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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김영월 에세이 제8집『내안의 하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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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류인혜 |
날짜 : 15-09-30 07:37
조회 :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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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자꽃 향기와 시적 함축성
- 김영월 에세이 제8집『내안의 하이드』를 읽고
류인혜(수필가)
저자의 여덟 번째 수필집의 제목은『내 안의 하이드』이다. 언 듯 ‘지킬박사와 하이드’를 연상 시켜 책을 받아들자 어서 읽어보고 싶다는 호기심을 자아낸다. 1996년『한국수필』의 등단 작품이「하늘아래 첫동네를 찾아서」이다. 그 역시 호기심을 유발하는 수필 제목이다. 그만큼 저자의 작품들이 문학적 장치가 우월하다는 전제로 독자에게는 기분 좋게 글을 읽어가는 시작점이 된다.
저자는『시와 산문』에서 시로 등단하여 일곱 권의 시집을 내었다. 등단 이후 이십 년 동안 시와 수필을 병행하여 꾸준히 써왔기에 전체를 합하여 열다섯 번째 작품집이 된다.
작품만 써온 것이 아니라 문단 활동도 꾸준했다. 한국문인협회과 국제펜클럽 회원이며 한국수필가협회의 감사이다. 한국수필작가회의 18대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문인협회 도봉지부의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자가 작품을 쓰고 사회적 의무감으로 봉사를 하는 생애에서 중요한 부분은 그 모든 행함에 기독교 정신이 밑자락에 깔려 있는 점이다. 작품의 메시지를 이루는 요소가 되는 인생관에서 그런 기독교 정신의 확장과 인간에 대한 신뢰는 매우 긍정적인 요소가 된다. 특히 작가의 내면이 그대로 드러나는 수필작품에 있어서 가장 희망적이 재산인 것이다.
『내 안의 하이드』에는 긴 수필과 짧은 수필이 번갈아 수록되었다. 모두 스물다섯 편씩 오십 편의 수필을 읽을 수 있다. 그 편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번갈아 길고 짧은 글을 읽도록 편집한 이 수필집에서는 무더운 여름의 중심이 되는 때에 발간된 수필집 편집의 묘미를 찾을 수 있다. 남을 먼저 배려하는 저자의 평소 생활철학대로 읽는 사람에 대한 작은 배려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짧은 수필은 저자의 머리말에 나온 표현에 의하면 ‘시적 함축성을 가미한 아포리즘 수필’이라고 했다. 그 간단한 수필은 시와 수필을 병행하여 써온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수많은 상념의 가지를 쳐내며 필요한 요점만 뭉쳐 하나의 명제만 뚜렷이 부각되는 수필의 정수이다. 그렇게 시적 함축성이 가미된, 치자꽃 같은 문향을 풍기는 수필이 저자가 이 책에서 지향하는 도착점이다.
이제 설렘과 같은 호기심을 안고 김영월 수필가의 여덟 번째 수필집을 읽어 나간다.
제 1부는 ‘까마귀 나는 밀밭’이다. 제 2부 ‘내안의 하이드’, 제 3부는 ‘토지길, 물길따라’로 부제가 붙어 있다. 미련하게 보이지만 수필제목들을 다 적는다. 음미하며 읽어볼 필요가 있다.
노을/예술혼/옥수수/무위자연/괴로운 사나이/생명의 가치/고통/복원력/요주의 시대/육신의 생각/무욕/작은 이들의 벗/짝짓기/감정의 위대함/반 고흐/까마귀 나는 밀밭
지중해의 통곡/레미제라블/머무르고 싶은 순간들/자아의 신화/시간/내안의 하이드/매미/아름다운 마무리/별에서 온 그대/승화/메모판/연꽃 우산/메르스 감옥/부안, 문학의 향기를 찾아서/즐거운 공동묘지/노녀의 성
스마트 폰/감정 조절하기/디.엠.제트 D.M.Z/병영 생활/병/병마는 복병처럼 오다/인터스텔라/나의 첫 주례/무와 유/충무공의 숨결을 찾아/전쟁 없는 세상/평화 전망대/천경자/토지길, 물길따라/초코파이 선물/황야에서 길로/아름다운 노부부/출애굽의 은혜
수필의 내용을 이루는 소재들은 유명 화가의 그림을 보고,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면서 또 여행 중에 얻은 자료들이다. 세월호 사건, 지도층의 성범죄, 메르스 확산 등 최근에 일어난 사회적 문제에도 시선을 집중한다. 작은 에피소드를 놓치지 않고 세밀하게 관찰하여 개인의 생각을 점차로 확장시켜 모두의 관심사로 풀어 놓고 있다. 모난 것이 없는 일반적인 시선으로 긍정의 마음을 이끌어 오는 노련한 글 솜씨다.
모든 작품마다 소중한 메시지가 담겨 모두 소개하고 싶지만 오십 편의 수필 중에서 짧은 수필 몇 편과 이제 칠순을 바라보는 저자가 살아온 인생의 결과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문장들을 몇 부분만 소개한다. 그리고 짧은 수필은 전문을 올린다.
김영월 에세이『내 안의 하이드』에 첫 번째 실린 작품은「노을」이다.
아파트 창문을 통해 우주의 제 집으로 변함없이 돌아가는 해를 바라본다. 새털구름이 얕게 깔린 하늘은 주황빛에서 능금빛으로 달개비 꽃잎으로 곱게 물들어 간다. 짧은 단막극을 감상한 듯 마지막 이별의 모습은 여운을 남긴다.
인생의 노을에 들어선 내게 마지막 한 장의 그림을 어떻게 남기느냐가 화두가 된다. 나의 평생을 통해 가슴에 그려진 하나의 노을 빛. - 「노을」전문
다른 설명이 없어도 새털구름이 얕게 깔린 하늘의 노을 바라보고 있는 저자의 심경이 그려진다. 독자들을 여러 번 되풀이해서 읽어볼 필요가 있다.
또 다른 짧은 수필이다.
루마니아의 서푼차라는 산골 마을에 즐거운 공동묘지가 있다.
고인들이 산 자들에게 교훈을 주는 묘비명이 생전의 그림 묘사와 시구가 적혀져 있어 웃음을 자아낸다. 착하게 산 사람은 좋은 의미로, 나쁘게 산 사람은 나쁜 의미로 솔직하게 고인의 생애를 압축한 묘비명이 수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을 끈다.
나는 죽어서 어떤 쪽의 묘비명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될 수 있을지를 곰곰이 생각하게 한다. - 「즐거운 공동묘지」전문
다른 이야기지만 국립현충원에 가면 이름이 적힌 팻말 앞의 비석에 적힌 글을 읽을 수 있다. 대강 고인을 기리는 가족들의 절절한 마음을 담은 내용이다. 언제던가 그 글들을 읽으며 복받치는 서러움에 생전 보지도 못한 사람들의 묘소 앞에서 눈물을 흘린 적도 있다. 우리가 아는 극작가 죠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은 유명하다. ‘우물쭈물 살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묘비명은 좀 더 철학적이다. ‘일어나지 못해서 미안하오.’ 소설가 스탕달은 ‘살았다, 썼다, 사랑했다’라는 묘비명을 남겼다고 한다.
저자는 자신의 묘비명에 대해 깊이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수필을 읽는 독자들도 어떤 묘비명을 남기는 것이 인생을 한마디로 압축할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할 것이다. 갑자기 궁금해진다. 묘비명은 누가 쓰는 것인가?
아직 묘비명을 쓸 단계는 아니고, 갑자기 죽음에 이르는 급성 심근경색이라는 병마를 이겨낸 저자의 생각을 읽어 본다.
갑작스런 심근경색으로 죽음의 문턱에 가 보았다. 겨우 의식을 회복하여 깨어보나 그동안 내가 어디에 다녀왔는지 궁금했다.
아주 캄캄한 심연 같은 곳.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무의 세계에서 빠져 나온 것으로 여겨진다.
살아 움직인다는 것은 밤하늘의 반딧불이가 날아다니는 것처럼 아주 미미한 작은 빛으로 떠돌다가 가는 것. 무의 심연에 그저 물거품으로 있다가 눈 깜박할 사이에 사라져 버리는 생명이라는 존재, 그 허망함이었다. - 「무無와 유有」전문
언제 어떤 이유로 생을 마감하게 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날마다 감사하면서 사는 여유를 저자는 이미 터득했다.
어처구니없는 세월호 침몰 사건을 통하여 더욱 배타는 일이 무서워지고 배의 구조에도 관심을 갖게 된다. 무엇보다 대형 선박의 안정성을 위하여 평형수가 제대로 배 밑바닥에 채워져야 복원력을 유지한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우리의 인생도 항해하는 가운데 마음의 평형수를 잘 채워놓지 않는다면 언제라도 고난 앞에서 기우뚱하고 절망으로 빠져드는 상황을 맞이하리라. 나를 지금까지 지탱해온 마음의 복원력은 기독교 신앙과 문학이 아닐 수 없다. 얼마 남잖은 여생이지만 세월호의 억울한 희생자들을 생각하며 덤으로 여기고 감사하며 나누는 삶을 이어가고 싶다.
- 「복원력」에서
하루를 마감하고 잠자리에 드는 순간을 맞이할 때 나는 나를 여기까지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신 주님께 감사 기도를 저절로 올리게 된다. 그리고 내일 아침도 기척 같은 하루를 맞이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죽음이 멀리 있는 것 같지만 나의 일상과 언제나 함께하는 것임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복잡다단한 문명 속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다. - 「육신의 생각」에서
사랑의 감정은 바로 우리를 현재에 살도록 하고 안전한 삶에 대한 생각은 우리를 미래에 살도록 만든다. 그러나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삶이 과연 행복한 것인가를 묻는다. 감정을 순간적이라고 저주하면서 현재를 부정하는 사람들, 그래서 현재에 살지만 과거나 미래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행동 준칙은 선과 악이다. 반면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의 목소리에 충실한 사람들이 따르는 행동준칙은 좋음과 나쁨이다. - 「감정의 위대함」에서
문학작품에서도 작가가 현실에서 겪는 고난이나 좌절감, 실망감에서 창작을 통하여 행복의 문으로 인도하여 힐링에 이르게 된다. 예술 작품 속의 주인공이 현실 속에서 불완전하고 비참하지만 작가의 마음에서 상처를 딛고 다시 태어나고 멋지게 승화될 때 감동을 얻는다. 이런 작가의 특권을 사랑하며 나는 오늘도 원고지에 매달리는 행복감을 느낀다. - 「승화(昇華)」에서
인간의 마음속에 선악이 공존하는 가운데 누구나 그릇된 성적 일탈의 유혹은 부인할 수 없다. 다만 그러한 충동을 어떻게 조절하느냐의 문제는 순전히 개인의 몫인 듯싶다. 스스로 강한 절제력을 키울 수 있도록 부단한 인격 수양에 맡기지 않으면 안 되리라. 거센 강물이 하류에 이를수록 잔잔한 모습으로 유유히 흘러가듯이 노년의 성도 아름다운 정신의 꽃으로 승화되어 나가도록 철저한 자기 관리가 요구된다. 그러나 길거리에 나서면 여전히 매력적인 차림의 여인들에게 눈길이 가고 아내에게 팔을 꼬집히는 창피를 당하니 참으로 한심한 일이 아니랴. - 「노년의 성」에서
저자는 이렇게 여러 경로를 거치면서 ‘내안의 하이드’를 다스리는 방법을 찾아나가는 길을 제시한다. 사람들이 일상에서 경험하는 당연한 이야기를 당연하지 않도록 높은 정신의 결정체로 만들어 내고 있지만 결국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그 당연한 결론이 저자의 수필쓰기에서 장점이다.
김영월 에세이『내 안의 하이드』에서 가장 압권은 짧은 수필「초코파이 선물」이다. 초코파이는 우리 국민 누구나가 좋아하고, 나아가 세계인이 좋아하는 간식이다. 군대에 들어간 젊은이들이 종교 활동을 위해서 교회로 가는 이유가 예배를 드리고 나면 초코파이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들었다.
저자의 중학교 때 선생님이 보내주신 선물을 풀어놓고 모두 같이 먹어보자.
내가 사는 지역에서 한국문인협회 지부장이 됐다는 소식을 듣고 중학교 때 여 선생님이 초코파이 한 상자를 우체국 택배로 즉시 보내 왔다. 이걸 먹고 힘을 내라는 말씀이다. 전화 통화에 해말간 웃음을 터뜨리는 외할머니 같은 스승님의 음성에서 사제지간의 정이 물씬 풍겨졌다. 어떤 값비싼 선물보다 귀하게 느껴지는 마음을 한 입 베어 물고 있다. - 「초코파이 선물」전문
해설을 붙이는 게 사족처럼 느껴지지만 좋은 이야기는 서너 번 되풀이하는 것이 즐거움에 대한 예다. 칠순을 바라보는 저자의 중학교 때 스승님이라면 망구(望九), 구순이 가깝거나 넘은 분이다. 그 외할머니 같은 분이 쌈지돈을 털었다. 그리고 늙은 제자에게 전화를 걸어 해말간 웃음으로 문학단체의 장이 됨을 축하를 해주셨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 수십 년 동안이나 서로 교류가 있었다는 말이다. 안부를 묻는 정도가 아니라 선물을 보내왔다. 저자가 인복이 많은지 그 스승께서 훌륭한 제자를 두었는지 우리 모여 앉아서 초코파이를 나누어 먹으며 토론이라도 해야 한다.
김영월 수필가의 여덟 번째 수필집을 읽으며 행복한 독자가 되었다. 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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