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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임병식 |
날짜 : 03-11-25 22:44
조회 : 2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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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상을 살면서 보면 젊은 나이에 재능을 발휘하여 일찌기 꿈을 이룬 사람도 있지만, 온갖 어려움을 극복한 끝에 어렵게 성공한 사람도 있다. 후자는 소위 의지적인 사람인데, 이런 사람을 보면 나도 몰래 감동을 받는다. 내가 즐겨보는 모방송국 리얼코리아 '한국 한국인'프로는 김동건 아나운서가 진행을 하는데 이 프로에서는 주로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을 초청하여 조명하고 있다.한데 출연자 중에는 망구인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현역으로 판소리를 지키는 김동진옹같은 분도 있고,학력이 초등학교 졸업이 고작이지만 한우물을 파온 덕에 명장칭호를 받은 사람도 있다. 그들의 얘기를 들으며 발견한 하나의 공통점은 하는 일들이 모두 본인들에게 생존의 문제였다는 것이다. 먹고 사는 일이 종래에 이르러 꿈도 이루게 하고 명성도 얻게 해 준 셈이라고나 할까.
그렇긴 해도 판소리에서 보듯이 그 긴 사설을 외워서 유지시키려면 계속 반복하여 외우지 않으면 아니되는 일이니 그 고욕이 얼마이랴. 시 외곽 산사(山寺)로 오르는 소롯길 언덕배기에는 고단한 삶을 연상시켜주는 팽나무 한그루가 서있다.몸통은 회공이 되어 거지반 비워있고, 뿌리마져도 드러나 위태로워 보인다. 이 나무는 그래도 남은 뿌리로 언덕위의 흙을 부여잡고 줄기를 윗쪽으로 키워서 용케도 균형을 잡아 잘 버티고 있다. 생존하는 일이 아니면 어찌 일년인들 견디랴 싶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멋스러워 보인다며 배경삼아 사진을 찍고 지나 다닌다. 그러나 나는 이 나무를 보면 뭉클하게 가슴이 메이는게 마치 자화상(自畵像)같다는 생각이 드는 때가 있다. 그래서 지나칠때는 그냥 지나지를 못하고 꼭 눈길을 주게 된다.의식을 않는데도 저절로 시선이 옮겨지며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그러면서 자연스레 자신을 뒤돌아 보게 된다.
이 나무가 자기 뜻에 의하여 터잡아 자라고 있는게 아니듯 나의 삶 나의 직업 또한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많이 배우지 못하고 , 머리 또한 뛰어나지 못한 사람으로서 택할 수 있는 직업이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당초에 고향땅을 지키며 살겠다는 결심이 무너진후, 붙든 경찰이란 직업은 생존의 방편이었지 적성의 문제가 아니었다.각오하고 입문하기는 했으나 내 적성과는 너무나 동떨어져서 발에 맞지않은 신발을 신듯이 늘 불편하였다.그래도 사는일이 중하여 신발에 발을 맞추듯 하면서 근근히 살아왔다. 언젠가 어느 문우가 '임선생님을 사진에서 보니 좀 고약하게 보였는데, 목소리를 들으니 딴판이네요'하는 말을 들었던 것도 ,어쩜 이러한 삶속에서 인상마져도 그렇게 변모하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사실 나는 30여년동안 직장생활을 해오며 본심과는 달리 오버액션을 취하고 살아온 경우가 많았다. 평소 유약한 내면을 감추려고 겉으로는 강한척 일부러 표나게 행동을 해왔던 것이다.
흔히 사나운 사냥개가 가만히 있다가 잽싸게 물어버리는 것과는 달리, 변견(便犬)이 낯선 사람을 보면 마구발방 짖고말듯이 말로만 엄포를 놓고 살아왔음을 실토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 이 방법은 처음에는 통용이 되나 속내를 알아버리면 소용이 없어진다. 그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가 얼마였던가. 상대방과 똑같이 대하면 될 것이나, 타고난 천성을 바꿀 수 없고, 명색이 글을 쓰는 사람이 이전투구도 할 수 없어 응어리가 그대로 가슴에 차곡차곡 쌓일 수 밖에 없었다. 거기다가 취급하는 업무 또한 얼마나 위험천만인가.초임때는 팔자에 없는 소주정(小舟艇)승선근무로 기계 다루는게 서툴어서 강풍을 만나 전복위기에 처한 적도 있었고, 80년대초 학생시위가 격렬하던 때는 기동대에서 학내 진입에 나섰다가 벽돌세례를 받고 생명의 위험을 받은적도 있다.거기다가 강력범을 붙잡으려다가 피습당한 일이며, 간첩선 침투로 노심초사하던일등 ...어찌 다 헤아리랴. 퇴임을 일년여 앞두고 지난일을 회상하노라니 맞지 않은 적성으로 용케도 그동안 견디어 왔다는 생각이 든다.스스로 생각해도 믿기지 않는 일이다.
아마도 그런 시련을 견뎌온 것은 가슴에 상시 품고 사는 문학의 열망도 크게 부조한게 아닌가 한다. 사람들이 첫대면을 하면 나의 나이를 통상 3,4세 더 높게 본다.젊었을 적에는 그래도 연상자와 맞먹는 재미있어 싫지는 않았으나 지금에 와서 보면 그게 곧 늙음의 징표라는 생각이 드니 이만 저만 불만스러운 게 아니다. 따지고 보면 이 모두가 고달프기만 했던 내 삶의 반증인 것이다.붙박이로 박힌 못 하나를 보더라도 눈비에 젖지 않으면 오래 돼도 끄떡없지만, 그렇지 않고 한데에 박혀있는 못은 금방 수명을 다하고 만다. 여태 녹슨 못의 이치는 간과하고 살았는데, 벼랑끝에서 힘겹게 버티고 살아가는 팽나무가 눈에 들어 오는건 꼭 형상이 큰 때문만일까.팽나무는 '내가 이렇게 살아왔네' 말하지 않아도 박복하게 살아온 내 삶을 영락없이 대변하고 있는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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