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한 희열

심 정 임

수필을 가까이 한지도 어언 십 년이 되어갑니다. 적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아직도 글쓰기가 두렵고 힘듭니다. 처음에는 내 생활에서 느낀 것을 글로서 표현하면 되는 것인 줄 알고 덤벼든 것이 수필에 눈이 떠진 후로는 그것이 얼마나 겁 없이 달려든 것인지 부끄러웠습니다.

수필 쓰기를 안이 하게 생각했던 것이지요. 지금도 다수의 사람들은 수필을 쓰기 편한 작문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작품에서도 영향이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산문에 접하기가 쉽다는 경우에서도 기인된다고 생각이 듭니다. 전문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현장에서 겪은 여러 체험담을 재치 있는 글 솜씨로 재미있게 쓴 책들이 베스트셀러에 오릅니다. 이것은 수기형태의 글이지 진정한 수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수필은 엄연한 문학의 한 분야를 차지한 장르로서 글의 내용이 문학성을 담고 있어야합니다. 많은 수필가들은 이 문학성이란 신호등에 걸려 글을 쓸 때마다 고심하고 있습니다. 과연 내 글이 파란 신호등이 켜져 문학성이란 건널목을 잘 통과 할 것인지에 매달려 힘겨운 글쓰기를 합니다. 나 역시 이 부분에 와서는 제일 힘들고 어려워서 글쓰기에 쉽게 접근을 못 할 때도 많았으나 가슴에 회오리바람이 불면 다시 펜을 잡게 되니 졸문이라도 생산하게 됩니다.

저는 글쓰기에 필요한 주제나 소재는 주로 주위에서 찾습니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부조리한 사건들과 가끔씩 단비처럼 내리는 미담이 나의 감성과 이성을 자극시키면 때를 놓치지 않고 메모해둡니다. 때론 천진스런 아가의 얼굴에서 인간의 꿈을 느끼는가 하면 노숙자들의 우울한 뒷모습에서 상실된 삶의 비애를 느끼기도 합니다. 매일 같이 일어나는 일상생활에서, 또는 여행에서 느껴지는 색다른 감정을 발견하고 낮선 곳에서의 사색으로 하나의주제가 떠오르면 환희를 느낍니다. 그 주제를 끈질기게 잡고 늘어져 소재를 구하고 자료를 수집하여 주제를 확실하게 살리면서 글을 완성시킵니다.

구르는 낙엽 한 잎에서 외로움을 느끼기 보다는 화려한 생을 마감하고 미래를 약속하며 흙으로 돌아가는 자연 순환의 귀소본능을 생각해봅니다. 생각의 발상을 전환시켜보고 부정에서 긍정으로, 추함에서 아름다움을 찾으려는 것이 글쓰기의 목적이 아닐까요.

또한 내가 평소 관심 있던 어떤 사물이라든가 생각들을 꼭 써보고 싶은 것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미리 메모해 두었다가 각기 파일을 만들어 놓습니다. 그런 다음 수시로 신문기사나 책, 관람, 여행 또는 일상에서의 느낌 등 을 메모하거나 스크랩해서 각각의 파일에 넣어 놓습니다. 자료가 모아졌다고 생각되면 조용한 시간에 그것들을 다시 읽고 적당한 것을 소재로 삼아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이때는 그 때 그때 느낀 메모 쪽지가 많은 도움을 줍니다. 이러한 경우는 글이 완성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나 자료들이 확실하여 쓰기는 비교적 쉽습니다.

소재를 찾고 자료가 모아지고 주제를 설정해 놓고도 글이 써지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나의 능력이 이것들을 잘 짜 맞추어 좋은 집을 지어야하는데 뜻대로 되지 않고 너무 감정적으로 써졌거나 보고서처럼 글이 나열되면 그것은 나의 의도가 아니어서 답답하고 한계가 느껴져 참담해집니다. 이럴 때는 쓰기를 미루고 며칠 후에 다시 꺼내보면 삭제할 곳과 첨가해야할 곳이 눈에 들어오고 문맥도 정리가 됩니다.

초고는 습작노트에 육필로 쓰고 한 두 번의 퇴고를 거친 후에 컴퓨터에 올려 수시로 퇴고를 해서 독자인 남편한테 먼저 평을 받아봅니다. 처음에는 무척 쑥스러웠지만 내가 발견하지 못한 오자나 문장의 어색함과 주제의 선명도에 대해 평을 해 주어 도움이 됩니다.

깊은 밤, 사위가 고요하고 생각이 맑아지면 집중력이 강화되고 글을 쓰는 순간에는 자신에 좀 더 솔직해지며 나를 되돌아보게 됩니다. 나는 가끔 왜 내가 글을 쓰는가, 수필이 나에게 무엇인가를 생각해 봅니다. 문학소녀였다는 치기로 글을 쓰는 것인지, 옆 사람이 쓰니까 나도 써보는 것인지, 곰곰 생각해 봅니다. ‘쓰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극한의 생각까지는 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옹달샘에 물이 고이듯 가슴 저 밑에서 보글보글 괴어오는 이야기들을 바가지로 퍼 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것들이 좋은 글이든 나쁜 글이든 백지위에 써놓으면 오랫동안 나와 함께 이야기를 합니다. “해가 기운다고 안타까워 하지 마” “숲 속으로 가봐 친구들이 기다려” 조근 조근 알려 줍니다. 어떤 때는 서로의 생각이 맞아 아주 기뻐하며 소리칩니다. 결국 나는 나의 마지막 대화자로 글쓰기를 택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작품들이 독자들도 같이 공감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혼자만이 그렇다고 느끼는 것은 자아도취에 지나지 않습니다. 독자와 함께 교감할 수 있는 글이 된다면 나는 더 없이 행복해 질 것입니다. 단어 하나를 선택하고 문장 하나를 만들기 위해 입안이 메마르고 눈까풀을 비며가며 힘겹게 작업을 하지만 마지막 펜을 놓는 순간의 희열로 그 고통은 반전됩니다.

이러한 고단한 희열로 나의 글쓰기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