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와 산마을
林 承 烈
충청남도 서녘에 알프스가 있다. 산 높고 물 맑은 청양(靑陽) 고을이다. 요즘 ‘매운 고추’ 로 뜨고 있는 내 고향 청양 화성면, 덕이 밝은 산마을은 이 십리를 나가야만 자동차를 탔다. 개화하고는 거리가 멀지만, 형님 댁 큰집, 아우네 작은 집 모두 양식 걱정 없이 살았다.
마을 동편, 작은 고개 쌓인 눈이 녹고, 뒷동산 바위설대기 진달래 꽃물이 들 때면 송화(松花)를 탐하는 까투리가 청용머리로 날아든다. 어느새, 안산인 왕정산 넘어 온 봄 처녀 진주 밭길이 살금살짝이 풍년을 약속한 자운영(紫雲英) 붉은 논둑 영전 들녘이 있으니까.
“에헤라 좋구나, 올 해도 천석 만석이로다.”
“에헤라 좋구나, 닭 잡고 술 먹자.” 가 있는 날이면, 큰 사랑에서는 밤이 늦도록 주판을 놓았다. 물이 많은 고래실이 지난해 보다 풍작이라면, 가뭄을 타는 점터는 소출이 줄었다. 마른논, 무논이 제 몫을 한다. 늘고 줄어, 평년작이면 되었다. 닭볶음 안주 술상이 나가고 한 참이나 지났을 터다. ‘삐그덕’ 사랑 대문이 닫힌다.
일꾼들 신명나는 큰 마당 바심이 한 차례 끝나면 광에서 넘쳐난 볏섬 노적가리를 추녀 밑까지 쌓은 대청 건너 방은 낮에도 더듬어 들어갔다. 작은 방엔 등잔불이 고작이던 시절이니까, 호야를 씌운 남폿불은 안방에서나 켰다. “푸지직” 소리와 함께 앞이마가 따끔하면서 터럭타는 ‘노린’ 내가 코를 찌른다. 앉은뱅이책상 앞, 산마을 소녀는 고개를 들었다. 화들짝.
매산리(梅山里), 학교 앞 내를 건넜다. 큰 둑을 넘어, 넓은들 돌아, 강변마을을 지날 때, 오서산 바람으로 홍시감이 된 볼따구니가, 도투막재에서 바위빼기까지 오는 동안 탱탱하게 부푼다. 자박자박, 할딱할딱, 어둠이 짙은 왕솔밭을 외돌아 작은 대문으로 들어가기까지, 시오리 학교 길을 걷고 저녁밥을 먹으면 펴놓은 산수책장에 지렁이가 기어 다니기 십상이다.
‘이등변 사각형의 내각의 합이 어떻게 해서 이직각인가’ 증명을 해야 한다. 세모자를 이리 재보고, 저리 대보다, 꼴깍 잠이 든 입에서 침이 흘러나왔다. 책장에 기어 다니는 지렁이는 한 마리가 아니고, 어미와 새끼가 또 아리를 틀기도 한다.
“에이 참, 같은 어머니가 낳았을 텐데 왜 나만 잠이 않고 머리가 이 모양일까” 내가 울면 “광천장 쪽다리 밑에서 주워 온 울예 또 운다 또 울어....” 하던 어른들 말이 긴가민가하면서 언니생각이 났다. 언니는 키도 작은 데, 일곱 살에 입학을 하여, 눈
비가 오면 일꾼이 업고 다녔다. ‘업은 애기’ 라고 놀렸어도 서울 명문 고등여학교 급장으로 졸업했다. 오빠도 전교생 ‘분열식’ 땐 ‘전방을 향하여 앞으로 갓’ 하는 대표가 아니던가. 나는 공부 운까지 없는 걸까, 6학년 여름방학이 다되도록 “장라프스” 에 걸린 담임선생은 앓고 있다. 시간마다 바뀌는 선생들은 ‘남양군도’ 에서 승전보를 울리는 일본군 대장 ‘야마모토이소로쿠(山本五六)’ 자랑만 늘어놓는다. ‘호소다니’ 교장은 마레이시아 정글에서 채집한 고무로 만든 ‘공’을 조선 반도 어린이들까지 선물로 보내 준 ‘헤이타이상(군인아저씨)’에게 고맙다는 위문편지를 쓰란다.
첫 눈이 내리고, 상급학교 지원서를 낼 때가 되도록, 방과 후 공부 한 번 못한 졸업생은 ‘화성공립초등학교’ 역사를 다시 쓴다. 좋지 못한 쪽으로, 남학생 여학생 달랑 둘만의 진학으로 그것도 지방 실업학교다. 서울 학교 시험에 낙방한 산마을 소녀는 언니, 오빠가 부러워 시골 여학교로 가지 않겠다며 울다가 혼 줄만 난다. 공부 못해서 떨어진 주제가 무슨 말이냐고, 할 말이 무슨 말인가.
제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닿아, 미국 B.29가 일본 본토 상공에 나타날 형편 여학교 기숙사 식단은 딱딱한 강냉이 아니면 문내나는 수수쌀이 반 넘는 식사마저 배를 채우지 못하는 아이들은 입이 고플 수밖에, 고향 집에서 보내온 ‘쌀가루’ 한 입 퍼 넣고는 물을 마시는 데 날마다 근로봉사 명목으로 농촌 일손 돕기에 나간다. “이건 뭐야, 여학생이 걷어 부치고 무논에서 모심고, 풀 베어 퇴비를 만들다니.” 학급단위로 실적을 올리려는 선생은 경쟁을 시키고, 뭣도 모르는 아이들은 땀을 뻘뻘 흘린다. 언니가 ‘우데마카(손목 시계)’ 를 차고 찍은 사진 속 여학생하고는 영 딴판이 아닌가. 실망스러운 여학교 2학년, 산마을 소녀, 여름 방학에 다가온 ‘조국해방’은 공백기로 이어진다. 반년을 쉬었다. 문을 연 학교는 빈자리가 반이나 되다니. 나이가 든 몇은 월반으로 전학을 가고, 더러는 대도시의 학교로 옮겨 갔을 터다. 일인 학생이 빠져나간 ‘명문’ 학교로 갈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말 줄이야, 시험에 낙방한 서울 학교 생각이 굴뚝같지만 혼자서 뿐. 자고새면 외치는 “대한독립만세”와 함께 살사된 “토지개혁”으로 노적가리가 사라진 집안에서 나설 수도 없었지만, “토지대금”으로 서울에 작은 집을 부친이 구입한 것은 그나마 기회다. 종로구 원서동, 창경궁 돌담을 끼고 들어간 산마을 소녀는 ‘부엌지기’로 일 년을 보내고 끝이 나지만, 6.25, 미아리 고개 넘는 인민군보다 한 발 앞서, 여름 난리를 고모 댁에서 넘긴 오빠가 9.28수복 소식을 듣고 산마을 집으로 돌아온 밤이다. 북상하는 ‘패잔병’ 잔당에게 참변을 당할 줄이야.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죽고 죽이는 여름 난리를 잘 넘기고 이럴 수가. 대들보가 내려앉은 집안이다. 하루하루가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산마을 소녀에게 전갈을 보낸 젊은이, 그는 진작부터 혼담이 있던 질마재 넘어 사는 학생, 6.25전쟁이 나기 얼마 전이다. 창경원 벚꽃놀이 구경을 온 부친이 삼선교로 알아보러 갔다 허탕을 친 “김”씨. 그가 전쟁 통에 기술 장교가 되어 첫 휴가를 받아 고향을 찾았을 터. 돌아 온 아들에게 부모님의 간곡한 부탁이란 “한 시 바삐 손자 좀 보자구나” 아니었을까.
세월은 흘렀다. 2011년 지금으로부터 꼭 60년 전이다. 뒷마당 떨어지는 알밤이 무심하기만 하던 날이었지. “~얘야 오빠 친구 하나가 너를 찾아왔구나.” 부친의 한 말씀에, 큰 사랑방에 나간 소녀를 처음 대면한 장교는 돌아가기 전에 다시 한 번 만나자고 점심상 묵은 젓갈이 입에 맞은 걸까. 부엌에서 속닥속닥, 아무래도 일이 잘 될 거라나. 소녀의 가슴팍이 두 근반 세 근반하는 몇 날이 지난 뒤 대구 공군부대에서 띄운 군사우편 한 통이 날아온다.
“이 난리 통에 혼수가 다 뭐냐. 제 복 있으면 잘 사는 거야. 옛 부터 바리바리 싣고 앞 뒤, 하님 세운 선행길보다, 어레빗 참빗 게츰에 그리고 시집 간 놈이 더 잘산다잖니. 어서 똑똑하다고 소문난 신랑 따라 거라, 뒤도 돌아 볼 것 없다. 지금 네가 효도하는 건 시집가는 거야. 서울공부타령 그만저만하고 편지답장이나 써라. 돌아오는 장잘 내가 부쳐주마. 너도 알고 있을 거다. 전쟁 통에 시집 못간 아가씨가 세 트럭하고도 반이 남아도는 세상이란 걸. 젊은 남자가 몽땅 전쟁에 나가는 판에 군인 신랑은 일등 남편이야 알겠어.” 작은 댁 숙모가 다그치는 말 그대로 였을 터다.
멀리 재 넘어서 ‘펑~펑’ 포성이 울리는 산마을에 잔치가 났다. 안마당에 차일을 치고, 청실홍실 가약을 맺은 ‘큰 기와집’ 은 지금 지붕을 걷어 내고 서까래를 갈아 내는 일이 한창이다. ‘지방민속문화재’ 로 등정이 되어.
“누님 다들 서울로 떠났지만 대부분이 ‘경기도 시민’ 들이네요, 서울 사는 사람은 누님 한 분인데, 그 곳이 ‘왕족’ 동네라구요. 옛날 누님이 떠난 큰 댁 안채 지붕 기와 공사가 수일 내로 끝납니다. 우리 할아버지 사형제분 고택하고 종종 사당까지 몽땅 지방민속문화재란 가문의 영광이지 뭐에요. 작업이 마무리 되는 대로 멍청도 촌놈 서울 나들이 할 겁니다. 설마하니 모르시는 않으시겠지요. 기억이 납니다. 원서동에서 지낸 시절, 손이 시린 방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함께 지낸 그 날이.” 작은 댁 아우의 전화가 소녀의 옛일을 더듬게 한다. 조석으로 장작 몇 개비 태워 쌀을 익히고 나면 그만이던 구들은 밤 낮 없이 냉 고래였지만, 가끔은 소리소리 노래 부르며 서로는 서로에게 힘이 됐을 터.
“그래 아우야 참말로 고맙구나. 너는 덕을 밝히는 (德明里) 산마을 자랑스러운 수문장이야. 누가 뭐라 해도 그대 있어 텅 빈 고향은 고향으로 남아 있어. 내가 다 알아, 이 번 큰 일이 성사나기까지 군청에서 도청으로 찾아다니느라 기름이 난 아우의 발바닥 ‘공적비’ 를 세워야하는 걸. 백년 묵은 지붕 흙먼지를 혼자 다 뒤집어 쓴 그대를 생각하면 할 말이 없구나.”
수화기를 내려놓은 산마을 소녀 가슴팍이 뛴다. 난리 통에 떠난 서울에서 혼자남아 늘그막까지 살게 되다니. 너도나도 다투듯 개발지로 옮겨갈 때다. 30여 년을 꼼짝 못한 주변머리가 아주 나쁜 것만도 아니다, 이웃한 강남대로를 달리는 수많은 교통편 가운데 인천공항버스는 때때로 반가운 소식을 싣고 오는 ‘전용’ 이 아니던가.
“~할머니, 할머니가 살아오신 80여년은 짧은 세월이 아닐 겁니다. 어떻게 매양 즐겁고 기쁜 일만 있겠어요. 하지만 첫 손자가 대학에 자리를 잡게 된 커다란 ‘축복’ 일겁니다.”
금년 9월이면 버펄로의과대학으로 가는 손자를 싣고 온 것도 강남대로를 달리는 공항버스다.
“그래 맞구나. 아가들아 너희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살아도, 이 산마을 소녀의 듬직한 3세란다.”
머지않아 마무리 될, 고향 집 개보수에 맞추어 엮고 싶은 문집 원고를 뒤적이는 마음이 바쁘다. 늦게 라도 꽃을 피우는 것은 아주 않 피우는 것 보다 났다고 하던가. 등잔불에 코를 밖은 충청도 알프스, 한 떨기 에델바이스가 이제야 꽃잎을 보려는지.
동치미 국물
임승렬
“아이 시원해라”
감나무집 ‘동치미’ 국물 한 술로 나온 말이다.
서울 사당 주차장에서 모인 우리작가회 일행은 중간 지점에서 충청권 회원을 만나고는 광주까지 줄곧 달렸다.
출발 7시30분은 늦은 시간이 아니었다. 못 먹은 아침으로 김밥, 된장국, 떡, 과일...이 차 안에서 나왔지만 울렁울렁하고 허전한 뱃곡이 담박에 착 가라 앉는 게 아닌가. 넷이 함께 하는 식탁에서 옆 자리 생각할 새도 없이 한 그릇을 몽땅 비우고는 고개를 들었다.
들어 올 때, 소슬대문 앞에서 광주 회원들이 기다린 까닭을 알것만 같다. 백 명은 넘을 듯한 사람이 한꺼번에 식사를 할 수 있는 감나무집이다. 밥만 뚝딱 먹고 마는 식당이라기보다 뭔가 여유를 즐기려는 연회장이란 느낌이 든다.
“으음” 공연히 목에 힘이 갔다.
이 고장 먹을거리야 맛깔스럽기로 진작에 소문이 났지만 인공 조미료 냄새가 전혀 없는 동치미는 당장 약발이 섰을 터다. ‘식의동원(食醫同源)이라 하지 않던가. 알타리 김치처럼 갸름하게 썰은 무 건더기도 별나게 연하면서 아삭아삭하고 동동 뜬 쪽파 가닥까지 입안이 상큼하다.
‘추가! 또 추가!’ 두 번째 새 그릇이 나왔다. 연탄가스 중독자가 동치미 국물 한 사말로 깨어난 것처럼 머리가 맑아지고는 ‘요으;’가 급하다. 신진대사가 잘된다는 징조다.
밖으로 나왔다. 이게 웬일인가. 일행의 점심을 준비한 ‘기관장’이 묻는다.
“찬이 입에 맞던가요?”
“무슨 말씀, 처음 맛을 본 동치미 그릇으로 퐁당한 걸요. 혼자서 세 그릇을 먹었다면 더 말 할 것 없는 거 아니예요”
“아~ 그라요. 그렇다면 진짜로 음식맛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이 집 동치미는 담그는 비법이 따로 있다합니다. 재료도 유기농으로 재배한 것이랍니다. 울집 며느리가 가정과 선생인디, 이집 와서 동치미 먹어보고 그 담그는 법을 배우고 싶어 물었더니 못 가르쳐 준다지 하더랑께요. 어째든 먼 길에 만나기 어려운 것이니 많이 많이 자셨다니 좋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첫 술부터 내 입에 착이 아니던가. 잘 먹고 졸지에 음식 맛을 아는 사람까지 됐다. 그것도 맛 자랑이 늘어지는 빛고을에서.
고맙다는 말이 절로 튀어 나왔다. 듣는 이가 있거나 없거나.
어찌됐던 밤 11시가 지나서야 현관문을 열었어도 눈앞이 빙빙 도는 차멀미가 없었다. 온전히 광주 ‘점심상’ 덕이 분명하지만 아무나 동치미 맛을 아나, 먹어본 사람만이 알지. 누가 들으면 무슨 대단한 맛이냐고 하겠지. 입만 살아서 혼자 척 한다고.....
오랜만에 입맛에 쏙 맞는 동치미 국물로 하루해가 시원하고 즐거웠다
두꺼비 얼굴
林承烈
고 조경희
선생님을 생각하다
그린 두꺼비 얼굴
불거진 두 빰, 신 잘로 콧등은
매력이 없어
상급생 언니에게
버림을 받고
돌아서 아버지에게 던지
“왜 나를 요로콤
낳아 주셨나요“
철 없는 원망의 시절
털어 놓으신 선생님
“이 사람들아
미인 박명이라네“
진한 건 겉이 아니고 속이라
서리 맞은 참배
그 맛을 알아주는 누군가
하나 들이 넘어, 살맛나는 세상이라고
인생사 높고 낮은
고갯길 허위허위
넘어 온 두꺼비 얼굴
선생님 당신을 그려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