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확인하는 작업

송 미 심

사상(事象)에 대한 느낌과 생각을 글로 써 두고 싶은 때가 있다. 생각은 오래지 않아 잊히기 쉽고 그 느낌은 시간이 흐르면서 희석되어 기록만큼 생생하지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쁜 일, 슬픈 일, 재미있는 장면, 놀랄 만한 사건들을 접하면 그러한 소재에 해석과 의미부여를 하여 글로 쓰게 된다.

글을 쓰는 일은 스스로를 반성하고 새로운 각오를 다짐하게 하는 묵상의 시간을 갖게 한다. 또한 나의 정체를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나의 수필은 비록 일상에서 부딪히는 여러 가지 일들을 기록한 것들이지만, 그것은 그냥 생활의 편편(片片)들이고 더러는 삶의 넋두리일 때도 있다.

그런 글들일지라도 붓을 드는 순간만은 정직할 수 있어 쓰는 일을 멈출 수가 없다.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주변의 일들에 부대끼면서 거짓과 참의 살피를 구분하지 못하거나, 진정한 용기를 외면하고 편리한 타협을 선택하는 자신의 저속함도 종이 위에 쏟아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통회하고 고백하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써 내려가다 보면 정제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한다. 나를 돌아보게 하고 실수를 스스로 인정하는 용기와 남을 용서하는 너그러움까지도 지니게 된다.

사람 사는 모습과 생각은 흡사한 점이 많을 터이지만, 소재나 주제의식을 통해 나의 생각과 느낌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진다. 다른 사람들이 내 글을 읽고 조금이라도 즐거움과 위안을 얻게 된다면 상부상조의 미덕이 아닐까 싶어서이다.

활자로 나를 드러내는 일은 스스로를 다듬는 일이기도 하다. 너무 치장을 해서도 안 되고 궁색하지도 않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런 나를 보여 주어야하기 때문이다. 어떤 ‘좋은 글'로 독자를 만나야 스스로를 진실하게 잘 보일 수 있을지 오랜 시간을 숙고하며 글을 쓰는 버릇을 갖게 되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형상화되어 격이 풍기는 수준의 글을 보여 주고 싶다. 문학작품으로서의 ‘글을 쓰는 일'은 수필다운 수필로의 전환이기에 나의 철학이 읽은 이에게 올바르게 전달되기를 소망한다. 시큰둥한 잡사나 푸념을 알갱이 없이 떠오른 대로 적기보다는 읽은 사람에게 공감을 주는 진솔하고 산뜻한 글을 쓰고 싶다. 산뜻한 글이란 투명하고 선명하여 지루하지 않고 독자들이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글이다. 그런 수필을 쓰기 위해서 다음 몇 가지를 유념해 왔다.

우선 글을 쓰게 된 동기, 즉 모티브가 떠오르면 그것을 기점으로 전체적인 유기적 구성을 머릿속에 궁굴린다. 즉 착상(着想)을 구체화시키는 단계다. 그래야만 주제와 걸맞은 소재를 배합하여 글을 구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고 듣고 느끼는 삶의 흔적 모두가 글로 써지는 것이 아니다. 그들 중에서 쓰고 싶은 내용의 실마리가 체험과 일치되는 순간 메시지는 배태되고 다음 단계로 진입하게 된다.

착상이 되면 주제를 설정한다. 무엇을 쓸 것인가를 고심한다. 글을 쓰고자 하는 목적이며 의도이다. 거창한 철학이나 사상(思想)보다는 사소한 것이라도 소중한 것이면 집약적으로 생각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을 의미화하여 주제로 정한다. 가능한 주제는 겉으로 드러나기보다는 함축적이거나 우회적이도록 애를 쓴다.

소재는 주제를 선명하게 드러내고 독자들에게 공명을 불러일으키는 요소이다. 그러므로 소재 선택을 소홀히 할 수 없다. 깔밋한 수필을 만들기 위해서는 생활 체험에서 얻은 작지만 울림이 큰 소재를 고른다. 그러한 체험은 직접 또는 간접 체험을 통해 습득한다. 그러기에 다양한 경험을 하는 일에 게으름을 피우지 않으려 한다. 한 편의 글을 위해 소재를 선택하는 데도 오랜 시간 통찰하고 숙고하면서 평범한 소재일지라도 나만의 독특한 의미를 발견하고자 한다. 또한 무관한 소재만의 나열보다는 필요한 제재만을 선택하는데 더 신중을 기한다.

수필은 소설적 구성미와 시적 서정성을 아우르는 장르이기에 읽는 재미와 정서적 윤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야깃거리가 있어도 좋고, 사색과 관조 후에 얻어진 담담한 여향이나 느낌의 구체적 묘사도 맛깔스럽다. 재미가 있다는 것은 흥미롭게 읽혀진다는 것이다. 이것이 구성의 유기적인 묘미이기도 하다. 문장 표현이 정확하면 더욱 막힘이 없을 것이다. 수필이 ‘무형식의 글'이라고 하지만 소재와 주제의 성격에 따라 자연스럽게 구성하고 그에 걸맞게 쓰고자 한다.

나는 화가나 서예가에게 선뜻 그림이나 글씨를 달라고 하지 못한다. 비록 실패한 작품이라 하더라도 그들이 아쉬워하며 후제 수정할 부분이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자신의 작품에 만족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렇듯 글을 쓰고 나면 늘 아쉽고 부끄럽다. 의도했던 주제의식이 집약되었는지, 불필요한 소재의 삽입은 없었는지. 어법과 문장 표현은 정확한지, 두서없이 주관적 감정만 나열만 한 것이 아닌지, 서두와 결미 문장의 처리는 깔끔한지 등을 살펴보지만 흡족한 때를 만나기란 여간 쉽지가 않다. 마음에 차지 않아 밀쳐두거나 오랫동안 묵힌 다음 수정을 하며 비로소 완성한다.

‘창조의 가장 어려운 점은 시작하는 일이다' 라는 말이 있다. 논리적이고 해박한 전문 식견이 있는 사람이라도 매끄러운 수필 한 편을 만드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누군들 펜만 들면 거침없이 한 번에 완성된 글이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행여 그런 사람이 있다면 한없이 부러울 따름이다.

여전히 글을 쓰고, ‘좋은 글' 쓰기에 골몰하는 것은 나 자신을 곧추 세우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내가 그리고자 함은 바로 나다" 라고 말한 몽테뉴의 말을 새기면서 글 쓰는 일을 멈출 수 없고, 또한 고통일지라도 넉넉한 마음으로 ‘좋은 글' 쓰기를 즐기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