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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장서 / 앨런 앨릭잔더 밀른
  글쓴이 : 류인혜 날짜 : 14-09-06 08:39     조회 : 1539    

나의 장서

앨런 앨릭잔더 밀른(Alan Alexander Milne, 1882~1956)


몇 주 전에 새 집으로 이사를 했는데 당연히 내 책도 함께 이사 왔다. 힘센 일군들이 땀을 흘리면서 책을 상자에 쓸어 넣고, 그 놈을 메고 이사차까지 뒤뚱거리며 걸어가서는, 줄곧 캑스턴을 저주하곤 했다. 이쪽에 도착해서는, 서재로 정한 방으로 그놈을 나르느라 진땀을 뺏고, 상자 뚜껑을 열어 제치고는 다음 지시를 기다렸다.

당장 운신을 할 수 있는 빈 공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미리 마련해 놓은 하얀 새 서가에다기 책을 꽂아 넣었다. 마룻바닥에 늘어져 있지만 않으면, 꽂은 순서 따위야 아무래도 좋았다. 책을 한 아름씩 안아서 서가에다 마구잡이로 끼워 넣었다. 좀 쉴 틈이 있었다면(묘하게 그런 일이 생기기 마련이지만) 별안간에 내 이름이 일꾼 우두머리 눈에 띄었을 때 정도였다. “아니, 선생님이 이걸 쓰셨어요?”하고 그가 물었다. 그렇다고 내가 시인하니까, “흠"하고 별 생각 없다는 투의 콧소리를 냈다. 그 후 그는 안아 올리는 모든 책의 저자 이름들을 훑어보고는 내가 쓰지 않은 책이 엄청나게 많은 것을 보고 놀라는 눈치였다. 내 직업은 놀고먹는 직업이구나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책을 다 책꽂이에 끼워 놓았다. 지금도 그때 그대로의 상태로 꽂혀 있다. 비가 오는 어느 날 오후에 제대로 정리를 해야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축축한 오후가 도래했을 때 나는 날씨가 좋은 날 아침에 정리해야지 하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지금 그 상태에서는 내가 무슨 책을 찾으려면 온 서가를 다 훑어보아야 한다. 키이츠 시집이 꽂혀 있는 데에 왔다고 셸리 책이 바로 지척에 꽂혀 있다는 보장은 없다. 도중에서 없어져 버리지 않았으면, 셸리는 아마 「중년에 골프를 배우는 법」옆 쯤에 꽂혀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 쓰고나니까 정말 일어나서 셸리 책이 어디 있는지 알아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예상한 것보다 더 엉뚱했다. 셸리 시집은「기하학적 과학」과「뉴질런드 풍경에 관한 연구」사이에 끼어 있었다. 나도 모르게 극진히 대접하는 엘라 윌러 윌콕스의 책이「무정부주의냐 질서냐」엽에 자리 잡고 있다. 이「무정부주의냐 질서냐」라는 책은 아마 ‘귀하가 의무와 규율운동의 회원이 되기를 바라며 보내드리는 책’이었을 것 같은데, 그것은 결국 헛수고였다. 내가 아직 가입회비를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영국인 여자 가정교사가 쓴「내가 알아낸 것」이「시골 성직자의 오락」과 나란히 꽂혀 있고, 그 다음에는「빌렛트」와「베테카판 스위스 여행 안내」가 보인다. 이 난맥상에 대해서 무엇인가 조치를 해야 할 판이다.

그러데 무슨 조치를 해야 할 것인지 막연하다. 전에 살던 집 서가에는 책들이 정확하게 정리되어 꽂혀 있었다는 인상을 주었다면, 사실과 다르다. 전 집에서는 ‘아무렇게나 전부를’이라고 부르는 식으로 배열해 놓았었다. 그래도 이 새 집에서 보다는 덜 ‘아무렇게나’ 꽂아 놓았었다. 최소한 어떤 한 질의 책은 한군데에다 몰아서 꽂아 두었었다는 점에서 그랬다. 전 집에서의 상황이 지금보다 나았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은 단지 그것뿐이다. 전 집에서 나는 여러 해 동안 책 정리를 지금 미루고 있는 것처럼, 뒤로 미루었다. 내가 게을러서가 아니라, 다만 책 정리를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가 묘연하기 때문이다.

시집을 몽땅 한군데로 모으기로 작정했다고 치자. 아주 그럴싸하게 들린다. 그러나 바이론 시집은 11인치(내 장서 중에서 제일 키가 큰 시집)이고, 비티(제일 꼬마인)책은 4인치가 넘을까 말까다. 그러니 그 두 시인의 책을 나란히 세워 놓으면 얼마나 우스꽝스럽겠는가? 당신은 비티를 모를지도 모르지만, 그가 어엿한 시인이었다는 것을 말해 둔다. 아래 장엄한 구절은 바로 그의 작품이다.

“내가 말한 양치기 소년은
스콧틀런드 산에서 양을 쳤노라.
The sickle, scythe or plough he never swayed-
An honest heart was almost all his stock"

물론 양치기 소년이 쟁기질을 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며, 에드윈도 쟁기질을 한 일이 없다고 비티가 밝혀 준 것은 잘한 일이었다. 에드윈이 바로 그 양치기 소년의 이름이다. 좀 더 읽어 내려가면, 후세에 오래 남을 구절이 나오는데, 거기서 비티는 “그러나 그 가련한 에드윈은 결코 천한 아이가 아니었다.” 라는 말이 있다. 자 비티가 진짜 시인이었다는 것을 당신께 납득시켰으니, 이제는 11인치 높이의 바이론 시집이 4인치 높이의 비티 책 옆에 꽂힐 수 없고, 그 옆에 8인치 높이의 쿠퍼 시집을 끼워 넣을 수 없다는 본론으로 돌아가야 겠다. 그래 놓았다가는 온 서가가 우스꽝스럽게 보일 것이 뻔하다. 그렇다고, 어떻게 비티를 빼놓을 수 있는가. 이렇게 읊은 비티를 말이다.

“그리고 이젠 잔털 박힌 볼과 깊은 저음(低音)이
한창때에 이른 에드윈의 위엄(威嚴)을 더해 준다.”
“And now the downy cheek and deepened voice
Gave dignity to Edwin's blooming prime.”

독자는 아마 이 문제의 난점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을 내용별로 배열하다 보면 서가가 지저분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크기나 색깔로 배열하고 보면, 벽이야 근사해지겠지만, 시에 취미가 있는 방문객은 비티를 완전히 간과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서가 정리에 대한 결심을 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다음과 같은 대단히 계면쩍은 질문을 우리 자신에게 던져야 한다. 즉 “도대체 왜 서가에 책을 꽂아 놓는 것인가?” 이것은 대답하기가 대단히 난처한 질문이다.

물론, (당신의 경우에)노기에 찬 반박조로, 읽기 위해서 책을 산 것이고, 필요할 때 쉽게 찾을 수 있게 서가에다 꼽아 놓은 것이라고 외치면 적당한 대답이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그 대답이 얼마나 어리석은 대답인가 하는 것이 금방 드러날 것이다. 단지 읽기 위한 것이라면, 왜 어떤 책을 모로코가죽이다, 송아지 가족이다, 또 그 밖의 비싼 표지로 장정해 놓았는가? 제 100판은 아주 헐값으로 살 수 있는데 왜 하필 당신은 초판을 샀는가?「루바이야트」는 한 권이면 될 텐데 왜 대 여섯 권이나 가지고 있는가? 당신이 애지중지하는 그 책의 진짜 가치는 무엇인가? 책장이 잘려져 있지 않다는 사실은 또 무엇인가. 책장을 잘라서 읽고 나면, 책의 가치가 없어지기 때문인가.

그러니 당신 장서는 단순히 참고용이 아닌 것이 뻔하다. 책이 방을 치장해 준다는 것을 당신도 알고 나도 알고 있다. 페인트나 마호가니 가구나 도자기보다도 책이 더 장식효과를 낸다는 것은 공지의 사실이다. 물론 서가에 책이 있으면 좋다. 원할 때 언제든지 꺼내서 볼 수 있으니까. 가령, 해수욕에 관한 글을 쓰다가 다음과 같은 문장에 부딪쳤다고 치자. “사람들이 너무 잘 기억하고 있고, 너무 잘 알려져서 새삼 인용할 필요가 없는 코울리지의 말대로” - 그러면 그 말을 찾아보아야 할 지 모른다. 이런 경우, 장서는 장식품일 뿐만 아니라, 쓸모까지 있다. 그렇다고 장서를 장식의 하나로 생각하는 것을 수치로 여길 것은 없다.

사실, 나는 서가에 꽂힌 내 정서를 보면 볼수록, 지금 상태 그대로 장식으로서의 구실을 충분히 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재배열하면 색체배합이 망가질지도 모른다. 「베테커판 스위스 여행 안내」와「빌레트」는 홍색인데, 청색 책을 중간에 두고, 브라우닝과 제본즈의「기초 논리학」과 연결되어서, 그 홍색이 돋보인다. 바로 어저께 어떤 여자가 우리 집에 왔는데, “댁의 책이 어쩌면 그렇게 예뻐 보이지요?”하고 감탄했다. 나는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한다. 책을 체계적으로 배열하면 책에 대한 꾸밈새 없는 희열이 무산되어 버릴 것만 같다.

그러나 그럴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책 아래위를 바로 세워 둘 필요는 있을 것 같다. 그래, 이제 날씨가 좋아지면(또는 비 오는 날 밤에)나는 내 장서와 진지하게 맞붙어 보아야겠다. 아직도 앞뒤가 뒤바뀐 책이 한두 권 있다. 우선 그 놈들을 바로 잡아 놓겠다.

         
영한대역문고 71「영국수필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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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an Alexander Milne(앨런 앨릭잔더 밀른, 1882~1956)
요약 극·동화·추리소설 세 분야에 걸쳐 발자취를 남긴 영국 작가. 
1월 18일 영국 런던에서 John Vine Milne 와 Sarah Maria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친이 운영하던 Henley House School 에서 성장했다 . 수학 장학생으로 캠브리지 대학의 트리니치 칼리지에 다녔다.

수필〈아카시아 길〉Acacia Road, 〈나의 장서〉My Library, 〈가을을 위해서 한 마디〉A Word for Autumn, 〈황금 과일〉Golden Fruit, 〈런던의 정원〉A London Garden, 〈결혼식〉Wedding Bells, 〈여론〉Public Opinion, 〈가을에 때는 벽난로〉The Fires of Autumn, 〈무죄(無罪)〉Not Guilty 등

앨런 알렉산더 밀른과 그의 아들 크리스토퍼(Christopher Robin Milne)는 런던동물원을 자주 찾았는데 크리스토퍼는 유독 새끼곰 위니를 좋아했다. 밀런의 시집 《When We Were Very Young》(1924) 에 아기 곰 푸우가 처음 등장하였고, 밀른이 아들을 위해 1926년에 새끼곰 위니를 주인공으로 한 동화 <아기곰 푸> Winnie-the-Pooh를 발표 했다. 여기에 쉐퍼드(Ernest Howard Shepard 1879~1976)의 삽화가 더해지면서 세계적인 인기를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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