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죽어 새가 되고 싶다. 현세에 지은 죄가 하도 무거워, 꿈도 야무지다고 내쳐질 게 뻔 하지만, 그래도 뻔뻔스러운 난, 한번쯤 하느님께 떼를 써 볼 참이다. 한때는, 생명을 받지 않고, 축생으로도 풀잎으로도 태어나지 말고, 구음이나 바람으로 환생하고 싶단 생각을 했었다.
젊은 날에는, 꽃보다 이쁘고 지인달사처럼 의연한 나무를 볼 때마다, 죽으면 푸른 나목으로 살고 싶단 소망을 가진 적도 있었다. 그러나, 내 혼 속에는 아버지 피가 흐른다. 그것은, 자유, 자유, 자유의 피다.
시원을 알 수 없는 그리움으로, 일평생 수상스런 바람에 부대낄 자유의 향기. 그래서 난, 새가 되고 싶다. 새가 되고 싶다. 아마, 선친께서도 새가 되셨으리라.
일생동안 누가한테도 굽힌 바가 없었고, 그 어떤 것에도 거칠 것이 없었던 내 아버지, 그 수려한 풍모와 학식과 해박한 논리, 그리고 단아한 용모는 당대 우리 버들류 씨 문중에서 견줄 이없이 뛰어난 천재로 불렸던 분이다.
지방에는 비록 학생으로 기록되지만, 나는 그게 오히려 부끄럽기는커녕, ‘아버지답다’는, 역설적 미학으로 이해한다. 어쩌면 당신께선, 무엇인가를 이루려고 하거나, 되려고 하는, 부질없는 인간적 한계를 벌써부터 갈파하셨던 것은 아닐까.
나는 이때껏 당신만큼 멋지고, 당신만큼 겸허한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당신께서는 학자적 여유와 분별 있는 풍류로 뭇 여성의 가슴을 애타게 하셨는데, 그분의 본질 속에는, 쉽게 범접할 수 없는, 청아한 기백이 살고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변증을 통한 사유와, 인생의 깊은 통찰에서 생성된, 인식의 그 무엇이 아니었을까.
상대적으로 삶이 고달플 수밖에 없었던 어머님이, 가끔씩 푸념조로 쏟은 불만은, 이제 나이 들어 되짚어 볼진대, 아버지의 삶을 지배한, ‘역마살’과 ‘바람의 넋’이었단 생각이 든다. 아버지는 내 수필〈만가〉에도 구체적으로 나오지만, 당신처럼 자유, 그 차제였던 분도 없으리라.
철들면서 왠지 나는, 아버지처럼 생을 사랑하면서도 달관한 남자를 좀체 다시 만나기 어려울 것 같은 예감을 했었다. 늘 당당했고 젊고 푸르렀던 아버지는 이상하게도 한 마리 거대한 새를 연상시켰었다. 멀리, 높이 날기 위해 부단히 비상을 시도하는, 그래서 인생에 잘못 불시착한 외로운 한 마리 큰 새를.
혹자는 나의 이런 생각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고 비웃을지도 모른다. 아무러면 어떠랴. 그런데, 4남매 중에서, 아버지의 그런 기질이나 취향을 유난히 많이 닮은 게 바로 나다. 미당 서정주 선생의 시에, 8할이 바람이었다고 했지만, 내겐 9할이 바람이라 해도 과하지 않을 것 같다.
나는 늘, 가슴속에서 바람이 분다. 종횡으로, 일진광풍으로, 때로는 미풍이나 소슬바람으로……. 내 마음은 거의 잔잔한 날이 없다. 불혹의 언덕에 올라선 지금까지, 살찐 적이 별로 없는 것도, 가슴 깊은 데서 부는, 지배할 수 없는 바람 때문에, 가슴을 깎으며 피 흘리고 살아 그런 건 아닐까. 바싹 마른 가랑잎처럼, 언제나 완전 연소를 꿈꾸는 자세로, 가슴속엔 내 자신이 관장할 수 없는 바람이 분다.
그래서 난, 이런 기질이나 성품에 어울리는 새가 되고 싶다. 아마 태어날 때 하느님께서 잠깐 조시다가 조류로 분류할 걸, 인류 쪽으로 점지하신 게 틀림없으리라.
진원을 알 수 없는, 천형의 운신인 이 바람은, 만일 내가 새로 태어났더라면, 끝없이 자유롭게 비상하며 살았으리란 공상을 하게한다.
흰 깃을 유유히 너울거리며, 태평양이며 알프스 산정을 넘었을 것이다. 때로는 독수리처럼 높이 물새처럼 소근대며, 갈매기처럼 사랑하며…… 가끔은, 저 고비 사먹을 횡단하는 할단 새처럼, 작열하는 태양 밑을 뜨거운 의지로 횡단했을 것이다.
이제까지 쌓아올린 삶을 송두리째 고스란히 남기고, 타이티 섬으로 실종(?) 됐던 폴고갱을 이해한다. 그의, 예술과 삶에 대한 가치의 초월을 무시로 동경하는, 내 의식 깊은 곳 어디쯤에서, 참회하듯 이글거리며 타고 있는, 이 자유의 의지……. 무엇에도 속박되고 싶지 않은, 그러면서도 끝없이 떠나고 싶은 소망. 대체 이 연원은 무엇일가.
아직도 출근시간이면, 달리는 차 속에서 영영 이대로 사라져 버리고 싶은 충동을 누르며, 매양 가슴을 졸이는 내 핏줄 속에는, 어쩌면 아버지가 지녔던 노진한 ‘바람의 넋’이 그대로 유전된 게 아닐까. 정녕, 나는 근원도 모른 채 불고 있다.
이 고단하고 곤비한 살의 무게가, 두 발을 족쇄처럼 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창망한 하늘을 우러를 때마다, 한 마리 작은 새이고 싶은 열망으로 부질없이 술렁인다. 어쩌면 나에겐, 보헤미안이나 집시의 넋, 아미면 시원을 할 수 없는 바람의 혼이 씌운 모양이다. 때때로 이런 생각에 잠기곤 한다.
가을날, 산골짜기를 파스텔 색조로 물들이는 저녁 안개처럼, 감미로운 우수로 나를 감싸는 이 천형의 허무야말로, ‘자유’를 궁극의 고향집으로 남긴 채 떠도는 미망과 번뇌의 덫이 아닐까 어디고 정착하거나 뿌리 내리길 두려워하며, 그 어떤 것도 집착하거나 탐닉하지 않으려는 무소유의의지는…. 그래서, 가진 것이라곤 빈약한 육신 하나뿐이면서도, 비교적 마음이 넉넉한 나의 이 이율배반이여.
아직도 ‘새’를 꿈꾸는, 영원히 자유인이길 꿈꾸는 내 의지는, 그러기에 나머지의 목숨도, 가늠하기 벅찬 설렘으로 방황할게 너무나 뻔하다. 오! 자유의 매혹이여. 스러져 버리지 않을, 존재의 향기여.
사슴뿔 / 유희남
내 안에는 사슴뿔이 자라고 있다. 이 뿔을 자르기 위해 매일 자신을 버리는 연습을 한다. 하지만, 연륜만큼 자란 이 완강한 뿔은 쉽게 떨어져 나가지 않는다.
내 방 창가 흔들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고 눈을 감아본다. 비 오신 끝의 시리도록 푸른 하늘이 바다처럼 가슴에 안기다. “주님. 제 안의 이 몹쓸 뿔을 거두어 주소서! 어느 틈에 나는 다시 묵주알을 잡는다.
끔찍한 이 불치의 병마를 얻은 지 일 년여 남짓. 응급실과 중환자실에 실려가기를 거듭하며 일곱 번이나 입․퇴원을 반복했다. 이제 나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다. 살아오면서 내가 소유했던 모든 것들이 제풀에 모두 다 멀어져갔다. 다만, 병든 육신과 그 병마만큼 반비례하여 맑아지고 있는 자신의 영혼을 느낀다.
인간은 누구나 사슴뿔을 제 안에 하나씩 기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숨쉬는 것조차 주님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불가능한 것을 깨달으며 비로소 자신이 얼마나 잘못 살아 왔는가를 느낀다. 내 안에 자라난 사슴뿔. 그게 이제야 보이기 시작한다. 죽음이 얼굴을 들이밀기 전까지만 해도 자랑이고 긍지였지, 장애가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나의 뿔은 교만과 아집과 독선으로 빚어진 욕망의 결정체이다. 남들이 흔히 해주던 ‘책임감 강하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 ‘글재주 뛰어난 사람’ 이라던 달콤한 언어들. 이 칭찬은 오히려 포수가 다가왔을 대 나무에 걸려, 아무리 빼래도 빠지지 않는, 그래서 나를 더 옭아맨 사슴뿔이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여고 3년 동안 이화대학 주최 전국 여고생 문예백일장에서 연이어 세 번씩이나 장원을 하면서 주변에서 탁월한 글솜씨로 칭송받았다. 이에 고무되어 내 오만한 자존심은 끝없이 자랐다. 여러 번 신춘문예에서 고배를 마셨지만 서른이 넘으면서 한때 주춤했던 문운은 더욱 기세 좋게 떨쳐나갔다. 첫 수필집 <삶의 향기 바람에 날리며>가 베스트셀러에 오르자 한 무명의 여교사를 작가의 반열에 올려주었다. 행운은 이어져 첫 장편 대하소설 <이카로스의 노래>가 출간되면서 계약금으로 받은 인세로 나는 차를 살 수 있었다.
그리고 용산 전쟁기념관에 ‘영령들께 바치는 국민의 글’로서 산문시 ‘님이시여’가 시비로 조각되었다.
행운의 여신은 거기서 발을 멈추지 않았다. <이카로스의 노래>가 우연히 케이블 TV의 한 PD 눈에 뜨여 읽혀지면서 일일연속극으로 계약되었다. 그야말로 나는 문운의 승승장구를 누렸다. 원고청탁은 쇄도했고 각종 백일장 심사를 맡으며 여기저기 불려 다니면서 내 뿔은 겁없이 자라났다.
그런데 겉으로는 겸손한 척 하였지만 교만과 오기가 깊게 웅크리고 자리를 틀며 영혼을 썩혀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게 될수록 더욱 나는 변질되었는지 모른다.
관운도 따라, 관내 최연소 주임으로 발령을 받기도 했다. 서른다섯 살. 참 앳되고 여려보였다. 결재 올리는 선배 교사들에게 미안해서 그때는 머리를 틀어 올리고 다녔었다. 연구주임 자리는 폭주하는 업무와 공문에 빠져 고되었지만, 일에 빠져있는 답답한 모습을 남에게 보이기 싫어 집에 싸가지고 와 잠을 설치며 일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정말 시간은 모자랐고 몸은 바빴다. 잠을 줄이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어떤 날은 아랫배가 뻣뻣해서 그때서야 소변 볼 것을 잊은 줄을 알았었고, 점심을 건너뛰고 수업 들어가는 날도 있었다. 그래도 나는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그 뿔 때문이었다. 내 안의 뿔.
“그녀는 참 대단해. 유능해. 최선을 다하고, 무엇이든지 맡기면 감당해내는 여자야. 글도 잘 써.” 나는 이 말에 도취되어 더욱 충실하고자 했었는지도 모른다.
남보다 더 찬란하고 싶었다. 어쩌면 불꽃처럼 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남들 앞에서는 더없이 겸손하고 상냥한 척, 온순하고 착한 척 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가장 속물중의 속물인지도 모른다. 판서를 하다가 머리가 핑핑 돌 때도 병원 갈 시간을 내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걷는 사람을 미워했고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수다 떠는 사람들을 경원했다.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교육방송 초창기에 중학국어 스크린 티처에 출령했던 것들이 연이 되어 국어학습 교재도 여러 권 썼고 그것은 또 비디오 학습교재가 되었다. 어쩌면 나는 정말 내 수필집에 썼던 것처럼 불꽃처럼 자신을 연소하며 살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그게 무슨 소용인가. 한때는 그리도 찬란히 빛나서, 권위와 영광을 더해주던 그 사슴뿔이 정작 포수가 다가 왔을 때에는 나뭇가지에 걸려 더 이상 뛰어나갈 수 없는 올가미에 지나지 않는 것을.
나는 내가 밉다. 어쩌면 그런 칭찬을 먹으며 자라는 가장 완악한 뿔. 그것이 암의 원인이었으리라. 그 뿔이 없었다면 나는 영육이 건강한 삶을 누렸을지 모른다.
창가에 늘 찾아오던 참새 두 마리가 포르릉 날아가 버렸다. 마스크를 쓰고 손을 씻어야 들어올 수 있는 까다로운 절차 없이 유일하게 내 창가에 찾아오는 새 두 마리. 나는 때로 묻는다. ‘너는 진정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 무엇을 위해 그토록 숨차게 달려왔는가?’
세상사 모두 다 헛되고 헛되나니. 그 어떤 새가 허공중에 발자국을 남길 수 있으리요. 철없이 날뛰었던 얄팍한 자아오류의 함정. 어쩌면 그 뿔이 완전히 떨어져 나갈 때 나는 비로소 새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닐까. 내 코로 숨 쉬고 내 손으로 수저를 들고 혼자서 화장실에 드나들 수 있는 것만 해도 축복인 것을 이제야 깨닫다니. 이 부질없는 뿔을 잘 드는 칼로 단번에 주님이 베어주실 수는 없을까.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뚫고 꿰어 매달고 붙이고 끼운 후에야 비로소 인생의 가장 값없는 사슴뿔을 볼 수 있다니.
역사 속에 빛났던 그 많은 영웅호걸, 현자, 성인, 철학자, 미인들. 그 명멸하던 수없이 많은 사람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는가. 그들도 죽음을 맞이했을 대 비로소 사슴뿔을 발견했을까. 어쩌면 그들은 우둔한 나와는 달리, 처음부터 사슴뿔을 키우지 않은 것은 아니었을까. 겸손함과 선량함으로 낮을 대로 낮아져야 비로소 볼 수 있는 진정한 영혼의 눈을 가졌기에 인류 속에 빛난 것은 아니었을까.
오늘도 나는 묵주 알을 넘기며 ‘주여 저를 당신께 온전히 의탁하나이다. 제 뿔을 거두어 주소서!’하고 하늘을 본다.
-강원도 춘천 태생
-성신여대 국문과 졸업
-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한국시문화회관 강사
-한국교원문학회 부회장
-국제펜클럽한국본부 회원
-한국수필가협회 이사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수필작가회 이사
저서
1990년 삶의 향기 바람에 날리며
1993년 이카로스의 노래 (소설) 상, 하 권
1995년 님이시여 (용산 전쟁기념관 비문)
- 그외 신문. 잡지 등에 삶의 진실을 밝히는 초감성의 서정수필을 많이 발표하였음.
***작품평설 / 김우종<문학평론가, 전덕성여대교수>
<사슴 뿔>
좋은 작품이다. 생동감이 넘치는 활달한 문체이며 논리적 전개가 정확한 편이고 깊이가 있다.
내용은 암환자로서 죽으라고 선고하는 절대자 앞에서 자신의 오만을 참회하는 기록이다.
작자는 자신의 암세포를 “교만과 아집과 독선으로 빚어진 욕망의 결정체”라고 규정한다. 이것은 암세포 발생에 대한 의학적 규명보다는 그에게 죽음의 운명을 가져다주고 있는 어떤 절대자에 대한 신앙 고백과도 같은 것이겠다. 그리고 그것은 아무리 남보다 뛰어난 능력을 다하고 책임을 다하고 자랑스러운 명예를 지니고 있어도 죽음의 운명 앞에서는 너무도 허무하게 무너지고 굴복할 수밖에0 없는 참담한 자신을 표현한 글이다. 그러나 그런 굴복 형태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교만이나 독선이 정말 죽음까지 받아들여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게 되므로 이 수필은 오히려 그런 죽음은 결코 그대로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항변이며 가엾은 절규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바람의 넋>
이 수필은 “나는 죽어서 새가 되고 싶다”로 시작하면서 그렇게 죽은 후에는 새처럼 온 세상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살고 싶다고 자유에의 간절한 소망과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그런데 글의 내용이 거의 모두 어디에도 누구에게도 매이지 않고 “역마살”과 ”바람의 넋“으로 살다 간 아버지의 삶에 대한 그리움이므로 작자가 말하는 것은 그렇게 아버지처럼 살고 싶다는 내용이 된다. 그런데 그런 자유가 그저 역마살이나 바람으로 표현될 수 있는 자유라면 그것은 당장 부인을 외롭게 만들고 힘들게 만들며 가정에도 화가 미치는 자유다. 그러므로 그것은 아름다운 자유가 아니므로 작자 개인의 소망일뿐이며 조금은 이기적인 자유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렇게 살다 간 아버지의 풍모와 여성에 대한 매력 칭찬까지는 좋다 그렇지만 그만큼 지식과 사유의 깊이와 인격을 갖추고 ‘누구한테도 굽힌 바가 없다”는 당당한 지식인이었다면 그가 식민지 시대나 분단의 역사 속에서 필연적으로 겪었어야 할 고난의 발자취와 역할이 있고 업적도 있었을 터인데 그것을 소개하지 않으면 아버지 극찬은 싱겁게 된다. 원래 작자 자신이나 가족 칭찬은 자칫 수필의 품위를 떨어뜨리기 쉽다는 점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