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 / 강봄내

 여름방학이 되면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전원적이 외가로 보낼까, 지식을 위해 학원을 보낼까하고 마음 씨름을 한다.

  공부를 생각하면 학원에 보내고 싶고, 정서면을 생각하면 시골로 보내야 되는데 두 가지 다 놓치고 싶지 않다. 어느 쪽이 비중이 큰지 이쪽저쪽 저울질을 해본다. 시골 쪽을 생각하노라면 어느새 어릴 적 시골로 달려가 있다.

  그때 초등학교 시절엔 공부하던 기억은 없고, 뛰놀던 기억만 생생하다. 매미가 한나절 울어대는 오후가 되면, 지붕 그림자가 내가 그려놓은 글까지 오기를 기다린다. 그때쯤이면 동네 아이들이 소에 저녁 풀을 뜯기러 산으로 몰려가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어린 동생들을 돌봐야 하는 나는 이 시간이 해방되는 시간이다.

  산에 가서 먹을 감자도 싸놓고, 고무줄도 챙겨 넣는다. 외양간의 누렁소를 끌고 나가면, 벌써 고삿은 소와 아이들로 즐거운 행렬을 이룬다. 수박을 들고 오는 아이, 옥수수를 쪄오는 아이, 범벅을 뭉쳐오는 아이 등 모두들 하나씩 들고 나온다. 어떤 남자애는 나 좋아하는 참외를 가져왔다고 눈을 껌벅이며 따라와서 조그만 볼이 빨개지기도 했다.

  산 입구에 다다르면 소는 소대로 우리는 우리대로 자유다. 소는 해가 서산에 기울도록 온 산을 누비며 마음껏 풀을 뜯는다. 우리는 우루루 참샘으로 몰려간다. 땀띠도 죽는다는 얼음처럼 차가운 약물이다. 수박이며 참외를 약물에 채워놓고, 땀으로 범벅된 얼굴을 손이 시리도록 씻어내고, 함박웃음으로 우리의 놀이터로 달려간다.

  그곳은 자연이 만들어준 잔디마당이다. 고무줄놀이, 고기몰기 놀이도 하고 뒹굴기도 한다. 한바탕 놀고 나면 힘들기도 하고 덥기도 하다. 골짜기 웅덩이의 맑은 물이 손짓한다. 남자애들 옷은 하나 둘씩 벗겨지고 철벙철벙 물장구가 한창인가 하면 물싸움에 소리 지르고 골짜기가 들썩인다. 여자애들은 은밀하고 더 깨끗한 물을 찾아내고는 남자애들이 모를 거라고 좋아한다. 처음에는 손 담그고 발 담그며 얌전하게 시작하지만, 어느새 물장난에 웃느라 정신이 없다. 그틈에 짓궂은 남자애들이 살금살금 기어와서 옷을 감춘다. 옷 없는 애가 울면서 오빠한테 이른다는 바람에 옷을 던져놓고 도망간다. 이쯤해서 멱 감기는 끝난다.

  시장기가 든 애들은 참샘에 재웠던 과일을 깨서 먹고, 감자며 옥수수, 범벅을 볼이 메도록 입에 넣는다. 수북하던 음식들이 순식간에 없어진다. 모두들 더 가져올 걸 그랬다고 아쉬워하지만 염려할 건 없다. 이쪽으로 가면 빨간 알이 볼록볼록한 산딸기가 있고, 저쪽으로 가면 구워먹을 가재가 맑은 물 속 돌멩이 밑에 숨어 있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저녁노을로 하늘이 곱게 물들면, 소들은 저희끼리 하나 둘씩 내려오고, 애들 손엔 할머니 드릴 딸기가 한 주먹, 고무신 한 짝엔 할아버지 상에 올릴 가재가 꼬물거린다.

  이렇게 놀다보면 방학이 끝나가고 숙제를 안했으니 큰일이다. 만들기나 해간다고 보릿짚에 빨강 노랑 물들여 여치집 하나 만들고 여치, 잠자기 몇 마리 잡아 대롱대롱 들고 가던 기억이 새롭다.

  큰아들이 3학년 때이다. 놀기만 하지 말고 숙제도 해오라고 당부하여 외가로 보냈다. 가끔 전화를 해보면 숙제도 잘하고 있다는 아들이 대답이다. 대답이 하도 시원하여 적당히 놀고 공부도 하려니 안심했다.

  방학이 끝나가서 아이들을 데려왔다. 큰아들은 숙제라고 유리병에 물고기 몇 마리 잡아 품에 안고 왔다. 요즈음은 숙제도 탐구생활이라는 방학 책과 산수뿐인데, 산수는 건드리지도 않았고 탐구생활은 서너 장하다 말았다.
“때려줄 것인가, 웃을 것인가?”

  욕심 있는 마음은 속이 상하여 두 방망이질을 한다. 욕심 없는 한 쪽 마음에는 어릴 적 즐겁게 놀던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힘 있게 매를 들었던 팔이 스르르 내려온다.

  웃었다. 웃기로 했다.
놀아도 놀아도 놀고 싶고 신나고 즐거웠던 추억의 여름방학이 화난 마음을 참게 한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애들은 애들인 것을, 요즘 애들은 틀려야한다는 내 생각이 모자람이 아닌가. 못한 숙제는 내가 도와주면 꼬박 하루면 다 할 수 있으나, 그러지 않았다. 대신 담임선생님께 편지를 썼다.
-시골 외가에 보냈더니 자연과 노느라 숙제를 못했답니다. 어머니인 제 책임입니다. 용서하여 주십시오.-

  큰아들의 일기장에는 매미잡고, 물고기 잡고로 시작하여 정말 신나는 여름방학이다 로 끝나고 있었다.
선생님이 일기장 뒤쪽에 적어 보냈다.
-네가 뛰어 노는 모습이 눈에 선 하구나. 다음엔 공부도 하렴.-

  나에게는 고향이 시골인 게 행복이다. 시골아이라는 사실이 싫었던 시절도 있었지만, 현대생활이 메마르고 삭막할 때, 낭만의 어린 시절을 추억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큰 행복이지 모른다. 올 여름방학에도 아이들을 외가에 보낼 것이다. 시멘트로 지은 아파트와 학교를 떠나, 산과 강이 어우러진 자연과 함께 뛰놀게 해서, 먼 훗날 추억의 여름방학으로 기억나게 해주고 싶다.

보색 부부(補色夫婦)  / 강봄내 

  쪽빛 하늘에 누런 색 땅이 조화로운 아침이다.
  모처럼 투피스 한 벌을 지어 입으려 감을 뜨러 나사점엘 갔다. 그 곳에는 여러 가지 옷감들이 많은데도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처음엔 아래 위가 같은 동색(同色) 계통으로 골라보았다. 너무 단조로워선지 산뜻한 맛이 없어 그만두었다. 다음으로 고른 게 스커트 감으로는 남색, 재킷 감으로는 노란 색으로 골라보았다. 밝고 환하다. 하지만 상의가 노란 색이면 너무나 두드러져 보일 것 같아서 그것도 그만 두었다. 아래 위 색을 맞추는 게 부부가 서로 이해하며 살아야 되는 것처럼 쉽지 않았다.

  한참만에야 상의로 노란 색 바탕에 남색 무늬가 다문다문 박힌 보색(補色)으로 배색된 것으로 고를 수 있었다.

  마침 잘 아는 의상실이 있어 허리는 잘록하게 쏙 들어가고, 쟈켓의 깃은 남색으로 얌전하게 아물려 예쁘게 지어 달라고 부탁했다.

  우리 부부는 여러 가지로 정반대인 점이 많다. 남편은 건장하면서도 듬직한 체구이고, 나는 야위고 가냘파서 바람에도 날아갈 듯하다. ‘얼굴도 남편은 달덩이처럼 크고 둥근 반면, 나는 조그맣고 긴 편이다. 남편은 빌딩이 우뚝 솟은 도시서 자랐고, 나는 소들도 한가로운 시골서 자랐다. 성격도 남편이 불처럼 급한 반면, 나는 강물처럼 느린 면이 있다. 행동도 반대여서 남편은 여러 면으로 많이 생각하고 세심하게 재는데, 나는 이거다 싶으면 겁 없이 대들어야 속이 시원한 형이다. 취미도 달라서 남편은 스포츠나 오락이고, 나는 예술 쪽이 좋다. 이런 보색 부부(補色夫婦)인 우리를 보고 어른들은 천생배필이라 했다.

  신혼 시절엔 사랑이란 안경을 쓴 때문인지, 무뚝뚝한 남편이 무게 있어 보이고 불같이 욱하는 성격이 박력 있어 보였다. 팔자걸음도 양반의 후예처럼 보이고, 담배 연기를 푸- 하고 내뿜는 것도 낭만을 아는 사람처럼 멋있어 보였다. 나도 남편이 좋은 배우자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 해, 두 해 결혼생활을 하면서 느껴지는 것은 이상하게도 남편의 멋있었던 점들이 차츰 단점으로 보이는 것이다. 뚱뚱한 체구가 미련하게 보이던 담배 피우는 모습이 결단력 없는 사람처럼 보이는 것이다.
  남편은 나보고 순진하여 좋다더니 철없는 여자라 말하고, 낭만적이라 멋이 있다더니 눈물만 많아 이성을 찾지 못한다고 핀잔이다. 규모 있어 마음에 든다더니 느슨함이 없어 피곤하다고 불만이고, 날씬해서 좋다더니 약해서 살림에 지장이 있다고 한다.

  우리 부부는 보이지 않는 의견 대립이 많았다. 톱니바퀴가 ⍌⍍의 연속으로 된 것처럼 우리도 요철로 된 부부이다. 남편의 뾰족한 성격엔 내가 부드럽고, 남편이 유한 부분엔 내가 뾰족하다. 서로의 뾰족한 성질을 받아주지 못하고 맞부딪치면 대립이 되는 것이다. 처음엔 서로지지 않으려고 닭이 싸움하듯 숙일 줄 몰랐다. 자신과 다른 점을 단점이라 했다. 한 걸음만 늦추면 톱니바퀴 돌아가듯 결혼생활도 부드러워질 것을, 모난 부분으로 맞서느라 쇠소리만 나고 힘은 배나 들었다.

  천생배필이라는 남들의 말에 코웃음이 나왔고, 결혼 전 궁합이 잘 맞는다던 어른들의 말에 공감할 수 없었다. 성격 차이로 이혼하는 예가 바로 이런 경우구나 하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도 속을 모르는 남들은 우리보고 참 잘 만난 한 쌍이라 했다.

  동색 부부(同色夫婦)가 부러웠다. 비슷한 모습, 비슷한 성격으로 무난하게 사는 부부들이 무척 행복해 보였다. 그들은 평생 싸움을 모를 것 같았다. 평이함 속에 정신적으로 여유 있게 살 것 같았다. 그들은 큰 복을 받은 사람들이라 여겼다.

  언젠가는 남편이 내가 좋아하는 모습의 사람으로 변해주겠지 하는 기대감으로 생활했다. 또 변하도록 유도하며 일 년, 이 년 지냈다. 그러나 남편은 변하지 않았다. 변했다면 아주 작은 부분일 뿐이다.

  세월은 쉼 없이 흘렀다. 십여 년을 사는 동안 지혜가 생긴 것일까. 자신을 볼 수 있는 혜안이 열린 것일까. 내가 남편을 보는 눈이 잘못된 것이다. 남편은 남편대로, 나는 나대로 창조주가 지어주신 모습이 있다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그것은 아마도 아이를 낳고 키우는 과정에서 터득한 것 같다.

  나에게는 두 아들이 있다. 둘이는 한 뱃속 아이인데도 외모가 판이하다. 똑같은 방법으로 지도를 하는데도 성격이 다르고, 행동도 습관도 다르다. 심지어 일찍 자고 늦게 자는 것까지 따로따로 닮는 것을 보고, 타고난 품성은 창조주의 분야라는 것을 알았다.

  창조주는 우리 가정에 꼭 맞는 부부를 맺어준 것이다. 똑같은 사람끼리 만나면 한곳으로 빠져서 가정의 조화를 이룰 수 없음을 안 것이다. 서로 부족한 점을 메워주라고 적당한 배필로 맺어준 것임을 이제야 깨닫는다. 천생배필이라는 어른들의 말이 무엇을 의미했는지 이제는 알 것 같다.
  친구 부부가 동색 부부라서 부러워했는데, 그들은 생활은 무난하지만 너무 밋밋하여 재미가 덜하다고 한다. 아주 다른 두 개체가 모여 가정을 이룰 때 빚어내는 조화의 멋을 모른다고 한다.

  서로 부딪치며 사는 사이, 우리 부부는 생각의 폭이 넓어졌나 보다. 내가 옳은 것 같더라도 한 발 물러서며 남편을 이해하려는 마음을 가져본다. 남편은 나의 모난 부분을 넓은 마음으로 푸근히 감싸주고 있다. 서로 다른 모양으로 태어나서 사랑하게 되었음을 알고 감사하고 있다.

  의상실에서 투피스를 찾아왔다. 남편 색으로 여겼던 남색으로 만든 스커트는 허리가 꼭 맞았다. 노랑 바탕에 남색 무늬로 남편 모습이 다문다문 박혀 있는 재킷은 바느질을 꼼꼼하게 잘 했다. 특히 남색 깃으로 옷매무새를 얌전하게 아물려 준 것이 마음에 든다. 
 
  투피스를 입고 거울을 본다. 정반대의 보색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남색은 더욱 무게 있게, 노란 색은 더욱 산뜻하게 서로 상대편을 돋보여주고 있다.
  오늘은 새로 맞춘 투피스를 입고 남편과 외출을 하고 싶다.

작품 평설/김우종<문학평론가, 전덕성여대교수>

< 여름방학>

 문학은 감동을 유발하는 언어예술이며  그중의 하나가 먼 시간적 거리를 지닌 소재다.

<여름방학>에는  다시 만날 수 없는  시간적 거리를 지닌 소재가 나타난다.

 수필이 현재의 일상적 소재만으로 만들어지면 이것은 최근 한달 사이의 일이거나 오늘 아침의 일이거나  대개는 매우 짧은 시간 내에 얻게 되는 소재들이다.

그런데 먼 옛날로 돌아가고 다시 현재로 돌아오면 매우 긴 시간이 설정된다. 이 경우에 그 길이만큼 소재 범위가 커지며 동시에 우리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과거라는 것 때문에 노스탤지어의 감동적 효과를 얻게 된다.

  멀리 떨어져 있는 고향의 소재도 그렇다. 고향은 누구에게나 그리움을 자아내게 한다.

이 작품에서 작자는 어린 시절의 고향생활을 재생시켜 그림으로 펼치고 있다. 이런 고향은 현재의 공간과 달리 다른 또 하나의 공간이다.

 이처럼 되돌아 갈 수 없는 과거라는 시간과 그 어린 시절의 고향은  농밀한 향수를 환기시키기 때문에 그 소재만으로도 감동적인 글이 될 가능성이 있다. 원초적 이미지로 감동을 주는 것이다.

물론 이 작품은 어린 자식의 여름방학과 관련해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게 만든 기법도 좋고  학과 공부만으로 아이들의 정서를 메마르게 하는 교육 풍토에 대한 은근한 비판도 있어서 주제도 호감이 간다.

<보색부부>

 수필은 일상적 소재를 많이 쓰면서 그런 창작행위가  우리들의 일상적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장르임을 이 작품은 잘 보여 주고 있다.  서로 다른 특성을 지닌 남편과 나 사이는 자칫 갈등과 마찰의 원인이 될 수도 있지만 서로가 서로의 단점을 보완해 주면 서로 꼭 같은 사람끼리만의 부부보다 오히려 얼마나 더 윤택한 삶이 될 것인지를 차분한 논리로 잘 전개시켜 나갔다.   이것을 옷을 고르고 색을 맞추며 회화적인 이미지에 비유해 나간 것도 좋은 성과를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