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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속의 소망 / 가던 길을 되돌아 서고
  글쓴이 : 한국수필작… 날짜 : 07-12-21 15:57     조회 : 3989    
약속의 소망
                                                        권연희


 장마가 서서히 물러나면서 폭염과 시작되는 매미의 울음은 밤낮의 구별도 없다. 이 시점에서부터 견디기가 힘들어진다. 애써 왜면하면서 꽁꽁 메어 놓았던 생각의 편린들이 한꺼번에 풀려나 걷잡을 수 없이 달려든다. 이 쯤 되면 속수무책 수습할 도리가 없다. 차라리 그냥 그대로 넋을 놓고 감당하는 수밖에. 그렇게 해서라도 마음을 눌러왔던 무게가 조금이라도 덜어 지지나 않을까 싶어서이지만 짐짓 그건 핑계이고 이기심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핑계도, 이기심도 아니다. 오직 속죄하는 마음으로 감당해야 할 몫이다. 이 칠월이 오면 그리움이 더 선명히 다가와 영락없이 몸살을 앓는다. 이제 와서 세삼 지난 기억을 헤집어 내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지만 이 상처를 다 들어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그 해 여름 나는 울컥울컥 치미는, 정리되지 못한 나 자신의 감정을 미처 다스리지 못하고 병석에 누워계신 아버지께 그것들을 고스란히 다 던졌다. 그리도 남달리 보담아 주시기만 하던 아버지는 그 사랑을 다 소진하기까지 침상에 누우셔서도 "미안하구나, 미안하구나"만 뇌이셨는데, 그 애닯고 애닯은 사랑만을 주신 아버지께 나는 어떻게 했던가. 어디 이런 몹쓸 딸이 또 있었던가.

 그리고 얼마 후, 아버지가 내 곁을 떠난 사실에 가슴이 아파 숨을 쉴 수가 없었고 흐느낄 수조차 없었다. 미친 듯이 뛰쳐나가 낭떠러지에라도 실족하고 싶은 절망감은, 시공을 초월한 이 우주 어느 곳에 아버지 계신다면 그곳에 가서라도 불효했음에 용서를 빌고 싶었다. 아무리 아버지의 죽음을 부정하고 싶고, 외면하고 싶어도, 아버지에 대한 미칠 듯한 그리움은 가슴에 파편같이 쌓여만 갔다. 그럴수록 불효했던 회환들로 가슴을 후비며 세상에 대한 아무 미련도, 기대도 없이 차갑고 싸늘한 어두운 방에서 나를 방치하면서 오랫동안 꼼짝도 하지 못했다.

 아버지 가신 지 어언 삼년. 아버지와 결별했던 시간이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아버지께 더 가까이 감을 느낀다. 사람들은 죽음은 육신과 더불어 영혼도 사그러진다고 하지만 나는 아버지의 영혼은 내 삶에서 결코 소멸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왜냐하면 죽음이 전제되어야만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약속의 소망을 믿기에. 이제는 그날을 위해 아버지에 대한 불효의 자책과 그리움의 끈을 놓아야 한다. 이 지구 어디에서도 다시 만날 수 없다면 차라리 아버지를 보내 드려야 한다. 그리고 그래도 살아내야 할 내 삶이라면 일어서야 한다. 절망의 자리는 좌절하는 자리가 아니라 일어나야 하는 자리라고 하셨던 아버지. 나와 아이들의 든든한 바람막이셨던 아버지의 사랑을 깊이 간직하며, 나 또한 세상과 맞서 아이들의 든든한 바람막이가 되어 당당히 살아가야한다. 그것은 아버지의 간곡한 바램이기도 하시리라.


 가던길을 되돌아서고 
 

자정이 조금 안된 시간이다. 커튼 사이로 멀리 어둠의 빛이 들어온다. 혼자 있는 나와 밤샘을 같이 하겠다는 k양을 겨우 보냈다. 그녀는 이천의 도예 마을에 "향토빛"이라는 간판을 걸어놓고 열심히 살아가는 독신녀이다.

그녀와는 5년 전 내가 도예점을 시작하면서부터 친분있게 지내 오던 사이다. 나는 오늘 무작정 집을 나와 아무 생각도 없이 닿은 곳이 그녀의 전시장이다. 해거름에 불쑥 들어서는 나를 보고 그녀는 몹시 놀라워하면서도 반긴다. 그녀는 나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부랴부랴 전시장 문을 닫을 준비를 하고 다른 사람과의 약속까지 취소한다. 그리고는 나의 모습이 심상치 않은지 함께 밤을 지내 겠다고 한다.

내 고집을 꺽지는 못하겠는지 k양은 여주에 있는 자기집 근처의 모텔에 안내하고는 돌아갔다. 모텔 창가에 서본다. 남한강 물이 흐른다. 검은 빛의 강물은 여주대교 의 가로등 불빛 때문에 알아볼 수가 있었다. 희미한 그 빛조차 없었다면 남한강은 그냥 까만 밤의 일부분이었을 것이다. 강 건너에는 어렴풋이 신륵사의 모습이 나와 마주하고 서있다. 그렇게 얼마를 지났을까, 어둠 속에서 문득 작은 점 하나가 어느새 커다랗게 창문을 가득 메우며 나를 짓누른다. 갑자기 가슴이 멎고 숨이 멎는다. 유난히 무서움을 타는 나로서는 정말 진땀나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에 정신이 번쩍 들면서 나 자신의 그림자였음을 확인한 것이다. 오늘 아침 무작정 집을 나섰다. 어쩌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먼길을 간다는 생각만이 머리에 가득 하였다. 찬바람이 뜨락에 소리없이 내리기 시작하자 그 동안 잊고 살았든지, 잊은척 하며 살아 왔든지간에 묵은 병이 꿈틀거린 것이다.

내 속에서 잘 견디고 있다고 스스로 대견해 왔던 것들이 기어이 가슴속에서 마른가지 부딪치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잠 못 이루는 시간들이 늘어나면서, 하는 일 없이 살고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나를 괴롭히며 경멸했던 것들이 고개를 든 것이다. 한동안 애써 외면하려 했던 것에 대한 집착이 시시때때로 되살아나서 나를 수도 없이 괴롭혔다. 자신이 자신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한다는 사실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이다. 우울한 상황이 계속되는데도 나는 나를 방치하면서 분노와 불만을 감추고 살아왔다.

세상은 잔인하다. 나로 하여금 선택의 목적을 잃고서도 선택을 해야만 하는 강박증은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피해의식에 시달려야만 했다. 요 며칠동안 나는 여기쯤에서 나의 삶을 중단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생각은 결심을 하는데 길잡이가 되었다. 날이 밝으면 훌쩍 떠나리라. 어디로 갈지 방향이 없다.

이 묵은 병을 잠재울 도리가 없으니 떠나야 할 수밖에 없다. 아침이 되자 작은 가방을 들고

나섰다. 어젯밤까지도 별말이 없던 내가 여행 차림으로 나서자 아버지는 의아해하면서도 "운전 조심하거라". 당부하신다. 친정 아버지의 염려를 뒤로하고 그렇게 훌쩍 집을 떠나온 것이다. 이렇게 해서 k양을 만났다. 밤이 깊어지자 모텔 창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다시 또 놀란 것이다. 긴 숨을 내쉬었다. 어처구니없는 모순이다. 늘 죽음을 앞세워 고통에 오만 했던 내 자신이 진짜 죽음이 가까워오게 되자 두려워진 것인가. 밤이 새벽으로 흐르고 있다. 피어오르기 시작한 물안개 밑으로 강물이 그 곳에 흐르고 있다. 달도 서녘으로 숨어들었다. 남한강의 어둠은 그냥 남겨두고 나만 홀로 이곳에 서 있다. 진정한 나는 어디로 흘러 가고 있는 것인가.

새볔(2)

간밤에 보았던 남한강도 여주대교도 보이지 않는다. 밤새 피어오른 물안개가 모든 것을 삼켜 노천 온천장을 만들어 놓은 듯 하다. 전화벨이 울린다. 새볔 5시. 그녀의 전화다. 10분쯤 지나자 새볔 이슬을 함초롬이 맞고 들어온 그녀는 생기가 넘쳤다. 며칠 편히 쉴 수 있는 조용한 암자를 안내하겠다 하여 따라나섰다. 여주 국도를 달린다. 한치 앞도 분간하기 어려우리 만치 안개가 길을 막는다. 앞서가는 그녀의 후미등을 겨우 붙잡고 따라간다. 자꾸만 흐려졌다 사라졌다 반복되는 뿌연 불빛을 따르며 나는 내내 내가 미워지기도 하고 싫어지기도 했다.

언제였던가, 오늘과 같은 자욱한 안개 속에서 길을 읽고 "미로" 속을 헤매었던 때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데, 그때의 아픔이 오늘의 아픔과 같질 않다. 내 다시는 혼자 미로 속을 달리는 어리석음은 없으리라고 한 다짐이었는데... 대체 나의 삶은 지금껏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다가 미로에 다시금 서게 되는가.

아침(3)

충주 현암사에 도착한 시간이 8시나 되었을까, 한 폭의 산수화 속에 내가 꿈처럼 서 있는 듯하다. 뜰에서 내려다보이는 대청댐이 지척이다. 서서히 안개가 걷히기 시작하면서, 아침 햇살에 드러나는 댐의 모습이 장관이다. 마악 몽우리가 터지기 시작한 희디힌 목화밭을 보는 듯 눈이 시리다. "보살님 좋지요. 말이 필요없지요. 여기가 극락입니다. 속세의 근심 다 잊을 때까지 편히 쉬었다 가세요" 넋놓고 바라보고 있는 나에게 k양이 밤사이에 연락을 했는지, 기다리고 있던 지명스님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내가 넉살좋게 여기저기 신세지는 성격이 아님을 아는 그녀는 나의 행동을 의아해하면서도 내게 집을 나온 연유를 묻지 않았다. 그리고는 이천으로 돌아갔다.

점심, 공양시간에 슬며시 산을 내려왔을 때 바위에 깍아 세운 산사의 길이 매우 가파르고 힘들었다. 하지만, 오르내리기를 서너 번 하고 나니 저녘이다. 저녘, 공양도 마다하고 일러준 방에 드니 앉은뱅이 책상 하나에 방석이 하나 있는 것이 전부였다. 텅 빈 공간에 마음이 절로 비어온다. 낮이 줄어들고 밤이 늘어나는 산사의 밤, 먼 곳에서 분명하지가 않은 경적소리가 들린다. 간혹 급히 달리는 차 소리도 들린다. 속세와는 단절을 할 수 없는 공허함이 자리하고 있다. 방이 추워서만은 아닐 텐데 손이 시릴 정도로 한기가 든다. 마음이 춥다. 잠들어야 하는 시간에 잠들지 못하고 있는 내게는 자꾸만 세상이 잔인하다는 생각을 떨쳐 버리지 못하게 한다.

아침(4)

자동차에 시동을 걸고 망연히 앉아 잇다. 어디로 갈 것인가. 앞이 보이지 않는다. 밤새 소복이 내린 이슬을 윈도 브러쉬로 훔쳐내고 앞을 본다. 대청댐은 아직 깊은 수면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화려하고 웅장하던 목화밭의 장관은 아직 이른가 보다. 인적없는 국도를 달리노라니 세상이 적막 바로 그것이다. 지명스님의 간곡한 만류를 뒤로하고 경부고속도로에 올랐다. 고속도로에는 각양각색의 차들이 달린다. 그 대열에 끼여 속절없이 나도 달리다. 나에게서 달아나는 나를 쫒아가며 자꾸 달린다.

정오(5)

금강 휴게소. 차도 쉬고 나도 쉰다. 현암사를 떠나올 때 나이든 공양보살이 손에 들려주던 미음 병을 싣고 왔다. 스스로 몸을 상하게 하면 안된다며 간곡히 쥐어준 병이다. "세상을 큰 눈, 큰 마음으로 살아가야 한다."며 산사를 내려오는 내 등뒤로 일러주던 말이 지금에사 메아리로 돌아와 들리는 듯하다.

미음병을 잡는다. 따스한 온기가 손끝에 묻어난다. 병뚜껑을 열고 미음을 목으로 밀어 넣는다. 며칠을 식음을 전폐했지만 배고픔은 느끼지 못했다. 목으로 넘어가는 미음의 따사함이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미음 병을 들려주던 공양보살과 돌아가신 어머니의 얼굴이 겹친다. 대문간에서 운전 조심 하라시던 아버지의 모습도 떠오른다.

오후(6)

자동차는 어느덧 대전을 지나고 있었다. 대학시절 공부한답시고 몇 해를 줄곧 드나들던 곳이 생각났다. 통도사와 인접해 있는 내원사 익성암자가 생각난 것이다. 벌써 십수년이 지났으니 그때 그 스님이 계실까마는 갈 곳을 정한 마음은 한결 가벼워진다. 오후3시 익성암 경내에 들어서니 옛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단청은 퇴색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짙은 색을 띠고 있어 현란스럽다. 윤스님, 중화스님 하면서 떠올리지만, 고개만 가로젓는 행자를 대면하는 게 되려 민망스럽다. 유숙하기를 청하였다. 객을 유숙시키는 사찰이 아니란다. 당혹감이 마음을 묶었다.

텅 빈 하늘을 본다. 가을 하늘이 너무 파랗고 높다. 내가 바람이고만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오던 길을 되돌아 나오면 산 능선으로 자꾸만 눈이 간다. 막연히 차를 돌려 나오면서 통도사 쪽으로 향할까 하는데, 멀리 흰 건물의 기도원 팻말이 보인다. 초행인 산비탈을 용케도 찿아 오르고 보니 감란산 기도원이란 간판이 보인다. 기독교 신자인 내가 방황하며 기도원을 찾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을 하며 기도원에 들어섰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는 마태복음 성구가 떠오른다. 그러나 기도원의 상황은 내가 머무를 여건이 되지 못했다. 낙심이 되어 망연히 기도원 뜨락에 앉았다. 어디로 갈 것인가, 나의 나약함, 결핍과 결핍 사이의 부딪침, 단순함으로 해서 보이는 대로 받아들이고 마는 존재방식, 하나같이 완성될 줄 모르는 삶을 이어온 모순된 내가 거기 앉아 있었다.

문득 k양에게 전화를 하지 못한게 생각났다. 그냥 현암사에 눌러 있을줄 알고 있을 그녀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떠난 게 못내 미안했다. 아니나 다를까 전화를 했더니 그녀는 아침내내 현암사에 전화를 했다가 내가 떠난 것을 알고 눈이 빠져라 연락을 기다렸다고 했다. 공중전화박스에서 그녀와의 여러 번의 전화 끝에 암자를 안내할 사람과 만날 수 있도록 주선을 해주었다. 내원사 길목에 들어서는데 반대편에서 자동차가 경적을 울린다. 백밀러로 흘깃보니 젊은 부부가 나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차를 세우자 k양의 부탁을 받고 나를 여태까지 찾고 있었단다. 그들 부부는 친절하게도 내가 머무를 노전사 까지 배웅을 해주었다.

하늘은 가슴에 가깝게 스미고, 갈대가 키보다 높게 자란 숲을 지난다. 길인지 계곡인지 자동차는 기어가다시피 한다. 버려도 버려도 여전히 남는 아픔은 내 뒤를 놓칠세라 그림자처럼 따라오지만, 그런대로 마음은 너그러워 지다.

저녘, 노전사에 도착하니 해가 기운다. 큰스님이 서울에서 왔느냐며 반갑게 맞이해 주신다. 노스님의 깨끗한 용모와 인자하신 모습을 보니 마음이 편안해 진다. 저녘 공양시간에 참석하지 않자 늦은 시간인데도 행자스님을 보내어 큰스님 방으로 오라고 한다. 이런저러 얘기를 나눈 끝에, 내일부터 법당에서 절을 하루에 삼천 번씩 열흘을 해 보라며 권한다. 난감하다, 실은 나는 기독교인이다. 그러나 나는 평소에도 어떤 종교에 대하여 배타적인 생각을 해본 일이 없다. 허지만 선뜻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생각해 보겠다 하고서 노스님 방을 물러났다. 나는 밤새 낯선 의식의 터널속에서 헤매었다. 잊고 잊혀짐에 길들여온 내 삶의 모퉁이 마다 아픈 흔적이 남아있지 않는가. 차라리 외롭지 않는 곳으로 숨어 버리려 했는데 어디에도 숨어 있을 곳은 없었다.

새볔(7)

그리고 아침, 3백 번의 절을 하고 노전사를 떠나왔다. 스님과 깊이 나눈 대화에서 나는 일상의 끝에서 나를 새워야 함을 깨달았다. 영원의 끝은 어딘지 몰라도 영원한 시작에만 서기로 했다. 이제 내게 다가온 동정의 눈길, 걱정의 보살핌, 안타까워하는 눈동자들에게 자신있게 보여주기 위한 나를 만들기로 했다. 미움보다 사랑하는 것만 가려서 나 이상으로 아끼며 살아가리라. 스님의 말씀대로 욕심과 집착을 갖지 않으려 한다,

서울을 향한 고속도로변의 가을 단풍이 새삼스럽게 시야에 들어온다.

이 자연이 아름다웁듯이 나다운 빛깔로 나를 물들게 하고 싶다. 며칠사이에 따스한 만남의 인연들이 나의 그림자를 길게 하면서, 내가 현실 속에 있음을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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