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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류인혜 |
날짜 : 17-03-23 18:54
조회 : 16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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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중요한가
-제12회 현대수필문학상(1994)을 받으며
황필호(생활철학연구회 대표,『어느 철학자의 편지』발행인)
1. 잘 팔리는 것이 중요한가
출판도 장사다. 책을 펴내는 작가나 출판사는 그 책이 날개 돋친 듯이 팔려서 낙양의 지가를 껑충 올려놓기를 바란다. 이것은 모든 사람의 상정(常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수필가 중에는 잘 팔리는 책을 금기시까지 하는 사람들이 많다. 문학의 다른 장르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서는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독특한 현상이다. 어차피 작가는 글을 써서 밥을 먹과 사는데 말이다. 그들의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수필은 자기고백의 문학임으로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쓰는 글이 아니며,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는 수필집은 자연히 잘 팔리지 않을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있다.
둘째, 수필쓰기는 선비정신을 계승하는 작업이라는 주장이 있다. 그리하여 수필가는 마땅히 옛날의 선비와 같이 “세속에 물들지 않고, 인기에 영합하지 않으며, 높은 경지에 홀로 서서 자기의 줏대를 굳게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일부의 수필가들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독자를 전혀 의식하지 않아야 걸작을 쓸 수 있다고까지 주장하는데, 손봉호는 이런 입장을 반 고흐를 실례로 들어서 설명한다.
반 고흐의 그림들은 당대에는 전혀 인정받지 못했으나 후세에 와서 위대한 명작으로 만인의 칭송을 받는데, 그것은 반 고흐가 그 시대인들의 취향을 무시하고 자기가 원하는 그림을 자기 멋대로 그렸기 때문이다. 그와 비슷하게 그 시대의 독자들이 읽어 주지 않고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글 쓰는 이가 자기에게 옳고 고상하게 생각되는 것을 자기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방법으로 써 놓으면 후대에 가서 위대한 걸작이 될 수도 있다는 주장을 펼 수 있다.
셋째, 요즘 잘 팔리는 수필집들은 대개 유명인의 신변잡기이거나 노골적인 성(혹은 폭력)을 부추기는 것들이며, 이들의 공통된 점은 “알갱이(주제)가 없는 공허한 언어의 나열로 일관”된 미문(美文)과 예쁜 장정으로 출판된다는 것인데, 엄밀히 말해서 이런 것들은 수필집이 아니라 잡문집이란 주장이 있다.
첫 번째 주장에 대하여는 특별한 반박이 필요하지 않겠다. 모든 글은 읽히기 위해 쓰여지는 것이고, 글이 읽히려면 반드시 읽는 사람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읽혀지지 않고 읽을 가지도 없는 글을 써서 활자화하는 것은 필자 자신의 에너지뿐만 아니라 사회 재산의 낭비가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글을 쓰는 사람은 모든 정성을 다 바쳐 글을 써야 하고, 독자들에게 가장 큰 이익을 제공하려고 애를 써야 한다. 독자에게 아무 이익도 줄 수 없는 글은 쓰지 말아야 하고, 특히 발표하지는 말아야 한다. 종이, 잉크 그리고 무엇보다도 독자의 시간을 낭비케 하는 것은 큰 죄가 아닐 수 없다.”
두 번째 주장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과거 선배들이 쓴 글은 단연 ‘시와 수필이 주종’을 이루고 있으며, 실제로 그들은 세인의 관심에 초연한 상태에서 자신의 일에만 고고하게 몰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이 완전히 옳은 것은 아니다. 글이란 마땅히 현실의 반영일 수밖에 없으며, 또한 오늘날은 글을 읽고 쓰는 양반과 밥벌이에만 온 신경을 써야 하는 상놈이 혼재하는 계급사회가 아니다.
또한 반 고흐의 실례에 나타난 천재들의 창작행위를 우리가 쉽게 반박할 수는 없다. 확실히 독자에게 아부하는 글보다는 자신의 발상을 그대로 밀고나가는 것이 후세에 더욱 좋은 글을 남길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역사상 그렇게 흔하지 않았고, 그 정도의 자신을 가지고 글을 쓰는 사람들이 오늘날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다. 예외를 일반적인 원칙으로 만들어 누구에게나 권장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실제로 “천재는 오직 백 년에 한 사람만 나온다.”고 주장한 양주동 선생의 말을 직접 들은 일이 있다. 그러니까 1백 년 전의 춘원이 천재였고 자신이 천재이니까 앞으로 1백 년 이내에는 천재가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유머의 말이겠으니, 우리와 같은 보통사람이 특별사람으로 행세하지 말고, 종교인이 하느님으로 행세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더 나아가서 어떤 사람은 “나는 평생에 꼭 한 편의 대작을 남기겠다.”고 큰소리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에게 나는 최근에 작고한 나운영 선생의 말을 전하고 싶다. <사랑방 중계>의 초대 손님으로 나온 그에게 나는 그렇게 주옥같은 음악을 작곡할 수 있는 비결을 물은 일이 있다(한심한 질문이지만 방송가에서는 또 빼놓을 수 없는 질문이다). 그의 답변은 이런 것이었다.
“여러 곳을 쓰다 보면 가끔 실수로 조금 좋은 것이 나올 수 있습니다.”
평생에 꼭 한 편을 써서 걸작을 남기려는 사람은 절대로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걸작은 다작이라는 노력의 결과로만 나올 수 있다. 그리고 이 점에서는 천재와 비천재의 구별이 없으며, 오히려 우리가 흔히 천재라고 부르는 사람은 그의 온 노력을 창작에만 쏟는 사람이었다.
세 번째 주장은 현재 우리나라 상황에서 분명히 옳은 말이다. 그리고 유능한 작가가 되려면 절대로 잘 팔리는 수필집에 매달리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은 더욱 옳은 말이다.
이러한 주장에는 모든 사람이 자기의 분야를 충실히 지켜야 한다는 제자리 찾기 정신과 역량 있는 작가를 물량적인 유혹으로부터 보호하려는 의도가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실제로 하나의 잡문은 또 다른 잡문을 낳을 수밖에 없는 -다시 말해서 악화가 양화를 축출하는 그레샴의 법칙이 철저히 지켜지고 있는- 우리 사회가 순수한 작가의 양심을 가혹하게 장사꾼들의 이익에 이용하고 있는 실정을 잘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현실로부터 역량 있는 수필가가 잘 안 팔리는 수필집을 내야 한다는 결로는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필가가 더 잘 팔리는 수필집을 내야한다는 결론이 나올 뿐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자기의 글을 읽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 사람들이 게으르고 생각이 깊지 못해서이지 자신의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이다. 착각은 자유가 아니다.
물론 여기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얽혀 있다. 수준이 낮은 독자들에게, 만약 이렇게 주장하는 수필가들의 주장이 옳으면, 우리는 어떻게 흥미로우면서도 내용 는 수필을 쓸 수 있는가? 수필에서는 내용보다 형식이 더 중요한가? 그리고 책의 유통구조를 포함한 현실적인 모순들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수필가는 매스컴을 이용해야 하는가? 그리고 이용해야 한다면 어디까지 이용해야 하는가? 그러나 이 모든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수필가가 잘 팔리는 수필집을 발표해야 된다는 원칙은 영원히 옳은 것이다.
2. 책 제목이 중요한가
나는 한국수필문학진흥회가 졸저《이런 철학으로 살고 싶다》를 제12회 현대수필문학상 수상작으로 결정한 의의를 두 가지로 생각해 보았다.
첫째, 나는 ‘정통 수필가’, ‘진짜 철학자’, ‘과학밖에 모르는 사람’ 등의 표현은 본질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이런 표현들이 우리 사회에서 엄연히 사용되고 있으며, 이런 기준에 의하면 나는 수필가라기보다는 철학자다. 그러나 송구스럽게도 철학자가 이렇게 귀중한 문학상을 타게 되었다는 사실이 우리나라 수필계에 어떤 계기가 될 것이냐는 문제에 대하여는 다른 기회에 말하겠다.
둘째, 이런 수상은 수필가 혹은 수필평론가로서의 나의 작업에 대한 큰 반성의 계기를 주었으며, 나는 이 기회에 내가 지금까지 발표한 수필집에 얽힌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서술하겠다. 결국 나는 좋은 내용의 수필집을 한 권이라도 내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갖는 문제 중이 하나는 제목을 무엇으로 하느냐는 것이다.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제목이 눈에 띄지 않으면 독자들이 외면하고, 또 내용이 좀 조잡해도 제목이 좋으면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땅이 출판풍토이기 때문이다.
나의 첫 번째 수필집 제목은《길 위에서》였다.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길이 끝나서 목적지에 도달하는 상태보다는 길 위의 과정이 더욱 중요하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모든 사람은 삶이라는 길을 걷고 있다. 어떤 사람은 천천히 걷고, 어떤 사람은 부지런히 걷는다. 최선을 다하여 열심히 걷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선사한다.
그러나《길 위에서》란 제목은 좋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출판사에서 수필집 세 권을 낼 때는《삶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모든 사랑은 첫사랑이다》,《사랑은 질투가 아니다》라는 다소 선정적인 제목을 붙였으며,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판매량은 첫 번째 수필집보다 훨씬 높았다. 특히《모든 사랑은 첫사랑이다》는 원래 문고판으로 나왔으며 현재 절판이 되었지만 그 제목에 현혹(?)된 독자들의 구독신청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세 권에 실린 내용과 첫 번째 수필집의 내용 사이에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다음에 나는 ‘여성철학 시리즈’로 《철학적 여성학:꽃과 별의 만남을 위하여》와 《산아제한과 낙태와 여성해방》(편역)에 이어 KBS-TV <여성초대석>의 사회를 보면서 취급한 문제들을 묶어서 책을 내기로 했다. 웬일인지는 몰라도 당시에 나온 수필집의 제목은 굉장히 긴 것이 유행이었다. 결국 나는 출판사의 강권에 못 이겨《울고 있던 그녀가 어느새 주먹을 꼭 쥐네》라는 희한하게 긴 -그래서 저자인 나도 잘 외울 수 없을 정도로 늘어진- 제목을 쓰기로 했다. 그러나 전혀 팔리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 이 책의 내용은 그 전에 나온 어떤 수필집보다 좋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나는 출판사의 건의를 받아드려서 한 번은 이익을 보고 한 번은 손해를 본 셈이다. 역시 세상사는 공평하기 마련이다.
그 후 나는《나는 ‘아니요’라고 말하는 여자가 좋다》,《여자는 왜 결혼하는가》,《나는 뛰는 여자가 좋다》는 세 권이 여성관계 수필집을 냈는데, 물론 그 제목들은 출판사의 권고를 따른 것이었다. 역시 세 권이 전부 -이런 표현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절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러나 나는 이 세 수필집에 관한 한 독자들에게 한 가지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을 설명하려면 우선 이른바 베스트셀러 작가들과 그들을 부추기는 출판사가 공모한 우리나라의 저질 출판풍토 세 가지를 지적할 필요가 있다.
첫째, 요즘에는 ‘신작에세이집’과 ‘대표 에세이’집이 공존하고 있다. 후자는 이미 발표한 에세이집들의 여기저기에 뽑아낸 것을 짜깁기한 것이다. 그러니까 좀 팔리는 수필집 3~4권을 낸 사람든 손도 끄덕하지 않고 출판사 직원들에 의해 다시 2~3의 대표 에세이집을 낼 수 있다. 인기가 있는 사람일수록 더욱 이런 일이 잦다. 이것은 분명히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출판계의 고질병이다. 나는 여러 번이 유혹에도 불구하고 이런 짓은 아직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나ㅢ 여러 수필집에서 비슷한 글이나 동일한 내용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것은 전혀 나의 의도가 아니라 나의 역량 부족인 것이다.
둘째, 요즘 베스트셀러 작가들은 하나같이 내용도 없는 미문(美文)의 대가다. 그저 재미있게만 쓰면 소설이 되고, 아름답게만 쓰면 수필이 된다는 식이다. 나는 별로 미문을 쓰려고 애쓰지는 않았다.
셋째, 요즘 독자들은 무조건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을 원한다. 조금만 어려워도 골 때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독자들에게 영합하다 보니 요즘에는 책에 활자가 꽉 차 있으면 부담이 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쪽의 3분의 1은 백지로 남긴다. 또 종이는 가장 비싸고 두꺼운 종이를 쓴다. 그리고 책이 두꺼우면 또 잘 안 팔린다. 사정이 이쯤 되고 보니, 옛날에 한 권을 만들 수 있는 분량의 원고면 이제 두 권을 충분히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발표한 세 권이 수필집이 바로 그런 것들이다. 결국 나는 출판사 측에 “이거, 너무 속 보입니다”고 말하면서도 “교수님은 원고를 쓰고 장사는 우리가 합니다.”라는 출판사의 상업적 권유를 그대로 받아드렸던 것이다. 그리하여 대표 에세이 풍토와 미문제일주의의 풍토를 물리치려고 무던히도 애쓴 나도 무조건 가볍게 만들어야 잘 팔린다는 상업주의에 굴복하고 만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한 나는 다시 두꺼운 수필집을 내기로 결심했다. 요즘의 얄팍한 에세이집 3~4권을 낼 수 있을 정도의 원고량을 한 권으로 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내용도 정말 알맹이가 있는 것만 출판하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나는 또 다른 출판사에서《자기 철학을 가지고 살려는 사람에게: 삶의 철학, 일의 철학》,《이런 철학으로 살고 싶다》를 출판했으며, 최근에는 나의 대중문화론을 한국의 현역 스타들이 인터뷰를 통해 서술한《누가 최고 스타인가: 대중철학자가 본 한국이 대중스타들》을 출판했으며, 그 중이 한 권이 이번에 수필문학상을 타게 되었다.
나는 수필문학진흥회가 장정이 예쁘고 활자가 선명하고 잘 팔리는 수필집보다는 내용이 있고 정말 문학성이 있는 수필집을 찾으려고 고심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진흥회의 이런 노력은 형식만능주의가 판을 치는 한국 문단에 하나의 도전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번에 수상작으로 결정된 나의 수필집이 그런 수준의 수필집은 결코 아니지만.
3. 형식이 내용보다 중요한가
불행히도 우리는 오늘날 형식이 내용을 지배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텔레비전에 나가서도 무엇을 말하느냐는 것보다는 어떻게 재미있고 듣기 좋고 똑 떨어지게 말하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 여성들의 자기 확인이라는 화장도 마찬가지다. 그저 멋있는 스타일의 안경을 쓰고 멋있는 스타일의 옷을 입고 최신식 머리모양을 하면 가장 완벽한 미인이 된다. 말로는 개성을 떠들지만 실제로는 오직 섹스어필을 위한 몰개성(沒個性)의 길을 걷고 있다.
더 나아가서 요즘에는 교양도 내용의 문제가 아니라 스타일의 문제가 되었다. 어느 젊은 코미디언이나 연속방송극에 나오는 탤런트의 짓거리를 그대로 따라하면 교양 있는 사람이 된다.
물론 내용과 형식의 관계는 물과 기름의 관계가 아니다. 내용이 없는 형식은 형식주의로 빠지고, 형식을 갖추지 않은 내용은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다. 특히 현대에 들어와서는 내용이 형식을 지배하고 형식이 내용을 지배할 정도로 그들은 불가분의 관계가 되었다, 그러므로 내용만 중요하면 철학이 되고 문학이 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그러나 무조건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는 형식제일주의, 형식의 일방통행성, 내용불필요성 등은 아무래도 사람을 지식, 교양, 인격이 아니라 그 사람의 옷차림이나 외모로 판단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판단은 바로 인간을 아메바와 같은 단세포로 취급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나는 신세대의 대담한 노출과 화장법, 솔직한 의사표현,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 식으로 살려는 철학, 그리고 어른이라고 해서 무조건 복종해야 되는 것은 아니라고 믿는 탈권위적인 발상을 사랑한다. 형식과 스타일에 대한 그들의 관심을 존중한다.
그러나 형식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생각은 결코 받아드릴 수 없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형식보다 내용이 중요하고, 눈화장보다는 머릿속에 든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믿는다. 왜? 형식만 존중되는 사회에서는 진정한 만남이 존재할 수 없다. 눈과 눈, 입과 입, 몸과 몸의 만남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도 진정한 만남이 아니라 어긋난 만남(mis meeting)이 될 수 있다. 역시 진정한 만남은 가슴과 가슴의 교류에 의해서만 성립할 수 있으며, 이런 ‘나와 너’의 만남이 아닌 것은 모두 ‘나와 그것’의 만남일 뿐이다.
수필에서 형식은 대단히 중요하다. 글의 길이도 중요하고, 스타일도 중요하고, 문장도 중요하다. 그리하여 어떤 수필가는 “내용보다는 형식이 수필을 수필로 만든다.”고 잘라 말한다.
과연 그럴까?
과연 수필에서 무엇이 중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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