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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임병식 |
날짜 : 18-07-27 03:51
조회 : 2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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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쓰기 강의 요약
일시: 2018. 7. 23. 19:00
장소: 여수문수동 환경도서관
강사: 임병식
.글쓰기는 위대한 작업이다. 그런데 글은 아무나 쓰지 못한다. 무속인이 신내림을 받고 굿을 하듯이 어딘가 모르게 감춰진 끼가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글을 쓰는 작가는 하늘의 부름과 선택을 받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선택을 받은 만큼 글을 쓰는 사람은 어쩔 수 없는 멍에를 지고 살아야 한다. 일찍이 소설가 최명희는 “남에게 빚을 지고 살아가는 사람처럼 글을 쓰는 동안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고 했다. 이처럼 글을 쓰는 작가는 작품을 쓸 때마다 산고의 고통을 겪지 않으면 아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쓴다는 것은 커다란 특권이다. 잘만 하면 유명한 작품을 남길 수도 있고, 한 고을을 먹여 살릴 수도 있다. 1998년 안동의 야산 택지지구에서는 편지한통이 발견되었다. 소위 원이엄마> 편지라는 한글 서간문이다. 이 편지는 고전판 영혼과 사랑이라는 이름이 붙여져 서양에 널리 알려지고 안동에는 문학관이 세워져 관광객의 발길을 끌어드린다.
춘천의 김유정문학촌은 어떤가. 그의 작품 <동백꽃>의 무대는 그 지방의 경제를 떠받치고 있고 학생들의 가봐야 할 탐방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한편, 김영한 보살이 법정스님에게 시주하여 길상사로 거듭난 사찰은 글에 대한 한없는 동경의 산물로 세워졌다. 자기의 전 재산 1천억 대를 시주하면서 “나의 이 재산은 백석시인의 싯귀 한 줄만도 못하다”고 말했던 것이다. 문학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증명해 주는 사례다.
신사임당의 행적은 아들 이이의 행장으로 더욱 빛나고, 임백호나 김만중의 모친의 행적은 전자는 외손자 허목의 행장, 그리고 후자 윤씨의 사람됨은 그의 아들이 남긴 글귀 하나에서 온전히 드러내 보이고 있다. 뿐인가. 이순신장군이 정유년에 모함을 받아 죽음의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정탁대감의 <신구차> 하나가 목숨 살려냈다. 글은 그 쓰임에 따라 그만한 위력을 발휘한 것이다.
수필은 현대에 들어서 각광을 받고 있다. 인터넷이 보편화되고 페이스북, 카카오톡, 이메일이 활성화되면서 글쓰기와 댓글달기가 일상화된 탓도 있다. 그리고 바쁜 세상에 소설을 읽기는 시간을 많이 빼앗기고 시는 이미지나 상징어를 되어 있어 부담을 느끼는 측면도 있다.
한데 수필은 길이도 적당하고 자기생각을 자유로이 나타낼 수 있어서 선호하고 있다. 그런데 잘못 알려진 수필이론이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수필은 붓가는 대로 쓰는 글, 여기로 쓰는 글, 구성도 없이 쓰는 글로 잘못 알려지면서 혼란을 빚어놓은 것이다.
수필은 만만한 글은 아니다. 우선 허구로 쓰는 글이 아니라서 제재에 있어서 제약이 있으며 주체도 3인칭 글쓰기가 아니고 오직 자기가 글속에 투영되어 글을 써야하므로 운신의 폭이 제한 받을 수 밖에 없다.
지면상 여기서는 정의와 총론에 대한 언급은 생략한다. 독자들은 많은 요구를 한다. 나를 즐겁게 해 달라. 나를 슬프게 해 달라. 무언가 깊이 느끼게 해 달라. 하다못해 배꼽이 빠지는 익살과 생에 깨달음을 얻어갈 수 있는 것을 달라고 한다.
그러면서 글을 읽으면서도 채근도 한다. 그만 서두를 장황하게 끌지 말고 다음으로 넘어가시오. 이야기 전개가 어쩐지 아귀가 맞지 않구먼. 이 부분에서는 과감하게 생략하고 다른 부분에서는 보다 정밀하게 묘사가 되어야 하지 않나요. 등으로 간섭을 하고 글평을 한다.
실로 어느 장단을 춤을 춰야할지 모르는 지경에 내몰릴 수도 있다. 이때 중심을 똑바로 잡고 나가야 한다. 해서 이 시간에는 무언가 얻어가는 것이 있는, 글쓰기에 대해서 핵심 내용을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이는 내가 터득한 노하우로서 참고가 될 것이다.
수필은 ‘무엇을 ’ ‘왜’쓰는 문학이 아니다. ‘어떻게 ’ 보고 해석하여 내보이는 문학이다. 그런 만큼 서사와 정황묘사는 매우 중요하다. 형체가 분명하지 않는 것을 뚜렷하게 그려 보여주기 때문이다.
수필의 모습은 어느 후미진 골짜기에 서있는 한그루 문인목 소나무일 수 있다. 호젓한 가운데 풍치를 보여준다. 거기에는 몇 개의 바위 풀포기가 있으면 족하다. 그처럼 글 속에 너무 많은 화소를 몰아넣을 필요가 없으며 그러면 오히려 글이 답답해진다.
수필쓰기에서 가장 경계할 부분은 남의 글의 모방이나 허구로 쓰는 것이다. 이는 전적으로 글을 죽이는 행위이다.
전에 일본에서 <우동한그릇>이란 수필이 발표되어 온 열도를 비롯 , 우리나라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런데 그 작품은 나중에 작가가 허구로 쓴 글임이 밝혀졌다. 많은 독자들이 배신감에 사로잡혔음은 물론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인연이란 작품은 한때 수필의 전범으로 널리 알려졌는데, 나중 허구로 쓴 글로 밝혀진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수제자 석정경교수가 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그리 증언했다.
수필을 쓰는데 체험과 상상을 동원함은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그렇게 만 써도 수필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의외로 많다. 하지만 그리 써서는 문학성이 담보되지 않는다. 반드시 의미화과정을 거쳐야 한다. 의미화는 현상만을 피상적으로 보아선 획득할 수 없다. 사물 너머에 감추어진 것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하면 어떻게 얻을 수 있는 것일까. 이는 깊은 사색과 격물치지(格物致知-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파고들어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서사의 풍경과 끌어 쓴 예화나 화소에 녹아들어 있는데 이것을 제련을 하듯 뽑아내야 한다. 일종의 깊은 성찰로 해석해 내는 혜안이 필요한 부분이다.
예를 들어보겠다. 어떤 사람이 만원버스에 억지로 매달렸다고 하자. 이것을 보는 사람들은 짜증을 낼 것이다. “다음 차를 타지 왜 부득부득 탈까” 하지만 그의 입장은 다를 수 있다. 화급을 다투는 생업현장에 가는 발길일 수도 있고 환승역에서 중요한 일을 봐야할 발길일 수도 있다. 그 다급함을 읽어내고 생의 고단함을 읽어내는 눈이 있어야 한다. 그것을 살아가는 의미와 함께 가슴 따뜻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의미화이며 그것으로 인해 글은 문학성을 담보가 된다.
또 하나, 이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시제문제이다. 흔히 글을 읽으면 현재형과 과거형이 뒤죽박죽 엉키는 글을 보게 되는데 확실하게 해둘 필요가 있다. 과거형 글에서 현재형을 취할 때는 다음 두 가지 경우가 아니면 삼가야 한다.
그것은 바로 어떤 이야기 속에 액자형태의 이야기를 끌어오는 경우, 과거형에서 현재형을 취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또 하나는 반복적인 과거형 글에서 서술하는 객체가 달라지는 경우 글의 긴장감과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현재형으로 바꾸는 것이 가능하다. 그 이외에는 삼가야 한다.
수필은 비교적 짧은 글이므로 문장이 탄력성이 있고 선명해야 한다. 그러자면 언어의 선택은 중요하다. 마크투웨인의 말처럼 하나의 어휘는 실로 번갯불과 반딧불의 차이인 것이다. 또한 글을 쓰고 나서 퇴고는 아주 중요하다. 글은 고치면 고칠수록 좋아진다. 엘렌불록스화이트는 이렇게 말했다. “위대한 글쓰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위대한 고쳐 쓰기만 존재할 뿐이다.”
수필쓰기에 있어서 구양수의 3다(多)의 가르침은 금과옥조라 할 만하다.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좋은 글쓰기 교훈은 없을 것이다. 내 생각에 수필은 매달릴 가치고 충분히 있는 문학 장르이다. 마라톤 경주처럼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히 정진하면 결과물은 분명이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강의를 마치면서 마지막으로 시조한수를 읊은 것으로 마음을 전하겠다.
‘잘가노라 닫지 말고 못가노라 쉬지 마라/ 부대 굿지 말고 촌음을 아껴쓰라/ 가다가 중지 곧 하면 아니 간만 못하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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