려 추궁했다. “하늘이 꾸짖어 훈계하는 데에는 반드시 까닭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대들은 어찌 한마디의 보고도 하지 않는가?”라며. 도승지 신준(申浚)은 쩔쩔매며 궁색한 답변을 늘어놓았다. “신들은 날씨가 흐린 것만 보았지, 흙비 내리는 것은 보지 못했습니다. 만약 알았다면 어찌 아뢰지 않았겠습니까?”라고. 정말 흙비가 조금 내리다 말았는데 성종이 괜한 호들갑을 떤 것인가, 아니면 하늘의 재이를 보고서도 신하들은 무사태평이었던 것인가?

  확인할 길 없지만, 사실 여부는 중요치 않다. 그보다는 그날의 흙비로 인해 조선의 역사가 뒤바뀌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사연인즉 이러하다. 성종은 흙비라는 흔치 않은 자연현상을 이용하여 당시의 적폐를 청산하고자 했다. 하늘의 재이는 분명 인간 세상의 잘못에서 기인한 것일진대, 그 이유가 무엇인지 숨김없이 말해보라는 구언(求言)의 상소를 요청했던 것이다.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성종은 수렴청정과 원상제(院相制)라는 정치적 그늘에서 벗어나 흙비를 빌미 삼아 본격적인 친정(親政)을 펼쳐보려 했던 정치적 노림수였다.

  하지만 성종을 에워싸고 있는 노회한 훈구공신들이 그걸 모를 리 없다. 추궁을 당하고도 이러저러한 이유만 늘어놓았다. 그것 모두 기대한 답변이 아니었다. 성종은 구언전지를 내리며 이미 예상 답변을 조목조목 짚어주고 있었다. 지나치게 무거운 세금, 공정하지 못한 인재 등용, 상하 의견의 불통 문제 등등. 그럼에도 애써 모른 척하던 그들의 태도는 오만방자하기 짝이 없다. 그게, 성종 9년 4월 1일, 젊은 임금 성종과 늙은 훈구공신이 연출하고 있던 한 폭의 풍경이었다.

  보다 못한 스물다섯의 젊은 왕족이 마침내 흙비 내린지 일주일 지난 4월 8일, 한 통의 상소를 적어 올렸다. 주계부정(朱溪副正) 이심원(李深源)이 쓴 상소문의 골자는 명료했다. 흙비가 내리는 재이(災異)는 천지 음양의 부조화가 초래한 현상인 바, 꽉 막힌 인사제도가 원인이라 진단했다. 그리고는 세조 대 이래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훈구공신 축출을 해결 방안으로 제시했다. 성종이 기대했던 답변이었지만, 조정은 발칵 뒤집혔다. 급기야 훈구공신의 총력 반발에 밀려, 성종은 진땀을 흘리며 그들의 노여움을 달래주어야만 했다.

  그렇게 흙비를 계기로 정치 개혁을 도모했던 성종의 시도는 찻잔 속의 태풍처럼 잦아드는 듯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심원과 동갑내기 절친이자 성균관 유생인 남효온(南孝溫)이 다시 불을 질렀다. 이심원이 상소를 올린 지 일주일이 지난 4월 15일이었다. 일주일 간격으로 상소를 올린 것은 우연이었을까? 상소의 내용까지 유사한 걸 보면 그런 것 같지 않다. 남효온의 상소를 받아본 훈구공신이 그걸 눈치채지 못할 리 없다. 그리하여 상소의 내용보다 둘이 서로 공모하여 상소를 작성한 사실을 문제 삼고 나섰다. 정치꾼들이 많이 구사하는 본질 흐리기의 전형적 수법이다. 그리고는 곧바로 국기 문란 행위로 몰아갔다. 서로 논의하여 상소를 올린 것은 붕당(朋黨)의 조짐인 바, 그건 역률(逆律)로 국문해야 하는 중죄가 되는 까닭이다. 구언의 상소가 역모의 증거로 뒤바뀌는 순간이다.

  훈구공신들이 그토록 격렬하게 들고일어났던 것은, 성종을 비롯하여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얼룩진 과거사를 남효온이 들춰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발설해서는 안 되는 절대 금기, 곧 세조의 왕위찬탈 과정에서 빚어진 음습한 패륜을 광명한 역사의 무대 앞에서 폭로했던 것이다. 바로 단종의 생모 현덕왕후(顯德王后)가 아들 단종의 폐위와 함께 서인(庶人)으로 강등되어 종묘에서 위패가 내쳐지고, 문종의 곁에 묻혀 있던 현릉(顯陵)에서조차 파헤쳐졌던 사건이 그것이다. 남효온은 흙비를 바로 그런 반인륜적 처사에서 비롯된 것이라 진단했다. 이는 단종의 생모를 문종 곁으로 다시 모셔야 한다는 논리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는바, 세조의 왕위 계승에서 자행된 불법적 행위를 바로잡기 위한 첫 신호탄이기도 했다. 남효온이 이때 올린 상소를 흔히 ‘소릉복위(昭陵復位) 상소’라고 부르는 까닭이다.

  일그러진 과거 역사를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된다고 여겼던 남효온의 시대정신은 성성하기 그지없는 것이었지만, 그로 인해 그 자신은 평생 울울한 방랑과 폭음으로 삶을 보내야만 했다. 비극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연산군이 일으킨 갑자사화 때는 그 젊은 날의 상소로 말미암아 자기 몸은 부관참시 되고, 외아들 남충세마저 자신의 죄에 연루되어 참수됨으로써 대마저 끊어졌다. 불의의 역사를 바로잡는다는 것은 그토록 가혹한 대가를 치러야 할 정도로 힘든 법이다.

  폭군 연산군을 몰아내고 바른 역사를 쓰겠다고 다짐하던 중종의 시대에도 소릉복위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반정공신을 비롯하여 조정의 신하들이 벌떼 같이 들고 일어나 몇 년을 몰아붙였지만, 중종은 요지부동이었다. 세조의 후손으로서 선조의 잘못을 인정하기란 그만큼 어려웠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봄날, 중종은 친제(親祭)를 지내러 종묘에 갔다. 중종 8년(1513) 3월 2일이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날 갑자기 벼락이 쳐서 종묘 뜨락의 나무를 부러뜨렸다. 놀란 중종은 예전에 성종이 그랬던 것처럼, 구언전지를 내린다. 조정의 신하들은 기다렸다는 듯 소릉복위를 한목소리로 아뢰었다. 중종은 마지 못하는 척, 사림의 숙원이었던 소릉복위를 윤허한다. 남효온이 금기를 깨뜨린 지 35년 만에 이루어진 일대 쾌거였다. 그리고 그때부터 세조 대의 은폐되고 왜곡된 역사적 진실들은 하나둘 바로잡히기 시작했다.

  정말, 하늘이 자신의 뜻을 그렇게 흙비와 벼락으로 드러냈던 것일까? 하늘은 아무 말도 않으니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천인감응(天人感應)에 근거한 그런 낡은 관념조차 때론 그립다. 누구나 천벌이 무섭다고는 하지만, 정작 천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너무나도 넘쳐나는 요즘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 구언전지(求言傳旨) : 나라에 재변(災變)이 생기거나 큰일이 있을 때 신하나 사림(士林)에게 솔직한 의견을 구하는 전교이다.
 

출처 - 고전산책


고전 수필
게시물 114
No Title Name Date Hit
114 서목에 대하여/부유섭 변영희 17.11.27 930
113 애장가(愛藏家)의 서벽(書癖)/부유섭 변영희 17.10.16 1022
112 총명함과 어리숙함 / 이규옥 변영희 17.10.05 944
111 노주쌍충(奴主雙忠) - 신분을 초월한 옛 사람의 전… 변영희 17.08.30 904
110 외정(外征)과 내치(內治) /한문희 변영희 17.08.24 819
109 여관이라는 이름의 집 /최두현 변영희 17.07.31 888
108 단장지애(斷腸之哀) /박수밀 변영희 17.06.19 914
107 나의 어머니 /朴壽密 변영희 17.05.01 977
106 황사비와 구언전지(求言傳旨) /정출헌 변영희 17.04.10 924
105 마흔 아홉, 늙어감에 대하여/朴壽密 변영희 17.03.13 1017
104 지공무사(至公無私) /한문희 변영희 17.01.13 1079
103 태종과 부엉이/김진옥 변영희 16.12.26 1179
102 허균이 세운 공공도서관/조운찬 변영희 16.11.28 1023
101 실사구시 /조운찬 변영희 16.05.23 1648
100 소소한 에티켓 /조운찬 변영희 16.04.12 1194
99 토정 이지함의 진짜 비결 /조운찬번역 변영희 16.03.18 1239
98 밤나무의 대기만성 /선종순 변영희 16.03.07 1421
97 사자가 토끼를 잡는 법/조운찬 변영희 16.01.29 1416
96 백성들 모르게/선종순 변영희 16.01.29 1194
95 만나지 않는 교유/김진옥 변영희 16.01.11 1403
 1  2  3  4  5  6  
 
한국수필작가회 http://www.essay.or.kr 사무국 이메일 master@essay.or.kr 사이트 관리자 이메일 hipe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