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쓰기

임 승 렬

…수필은 분명히 정해진 틀이 없다고, 그러면서도 넘치거나 모자라면 누구나 고개를 갸웃거린다. 마찬가지로, 수필에 쓰이는 어휘가 특정되어 있지 않지만 속스러운 문장은 천격인양 내리보게 된다. 어디까지나 수필을 선비문학으로 보는 까닭이리라.

들어갈 때는 남을 놀라게 말지며, 나올 때 생각을 흐리게 말지다. 아무도 몰래 슬그머니 들어가거나, 문을 열면 산이 보이듯 서두를 열었다가, 산철쭉이 산자락을 뒤덮을 때처럼 빛깔을 남기거나, 못내 아쉬워서 책을 놓지 못하게 결미하는 것은 수필의 상품(上品). 그 상품 닿기가 어렵거든 꾸밈없이 들어가 꾸밈없이 나오는 일이거늘 그러면 중품(中品)이요, 시끄럽게 시작해서 북을 치며 끝남은 영락없이 하품(下品)일지다.

언제부턴가 수필은 ‘정의 미학’이라고 수필의 3요소로 정(情)·사(事)·이(理)·서정성·서사성·설리성을 치지만 그 중에서도 정이 으뜸 바탕일 터다.

이상은 내가 글을 쓰다 가끔 대보는 잣대지만, 잣대는 한낱 잣대일 뿐이다. 문학이 사람 사는 이야기일진대, 수필 또한 그 바운더리를 벗어날 수는 없을 터. 저마다의 삶을 엮어나가는 베틀에 앉아, 감히 때깔 고운 상품은 바랄 수 없고, 하품이나 면하고 싶지만 그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처음 글쓰기를 시작할 때 흔히 듣는 말이다.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며 많이 쓰란다. 읽고 생각해야만 쓸 수 있는 건 너무나 당연지사. 단, 열 권의 책을 한 번씩 통독하는 쪽보다, 좋은 문장의 글 하나를 선택, 열 번쯤 읽어 낸 뒤, 나아가 필사(筆寫)를 한다면 어떨까싶다.

어쨌든, 원고지 앞에 앉기 전,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 설정을 한다. 그 무엇이 ‘집을 짓는 터’라면 터를 닦은 뒤에 주춧돌을 놓는다. 기둥을 세우며 대궐과 오두막이 판가름나지만, 반드시 엥그렁뎅그렁하다고 좋은 집이라 할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내실(內室)과 외실(外室)이 뚝 떨어진, 칸새가 크고 법도가 지엄한 공간보다 등잔불을 마주한 그런 곳이 마음 편할 듯하다. 가족이 투가리 된장 한 가지로 저녁을 먹는다 해도 오손도손 잠자리에 들 수 있는 초가삼간 말이다.

격조 높은 수필권(隨筆圈)에는 미처 들지 못하여도, 알뜰살뜰 살아가는 풋풋한 이야기는 필경 읽어주는 독자가 있을 터, 내가 일궈낸 글밭을 누군가와 함께 거닐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글 쓰는 이의 더 없는 기대치가 아닐는지…

원고지를 알고부터 적지 않은 해와 달이 갔지만, 나의 글감이란 것은 여전히 잘잘한 삶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크게 염려는 하지 않는다. 때로, 손녀의 ‘노랑저고리 다홍치마’와 같은 아주 예쁜 ‘보석’을 만날 수도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