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마음 부자 만들기

이 하 림

내가 처음 글을 쓴 것은 사회 초년병이 되어 직장생활을 할 때다. 사보에 실린 동료들의 아기자기한 이야기들을 보고 내심 부러워 나도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글을 써 보고 싶었다. 용기를 내어 시도한 글 두 편이 사보와 모 협회지에 실렸다. 그 당시 내용의 깊이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고, 그저 활자화된 글과 원고료를 받은 것이 신기하기만 해서 마음은 구름 위에 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후 한 번 더 사보에 글을 내고는 오래도록 글을 쓰지 않았다.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실감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불혹지년(不惑之年)의 나이를 맞게 되었다. 그때 가게를 운영했는데, 잘 되다보니 주변사람들의 시기와 질투로 마음고생이 심했다. 아무런 잘못이 없어도 여러 사람의 소리는 쇠도 녹인다고, 그로 인해 되는 일은 하나 없고 하는 일마다 어긋났다. 건강까지 나빠질 지경이니 무엇인가 변화가 필요했다.

문득 내 삶 속 텃밭 한 켠이 늘 비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세월을 풀지 못하는 수수께끼처럼 ‘왜’라는 질문만 하며 살았으면서도, 중년이 되어서야 그 비어 있는 자리를 돌아보게 된 것이다. 그리고 수필이라는 문학을 묘목으로 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문학의 다양한 장르 중에서 수필에 매력을 느끼게 된 것은 눈비음이 아닌 진실한 내 인생철학을 정립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 여겨서이다.

우연히 대학교의 사회교육원 수필창작교실을 알게 되어 등록한 후 열심을 다했다. 고양이 뿔 깎는 소리처럼 말도 되지 않는 글 한 편을 교수님께 지도 받고자 교수회관의 계단을 오르고 내렸던 많은 계절 속에서 희망과 좌절, 그리고 용기와 인내를 배웠다. 수필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수필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교수님의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며, 많이 보고 읽고 또 느끼며 깊이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했다. 그러면서 누구나 읽으며 공감할 수 있도록 쉬운 어휘를 사용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수필의 개념을 조금 알게 되면서부터 한 편의 글쓰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시나 소설이 함축하거나 늘리며 상상의 나래를 펴는 작업으로써 어려운 것처럼, 수필도 내가 사유하는 것을 솔직하며 진실하게 묘사하고, 확실한 주제를 드러내어 독자가 공감하게 함으로써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수필 또한 문학인 만큼 작품의 문학성과 예술성, 그리고 개성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내게 타고난 글재주는 없다. 지금 내가 수필을 쓸 수 있는 것은 책읽기를 좋아한다는 것 하나를 믿고 순전히 습작의 노력을 거듭한 결과라고 하겠다. 그러니 글 쓰는 재주를 타고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처럼 오로지 쓰고자 하는 열정으로 노력해서 글을 쓰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수필은 기본적으로 자기성찰의 글이라 생각한다. 내가 바라는 수필은 손이 시린 계절에 양손에 안긴 커피 한 잔처럼 따스함이 배어나는 글이다. 내 글이 노래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노래가 되고, 마음이 아픈 사람에게는 치유의 기쁨을 느끼게 하며, 옛날이 그리운 사람에게는 추억이 되고, 말벗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친구가 되며, 즐겁고 행복한 사람에게는 유지의 배려를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선인들의 옥고(玉稿)처럼 시공을 초월하여 공감할 수 있는 글이기를 희망한다.

자연과 더불어 호흡하고 인간과 역사의 세계를 배우며 사물을 보는 시각과 사유의 폭을 넓히고자 애쓴다. 그것들을 조화롭게 표현하는 지적인 글을 탄생시키고 싶다. 이를 위해 많은 여행을 통한 체험과 다양한 책들을 접해 깊이 있는 생각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수필작법은 특별한 게 없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러하듯, 가는 곳이 어디든 머리 속에는 늘 작품의 대상을 잡는 더듬이가 움직인다. 소재를 얻었을 땐 바로 메모하는 것도 있지만 대개는 그날 밤에 제목과 간단한 내용을 컴퓨터에 저장해 놓는다. 그리고 그 내용과 어울릴만 한 자료를 수집한다.

그런 후 글을 쓰고 고치기를 반복한다. 제목이 바뀌는 경우가 많고 퇴고 후에는 미흡함에 부끄러워 허전한 기분을 감출 수가 없다. 그러면서도 꼭 제목을 먼저 달고 글을 쓰는 버릇은 고쳐지지 않는다. 때로는 깜냥이 되지 못하면서 물덤벙술덤벙 글을 쓴다고 덤빈 것은 아닌지 소심해지기도 한다. 그럴 때면 그만둘까도 싶지만 반거들충이란 소리를 듣는 것이 싫어 생각을 고쳐먹고 더욱 정진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