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주 안

글쓰기를 시작한 지 햇수로 10여 년 만에 첫 수필집을 냈다. 문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그에 대한 꿈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우연찮게 수필을 쓰시는 스승님을 만나게 되면서 문학을 접하게 되었고 날로 지적욕구가 더해 갔다. 문학은 결코 이론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이론적인 기초없이 덤빈다는 것은 새로 접한 문학에 대한 예가 아니라고 여겨져 꼬박 3년 동안 학점을 이수하며 문학강의를 들었다. 이에 병행하여 10여 년 동안 한 스승 밑에서 꾸준하게 실기지도를 받으면서, 문학이란 명제에 면벽하여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으로 얻어진 소산이 첫 수필집이라 하겠다.

내게 선천적인 문학성이 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 문학과 첫 인연은 산골 초등학교 시절, 학교 대항 글짓기 대회에 나갈 대표를 뽑는데 자체적으로 실시한 실기에서 떨어진 경험이 전부다. 사춘기 시절부터 열심히 문학전집을 읽었고 아름다운 구절이 있으면 이를 외웠다. 토마스 하디의 〈테스〉를 읽으면서 영국의 목가적인 풍경이 가슴을 설레게 했고, 학교도서관에서 〈제인 에어〉를 만나고는 해지는 줄도 모르고 집까지 걸었다. 결혼하고 아이를 기르면서 시댁식구들과의 갈등을 해소하는 한 방법으로 열심히 일기를 썼다. 그리고 어려서 경험한 자연은 내 인생의 커다란 스승이었다. 그 자연을 내 글 속에 끌어들여 우리네 인생과 결부시키면서 나름대로 해석도 하고 자신을 고양시키고 나아가 거기서 교훈을 얻고자 했다. 이러한 환경적인 요소가 내가 글을 쓰게 한 충분한 자양분이 되지 않았을까.  

첫 수필집 《낙지 코 고는 소리》의 커다란 주제를 말하라고 한다면 제목에서도 암시를 한 것처럼 ‘자연’이었다. 모 신문에서는 ‘자연, 그 소리를 담다’ 라는 제목으로 출간기사를 적기도 했다. 어려서 보고듣고 배우고 몸으로 삶으로 익혀온 것이 자연이었다. 그러한 유년의 자연은 내 문학의 산실역할을 톡톡히 하였다. 괴테도 일찍이 자연의 오묘한 소리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자는 예술인이 될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괴테의 말에 의지하여 감히 문학인을 꿈꾸어도 될 만하다는 생각이었다면 내 표현이 적당할까.

처음에는 일상생활에서 느끼고 체험한 것들이 글감으로 떠오르면 서둘러 얼기설기 엮어놓는다. 처음부터 정돈하여 글귀를 풀어가도 되련만 그러려면 겨우 잡아올린 글감을 놓쳐버리기 때문에 대책없이 허둥댄다. 그런 다음 퇴고를 시작하는데 몇 날 며칠을 두고 그 글감을 어떻게 하면 맛난 요리로 만들까 진을 뺀다. 문학은 언어를 매개로 전달되는 예술인만큼 문장을 수없이 주어와 서술어를 맞추어가며 교정한다. 될수록 미사여구를 멀리하고 쉽고 간결하며 어려운 말도 쓰지 않으려고 한다. 목적이 달성되었다고 해도 좀더 개성적인 문체와 상큼한 문장은 없을까 하면서 그 작품이 내 손을 떠날 때까지 그치지 않는 고심에 빠진다.

수필은 작가의 체험을 바탕으로 상상력이 조합을 이루어 내어 놓는 언어예술이라고 한다. 그리고 무형식, 개성, 유머, 위트, 다양성 등의 성격을 내포하고 있는 장르이기도 하다. 모든 문학이 그렇듯이 특히 수필은 이러한 다양성이란 탄력있는 특성을 살려 문학의 쾌락적 기능에 맥이 닿고 있는 ‘재미’라는 것이 우선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유기적인 조직을 가지면서 치밀한 구성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새로운 발상을 고안하기 위해 소재와 주제의 연결을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려고 한다.

그리고 지리적, 시간적으로 과감하게 이동하면서 독자로 하여금 지루한 감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내 글은 대부분이 시대를 넘나들며 동서양을 종횡무진하는 가운데 독자의 오감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다. 수직적인 사고(역사성)와 수평적인 사고(지리적)를 동시에 어우르면서 동시대를 지나고도 독자들이 여전히 읽을 수 있는 재미있는 글로 남기를 꾀하고 있다. 그러나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내가 쓴 모든 글들이 이러한 장치를 걸어둔 것만도 아니다.

주제는 가능한 한 모든 인류의 공통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는 인간의 근원적인 것에 관해서 설정하려고 한다. 즉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이나 공통적인 관심사,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감각 등이다. 예를 들면 고향을 그리는 향수병이라든가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회귀본능이라든가 인간의 기본욕구인 의, 식, 주에 대한 욕망 등이라든가 희노애락과 같은 기본적인 감정, 그리고 모든 인류의 가장 관심이 되고 있는 테마인 사랑 등이다.

제목은 대부분 글의 완성에 있어서 마지막 단계에 결정을 한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내 글의 제목들은 소재에서 얻는 것이 아니라 주제를 함축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독자가 그 글을 모두 읽을 때 즈음에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엿보게 하면서 왜 이런 제목을 설정하게 되었는지를 알게 한다.

이번에는 내가 서술해야 할 대상인 소재에 대해 정밀한 관찰과 해석법을 활용하여 많은 연구를 한다. 인터넷을 이용하기도 하고 참고서적을 찾기 위해 대형서점을 몇 번이고 드나들면서 원하는 정보를 얻을 때까지 그 소재연구에 사로잡힌다. 여러 학문분야에 대한 깊이 있고 지적인 인식이야말로 좋은 수필의 토대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원하는 정보가 얻어지면 그 소재의 이면에 숨겨져 있는, 내가 쓰고자 하는 주제와 닮아 있는 특성이 무엇인가를 잡아낸다. 이에 기대어 우리네 인생을 재해석하기도 하고 자기 성찰의 계기도 삼으면서 글의 주제와 연결시켜 마무리를 한다. 

오래 전에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를 처음으로 대했을 때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매스터피스를 꿈꾸며 세계 각처에서 몰려 든 뉴욕의 어느 빈민가에 주인공 존시는 폐렴에 걸려 죽어가고 있었다. 그 생명을 살리기 위해 무명화가 버만은 밤새 찬비를 맞아가면서 마지막 잎새를 그린다. 그림을 완성한 후 그는 죽어가지만 그 그림은 그가 생전에 그토록 열망하던 매스터피스가 되었던 것이다. 목숨을 담보로 하는 고통없이 어찌 매스터피스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아직 많지 않은 글을 써왔지만 나도 그 뉴욕의 젊은 화가들처럼 한 편의 매스터피스를 늘 꿈꾼다. 그러면서 오늘도 바위를 쉬지 않고 산꼭대기로 밀어 올리고, 그러나 바위는 자신의 무게 때문에 저절로 굴러 떨어져 자기 모순에 빠지고 마는 ‘시지프스(고대 희랍 코린트의 왕)의 신화’를 읽는다. 문학이란 명제아래 단단히 잡힌 바로 지금의 내 모습이 아닌가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