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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무사랑
  글쓴이 : 김순자 날짜 : 03-12-11 03:48     조회 : 3745    


나는 생활에 변화를 주고 싶을 때나 옛 친구를 만나 갈만한 곳이 생각나지 않으면 저절로 발길이 인사동 골목으로 향하게 된다. 특별히 골동품에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니면서 자주 가게 되는 까닭은 그 곳에 진열되어 있는 옛스러운 것들과 만나는 즐거움 때문이다. 나는 여기서 조상들의 삶의 지혜를 느끼고 어릴 적 향수에 젖어들게 된다. 때로는 꽁보리밥 집에 들러 보리밥에 나물을 골고루 넣고 된장과 고추장으로 쓱쓱 비벼서 맛나게 먹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그리고는 보물이라도 찾는 사람처럼 기웃거리다가 가지고 싶은 작은 것 하나라도 사게 되는 날이면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흐뭇해진다. 이런 마음을 갖게 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감투 할미' 이다.

조선시대 작가 미상의 여인이 쓴 '규중칠우쟁론기'에는 침선을 돕는 유를 명호로 정하여 골무를 '감토 할미' 라 하였는데 골무를 이렇게 표현 한 것이 재미가 있다. 아마도 손가락에 끼면 감투 같이 보였고 할머니처럼 아녀자들이 바늘에 찔리지 않도록 해 주는 정이 있어 할미라고 했다고 생각하니 옛사람들의 표현에서 재치가 번뜩임을 느낄 수가 있다.

나는 대 여섯 살 때부터 어머니에게 바느질을 배웠다. 어머니가 쓰다 남은 색색 비단 조각을 모아 두었다가 골무를 기웠던 생각이 난다. 광목이나 옥양목에 밥풀을 이겨서 여러 겹 덧붙여 굳히면 바늘이 들어가지 않을 만큼 딱딱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양쪽을 다른 색의 비단을 겉에다 붙여 손가락에 맞게 오린 다음 두 쪽을 마주 대어 서로 다른 색의 실로 단단히 꿰매면 앙증맞은 골무 한 개가 만들어진다. 예전에는 여인들이 시집살이를 하려면 바느질을 많이 해야 하니 골무가 혼수 품목 중 뺄 수는 없는 것이 되기도 하였다. 내가 만들어 놓은 색색의 골무들을 보고 어머니는 시집갈 때 가져가라고 했을 때 처녀가 다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골무는 나이나 일의 성격에 따라 모양이나 색이 다양하다. 우리 할머니는 멋을 내지 않은 검은색이거나 회색이었고 어머니의 것은 분홍이나 노란 색이었다. 가난한 살림에 쪼들리며 살았던 간난이 할머니는 무명 천 여러 겹을 손가락에 둘둘 말아 실로 동여매어 골무처럼 쓰기도 했다. 증조할머님 수위를 꿰맬 때에 끼었던 골무는 흰색 골무인 것을 보면 골무조차도 생과 사의 엄숙함을 표하고자 했던 우리 조상들의 정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이렇듯 작은 골무 하나에도 우리 선인들의 삶의 다양한 면을 엿볼 수가 있다

전문가가 만든 골무는 매화, 모란, 연꽃, 석류, 나비, 새, 박쥐, 태극 무늬, 길상 무늬 등이 수놓아 있다. 양쪽을 다른 색으로 배치해서 색상의 단순미와 조화의 미까지 더해 주고 있다. 또한 골무의 아랫부분인 반달 모양의 부드러운 곡선은 우리 민족의 성품인 듯 부드러운 모습에서 정감도 느낀다. 이렇듯 모양새 있는 골무는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우리나라 고유의 예술품으로 자랑할 만 하다. 인사동 거리에서 외국인들이 호기심어린 눈으로 아기자기하게 만들어 놓은 골무를 바라보는 것이 눈에 띈다.

요사이는 장식용으로 골무가 인기 인 듯하다. 핸드폰 줄이나 가구의 손잡이에 매달아 멋을 더해주기도 하고, 액자에 넣어 벽을 꾸미는 것 등에 애용된다. 더러는 외국에 나갈 때 선물로 가지고 가기도 한다. 요즘에는 실용품으로 사용하기보다 장식용으로 더 애용하는 시대로 변했다.

청바지가 처음 나왔을 때이었다. 장난꾸러기 큰애의 청바지 무릎이 닳아진 것을 꿰매다 큰바늘에 찔렸다. 뚝뚝 흐르는 피를 본 가족들의 얼굴 표정에 내가 오히려 미안했다. 얼굴이 하얗게 변한 큰놈의 얼굴은 보기가 민망스럽기까지 했다. 옆에서 쳐다본 남편은 솜과 약을 가져오면서 큰일이 생긴 것처럼 허둥댔다. 골무 없이 하는 바느질은 더디기도 하려니와 바늘에 찔리는 수난을 겪을 때마다 단단하고 예쁜 골무를 몇 개 만들어야지 하는 마음을 먹었지만 아직도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사랑하는 딸과 마주 앉아 오손 도순 이야기를 나누며 골무를 기워 보는 재미도 가져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추억도 가지지 못한 채 과년한 딸을 가진 못난 에미가 되고 말았다.

예전에 아낙네들이 바느질에 묻히어 살아야 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현대를 사는 젊은이들에게는 바늘 잡을 기회가 별로 없다. 필요에 따라 마음대로 사서 쓸 수가 있는 편리한 시대가 되었다. 설사 바느질을 할 일이 생겨도 골무를 끼고 하는 바느질에 익숙하지 않으니 오히려 거추장스럽게 느껴지는 모양이니 골무가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도 나는 여인들이 틈틈이 뜨개질을 하거나 골무를 끼고 바느질을 하기도하고 수를 놓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아름답게 보이기도 하려니와 정다운 느낌마저 든다. 나의 이런 느낌은 사라져 가는 옛 것에 대한 향수만이 아니다. 오직 우리 남매들이 몸과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고 잘 자랄 수 있도록 감싸주신 어머님의 사랑이 바로 골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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