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 나선 길 

김 자 인(김인자) 

수필은 자신만이 가꾸어온 삶의 발자취를 엮어내는 글이다. 그 사람의 사상과 감정의 표현인 동시에 안으로 침잠되어 있는 생각들을 두레박으로 물을 퍼 올리듯, 내 안의 우물에서 자신을 퍼 올리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를 써야 하기 때문에 참된 나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본인의 이야기라 쉽게 쓰여질 것 같지만 문학 장르 중에 가장 힘든 것이 수필쓰기라는 생각이 든다. 한 편의 글이 탄생하기까지는 보이지 않는 갈등과 싸워야 하고 심한 산고의 고통을 인내하며 감수해야 한다. 수필을 써 본 사람들은 알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쉽게 느껴지면서도 어려운 것이 수필쓰기인 것을.  

어느 겨울날 강촌에 갔다가 구곡폭포에서 빙벽 타는 사람들을 보았다. 얼음 위에 매달려 아찔한 순간을 버티고 있는 그들은 외로운 자기와의 싸움을 하고 있었다. 외줄 하나에 자기 몸을 엮어 빙벽을 타고 있으니 얼마나 긴장하고 있을까.

글 쓰는 일도 혼자서 해나가야 하는 자기와의 싸움인 것이다. 혼자만의 시간에 잡다한 생각을 떨쳐 버리고 본인의 이야기를 외줄낚시에 건져 올려지는 고기처럼 낚아 올려야 한다. 어쩌다 짧은 순간의 생각들을 놓쳐 버리면 다 건져 올린 고기를 놓쳐 버리는 격이 되어 아쉬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원고지 한 칸 한 칸 메우던 일도 이제는 컴퓨터에 앉아 워드를 치니 한결 쉬워졌다. 그러나 글 쓰는 일은 능력과 재능이 있어야 한다. 수필을 쓰기 전에 ‘먼저 인간이 되어라 무엇보다도 수필처럼 살아야 한다’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지만 아직도 나는 그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다.

내가 처음 글을 쓸 때는 아무런 겁도 없이 시작을 했다. 책을 좀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무언가 늘 쓰고 싶다는 생각만으로도 가능할 것 같은 교만이 있었다. 일기를 쓰다가 편지를 쓰다가 수필에 이른 오늘의 나를 보면 전혀 딴 세상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부족한 것이 많은 나는 무언가 늘 배우고 싶다는 욕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취미생활로 이런저런 것을 기웃거리며 배워 왔으나 내가 생활하는데 조금씩 응용해서 쓸 뿐, 어느 줄도 잡지 못하고 몸만 바쁘게 지냈다.

그러나 글 쓰는 일은 평생 내가 매달고 다녀야 할 것 같고, 숙제인 것 같다. 혼자서 고독함 속에 내가 나를 야단치고 달래고 다스리고 담금질해도 늘 미완성된 그림, 언제인가 한 편의 글을 써 놓고는 혼자 좋아서 회심의 미소까지 지었던 철없음이 쑥스럽기만 하다.  

등단 후에 내 글이 활자화되어 지면을 채우고 나서, 그때서야 눈에 보이지 않던 티가 보이고 영글지도 않은 글을 조급하게 선보인 것 같아 부끄러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선배들의 말을 들어 보면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멋모르고 쓸 때가 오히려 좋았다고 한다. 알고 보면 더 어렵고 힘든 것이 수필쓰기이어서 되돌아가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벌써 이만치 와 버린 길을 돌아서 가기도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감동과 감탄의 글이 가슴을 울리고, 정말 잘 썼다 라는 느낌이 드는 글을 만나면 펜을 놓고 싶어진다. 능력부족 한계의 외줄에서 나를 내려놓고 싶은 것이다. 

언제인가 따뜻한 언어들이 살아 숨쉬는 감동적인 수필을 읽었다. 그 뒤에 남는 여운은 지금도 내 가슴을 따뜻하게 지피고 있다. 사는 일에만 급급하다 보면 자신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살 때가 많은데, 그럴 때마다 문득 떠오르는 것이 또 다른 나를 찾아 나서는 것이다.

그 길에는 내가 미처 알지 못 한 채 살아온 인생살이의 깨달음이 있어 나를 달랜다. 맑은 영혼의 소리들이 나를 인도하는 느낌도 든다. 수도자는 아닐지라도 수도자의 자세로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들이 마음을 여미게 하는 것이다. 시도 좋고, 소설도 좋지만 맑은 물에 마음을 헹구고 겸허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우러나는 수필은 자신을 돌아보며 깨달음을 얻는 일이라 오늘도 나는 그 길에 서서 줄을 놓지 못한다. 아니 놓칠세라 빙벽에 매달린 사람처럼 꽉 잡고 매달려 있다.

이 줄을 잡고부터 내 삶은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길을 가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무언가 스치는 것이 있으면 관심을 갖게 되어 소재를 삼고 글을 쓰기 시작한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쓰다보면 어느 새 또 한 편을 엮었다는 자신만의 작은 만족감이 인다. 조금씩 철들고 부자가 되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러나 끝마무리에 매달리는 시간이 만만치 않다. 그래서 요즘도 좋은 수필을 만나면 끝마무리를 어떻게 했는지 살펴보고 관심을 두고 있다.

나의 지도 교수님은 고정관념을 깨라, 틀에서 벗어나라 라는 말을 많이 하셨다. 문우들에게서도 이런 말은 많이 들었다. 그러나 자동차는 운전대를 조금만 돌리면 좌회전이 되고 우회전이 되지만, 오랜 시간 지녀온 성격과 내 생활을 돌리는 일은 자동차 운전하는 것보다도 더 어렵고 힘들다. 

수필을 쓰면서 느끼게 되는 작은 위안은 나이 들어서도 공부하고 배우는 자세와 마음의 평수를 조금씩 넓혀 간다는 사실이다. 편견의 가시가 있던 것도 조금씩 너그러워지고, 상대방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수용하는 만큼, 마음의 평정을 찾게 되는 이치라 할 수 있다. 글의 소재를 잡고 있으면 격한 마음도 정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수필은 그 사람을 대신한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거울이라 할 수 있기에 살아가는 일이 늘 조심스럽다. 체험을 바탕으로 써야 하는 문학이기에 항상 자신을 돌아보며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소박하게 다가가고 싶다. 고도의 테크닉과 함축성을 요하는 글쓰기의 경지에 아직은 도달하지 못했어도 나름대로 층층 계단을 오르내리는 삶의 느낌들을 엮어 정이 묻어나는 글을 쓰고 싶다. 도드라지지 않고 은은한 향을 지니면서 겸손했으면 좋겠다. 거기에 감동과 문학적 가치가 가슴으로 전해진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삶이 내 뜻대로 되지 않듯이 글도 생각했던 대로 잘 써지지 않을 때가 더 많지만, 어느새 보이지 않는 끈이 나를 묶어 놓고 있는 수필쓰기는, 그래도 나를 알고 나를 찾아나서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