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연 홍

노래를 좋아하다 보니 음악은 내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그래서 나의 수필은 자연 음악에 관한 것이 소재가 된다.

나의 등단 작품인 <합창>은 40여 년간 합창을 하면서 느낀 것을 작품화한 것이다. 화음(和音)이 맞아야 하는 합창(合唱)처럼 우리의 삶에서도 이웃과 서로 양보하여 조화(調和)를 이루는 마음들을 수필 <합창>에 담고자 하였다. 일테면 합창의 맛과 멋을 생활에서 찾아내어 작품 속에 형상화시키려고 한 것이다.

집에서 빨래나 설거지를 하면서, 기쁘거나 화가 날 때조차도 나는 노래를 부르면서 음악과 더불어 살고 있다. 오죽하면 자면서까지 노래를 불러서 남편이 나를 깨웠겠는가. 이렇듯 나는 음악 속에서 살고 있으며 또한 음악과 관련된 수필을 쓰고자 한다.

일상 중에서 문득 감동으로 다가오는 음악과 내 생활이 공감을 일으킬 때, 나는 글 쓰고 싶은 의욕이 생긴다. 그때부터 내 의식은 온통 글의 소재찾기에 골몰한다. 우연히 길을 가다가 레코드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마음에 와 닿는 음악을 듣고는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다른 이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지나쳐 버릴 음악이지만 걸음을 멈추거나 천천히 걷거나 더 듣고 싶으면 가던 길도 되돌아가서 듣곤 한다.

어려서부터 결혼하기 전까지 나는 방송국의 합창단원이었다. 결혼 후에도 성당의 성가대원이다. 정기적인 발표회를 위하여 맨 처음 새 곡이 주어지면 그 곡을 외우느라 한참동안 헤맨다. 그러면서 반올림표와 반내림표, 되돌이표 등 하나 하나에 심혈을 쏟은 작곡자의 의도를 헤아리게 된다.

나는 예술혼이 녹아든 곡을 만날 때나 연주를 들을 때 감동의 눈물을 흘리면서도 희열을 느낀다. 수필을 쓰고부터는 어떻게 하면 나의 수필에서도 독자들에게 그런 느낌을 줄 것인지 생각한다.

새 곡을 연습할 때 박자나 음정을 익히고, 그 다음 단계로 노래의 감정과 흐름에도 신경을 쓴다. 이와 마찬가지로 수필을 쓸 때도 알맞은 어휘와 정확한 문장이 되도록 가지치기를 해 준다. 그 후에 전체적인 호흡이 맞는지, 구성은 치밀한가, 주제는 뚜렷한지 살펴본다. 수필의 서두는 노래하기 위해 무대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과 같다. 발걸음은 노래하는 몸짓이어야 하고 표정에도 제목이 그 수필의 내용을 암시하듯 앞으로 부를 곡의 감정이 배어있어야 하는 것이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도 고심하기는 마찬가지다. 합창에서도 곡의 성격과 종류에 따라 의상과 헤어스타일이 모두 다르다. 또 큰 합창제에서는 연주하기 전에 관현악단이 각자의 악기를 조율해야 성공적인 반주를 해 줄 수 있다. 그런데 내 글을 보면 반회장 저고리에 꽃신을 신어야할 자리에, 투피스에 하이힐을 신겨 놓기도 하였다. 또 글에서도 완벽한 조율이 있어야 하는데 서두르다 보면 줄이 끊어져 있기 일쑤이다. 그걸 만회하고 끊어진 줄을 다시 잇기 위해 여러 밤을 새운다. 충분히 소화하지 못한 소재들을 가지고 글을 쓰면 주제에도 벗어나고 맥이 끊긴다. 그 잇는 작업이 새로 글을 쓰는 것보다 더 힘들 때도 많았다.

곡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개의 경우 합창은 여린소리부터 시작한다. 합창에서의 큰 소리는 신이 나기는 하나, 호소력을 나타내는 데는 작고 부드러운 소리가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작지만 핵을 가진 여린 음으로써 쌓였던 슬픔들을 안으로 밀어넣었다가 살짝살짝 내비치는 호소력을 지닌 수필을 쓸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이렇듯 내 수필은 어설프기는 하나 노래하기 위해 무대에 설 때의 긴장감 같은 맥락으로 쓰여지고 있다.

나는 글을 쓰다 풀리지 않으면 마당에 나가 운동을 한다. 빠르거나 느린 음악에 맞추어 온몸의 마디마디를 풀면서 엉킨 글의 실마리를 찾곤 한다. 그렇게 태어난 작품이지만 때로는 원고를 보내 놓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언젠가는 불안하여 뜬눈으로 밤을 새우다가 이튿날 잡지사에 가서 원고를 되찾아 온 적도 있다.

모든 작가들이 창작의 고뇌가 있겠지만 글쓰기를 늦게 시작한 나로서는 자꾸 습작하는 길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연주가 시작되면 관중석의 조명이 꺼지고 오직 무대 위의 조명만 서서히 밝아져서 관중이 숨을 죽이며 음악을 감상하듯 나도 단숨에 읽힐 만한 글을 쓰고 싶은데 그것 또한 어렵다.

그렇게 되기까지에는 내 어리석은 행동이나 어눌한 말씨, 그리고 겸손하지 못한 부분들을 다 떨어내고 나면 그게 가능해지지 않을까 희망을 가져본다. 나의 수필이 더 나아질 수만 있다면 혹평을 받더라도 상처받지 않고 씨가 싹트는 것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좋은 작품들을 읽고 또 쓰기를 계속할 것이다.

클라이맥스, 감동의 극치를 보여 준 후에 상큼하게 끝맺음을 하는 합창의 마무리기법처럼, 독자의 귓가에 언제까지나 맴도는 긴 여운을 주는 수필을 쓰고 싶다.

연주회에서 많은 레퍼토리의 노래를 부르듯이, 나는 요즘 유행하는 레게음악이나 랩뮤직, 국악이나 동양음악, 클래식이나 가요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음악의 영역에 빠져들려고 한다. 거기서 받은 감동을 체험을 통해 형상화하려는 것이 내가 수필을 쓰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