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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거름의 산책 / 손자의 솜씨
  글쓴이 : 권석하 날짜 : 03-11-27 23:03     조회 : 4597    
은색 커튼을 드리운 듯 저녁놀아 비치어 거실 분위기가 아늑하다. 어디선가 들리는 피아노 소리가 40여년 전 초등학교에 근무할 때의 오르간 소리로 들려온다. 아이들이 귀가한 방과후 노을빛에 물든 텅빈 교실에서 윤심덕의 노래 <사의 찬미>를 오르간으로 치며 눈물지던 시절이 불현 듯이 떠올랐다.

황혼이 지고 교실에 어둠이 깔리면 세상이 허무하게만 느껴지고 비관적인 생각만 했다.

이러다가 염세주의가 되겠다는 무서운 생각에 열 손가락으로 오르간 건반을 주르르 흩고 일어섰던 일이 회상되었다.

여학교 시절 시인이 되겠다고 문예반 에 들락거리던 가슴앓이 병이 이때 도진 것이다. 시 창작집 표지가 떨어져 나가도록 읽어도 글은 써지지 않았고 가슴만 답답했다. 그 갈증을 푸는 방책으로 해거름에 산책을 하며 지냈다.

나는 유년시절부터 집에서 서쪽으로 15리쯤 떨어진 산기슭에 있는 과수원에 심부름을 해거름에 다녔다. 해질녁에는 대낮에 볼 수 없었던 대자연의 신비스러운 정취가 펼쳐진다. 나이들며 그 정경에 흠뻑 빠져들며 시정에 젖어들기를 즐겼다.

1956년 초여름부터 서울살이가 시작되었다. 어릴때부터 익혀서인지 어디서나 저녁놀이 비끼면 인생 무대의 조명인 양 습관적으로 사념의 휴희를 하게 된다. 42년 전 서울의 일몰은 내 고향의 노을 만큼 이나 아름다웠는데 지금은 공해로 오존층이 파손되고 높은 건물에 가려 그 정취가 옛만 못하다.

논어에 사십이불혹 이라고 했다. 부질없이 망설이거나 무엇에 홀리지 않는다고 했는데, 마흔셋이 된 해였다. 나는 삶이 권태롭고 회의롭기만 하니 불혹은커녕 미혹의 나이가 된 듯 삶의 의욕이 소침하기만 했다.

그런데 어느날, 신문 칼럼에서 여류 시인이 쓴 <열사의 삶>이란 글을 읽게 되었다. 그분은 쨍쨍한 햇빛에 달구어진 모래알처럼 하루하루를 뜨겁게 산다고 했다. 그 글은 나른해져 있는 나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호나 필명은 그 사람의 인생관이나 삶의 좌표로 하는 수가 있다고 한다. 나는 그때 삶의 좌표를 석하(夕霞)라고 지었다. 햇님이 붉은 노을 빛을 뒤로 남기며 아름답고 장엄하게 넘어 갓듯이 살리라는 야무진(?)뜻에서 였다.

그 이후 수첩이나 잡기책에 석하라고 쓰기 시작했는데 어느듯 17년이란 세월이 훌쩍 지나가 버리고 이순이 되었다.

심신이 좀 한가하니 공부가 하고 싶었다. 사춘기 때부터 앓아온 지병이 40여년 동안 침잠 했다가 다시 도지는지 평생 염원인 문학강좌가 듣고 싶었다.

본명은 경애(敬愛)인데 마흔 셋에 지은 석하로 등록을 했다. 부모님이 내 이름을 지을 때는 남에게 공경(敬)받고 사랑(愛)받는 사람이 되라는 뜻에서 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순이 되도록 본명의 이름과 같이 "敬愛"의 참뜻에 미치지 못하는 삶을 살았다. 본명은 그렇다 치고, 석하란 이름으로 수필반에 들기는 했으나 일년이 넘게 배워도 원체 무지랭이라 마음에 드는 글이 나오지를 않았다. 수강을 그만둘까 망설였는데 그래도 각오한 바 있어 또 그 다음 학기에 자라목이 되어 등록을 했다.

새학기에 수강생끼리 자기 소개가 있을 때 구변없는 내가 머무적거리니 교수님께서 나이들어 배우려는 자세가 얼마나 고결하냐고 추켜 주셔서 참 위안이 되었다. 또 종종 수강생들에게 "최선을 다하라 전력을 다하라"고 하는 채찍의 말씀은 자주 글을 쓰지 않는 나를 두고 하는 것 같아 무척 가책이 되었다.

드디어 3년6개월 만에 신인상을 받으면서 저녁 석(夕) 노을 하(霞)의 석하는 자연스레 필명이 된 것이다.

지지난해 8월 중순 휴가철 막바지에 가족과 함께 제주도로 갔었다. 귀경 비행기표는 8월20일 저녁 7시 출발 이었다. 8월 중순의 제주도 하늘은 푸르게 맑았다. 비행기 트랩을 오를 때부터 구름위에서 저녁놀을 감상하겠다는 생각으로 설렜다. 마침 좌석은 창가였다. 햇님이 수평선에 눈썹만 내놓은 상태를 보고 잠깐 고개를 돌렸는데, 다시 보니 햇님은 보이지 않았고 수평선에 아홉 층계 무지개가 서 있지 않은가. 자로 그은 듯이 간격이 고른 아홉 층계 무지개는 어두워질수록 층으로 번진 선이 선명해지고 검붉었다. 서울에 도착할 때까지 세고 또 세도 9층 무지개는 그야말로 비경이었고, 대자연의 절묘한 걸작품이었다.

나는 이 장엄하고 아름다운 저녁놀의 극치를 감상하려고 해거름의 산책을 즐겨하게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놀"은 공기의 분자 및 공중의 진애에 광선이 비쳐, 굴절 및 산란작용에 의하여 부유입자의 종류에 따라서 달라진다고 했다. 만약 대기 상층에 화산회 등의 미립자가 다량으로 펼쳐 있으면 대단히 농후한 색의 놀이 된다고 했다.

햇님의 신비스러운 힘은 미세한 물방울로 칠색의 아름다운 무지개를 새우고 티끌도 붉은 노을빛으로 채색하여 인간에게 무한의 선물을 한다. 과연 우리는 그 은혜를 얼마나 알며 살고 있을까?

미국 서부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에 비끼는 황혼이 너무 아름다워 자살자가 많아 황혼을 바라볼 수 있는 쪽은 인도를 만들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가 갔을 때는 약간의 안개 낀 금문교에 황혼을 보게 되었는데 관광객이 모여들만치 과연 그 다리의 크기며 아름다움은 장관이었다. 그 이튿날 광막한 캘리포니아 사막을 횡단하면서 지평선의 일몰에 취했다. 이글거리는 태양빛을 온종일 받은 사막에 비끼는 붉은 저녁놀은 어쩐지 애 타는 듯한 절경이었다.

그 놀을 바라보며 언젠가 칼럼에서 열사의 삶을 산다던 그 시인의 뜻을 새겨보았다.

해가 중천에 있을때는 지는 해를 별로 의식하지 않듯이, 젊음을 그냥 어영부영 세월만 보내고 이제사 문학을 붙잡고 있는 내가 가끔은 연민스러울 때가 있다.

문학이 순교는 못되어도 구도는 될 수있다고 했던가. 이순을 넘어 문학 수업하는 것을 내 저무는 인생길에 구도라 여기며, 이 길에서 사람살이의 참모습을 만나고자 해거름의 산책을 하듯 나선다.

***************

손자의 솜씨

끔 오르는 삼선산은 산세도 완만하고, 가꾸어 놓은 정원처럼 아기자기 한 데가 있다. 봄이면 더 그러하여 마치 한집안의 뜰을 연상케 한다. 웃자란 소나무들이 턱 버티고 서 있는 기상은, 그 옛 시절에 호기스럽던 가장들 같기만 하다. 군락을 이루고 있는 대숲의 댓잎이 봄바람에 부딪히며 사각거리는 소리가 마치 집안일에 바삐 돌아가는 가모의 치마자락 날리는 소리로 듣게 된다. 아가의 키만큼 자란 진달래가 화사하게 꽃이피고 산개나리가 노랗게 수를 놓게 되면 산가는 마치 웃음꽃 피는 집안처럼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된다.

나는 남매를 두었다. 아들이 장가를 들어 내 곁을 떠났다. 그것이 어제 일 같은데, 이 해 봄에 손자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었다. 같은 서울에서 살고는 있지만, 별일이 없는 공휴일이나 주말이 돼야만 온 가족이 함께 모이게 된다. 지난해 추석 전날이었다. 며느리가 유치원에 다니는 제 아들을 앞세우고, 전갈하게 담은 구절판과 밤, 콩, 깨, 건포도로 소를 넣어 빚은 송편을 찬합에 담아 들고 왔다.

부엌에 도마 없이도 산다는 세상에 가지가지 재료를 곱게 채를 쳐서 알맞게 볶아 아홉칸 칸칸 마다 색 맞춰 정성껏 담은 구절판 찬합 뚜껑을 여는 순간, 나는 금세 대비마마가 된 기분 되었다. 손자는 송편을 가리키며 "할머니 이 속에는요 밤, 콩, 깨, 건포도가 들었어요"하며 이 할미를 쳐다보고 천진스럽게 소상히 일러주는 그 눈빛이 하도 귀여워서 그만 왈칵 끌어안고 말았다. 손자가 만든 떡 솜씨는 한눈에 띄었다. 그 송편을 한 입 물며 "맛있는데" 하자, 손자는 이 할미 말에 힘이 솟는지 빙긋 웃으며 논두렁 개구리 뛰놀 듯이 마구 폴짝 폴짝 뛰었다.

우리는 상을 가운데 놓고 죽 둘러앉았다. 장마다 잣가루를 솔솔 뿌려가며 통밀가루로 빚은 그 밀정병 한 장을 작은 접시에 옮겨 펴고, 그 위에 고명을 얹듯이 여덟가지 음식을 가지런히 조금씩 옮겨 놓았다. 가히 수를 놓은 듯해, 며느리가 가족을 위해 쏟은 정성이 어떻게나 기특한지, 며느리가 번거러움을 무릅쓰고 새벽같이 음식을 장만한 그 속셈에는 제 어린 아들에게 무엇인가 느끼게 하고 싶은 교육적인 면도 염두에 둔 눈치였다.

손자가 다섯 살이 되는 설 전날이었다. 만두를 빚으려고 재료를 장만하느라 부산을 떠는데 손자가 옆에 다가오더니 "할머니 저도 도울께요" 라고 스스럼없이 일러준다. 손자의 솜씨야 오죽하겠는가. 만두 모양새는 주물럭 떠 넣은 수제비 모양이었다. 한데 그 자그마한 손놀림은, 이 할미 눈에는 흡사 꽃에 앉은 나비가 노닐 듯 하니 어쩌랴. 우리는 서로 눈높이를 같이해서, 눈말을 주고 받으며 손자가 만든 만두 하나씩을 집어들며 마냥 즐거워 했다. 겨우 네 돌짜리가, 할머니 저도 도울께요 하던 그 가녀린 말 한마디는 무슨 의미심장한 명구나 되듯 내 귓가를 오랫동안 맴돌았다.

이해 설날에는 노르스름한 콩고물을 뭍혀서 경단을 만들었다. 으레 손자도 끼어 앉는다. 떡반죽을 주물주물 만지작거리며 그 작은 손바닥으로 수없이 둥글렸지만 경단의 크기며 모양새는 고르지를 못했으나 손자는 만든 것만으로 좋은지 우쭐댄다. 삶은 경단에 콩고물을 입히면서 간을 보기도 하지만 모두들 주전거리게 된다. 먹다보면 자연히 황칠을 한 듯이 온 얼굴에 누렇게 고물이 묻으니 서로 쳐다보기만 해도 웃음이 절로 터져 나온다. 이리하여 경단에 콩고물이 듬뿍 묻어나듯이 우리 가족의 웃음으로 끈끈하고 고소한 정에 함빡 묻히게 된다.

이해 어린이날은 전날이 일요일이라 연휴였다. 가족나들이를 하자니 복잡할 것 같아 그만두고 집에서 보내기로 했다. 며느리가 어린이날은 제집에서 보내자기에 일요일은 내 집에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햄버거 스테이크를 만들어 먹기로 했다. 곁들이로 중간 새우를 토마토 케찹에 졸이고 감자, 당근, 송이버섯, 블로컬리 등등 야채도 푸짐하게 마련했다. 햄버거는 손자의 솜씨도 보태는 것이 뜻있지 않을까 해서 함께 만들기로 했다. 큰 쟁반 위에 둥글넓적하게 빚어진 햄버거 재료는 여린 손바닥이지만 툭특 얻어맞으며 그런 대로 모양새는 잡혔으나 곧 부서질 것만 같아 조마하고 불안했는데 어인 영문인지 부서지지는 않았다. 사실 손자가 만든 햄버거는 고르지를 않아 쑥개떡 같았지만, 우리 가족의 웃음을 만드는 솜씨로는 손자의 솜씨가 일품이었다.

펑퍼짐한 큰 접시에, 곁들이랑 구색을 갖춰 담은 서양요리 한 접시씩을 앞에 놓고 모두들 싱글벙글 천진한 어린이가 되어 입은 햄버거 크기만큼이나 벙글어 졌다. 어느 어머니나 자식에게 갖은 사랑을 내리고 있겠지만, 자식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마련해 주는 것은 인간 본연의 진한 참사랑이라 하겠다. 사람살이에서, 한 식구가 아니어도 부엌에서 솜씨를 부려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는 것은 인정어린 사랑이며 지극히 진한 정의 나눔이라 여긴다. 요즘 지하철 차안 벽에 "상다리가 휘여지네, 경제가 무너지네"란 표어가 붙은 것을 본적이 있다. 비록 상다리가 휘여지게 차리지 않았서도 소박하고 조촐한 상차림일망정 인정과 정성이 가득 담겨 있다면 그 상받기를 어느 누가 마다 하겠는가.

우리 집은 며느리가 수를 놓은 듯한 구절판을 꾸미는 아름다운 마음씨가 있고, 겨우 말을 익힌 손자가 저도 도울께요 하며 건강한 생각으로 자라고 있기에, 별식을 안들어도 흐믓한 때가 있다. 그리고 이만큼 윤기 있게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손자의 솜씨는 미각적으로나 시각적으로 품평이 되겠는가 마는 가족의 정을 자아내는 재주가 있고, 늘상 해먹는 음식도 그 솜씨가 보태지면 산해진미로 둔갑할 때가 있다. 손자의 솜씨에서 기쁨을 만끽한 때면 과연 내 솜씨는 가족을 즐겁게 했을까? 나는 솜씨를 부리는 척만 한 꼴이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에 지난날을 되짚어 보게 된다. 내 항상 음식을 만지면서, 마음씨가 솜씨됨을 알아채기는 했어도 마음가짐이 그렇게 되기란 쉽지는 않았다. 우리집 손자의 솜씨는 우리 가족에게 함박꽃 같은 웃음을 활짝 피우는 양약을 만드니 그 고사리 같은 두 손은 더 없는 약손이라 하겠다.

내 집은 손자가 오는 날이면 봄동산 같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싸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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