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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류인혜 |
날짜 : 03-11-25 22:26
조회 : 2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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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이야기 - 검은 숲에 대한 보고
류인혜
검은 숲(흑림)이라는 뜻인 '슈바르츠발트'는 독일 남부의 산악지대를 덮고 있는 길이 200km, 폭 60km의 숲을 말한다. 이 숲을 처음으로 흑림이라 부른 사람들은 2,500년 전 이곳에 정착한 켈트족이었다. 이 초기 정착민들이 음침하면서도 무성한 검푸른 숲에 흑림이라는 명칭을 붙였는데, 그 뒤 이 지역을 대표하는 지명으로 굳어졌다.
검은 숲은 독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인공으로 조성된 숲이 120년 생의 많은 나무를 거느리고 있다. 단순히 나무를 많이 심는 것에서 발전하여 이제는 심어야 할 수종에 대한 연구를 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자연적인 재해를 막기 위해서 먼저 심어놓은 침엽수를 솎아내고 다른 종류의 수종을 심는다고 했다. 한 가지의 나무를 심는 것보다 다른 여러 수종을 심어 혼합림을 이루는 것이 숲에게도 좋고, 땅에게도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말이다.
<현재 훌륭하게 가꾸어진 오늘날의 흑림도 한때는 헐벗은 숲이었다. 그 원인은 숲 속에서 자행된 지나친 방목 행위와 산업화로 인한 목재 수요의 증가, 그리고 당시 부국이었던 네덜란드로의 목재 수출 때문이었다.
나무가 돈이 되자 원시상태의 천연림을 모두 베기식으로 마구 베어내고 그곳에 빨리 자라는 가문비나무를 심었다. 수익성이 적은 너도밤나무는 서서히 도태되고 전나무도 설 땅을 잃어갔다. 천연림을 베어내고 그 자리에 역사상 가장 생산적인 숲을 만들어냈다.
겉으로는 한층 무성해지고 푸르러진 숲 속에서 그들이 이상한 변화를 감지한 것은 훨씬 뒤의 일이다. 활엽수인 너도밤나무 대신 침엽수인 가문비나무가 주종을 이루면서 이곳의 식생이 자연상태의 활엽수 70%, 침엽수 30%에서 침엽수 70%, 활엽수 30%로 바뀌었다. 문제는 침엽수의 낙엽이 토양을 산성화시키는 주범이라는 사실이었다.
가문비나무는 뿌리가 깊이 내리지 못하고 옆으로 뻗는 탓으로 바람에도 매우 취약했다. 1990년 폭풍으로 독일 전역에 걸쳐 1억㎥에 달하는 나무들이 넘어졌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스위스와 독일 남부를 강타한 1999년 폭풍으로 독일 남부에서만 2700만㎥의 나무들이 뿌리 채 뽑혔다. 우리나라의 한해 평균 목재 생산량 100만㎥과 비교해 보면 얼마나 큰 피해인지 가름해 볼 수 있다. 수많은 세월을 거쳐 자연환경과 최적의 조화를 이룬 천연림을 인위적으로 바꾸면서 생긴 변화의 후유증이다.
숲은 본래 천연림처럼 서로 다른 나무들이, 그것도 어른 아이 나무할 것 없이 더불어 살아야 건강한 법이다. 너도밤나무는 천천히 자라는 대신 토양의 산성화를 막아 준다. 어린 전나무는 그늘을 좋아해 훌쩍 큰 가문비나무의 그늘에서 더욱 튼튼해진다. 전나무가 든든한 뿌리로 받쳐 주면 가문비나무도 폭풍에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나무들은 그렇게 '더불어 숲'이 되는 것. 독일인들이 뒤늦게 깨달은 진실이다.(동아일보 산과 사람 시리즈 '숲은 인간의 간섭을 싫어한다'에서 발췌) >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2002년 세계 산의 해의 특집으로 독일의 슈바르츠발츠 <검은 숲>에 대한 르포를 방영했다. 그 프로를 눈여겨보고 그 숲에 대한 글을 써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텔레비전을 통해서만 들은 지식으로는 부족하여 인터넷으로 검색을 한 후 필요한 부분을 빌어 왔다.
나무에 관한 이야기를 쓰면서 주변만 바라보았지 본격적으로 꼭 필요한 정보를 찾아보기를 소흘했다. 이야기의 범위를 넓혀 다양한 나무와 숲에 대한 안목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이 사는 사회가 여러 성품과 재능을 가진 다양한 사람이 모여서 이루어 가듯 숲도 그러한가 보다. 그 광대한 검은 숲은 말을 타고 다니며 관리를 하고, 관광객들은 환경스쿠터를 타고 마을을 산책한다.
숲 속에서 민박을 운영하는 발터씨 가족은 행복하다. 발터씨는 사람들이 숲에서 공짜로 산책하고 휴식하면서 숲에 대해서 비판을 한다고 불만을 얘기했다.
비트리벤젤 숲속 유치원에서는 아이들이 자연과 함께 논다. 숲 속의 모든 것이 아이들에게는 놀이의 대상이고 배움의 대상이다. 아주 소량의 물로 손을 닦는 습관을 배우기도 하며 인간이 자연 속에서 그곳을 손상시키지 않고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체험한다. 주 정부의 보조로 운영하는 그런 유치원이 6개나 있다. 걷기가 무섭게 학원으로 내몰리는 우리나라의 어린아이들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어머니들이 어떤 것을 가르치고, 아이들이 무엇을 배워야 인간답게 살아 갈 수 있을 것인가 고민해야 된다.
나무가 많은 고장답게 나무로 만드는 수제품이 특산물인데 다양한 모양의 뻐꾸기 시계가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다. 시계에서 정시가 되면 시간을 알리는 다양한 방법을 도용해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준다. 흐르는 시간을 즐겁게 보내는 것이다.
그곳에는 온천이 많고 맑은 물이 사방에서 흐르고 있는데 거의가 그대로 마실 수 있는 일급 수다.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가 지역마다 계절마다 달라서 그 소리를 모아 파이프를 통해서 듣기도 한다. 공기가 맑아서 나무에는 이끼가 많이 끼고 뿌리로 여과된 맑은 물은 그대로 도시로 향하여 간다. 도시의 길에는 인도와 차도 사이에 수로를 만들어 물이 흐른다. 산에서 나오는 깨끗한 물을 도시의 사람들도 만나고 있다. 자연이 사람과 철저하게 더불어 있다.
사람이 사는 곳에는 주변의 숲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 지형에 알맞은 형태의 가옥을 짓는다. 그리고 3층 이상의 높이는 지을 수 없다. 그림처럼 아름답다는 말이 나올 만큼 능선과 나무와 집의 조화가 기막히다. 구타하 지역에는 오래된 농가를 한곳에 모아서 관리하여 민속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예전에 쓰던 물건들이 그곳에 모아져있다. 프라이부르크의 산림청 부 소장은 자신들이 하는 일의 목표가 그 넓고 오래 된 숲의 조화를 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심은 나무를 잘 가꾸어서 사람의 생활에 유용하게 활용을 하는 지혜를 배워야 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 글을 쓰면서 마음 저 편에 숨어 있던 작은 꼬투리가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미묘한 느낌으로 시작된 의문이 이제는 완전한 긍정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경길자, 그녀가 바로 곁에 서 있었다.
경길자 님은 한국수필작가회의 동인으로 활동을 하다가 오래 전에 암으로 세상을 떠난 사람이다. 그가 고전음악을 좋아하여 가끔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메모한 종이를 주면서 이것이 무슨 곡인지, 아니면 교향악단의 이름인지 뭔지 궁금하다며 알아보라고 했다. 그 종이를 노트에 끼워두고 잊어버렸는데, 이제 생각이 난 것이다. 머리 끝이 서는 전율같이 그녀가 적어준 글자, <슈바르츠발츠>를 기억해내었던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어디에선가 읽었던 낯익음으로 궁금했는데, 검은 숲 <슈바르츠발츠>는 음악이 아니라 독일의 지명이었다.
그녀를 보낼 때의 막막함이 다시 고개를 든다. 그리고 친절하게 알아보지 못한 채 잊고 있었던 숙제를 풀면서, 보고 싶은 친구를 눈물겹도록 그리워한다. 검은 숲은 나무에 대한 경외심과 나무처럼 묵묵히 살다간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함께 일깨워주었다.
2002년 5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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