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꽃의 향기  / 경길자

 일주일에 한 번씩 노환으로 누워 계신 친정어머니를 찾아간다. 뜨거운 햇빛을 챙 넓은 모자로 가리고, 피곤한 발걸음을 옮기며 양로원으로 어머니를 찾아가는 뫼르소와 무엇이 다르랴 싶다.

  친정을 가까이 두고 자주 찾아뵐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는 주위의 말이 어느 때는 힘겹게 들린다. 건강하실 때는 대화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갖지만 어머니가 이제 나에게 건네는 말은 오직 아픔에 관한 질문뿐이다. 아파트가 가까워지면 나는 이러지 말아야지 하며 밝은 얼굴로 들어설 준비를 한다.

  아파트 보도블록 양쪽으로 가지런히 심겨진 쥐똥나무에 좁쌀 같은 하얀 꽃이 피었다. 이 오솔길을 벌써 일 년 넘게 오갔다. 빈 가지만 엉클어져 있던 겨울나무에서 연둣빛 잎을 달고 새로 피어난 듯하던 나무가 어느새 진초록으로 변하더니 꽃을 피웠다. 오늘따라 무더위 속에서도 선들선들 바람이 불어오는데 짙은 꽃향기가 실려 온다. 어디에 아카시아 나무가 있나 눈여겨보아도 잎이 무성한 다른 나무들뿐이다.

  걸음을 멈추고 쥐똥나무의 미세한 꽃송이에 냄새를 맡아 본다. 아카시아 꽃보다 덜 야하고 정제된 향수 냄새가 가슴속까지 스며온다. 심호흡을 하면서 다시 한 번 그 꽃에 얼굴을 가까이 대본다. 눈에 띄지도 않는 이 작은 꽃에서 이토록 강하고 순결한 향기가 품어 나온다는 게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손가락 마디만한 꽃송이를 꺾어 가지고 올라가 어머니의 코에 대고 어떠냐고 했더니 꽃 냄새가 나는 것 같으나 예전같이 냄새를 잘 못 맡겠다고 하신다. 꽃을 좋아하시는 어머니와 그 향기를 나눌 수 없는 것이 못내 아쉽다.

  냄새를 맡는다는 것도 생리적 현상의 하나이지만 먹는다거나 만지는 것과는 다른 추상성이 있는 것 같다. 가을 햇살 내리는 손수레에 가득한 모과 향기나 겨울밤 거리에 스쳐가는 군밤 냄새는 쓸쓸한 삶의 향기를 느끼게 한다. 찻집 앞을 지날 때 문 밖으로 흘러나오는 매혹적인 커피 향기나, 사기 주전자에 녹차 물을 따를 때의 은은한 차향은 친구를 그리게 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누가 볼까 부끄러운 마음에도 불구하고 쥐똥나무 꽃줄기를 한 10센티 정도로 해서 대여섯 개 겪었다. 작은 포도주 잔에 꽃을 꽃아 식탁 위에 놓고, 아침에 받아 놓고 미처 뜯지 못한 『월간문학』 펼쳐 낯익은 이름의 <향수(香水)>라는 수필부터 읽기 시작했다.

 ‘모임에서 찍은 사진을 문우에게 전해 주었더니 즉석에서 자신이 사용하기 위해 핸드백 속에 넣어 두었던 향수를 내 손에 꼭 쥐어 준다'라는 서두가 나를 지칭한 것이란 느낌이 들면서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일이 새삼스런 감동으로 살아난다. 그날 모임에서 사진을 전해 주는 문우의 발랄한 모습을 보자 무언가 꼭 주고 싶은 마음이 생겨 즉흥적으로 생각해 낸 게 갖고 있던 향수였다. 수필 관계의 모임이 있을 때 마주치는 그의 인상은 이상하게도 아카시아나 백합 같은 흰빛으로 비추어졌다. 그는 향수를 모은다며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받아 주었으나 쓰던 것을 주어 혹시 결례가 되지 않았을까 마음 쓰였지만 얼마 후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가 말했듯이 우리는 바람의 인연으로 만났다. 모 문예지에 <바람>이라는 그의 글이 실린 후에 나의 바람에 관한 글이 실려 통화를 한 적이 있다. 서로를 깊이 알지는 못하나 멀리 두고 바람으로, 향수로 만나는 묘미 또한 즐거운 일이다. 그날 그에게서 품겨 오는 것은 향수가 아닌 사람의 향기였을 것이다.

  남편은 생각나면 작은 화분을 하나씩 사들여 베란다를 가득 채워놓았다. 재미없는 마누라 대신 그것들을 들여다보고 마음 붙이며 사는 것 같다. 초봄에는 동백꽃이 탐스럽게 피었고, 시크라멘이나 내가 모르는 물들도 많이 피었다. 꽃이 마음에 들어 이름을 물으면 남편은 화원에서 가르쳐 주었는데 잊어버렸다고 한다. 나도 그 순간만지나면 꽃 이름에 대해선 무심히 지내고 만다.

  남편은 저녁에 장미 한 다발을 사들고 왔다. 나를 위해 사왔다고 생색을 낼 수도 있는데 버릇처럼 탁자 위에 내려놓으며 '너무 피어버렸다'고 한다. 노랑·빨강의 장미와 쥐똥나무 꽃을 나란히 놓고 번갈아 냄새를 맡아 본다. 요즘 재배해서 파는 꽃들이 대부분 그렇듯 이 장미에서는 아무 향기가 나지 않는다. 향수에도 분명 장미향이 있고, 예전에는 장미꽃의 독특한 냄새를 맡을 수 있었는데 풀냄새 만난다. 꽃 재배하는 사람들이 향기까지 살려낼 수는 없을까 생각했는데, 어느 날 남편이 사온 꽃 중에 향기 짙은 꽃이 있었다. 잎은 서양란 같이 생기고 연보라 방망이 꽃으로 일본 사람이 재배한 것이라 한다.

  나는 꽃 모양보다 향기를 더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유일하게 내가 사들인 것은 치자꽃 화분이다. 지금쯤에는 꽃은 다 지고 푸른 잎만 무성하게 자라는데 치자꽃은 밤이 되면 향기가 더 진동하는 것 같다. 그렇게 느껴지는 것은 낮의 번잡한 움직임이 멈추고 불순물이 섞인 공기도 정화되기 때문인가 보다. 늦은 봄밤 거실에 혼자 앉아 있으면 은은한 향기와 함께 전설대로 치자꽃 속에서 한 미소년이 탄생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나 꽃이 여성으로 상징되어선지 미소년보다는 순결한 처녀가 더 어울릴 것이란 생각이 든다. 자유분방하거나 흐트러짐이 없는 단정한 상아빛 꽃송이가 더욱 그러한 느낌을 준다. 화려한 꽃, 멋스러운 꽃, 기품 있는 꽃, 귀여운 꽃, 소박한‥ .  이러한 꽃의 모양을 열거하다 보면 자연히 여성과 연관을 짓게 된다. 거기에 독특한 향기를 곁들이면 꽃의 가치는 완벽하게 자기 개성을 이루게 되는 것이리라.

  꽃의 생김새나 향기나 모두 사람을 즐겁게 하지만 나는 오늘 보잘것없는 쥐똥나무 꽃에서 향기의 위력을 발견한 셈이다. 그것이 바로 꽃의 생명이라는 깨달음마저 갖게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는 아름다움과 진실이 있다. 꽃의 생김새가 아름다움이라면 향기는 진실이 아닐까.
다음번에는 또 한 번의 공중도덕을 무시하고 어머니에게 쥐똥나무 꽃을 한 아름 꺾어다 드리고 싶다.

어느 날 문득 드넓은 공간이 그리울 때면 하이든의 「종달새」를 들어본다. 잔물결 이는 파란 보리밭과 흙냄새 싱그러운 들판이 보인다. 일손을 멈추고 묵은 짚더미에 기대 앉아 눈을 들어보면 수증기가 퍼진 듯 뽀얀 공중에 종달새의 매혹적인 춤을 보게 된다. 종달새의 지저귐이 듣기 좋다고 하지만 내가 잊을 수 없는 것은 날아오르는 모습이다. 가라앉는 듯 하다 떠오르고 떨어질 듯 위태로우면서 다시 날아오르는 몸짓에 눈을 떼지 못한다.

  구천(九天)을 나는 학의 모습이 의연하고, 종횡무진 날쌔게 나는 제비 같은 새도 있건만 유독 종달새는 수직(垂直)으로 날아오르려 애쓴다. 높은 곳을 향하여 열정을 다하는 작은 몸짓이 종달새의 춤사위로 보인다.
  생명 있는 것들은 모두가 자기의 고유한 몸짓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며 흥겨움이나 슬픔이 자신도 모르게 표출되는 몸짓은 원초적인 춤의 형태가 아닌가.

  중학교 때 우리들이 존경하는 미술 선생님이 계셨다. 외모로 보면 흙바람에 그을은 얼굴에 머리와 수염도 다듬지 않고 미(美)와는 상관없는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우리가 그 분을 존경한 것은 야성의 철인(哲人)같은 순수와 유머에 있었던 것 같다.

  꿈 많던 나이의 우리들은 선생님께 가상적인 질문을 잘했다.
  “선생님, 만일 미술을 안 하신다면 무엇이 되고 싶으십니까?”
라는 질문에,

  “멋진 춤꾼이 되고 싶다.”고 하시자, 교실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소설 「자유부인」의 여파로 사교춤 붐이 일어 말이 많았고 사교춤은 불륜의 춤으로 생각하던 때였다. 우리들의 웃음이 가라앉자 선생님은 진지한 표정으로 설명을 했다.

  “너희들은 어찌하여 순수하지 못한 쪽만 보려 하느냐. 너희들 모심을 때 농악대 보지 않느냐. 피리, 꽹과리 소리에 맞추어 상모 돌리며 흥겹게 돌아가는 춤, 바로 그것이 내가 추고 싶은 춤이다. 너희도 늙어 보면 춤이 얼마나 신성한 것인지 알게 될 것이다. 좀 더 전문적으로 추자면 승무나 탈춤을 배우는 것도 좋을 것이다.”

  몸소 춤을 추고 싶어 했던 미술 선생님은 지금쯤은 백발이 성성하여 붓으로 화폭 위에 춤사위를 담고 계실지 모를 일이다.
  중년의 나이에 춤에 향수를 가져 보는 것은 미술 선생님의 말처럼 늙어가며 춤의 의미를 생각하게 되는 때문인지 모른다.

  응축된 마음을 몸으로 풀어 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신명 돋우는 가락을 들으며 허탄하게 우러나는 몸짓이 있다면 그것이 춤이 아니겠는가. 가슴의 답답함을 흥으로 토해내 듯 혼(魂)과 육(肉)이 일체가 되어 정화된다면 춤의 경지에 들어선 것이 아닌가. 그러나 아무런 질서 없이 마구 휘두르는 동작이라면 춤의 예(藝)를 떨어뜨릴까 조심스럽다.

  어릴 때 춤에 대해 조금 눈을 뜬 것은 아버지로 인해서다. 아버지가 가르치는 대로 춤을 추어 사람들 앞에 선을 보였고 아버지는 그것을 사진으로 담아 두셨다.

  나의 낡은 앨범에는 아주 조그만 흑백 사진이 하나 있다. 명암마저 흐릿해 누구인지 알아보기도 힘들지만 소중한 추억이 아닐 수 없다. 어려운 시절이라 무용보은 구할 수도 없었다. 어머니는 명주 천을 마련해 손수 하늘색 물감을 들여 발끝까지 출렁이는 무용복을 만들고 머리에는 미농지 꽃을 엮어 화관을 썼다. 선생님의 풍금소리에 맞춰 떨리는 발을 떼며 황홀감에 젖었던 어린 날을 기억하게 된다.

  굳어진 관절을 풀기 위해 아침이면 맨손체조를 해본다. 거울 앞에 서면 비대하지는 않지만 전혀 탄력이 없는 내 모습을 보게 된다.

  탄력이란 얼마나 생동감 있는 말인가. 몸뿐 아니라 내 생활이 탄력을 잃어가고 있다. 의욕은 상실되고 흐르지 않는 물처럼 일상의 늪에 침몰해가고 있다.

  중년의 친구들이 에어로빅을 하거나 고전무용 강습을 받고 있다. 살 안찌는 비결을 묻는 친구들에게 열심히 일해서 땀 흘리고 샤워를 자주 해보라고 했더니 그런 가사노동으로는 몸매를 가꿀 수 없다고 한다.

  버선코를 사뿐히 들어 올리며 소맷자락으로 활선을 그리는 여인의 모습을 그려 본다. 정중동(靜中動)의 묘미를 연출하는 한국 춤이 중년여인에게 잘 어울릴 것 같다. 품위 있고 우아한 춤에 고양(高揚)된 정신이 깃든다면 정서생활에 탄력을 찾게 될 것이다. 언젠가는 고전무용을 배워야겠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그럴 여우가 생기지 않는다.

  나는 이사 도라 던컨의 춤을 좋아한다. 자연의 흐름을 모방하는 그의 춤은 빛이 되고 음향이 되고 바람과 파도가 된다. 느슨한 백색의 옷자락 속에서 몸의 움직임을 예술로 승화시킨다. 그러나 비전문인이 넘볼 수 있는 춤은 아니다.

  나는 희랍인 조르바의 춤을 좋아한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조르바의 춤은 어떤가. 「육체는 영혼이다.」라는 저자의 말을 통하여 조르바의 춤을 본다. 조르바는 삶의 본질을 춤으로 풀어낼 수 있으며 필요할 때 순연한 춤의 동작이 절로 나오는 사내이다. 태양이 눈부시게 쏟아지는 해변에서 몰입의 경지에 빠져 춤을 추는 조르바를 선망해 본다.

  거울 앞에 선다.
  단순한 맨손체조를 벗어나 미숙한 몸짓이라도 춤의 형태를 만들어 본다. 나의 춤은 누가 보아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상의 생활공간에서 내 의지대로 추어 보는 이름 없는 춤이라도 좋은 것이다. 내 몸짓이 아름답지 않더라도 마음의 날개를 활짝 펴면 추(醜)의 미(美)를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외롭지만 열정에 찬 종달새의 날갯짓으로 유연하게 원을 그리며, 허공에 펴는 나의 손길이 빈 공간에 한 줌 꿈을 뿌린다.

*서울출생
*현대문예동인
*한국수필가협회 회원
*한국수필작가회 동인

<작은 꽃의 향기>

 <작은 꽃의 향기>는 노환으로 누워 계시는 친정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얘기다. 찾아 가는 길가에 쥐똥나무가 있다. 이 나무는 열매가 쥐똥 같아서 쥐똥나무지만  꽃의 향기가 꽤 좋은 편이다. 그런데 꽃은 참으로 보잘 것 없다. 그래서 꽃이 아름다움이라면 향기는 진실이라고 결론 부분에서 말하고 있다. 그런데 알 듯도 하지만 꽃이 아름다움이라면 향기는 진실이라는 말이 더 분명하게 설명되었으면 좋겠다.  다만 병들어 누워 계신 어머니에게 쥐똥나무 꽃을 꺾어다 드리며 향기를 맡게 해 드리는 모녀 상봉의 장면이 마치 그 은은한 향기처럼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서 마지막 처리가 좋은 편이다.  

<춤의 정취>

 이 작품은  하늘에서 춤을 추듯이 온갖 곡예를 부리며 비상하는 종달새를 비롯해서 다양한 형태의 춤을 열거해 나가며 춤을 찬양한 작품이다.

 춤도 문학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내면적인 세계를 나타내는 표현 형태의 하나다. 다만 문학과 달리 시각적인 표현 형태이며  의미 전달이 구체적 설명적 명확성을 지니기 어렵다. 그대신 상상력을 통해서 더 많은 의미를 암시해 줄 수 있다.

일제 말기에 표현의 자유를 빼앗긴 시인 임화는 <바다의 찬가>에서 “시인의 입에 마이크 대신/재갈이 물려 질 때/ 노래하는 열정이 /침묵가운데 / 최후를 의탁할 때/ 바다야!/ 너는 육체의 곡조를 반주해라”라고 썼다.  여기서 말하는 바다의 몸부림은 바다의 춤인 셈이다.  몸으로 말을 하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에 춤은 언어예술만큼 구체적인 설명성은 지니지 못해도 더 효율적으로 감동을 전해줄 수도 있다.  종달새가 하늘에서 열정적인 춤을 추는 모습도  이런 춤의 매력을 작자가 보여 주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