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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안영환 |
날짜 : 16-08-10 13:59
조회 : 1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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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Brexit),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묻는 세기적 국민투표는 2016년 6월 23일 찬성으로 끝났다. 영국은 개방보다는 폐쇄, 통합보다는 분열을 선택했다. 대영제국에 대한 헛된 꿈 때문인가. 회원국들의 국경개방에 따른 이민자 유입으로 유럽연합(EU)의 와해 원심력이 커질 거라는 견해가 횡행한다. 다른 회원국들의 탈퇴 도미노현상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웅성거림이다.
인류역사상 가장 참혹한 사건, 1,2차 대전을 20세기에만 집중적으로 일으켰던 땅 유럽은 그 가공할 폭력의 한 복판에서 방향을 틀어 평화와 통합을 향해 어려운 길을 가는 중이다. 그런데 그 발걸음을 멈추고 만 것인가. 아일랜드가 유럽 정치통합의 설립조약인 리스본 협약에 대해 회원국 중 마지막으로 2차 국민투표(1차 부결)에서 찬성함으로써 느슨하게나마 유럽합중국은 2010년 출범했었으나 앞길은 이제 더 험난해 보인다.
13,4세기 르네상스의 태동에서부터 유럽의 역사는, 뭐랄까, 마치 드라마와 같이 전개돼 오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신을 대체하는 이성(logos)이 힘을 발휘하여 유럽은 프랑스의 대혁명과 영국의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보다 살기 좋은 인간다운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꿈을 꾸었다. 대혁명의 아들인 나폴레옹은 유럽의 시민과 농민을 봉건적 절대권력의 압제로부터 해방시키는 위업을 달성하여 자유(天賦人權), 평등(民主主義), 박애(共和主義)에 기초한 근대 시민국가를 서유럽에 탄생시켰다. 데카르트가 신보다도 신봉했던 이성은 프랑스 대혁명의 정신적 토대가 된 계몽사상을 일으켰을 뿐 아니라 과학의 발달을 촉발시켜 영국에서는 산업혁명의 불을 지폈었다. 19세기에 들어서 유럽 전체가 열정과 사랑과 꿈에 들떠 낭만주의를 꽃피웠던 시절도 있었다.
유럽의 발전은 근대 시민국가로서의 경쟁적 기반에 의존했다. 민족국가는 루터의 종교개혁운동이 도화선이 돼 17세기 초엽 발발한 30년 전쟁의 결과물이다. 독일 전역을 전쟁터로 삼아 신구교로 편을 가른 군주들이 벌린 이 살육전은 당시 독일 인구의 1/3를 죽이고 끝났었다. 가톨릭이라는 절대 종교세력이 약화되고 군주의 지배력이 커져 지배계급 중심의 국가주의가 전개됐다. 그러나 일반시민과 민중은 군주를 중심으로 한 국가주의에 동조하지 않았다.
나폴레옹이 출현, 대혁명의 자유, 평등, 박애의 삼색기를 휘날리며 기존 세습 군주들을 굴복시키자 헤겔은 고향에서 백마를 탄 나폴레옹에게 경배하고 베토벤은 영웅의 표제 심포니를 작곡하는 등 유럽 민중에게는 앙시앵레짐 타파가 국가주의보다 더 절실한 과제였다. 나폴레옹이 그 일을 해내자 민중은 열광했다. 하지만 후에 그가 황제에 즉위하여 프랑스 패권의 야욕을 들어내자 민중은 그에게 등을 돌리고 저항하며 민족주의자로 변신, 그를 멸망시키는 연합군에 합류했다. 그러면서 민중은 패권적 국가주의를 맹목적으로 신봉하며 20세기 초 대재앙인 제국주의의 전사가 되었다.
1,2차 대전을 겪으면서 유럽의 지성인들 중에는 근대 유럽문명의 버팀목이던 이성의 허구에 절망한 나머지 해체주의 철학과 문학을 태동시킨 자들도 있었다. 허나 유럽문명 자체를 해체한 후 대안을 찾았다는 얘기는 아직 듣지 못한다. 혹자는 유럽 지식인들이 그 대안을 동양의 노자 사상에서 찾고 있다고 주장하나, 아전인수적 해석으로 본다. 노자의 사상이 유럽의 기독교와 르네상스 운동의 경우처럼 문명을 주도하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도대체 동양인은 서양인들처럼 감동적 드라마와 같은 역사를 한 번도 만들어낸 적이 없다.
20세기 양차대전은 과거 유럽에서 3백여 년에 걸쳐 견고한 국가주의의 아성을 쌓으며 내편 네편 패를 갈라 사활을 건 패권쟁투를 벌인 결과 수천여만 명을 도륙한 참사였다. 유럽통합운동은 국가주의의 해체에 다름 아니다.
해체주의자들이 이 통합과정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해체의 대안으로 본다. 물론 이 통합운동이 언제 다시 분출하는 국가주의적 집단욕망과 분노에 함몰될지 불안하기도 하다. 영국은 그 길을 선택했다.
1차 대전 발발 전 장 조레스 그리고 2차 대전 종료 후 장 모네ㅡ파멸의 먹구름을 걷어내기 위한 예언자로서 유럽인들에게 통합의 영감을 불어넣었던 이 위대한 현자들을 배출한 프랑스의 후예들마저도 보다 완벽한 유럽통합헌법을 국민투표에서 부결시킨 전례 또한 있었다. 그 대안으로 마련된 것이 정치통합을 위한 개정조약, 즉 리스본 협약이었다. 그 체제가 지금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 반세기를 넘어 공동시장이라는 관세동맹을 거쳐 단일통화 유통이라는 경제동맹 단계에 진입했으나 그것은 아직 미완의 상태에 있는데도 브렉시트 사단이 터졌다. 28개 회원국 중 19개국만이 단일통화인 유로화를 도입했고, 서비스에 대한 내국민대우도 완벽하게 시행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경우 내국민대우란 폴란드 국적의 노동자가 프랑스의 파리나 영국의 런던에서 제약 없이 취업할 수 있는 걸 뜻한다.
2011-12년 그리스, 포르투갈, 스페인 및 이탈리아 등 유로존 남부 주변국의 재정위기로 유럽통합이 와해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팽배했었다. 금융재정통합 없는 단일통화는 허상이라는 게 증명됐다고 회의론자들은 주장했다.
유럽통합운동의 갈 길은 멀다. 회원국들의 국가 이기주의를 극복해내는 일이 어디 쉬운 과제인가. 금융재정통합을 이룩하고, 나아가 정치통합까지 달성하는 데는 앞으로도 백년 이상이 더 걸리게 될지도 모른다. 18세기 말 프랑스 대혁명 이후 삼색기 아래 그 씨앗이 뿌려졌던 ‘자유민주공화체제’가 서유럽에 정착되는데도 우여곡절을 겪으며 20세기 중반에 이르러서야 가능하지 않았던가. 샤르르 드골이 동서냉전대결이 극에 달했던 1960년대 영국을 배제한 “대서양 연안에서 우랄까지의 유럽통합”의 영감을 불어넣었을 때, 당시 유럽의 식자들은 “한 거인 몽상가의 부질없는 잠꼬대”로 치부했던 기억이 되살아난다.(드골은 1963년 당시 유럽경제공동체에 가입신청서를 낸 영국에 대해 거부권 행사. 영국은 드골 사후인 1973년 가입)
끊임없이 충돌하는 국가이기주의와 정치이념을 조정할 그 무엇이 없을까? 그것이 보인다면 유럽의 통합, 나아가서는 한반도의 통일을 담은 세계의 통합이 달성되는 날이 수백 년 후에라도 반드시 도래할 것이라는 꿈을 갖는다. 그 통합은 차별과 전쟁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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