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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류인혜 |
날짜 : 03-11-25 22:17
조회 : 2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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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이야기 - 우산나무
류인혜
그 나무를 본 것은 행운이었다.
길을 가다가 잘 생긴 사람을 만나면 한번 더 돌아본다. 혹시 눈이라도 마주치면 흠짓 놀라서 얼른 외면을 하지만 잘 생긴 나무는 가까이 가서 살펴본다. 나무가 사람보다 다가서기가 쉬워서 나무에게 마음을 빨리 주게 되나 보다.
산을 내려오다가 잠시 다리를 쉰다고 머문 곳에 전나무들이 무더기로 서 있었다. 같은 수종의 나무들이 모여서 나무의 성질대로 줄기 하나가 곧게 뻗어 올라간 비슷한 생김새로 서 있었는데, 그 나무만 생긴 모습이 다른 나무와 달라서 한 눈에 들어온 것이다.
연륜을 먹은 나무기둥은 둘레가 한 아름이 넘어 편안하게 땅을 딛고 서 있었지만 나무가 자라난 형상이 독특했다. 시선이 올라가는 저 만큼에 두 줄기가 갈라져 나갔다. 그쪽 방향을 뒤편이라고 보면 그보다 조금 윗 부분에 앞쪽으로 다시 줄기 하나를 불쑥 내밀어 결국 높은 곳에는 원줄기를 포함하여 가지가 넷이나 되었다. 가지가 제각기 높이 솟아 무성한 잎을 달고 있었다. 다른 나무들은 크게 삼각을 이루어 가장 높은 곳이 뽀족하였지만 이 나무만은 줄기가 뻗어 나간 모양대로 잎이 달려서 윗 부분이 둥그랬다. 전체의 형상이 흡사 나무가 우산을 받쳐든 모양이었다.
저만큼 자라나면서 이웃나무들과 별나게 다르다는 마음의 갈등을 그 나무는 겪었을 것이다. 줄기 뒤편으로 가지가 솟아나기 시작했을 때 얼마나 당황했을까, 그 아픔이 가실 만 할 때, 다시 앞쪽에 솟아나는 가지로 인하여 가슴에 간질간질 이상의 징조를 느꼈을 때, 나무는 또 얼마나 황당했을까..... 자기에게 일어나는 어찌할 수 없는 현상에 잠도 오지 않는 밤에는 무슨 생각을 하면서 지냈을지 짐작해보면서 괜히 남의 약점을 건드리고 있는 듯 민망스러워졌다. 그러나 풍성한 나뭇잎을 달고 있어서 흡사 자식을 많이 거느린 마음 좋은 아주머니 같이 느껴졌다.
그림을 구경할 때처럼 멀직이 서서 보다가 가까이 가서 한 번 쓰다듬어 보기도 하며 나무의 모양을 감상했다. 외롭게 서 있다가 웬 사람이 와서 기척을 하니 나무도 아는 척을 했다. 잠시 쉬었다 가라고 간곡히 권하니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나무 밑에 두 다리를 펴고 앉았다. 오랜 세월을 떨어져 내린 채 그대로 쌓여진 낙엽이 푹신하여 그냥 누워서 잠이 들고 싶었다.
나무를 만난 충격이 커서 한동안 나무생각에 잠겨 있다가 시를 썼다. <전나무>라는 제목으로 새롭게 만들어진 친구를 마음 속으로 가까이 당겨 두었다.
전나무
호평리에 뿌리를 내린
여인이 있다.
키가 훤칠하고 눈매가 시원하여
알아볼 사람은
첫눈에 짐작한다.
긴 두 팔로 우산 하나 펴
높이 하늘을 받히고 있다.
그 모습이 수려하여
넋이 나간 이가 한 둘이 아니다.
우리도 그녀에게 마음이 헤퍼져서
우람한 몸에 기대어 세월을 잊었다.
----중략
나무를 소재로 쓰여진 시는 여러 편이 있지만 가장 마음에 닿아 아끼는 작품이다. 더구나 죽순문학회의 윤장근 회장께서 일본어로 번역을 해주시어 일본에서 발간되는 柵(책)이란 문학지에 실렸으니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호평리는 한자 표기와 함께 남양주 시청에 전화를 걸어서 알아보았다. 그 후로 호평리는 친숙해져 새로운 마음의 고향이 되었다. 식구들이 남양주로 이사를 얘기했을 때, 그 나무가 사는 동네이니 반가움이 앞서 다른 것은 생각 않고 선 듯 마음을 같이 했다.
가끔 보고 싶어져서 만나려 갔으면 생각하지만 아직 생각뿐이다. 지금까지 자주 대하는 이들과 확연히 다른 사고방식으로 얼마나 많은 갈등을 겪어 왔는가, 특히 예수를 믿는다는 사실로 인하여 별난 사람으로 취급을 당한 적도 많다. 호평리의 전나무와 같이 모든 아픔을 이기고 난 훈장처럼 높고, 넓은 그늘을 만들고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쉬었다가 갈 것인데, 아직 그런 넉넉함이 없다.
이제 호평리의 전나무는 묵은 친구가 되어 마음속에 들어있어서 움직일 때마다 흔들린다. 생각이 잘못 될 때마다 내 정신을 건드리는 그 흔들림으로 깨어있게 되고 의식이 투명해진다. 어느 때든 달려가서 그의 널따란 우산 밑에서 피곤한 다리를 쉴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충만으로 기쁘다.
2001년 12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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