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무처럼 

신 현 복  

등단할 무렵 그때의 추천작품을 지금 읽어 보면, 수필쓰기에 대한 마음가짐이 그 어느 때 보다 진지함이 배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후 수필을 써 오면서, 그런 진지함만으로는 좋은 글을 쓸 수가 없으며 쓰고자 하는 소재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좋은 글로서 표현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오래 생각하고 고뇌해야 하는가를 깨닫게 되었다.  

1. 나의 수필쓰기에 있어서 착상은 대부분 일상에서 주어진다.

차를 타거나 기차를 타고 먼 길을 가는 기회가 많은 나로서는 비껴가는 창밖의 풍경을 보며 상념에 잠기다가 문득 문득 떠오르는 것을 메모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또는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떠오르는 것에 착상할 때가 많다. 어떤 장면을 보면서 동시에 연상되는 과거나 어느 시점의 상황을 표현하고 싶다는 착상이 떠오르면 동시에 제목도 그때 정해질 때가 많다.

2. 제목을 정해 놓은 후 나의 수필쓰기의 진통은 시작된다.

소재에 따라 문체와 형식을 알맞게 선택을 해야 함은 물론이고, 그 소재에 관한 일반적이고 객관적인 자료수집도 중요한 일이기에 오랜 시간이 걸릴 때가 많다. 등단할 무렵에는 열정만으로 써 내려갔지만, 시간이 지나고 자신의 글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면서 언뜻 쉽게 써지지가 않게 되었다. 내면에서는 들끓는 열정과 쓰고 싶은 욕구가 소리 없이 아우성치고 있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끄집어내야 하는가 하는 갈등과 고뇌에 안절부절못하며 거리를 헤매고 다닐 때가 얼마나 많은지…

등단할 무렵 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몇 달 내지는 몇 년을 거치면서 써진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미류나무 소묘’는 결혼을 하고 처음 시댁으로 가는 시골길을 가며 와 닿는 전원에 대한 푸근함과 신선함을 표현하기 위해 몇 해를 그곳을 다니며 가슴앓이를 해야 했고, ‘나의 사랑하는 금붕어’는 오랫동안 익숙해진 것에서 떠나 낯선 환경에서 와 닿는 생경함을 이사를 하는 과정에서 쓰게 되었고, ‘봄날은 간다’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는 주위상황과 퇴색해 가는 사랑의 본질에 대해 표현하고 싶어서 몇 년에 걸쳐서 같은 제목의 영화를 세 번이나 보기도 했다.

3. 첫 문장은 제목이 정해지면서 동시에 떠오를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힘들게 써질 때가 많다. 일반적인 이론이지만 첫 문장이 그 글의 승패를 좌우하기에 간결하면서도 흡인력 있게 쓰려고 노력한다.

4. 나의 수필의 대부분은 서정적 수필이 많은데, 한 소재의 상황을 서정적으로 묘사한 수필이 많다. 예를 들면 ‘흘러가는 것을 위하여’ ‘일몰’ ‘낯선 곳에서’ 등이다. 소설공부로 문학을 시작한 나로서는 문체가 서정적이고 소설적인 것이 많아서 소설적 수필이라 할 수 있겠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거나 객관성이 강한 수필을 서사적 수필이라 한다면, 자칫하면 사회문제나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들을 컬럼처럼 쓰는 경우가 있는데 엄밀하게 말하면 수필과는 관계가 없는 글이다. 그런 글은 수필가가 아닌 다른 분야에 있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수필은 낭만적이고 서정적이어야 하며 각자만이 지니고 있는 특유의 개성과 정서 내지는 감성이 깃들어 있는 글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5. 서정적 수필의 지나친 감정표현이나 감성은 배제되어야 한다.

좋은 수필을 쓰는데 있어서 풍부한 감성은 기본적이고도 필수적인 조건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감성이 풍부해도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치밀하게 솎아내지 않고 무작정 써낸 글은 좋은 수필이 될 수 없다. 감정이나 감성이 여과되지 않은 글은 거칠고 기복이 심해서 읽는 이로 하여금 안정감이 없고 속된 느낌을 준다. 감동적인 글을 쓰고 싶을 때 자신도 모르게 형용사나 부사를 쓰게 되는데, 좋은 수필을 쓰기 위해서는 되도록이면 형용사 부사를 절제해야 한다. 감성적인 문장이 아니더라도 읽는 이로 하여금 감성을 느낄 수 있고, 감정적으로 표현을 안 해도 작가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수필을 쓰기 위해서는 적당한 문학적 어휘와 간결하면서도 함축성있는 문장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6. 읽기 쉬운 문장을 쓰기 위해서는 퇴고를 거듭해야 한다.

읽기에 쉬운 문장이라고 해서 결코 쉽게 써진 글은 아니다. 읽기에 쉬운 글을 쓰기 위해서는 그만큼 노력을 많이 해야 한다. 글이란 일단 다 썼다고 해서 그것으로 그 글이 완성되었다거나 끝난 것은 아니다. 그 글을 처음부터 다시 차분히 읽고 살피면서 잘못된 표현이나 적합하지 않은 단어나 문장 등을 찾아내어 불필요한 것은 삭제하고, 더 필요한 것은 보충해 넣어야만 어느 정도 그 글이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후 인쇄에서 용지를 빼서 읽어 보면서 다시 고치거나 보충하고, 그 글이 물 흐르듯이 한 편의 시처럼 리듬감 있게 읽혀 질 때 비로소 수필 한 편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7. 마지막 문장은 첫 문장을 염두에 두고 써야 한다.

한 편의 수필을 마칠 때 마지막 문장은 반드시 처음 문장과 연관되어서 쓸 필요는 없지만, 첫 문장의 분위기가 본문 전체에 얼마나 흐르고 있느냐에 따라 마지막 문장의 색깔을 선택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글의 소재나 기법에 따라 첫 문장과 비슷할 수도 있고 전혀 다르게 마쳐질 수도 있지만, 구태여 설명적이지 않고 되도록 간결하면서도 함축적인 문장이면 좋겠다. 은은한 여운과 감동이 담긴 마지막 문장은 오래도록 읽는 이의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8. 자신의 글을 멀리서 볼 수 있는 객관적 태도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장황하게 열거한 것은 수필 쓰는 사람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일반론적인 것을 나름대로 자신이 수필을 쓸 때 적용시켜 본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총체적으로 정리하고 점검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쓴 글을, 마치 다른 사람의 글을 보는 것처럼 냉정하게 볼 수 있는 객관적인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쓴 글에서 자신이 빠져 나와서 멀지 감치서 볼 수 있어야 한다. 좀 더 잘 써 보려고 글에 매달려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다 보면 자신의 글을 냉정하게 볼 수가 없다.  

이렇듯 체에 받쳐서 알곡을 골라내는 과정을 거쳐서, 온갖 비바람에 시달리며 낙엽이 진 뒤에 드러나는 겨울나무처럼 군더더기 없는 담백한 수필 한 편을 완성하는 것이 나의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