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복 희

수필가란 이름표를 달고 글을 써 온 지 어언 10여 년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습작기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다시는 글을 쓰지 못할 것처럼 막연함에 부딪칠 때가 있다. 그러면서도 단념하지 못하고 글쓰기에 매달리는 것은 수필을 나의 영원한 길동무로 삼고 싶기 때문이다. 

결혼 전까지만 해도 문학은 내가 범접할 수 없는 특별한 영역으로만 여겼다. 그러던 내가 글을 쓰며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전적으로 낙농인의 아내가 되어 농촌에다 뿌리를 내리고 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예나 지금이나 젊은이들이 농촌을 기피하는 가운데 불모지였던 낙농에 꿈을 건 남편을 따라 목가적인 풍경을 떠올리며 감상적으로 농촌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 삶은 내가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때부터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을 친한 친구에게 하소연하듯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슬픔과 고통을 글로 풀어 내다보면 어느새 마음의 상처가 아물고 새살이 돋아났다.

수필은 아무런 형식도 없이 보고 느낀 것을 붓 가는 대로 쓰는 것이라고 알고 있던 나는 가끔 일기의 한 부분을 골라서 농민신문, 잡지 등에 투고하여 독자란에 발표를 했다. 그러다가 늦은 나이에 이르러 수필공부를 하게 되면서부터는 함부로 글을 써 내지 못하고 있다.

수필은 진실을 바탕으로 작가의 인생관, 자연관, 가치관, 취미, 체험 등에 자기의 느낌과 생각을 붙여 문예적으로 가식 없이 쓴 교술 문학이며 엄연히 형식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어떤 문우는 글짓기를 집짓기에 비유한다. 주춧돌로 시작해서 마지막 기와 한 장까지 심혈을 기울여야 튼튼한 집이 완성되는 것처럼 글도 주제와 소재는 물론 단어 하나도 적당한 자리에 놓아야 쉽게 무너지지 않는 글집이 된다고 했다. 그런데 멋모르고 발표했던 내 글들은 부실한 재료들로 두서없이 엮어져 실비에도 비가 새고 미풍에도 흔들리는 날림이었다.  

수필의 깊이를 알아갈수록 글쓰기는 더욱 어렵기만 하다. ‘좋은 글이란 독자가 쉽게 이해하고 공감하며 감명을 받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메시지가 담겨 있어야 한다’ 는 강사님의 말씀이 이해는 가지만 글에 적용하기란 쉽지가 않다.

그래서 글을 쓰는 사람의 문장 수련은 송나라의 구양수(歐陽修)가 말한 삼다의 길에 있다고 생각되어, 많이 읽고(多讀), 많이 지어 보고(多作), 많이 생각해 보는(多想量)것을 염두에 두고 노력할 뿐이다. 그리하여 나의 농촌의 삶을 문학으로 승화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농촌의 삶 자체가 문학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가축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겨우내 꽁꽁 얼어붙었던 땅에서 잔잔하게 봄을 연 풀꽃들을 보며 감동을 받고, 풀과 나무, 뜰에 찾아드는 새들과 곤충들, 풀잎에 맺히는 이슬방울까지 함께 어우러지는 자연 속에서 나 자신도 자연의 일부임을 깨달으며 문학의 정서를 키우고 있다. 그 속에서 인생을 찾고 정을 느끼며 독자들에게 동감을 구하는 글을 쓰는데 주력을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내 글은 자칫하면 신변잡기에 머물 수가 있다. 어느 평론가의 말에 의하면 신변잡기에서 벗어나려면 특별한 경험을 겪지 않고는 탁월한 글이 되기 힘들다고 했다.

나의 수필쓰기는 일상을 살아가다가 특별한 체험이나 느낌을 받는 일이 생기면 지체 없이 주제를 떠올리며 제목을 설정한다. 주제에 적합한 소재를 구하고, 오랜 동안 구상을 하여 새벽 시간을 이용해 글을 엮어 놓는다. 그 시간은 하루의 피로를 풀고 나서 나만의 시간 속으로 빠져들기 쉽기 때문이다. 그렇게 얼추 글을 작성한 후에는 수없이 퇴고를 한다. 그런 다음에는 1차적으로 남편에게 읽게 해 좋은 반응을 보이면 다시 가까이 지내는 문우나 문단의 대선배님께 보여서 조언을 구하고 최종적으로 첨삭하여 수필 한 편을 완성짓는다. 그렇게 했다고 해서 반드시 수작(秀作)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독자가 쉽게 이해 할 수 있고, 문맥이나 문법에 어긋나지 않으며 메시지가 들어있는가를 재차 확인하려는 것이다. 시불(詩佛)이라고 일컫는 백거이도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글을 쓰기 위하여 자신의 글을 밭가는 농부에게 읽혔다고 하지 않는가. 

수필은 또 해박한 지식과 심오한 사상, 풍부한 상상력, 뚜렷한 개성, 뛰어난 해학 등을 필요로 한다. 그러한 재질을 두루 갖추지 못하고 학구적이지도 못한 나로서는 현학적인 중수필을 쓰기엔 역부족이다. 몽테뉴는 그의 ‘수상록’에서 ‘나 자신이 바로 내 책자의 자료이다’ 고 했다. 내 주변에서 참신한 글감을 찾아내 나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경수필로 표현하고자 한다.

산골짜기의 잔설마저 녹이는 봄이 오면 까치둥지를 이고 오롯이 서 있는 나목에 관심을 갖게 된다. 튼튼한 원줄기를 바탕으로 하여 앙상한 가지들이 오묘하게 조화를 이룬 나무 꼭대기에 밤송이처럼 달려 있는 까치집에는 겨울 찬바람을 견뎌 낸 까치들이 집을 보수하고 신방을 차리는 따뜻한 정겨움이 담겨 있다.

문장 수사에 대하여 힘이 미치지 못하는 나는 지적이고, 화려한 문장을 구사하지 못한다. 아름답게 꾸미지 못해 건조한 글이지만 그 속에서 독자들이 따뜻한 온정을 느낄 수 있는 까치둥지 하나 발견할 수 있도록 애쓰고 있다. 

수필은 진실된 자기 생활의 고백인 만큼 길동무가 되어 주는 한 나의 삶은 외롭거나 쓸쓸하지 않을 것이다. 나 자신을 정화시키며 희로애락을 쉼 없이 풀어놓다보면 언젠가는 독자들이 재미있게 읽고, 심금을 울릴 수 있는 글도 쓰게 되지 않겠는가. 수필 공부하던 초심으로 글쓰기의 수련을 계속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