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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류인혜 |
날짜 : 03-11-25 22:22
조회 : 28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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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이야기 - 은행나무 공원
류인혜
남양주 별내면으로 이사를 와서 이웃에게 가장 먼저 물어본 것이 나무에 대한 것이다. 근처에 보기에 괜찮은 나무가 있느냐는 질문에 물론이라고, 아직도 그 나무를 보지 못했냐는 반문과 함께 소개해 준 나무가 바로 청학리의 명물인 은행나무다.
살고 있는 5단지에서 4단지를 지나 근린공원 안에 자리 잡고 있다며, 만약 그 나무가 동네 입구에 서 있었다면 지나가는 사람들도 나무 곁에 머물러 쉬고 갈 것이라 했다. 그림자가 깊고 넓은 나무의 나이가 500살이 되었다니 우선 이웃동네, 뱅이 고개의 휴게소 마당에 있는 보호수, 400살의 느티나무를 보고 안타까워진 마음이 위로되었다. 관내에 그 느티나무보다 100년이나 더 살아온 은행나무가 있어 나이 대접받는 우선권을 양보했겠다 는 생각을 했다. 답답한 끝에 아전인수 식으로 해석을 한 것이다.
남편에게 좋은 나무가 있다니 구경갑시다 했더니, 동네마다 그 정도의 나무는 흔하게 있다는 대답이다. 한 그루뿐이 아니라 한 곳에 오래된 나무가 여러 그루 어울려 있는 곳도 있는데 그것을 가지고 흥분한다며 반응이 시원찮았다. 은행나무가 어떤 자리에 어떠한 모습으로 서 있을까 궁금하였지만, 우선 기대를 조금 접어두고 일부러 시간을 미루었다.
며칠 전 현관 열쇠가 없어, 뒤따라오는 아이를 기다리는 잠시의 시간이 심심하여 이럴 때 은행나무를 보러가자 작정하고 아파트 뒤로 슬슬 걸어갔다.
건물이 끝이 나는 곳을 바라보니 멀리서 보기에도 뭔가 그럴 듯한 것이 있을만한 분위기다.
가까이 가니 그곳은 근린공원으로 이름이 붙어져 앉아서 쉴 곳과 운동시설과 산책하기에 좋도록 잘 꾸며놓았는데 은행나무는 거대한 모습으로 한쪽에 우뚝 서 있었다.
밑둥치에서 가장 가까운 가지 하나가 뚝 꺽어져 아래로 향해오다가 다시 솟구쳐 오른 파격을 빼고 나면, 다른 가지들은 얌전하게 제자리에서 모양을 잡아 나무의 전체 수형이 편안해 보였다. 잎이 떨어진 빈 가지의 어울림이 의젓하여 제대로 잎이 돋아나면 그 풍성함이 상상되었다. 높이가 24m이고 둘레가 2.4m라고 안내문에 적혀 있다.
나무를 한바퀴 돌아 둘러보며, 잎이 나기 전에 사진을 찍기 시작하여 은행나무의 사계절을 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집을 지어 살면서 마당에 나무 한 그루씩 심어 가는 즐거움을 누리듯 새로운 친구를 만난 기념으로 그에게 무엇이건 나누어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만족한 마음으로 그곳을 나왔는데, 옆으로 지나쳐 가는 젊은 어머니가 함께 가는 아이에게 "우리 은행나무 공원에 가자"라고 한다. 그냥 근린공원이라 하기보다는 훨씬 정감 있는 이름이다. 이제부터 은행나무 공원에는 반백의 주름진 얼굴에 웃음만 가득한 어설픈 사진사가 이따금 어성거릴 것이다.
2002년 3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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