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물 캐는 할머니 / 박강재

  계절은 약속을 잘 지키며 거짓말을 못하며 아무리 꽃샘추위가 시샘을 하여도 어김없이 찾아온다.

  봄은 땅속에서부터 오는 가 싶다. 대기의 기온은 싸늘하여 여느 겨울날씨 못지않게 추위를 느끼지만 낙엽 쌓인 땅 속을 헤집고 보면 새싹들이 힘차게 움터 나오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분명 봄은 땅속에서부터 오는 가 보다. 요즈음 아파트 단지는 비교적 조경을 잘하는 탓에 봄이 되면 꽃들이 울긋불긋 피어난다. 언덕배기에는 노오란 개나리가 군집을 이루고 화단에는 정원수 사이로 진한 장미 빛이 수를 놓은 듯 아름답게 점점이 박혀있다.

  옛 자연야산을 그대로 이용한 단지 내의 산책로 길 언덕 밑에서 이름 모를 들풀의 꽃을 보면서 시골 텃밭 언덕을 생각한다.

  장미는 찔레나무에 접목을 하여 분양하므로 생명력이 강하다. 찔레의 야생적 생장력 때문이리라. 어쩌다 접목부분이 잘못되어 밑동지에서 찔레나무가 뻗어 나와 꽃을 피운다. 화려하게 진한 분홍빛의 장미보다 볼품은 없지만 하얗게 피어있는 찔레꽃에 더 진한 향수를 느낀다.

  나는 나무의자에 걸터앉아 봄날의 따뜻한 햇빛을 쪼이며 봄을 만끽하고 있다. 정원사이로 할머니 한 분이 비닐봉지를 들고 나물을 캔다. 저 할머니는 가족 모두 다 직장으로, 학교로 나가 버리고 텅 빈 아파트에서 봄의 유혹에 못 이겨 뛰쳐나왔을 것이다.

  얘기할 상대도 없고 다정한 이웃도 없는 아파트 생활에 얼마나 무료하고 쓸쓸했겠는가!

  평소 말벗이 되어주던 영감님이 몇 해 전 타계 하였을까? 나는 갖가지 궁금한 생각으로 할머니의 나물 캐는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

  잔디를 이리 비집고 저리 비집으며 나물을 캐내고 있다. 나는 할머니의 지난날을 내 임의대로 생각해 본다. 저 할머니는 어쩌면 이 순간만큼은 옛날 처녀시절 고향 양지바른 논둑이나 밭 언덕에서 나물캐던 시절로 돌아가 있는지도 모른다.

  댕기머리는 치렁치렁 엉덩이까지 닿아 늘어뜨리고, 옥색댕기가 유난히 곱던 시절, 볼에는 항상 수줍음에 찬 발그레한 핑크빛!

  좁은 골목길에서 이웃집 총각이라도 마주 칠라치면 아예 눈을 내리감고 땅만을 쳐다보면서 걷던 수줍음 많던 그런 시절이 있었겠지!

  어디 그것뿐이겠는가! 시집가는 날을 위하여 호롱불에 밤을 밝히면서 수를 놓고, 미래의 낭군님과 신혼생활의 부푼 꿈을 꾸던 시절도 있었겠지! 혼례식 날 초래 청에서 가려진 주름 사이로 가슴은 두방망이질하고 얼굴은 홍조를 띤 채 부끄럽고 겁나던 시절도 있었겠지!

  가마 타고 시집가던 날 가족들과 처음으로 헤어지는 서러움에 눈물을 찔끔거리면 손때 묻은 친정집 부엌문을 힐끔힐끔 쳐다보았겠지!

  남편, 자식만을 알고 숱한 세월을 치마끈을 동여맨 채 당신의 젊은 시절을 어렵게 보내고 서울에서 돈벌이 한다는 자식을 무척이나 대견스러워 하며 당신의 자식 하나는 잘 두었다고 침이 마르도록 자랑을 하였겠지!

  힘없어 농사일 못 한다고 정든 고향 떠나 자식이 있는 서울로 오면서 당신은 얼만 흙냄새가 그리워 실성한 정도로 마음이 안정되지 못해 아파트 베란다에 별의별 곡식을 다 심어보다가 며느님의 짜증 섞인 투정에 그 짓마저도 못한 채 당신은 흙에 대한 그리움도 마음대로 표현하지 못하였지!

  두 노부부가 서로 위로하며 얹혀사는 나날이 새장의 새처럼 날개짓 한번 못한 신세를 한탄하면서 눈물도 찔끔거렸겠지.

  어느 날 영감님이 홀연 타계 하신 후 당신은 세상의 살맛을 잃어 눈동자에는 초점이 잡히지 않은 채 가슴속의 멍울은 더욱 커져만 가 가슴앓이로 나날을 보내면서 낮에는 더욱 외로운 새장의 새가 되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개나리와 진달래의 유혹을 끝내 떨쳐버리지 못해 뛰쳐나와 나물을 캐고 계시겠지!

  그러나 그 나물을 가지고 들어가면 그 알량한 며느님은 코흘리개가 개똥밭에서 캐온 나물처럼 쓰레기통에 버리겠지.

  그걸 본 할머님의 눈망울은 얼마나 원망스러움에 차있을까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한동안 그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마음이 더욱 서늘해짐을 느끼며 입맛을 쩝쩝 다시면서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할머니의 나물 캐는 모습에서 내가 상상해 내는 이 생각이 내 나이 탓임을 깨닫고 나는 서먹한 마음이 된다.

딸아이의 뒷모습 / 박강재

  나는 2남 1녀의 아버지로서 위로 딸을 두고 있다.
외동딸이면서 맏이로서 우리 부부의 각별한 애정을 받으면서 자라왔고 우리 집의 택호(宅號)로 딸의 이름을 넣어 ○○아빠, ○○엄마, ○○네의 집으로 불리어 시집갈 나이가 훨씬 지났음에도 지금도 딸아이의 이름이 우리 집의 유일한 택호이다. 그러나 가끔씩 막내 녀석의 이름으로 ○○아빠라고 말해 보지만, 역시 딸아이의 이름을 넣어 부르는 것보다 어색하고 거북스럽다.

  딸아이는 지하철을 두 번이나 갈아타고 또 마을버스를 타야만 하는 곳으로 출근한다. 출근할 때는 마을버스가 지하철역까지 연계되어 비교적 편리하지만 반대로 퇴근 코스는 마을버스 노선이 우회하는 바람에 지하철을 한 번 더 타야 하는 불편이 따른다. 그래서 비가 오거나 추운 날에는 집에 전화를 해서 지하철역까지 마중 나올 것을 제의하기도 한다. 따라서 나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한 번도 거절한 일이 없으며 그럴 마음도 없다.

  그래서 저녁상에 술안주로 좋은 반찬이라도 올라올 땐 반주 생각이 간절하지만 딸에게서 전화가 올가 봐 자제하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아버지의 힘들어하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던지 빙빙 돌아서 지하철도 갈아타고 터벅터벅 걸어오는 경우도 더러 있다. 그럴 때면 나는 버릇처럼 딸아이를 마중 나간다. 저만큼 무언가 골똘이 생각하며 걸어오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맏이면서 외동딸인 그 아이는, 나이 들어 정년을 앞둔 아버지와 동생들 걱정이 많은 모양이다. 몸을 숨기고 지나쳐 간 뒷모습을 보면서 축 늘어진 지친 모습에 이유 모를 뜨거운 감정에 눈시울이 적셔진다. 아직은 대학생을 둘이나 남겨둔 채, 툭 하면 명예 퇴직하겠다는 나에게 아버지는 어린애처럼 부질없는 소릴 하신다고 어른스럽게 나를 타이르던 딸이 생각나 더욱 눈시울이 뜨거워진 것인지 모르겠다.

  직장에서 생존 경쟁이란 치열함 속에서 나 나름대로 느꼈던 생각들을 마치 나의 어머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조용하게 나에게 읊어대는 모습 때문이다.

  “아빠! 어깨를 좀 펴세요.”
  “아빤 저희들이 있잖아요.”
  이런 생각까지 기억해 낸 나는 누가 볼세라 눈물을 꿀꺽 삼켜야 했다.
집 앞에 다다를 즈음에서야 뒤에서 조용히 딸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조금 전 시무룩했던 표정은 찾을 수 없고 환하게 웃으며 언제부터 뒤따라 왔느냐고 어리광 반, 투정 반이다.

“내 뒷모습이 예뻐서 따라왔다.”라고 얼버무리고 말았다.

  사실 나는 지금 명예퇴직이니 하는 식의 말을 할 수 있는 형편은 아니다. 30여 년의 외길로 살아온 내가 특별한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고 뻔 한 봉급생활로 겨우 집 한 칸 장만하여 근근히 아이들 교육 뒷바라지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보니 매 분기, 매달 아이들 학비며 생활비는 항상 적자인 셈이다.

  그런 주제에 명예퇴직을 운운하니, 아내나 아이들이 보는 나의 꼴은 처참했으리라.

  그러나 나는 술이라도 한잔 거나해지면 평생 이렇게 시달리다 말겠다는 절박한 생각에 잠시라도 모든 것에서 탈출하여 그야말로 편안히 쉬고 싶기 때문이다. 직장 특성상 스트레스는 나이 들면서 건강과 직결되고 젊어서 와는 또 다른 짐으로 부담을 준다.

  직장이란 경제적 기반은 물론 그것을 통하여 자신의 이상과 꿈을 실현하여 보람과 긍지로 가득 차야만이 직장인으로서의 가장 보람된 것이 아닌가 싶다. 경제적 해결이 어려운 만큼 꿈과 이상을 펼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위안을 얻고 힘이 생기지만 이것도 저것도 아닌 바에야 거기에서 오는 좌절과 절망은 어떠하겠는가.

  한 번 발 들여놓은 직장을 쉽사리 바꾸지 못하고 끝내는 꿈을 이상이라는 그것보다는 호구지책의 해결 방안으로 질질 끌려 사는 꼴이 되었으니 참담한 마음이 아니겠는가. 어쩌다가 매스컴에서 한 두 사람의 비리가 마치 전체가 썩어문드러진 것처럼 비해져도 변명 한 마디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꼬락서니 하며 한심스러운 게 넘 많아 내 자신이 한없이 미워지기도 한다. 어쨌든 나는 일평생을 이 직장에 바쳤고, 그로 인하여 내 가정을 이룩하였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어려울 때 기본에 충실하고 병들고 신체가 부자연스러운 사람들에 비해 건강하게 화목한 우리 가정이 얼마나 자랑스럽느냐고 반문한다. 변명 같으면서도 가장 설득력 있는 나의 변이다.

  사실 그렇다. 우리 가족은 행복하다. 크게 병든 사람 없고, 부족하지만 아껴 쓰고, 가족 서로 위로해 주고, 격려해 주니 이것보다 더 좋은 부가 어디 있겠는가.

  사랑하는 아이들!
그리고 언제나 아늑한 아랫목처럼 따스한 아내!
그래서 나는 오늘도 자전거 페달에 힘을 주어 출근길을 서둘고 있다.

박강재 <나물 캐는 할머니>

인생의 마지막 종착역에  거의 도착하게 된 한 노파의 쓸쓸한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저물어 가는 인생을 회화적 풍경 속에 담으려면 크게 두 가지의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그 주변 풍경 자체를 저물어 가는 시간대나 그런 사물 속에 담는 것이다. 저녁노을을 바라보는 노인 또는 나무 잎이 다 떨어져 가는 늦가을 같은 시간대를 배경으로 하여 노인의 쓸쓸함을 더욱 고조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와는 정반대의 배경 속에 노인을 그리고 서로 대비를 시켜나가는 방법이다. <나물 캐는 할머니>는 후자에 속한다. 만물이 생동하기 시작하는 봄 풍경 속에 노인을 담아 나가면서 그 서글픔을 더욱 부각시킨 셈이다. 그리고 상상 속에서 그 할머니의 과거를 재생시켜 나가고 젊은 세대들을 비판해 나간 것도 좋은 점이다. 

<딸아이의 뒷모습>

작자는 마지막 부분에 가서 “우리 가족은 행복하다”라고 썼다.  그런데 시작부터 그 뒷부분에 이르기까지 작자가 표현해 나간 그의 가정은 오늘의 한국인의 행복의 개념에 비추어 보면 별로 행복한 가정이 아니다. 2남 1녀 가정의 큰 딸이 이 집 맏딸로서 직장에 다니는데 출퇴근길이 별로 편하지 않다.  전철 두 번 타고 마을버스 한번 타고 귀가할 때는 더 힘들게 되어 있고 이런 딸을 매일 마중 나가는 아버지는 퇴직을 앞에 두고 별로  모아 놓은 재산도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러데 특히 부녀간의 정을 통해서 이 가정은 정말 행복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작자가 말미에서 “우리 가정은 행복하다”라고 말하기 전에 그렇게 행복함을 독자가 알 수 있었다면 이것은 그만큼 작자의 진실성이 훌륭하게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