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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백 시인, 그리고 태안 해변
  글쓴이 : 김영월 날짜 : 13-06-03 16:24     조회 : 2379    
이백 시인, 그리고 태안 해변
                                                   

 
 바다 위에 떠 있는 구름 같은 해변/ 거친 파도에 야생마들처럼 길길이 뛰는데
 눈발까지 휘날렸다/  아득한 시절 봄날에/ 이 곳을 찾은 이백 시인의 발자취
 다섯마디 한시로 남았다 / 송림들 우거진 사이로 / 바다는 숨바꼭질 하는데
 산책길의 나그네 / 옛 시인의 전망대에 올라와 / 바다여, 바다여
 무슨 말을 그리 하고 싶은지 / 내가 묻고 있다.
                            -졸시 태안 해변 길 전문

 태안반도 북쪽에 있는 의항리 해변은 세찬 모래 바람에 눈뜨기조차 어려웠다. 아무도 찾지 않는 평일의 겨울 해변이 사람들의 발걸음을 허락하지 않는 듯 했다. 초원을 달리는 야생마들처럼 울부짖는 파도의 함성이 마구 귓전을 때린다. 고교 시절의 친구 세 명과 함께 최근에 조성된 태안의 둘레길을 찾았다. 당나라 때의 시성, 이백(701년-762년 자는 태백) 이 여기에 펼쳐진 해변의 풍광에 빠져 멋진 시 한 수를 남겼다는 얘기가 전해져 더욱 흥미로웠다. 그의 생애는 방랑으로 시작하여 방랑으로 끝났다는 데 어떻게 머나먼 이곳까지 발걸음을 했는지 놀라울 뿐이다. 옛시인의 동상 앞에 와서 나는 어깨동무를 하며 사진 한 장을 찍고 그의 절창인 한시를 마주한다. 
                 
          선생은 어느 날에 다녀갔는지
          후배가 절경을 찾아 들어오니
          삼월의 진달래 꽃 활짝 피고
          춘풍은 운산에 가득 하구나         
                  先 生 何 日 去       
                  後 輩 探 景 還
                  三 月 鵑花 笑
                  春 風 滿 雲 山   
  시인은 따스한 봄날에 여기에서 절경을 노래했지만 눈발까지 쏟아지는 지금의  해변은 쓸쓸함에 묻혀 있다.  이태백 전망대라는 곳에 이르러 겨울 바다를 대하니 더욱 그렇다. 짙은 안개에 싸인 모습이 공중에 떠 있는 해변을 연상한다는 구름 해변에 끊임없이 하얀 포말을 일으키는 파도는 무슨 말을 그리 하고 싶을까. 언제까지나 한 자리에 머물러 파도 소리에 귀 기울이며 거침없는 광활한 바다를 응시하고 싶다. 올해 들어 첫눈이 눈보라 되어 거친 북풍에 산산이 흩어진다.
  직장생활을 하며 이곳에 정이 들었기에 퇴직 후 아예 정착해 버린 친구의 눈길이 그윽해진다. 송림들 사이로 푸른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정자에 앉아 옛 님과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린다.
        -우리 둘이서 쑥개떡을 먹으며 꿈같은 데이트를 즐겼지.
인생의 후반부에 이르러 가슴 시린 사랑 하나 가슴에 품은 사람이라면 행복한 게 아닐까. 그는 한 직장에서 이혼녀 직원을 만나 가정풍파가 몰아칠 만큼 호된 통증을 앓으며 지독한 사랑을 나누었다. 그 과정에서 나도 친구의 사랑을 돕는 공범(?)노릇를 하는 바람에 그의 부인에게 안 좋은 인상을 남기고 말았다. 세상의 어떤 물로도 끄지 못할 사랑의 불길은 그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끝이 났다. 지나온 세월동안 그는 얼마나 아픈 가슴을 내게 호소했고 나는 어찌 상담해 줄 수 있는 묘안을 찾지 못했다. 친구는 시인이 되기라도 한 듯 내게 사랑의 고백을 담은 시를 한 편 보내왔고 그 중에 기억나는 시구가 ‘사랑 사리’이었다. 불교의 고승들이 화장 후 사리가 나오듯이 그도 죽고 나면 그녀에 대한 사랑 때문에 자신의 몸에서 ‘사랑 사리’가 나올 것이라 했다.
  친구의 사랑을 생각하며 조선 시대에 애틋한 사랑을 나눈 몇 분의 일화는 여전히 가슴 뭉클한 사연이 아니던가. 퇴계 이황(1501년-1570년)은 두향이란 기생과 함께 죽을 때까지 못 잊어 했다. 안동에 있는 도산 서원에 가면 입구에 커다란 매화 고목이 눈에 띄는 것도 우연이 아닌 것 같다. 그가 단양 군수로 부임하여 근무할 때 어린 관기와 더불어 정을 나누고 헤어져 사는 동안 임종시에 보내온 그녀의 매화 화분에 ‘물을 주라’고 유언할 만큼 가슴에 애틋한 그리움을 안고 살았다. 두향도 퇴계가 죽은 것을 마지막 확인하고 단양을 흐르는 남한강에서 신분의 벽 때문에 이승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을 저 세상에서 영원히 함께 하고 싶어 그대로 투신자살 했다. 조선 중기 때의 시인, 촌은 유희경(1545년-1636년)은 부안의 명기, 매창과 인연을 맺고 죽는 날까지 서로를 그리워하며 안타까운 심정을 시로 남겼다. 두 분의 사랑을 시비로 새겨 최근에 도봉산 입구에 도봉 구청 주관으로 시비 제막식을 가졌다.
          이화우 梨花雨 흩뿌릴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하는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라. (매창 시, 이화우 전문)
  송도의 명기, 황진이는 여러 명의 내로라하는 당대의 선비들을 사로잡았지만 그들 중에도 조선 중기의 유학자인 화담 서경덕(1489년- 1546년)만큼은 함락 시키지 못하고 평생 흠모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후세인들은 송도삼절에 서경덕, 황진이, 박연 폭포를 일컬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남녀간의 러브 스토리 중 이루지 못한 사랑은 언제나 아름답고 슬픈 여운을 남긴다. 누구에게나 그런 행운(?)의 주인공이 주어지는 게 아닐 것이다. 바람 부는 태안반도를 거닐면서 친구의 가슴 아픈 추억에 빠져들며 다시 한 번 ‘사랑’이란 단어를 음미해 볼 때 영원한 사랑 노래 같은 파도의 몸부림이 계속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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