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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박영자 |
날짜 : 11-12-28 12:38
조회 :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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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버스 안의 풍경
박영자(수필가)
저녁 모임이 있는 날은 시내버스를 이용한다. 밤 운전이 서툴러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저녁모임은 대개 저녁 6시경이니 시간에 맞추어 나가려면 1시간 전인 5시나 5시 반 차를 많이 이용한다. 이 차가 출발하는 곳은 모 고등학교 근처 버스 종점이다. 그 학교 학생들이 파하는 시각과 맞물려 그 시간대의 버스 안은 학생들로 초만원이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이 시간대의 차를 탔다. 그러나 요즈음은 요령이 생겨 30분정도 일찍 서둘러 앞의 차를 타려고 노력한다. 그 버스안의 학생들을 바라보아야 하는 곤혹스러움을 피하기 위해서다.
평생을 학생들과 함께 생활해온 것이 나의 직업이었으니 귀여운 유치원 아이들이나 학생들이 열을 지어 소풍을 가거나 현장학습이라도 가는 모습을 보면 예사로 보이지 않고 내 자식 같고 손녀 같기도 하여 한마디쯤 말을 붙여 보기도 하고 다감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기도 한다. 그러나 그 버스 안 고등학생들의 모습은 너무나 실망스럽다는 것이 나의 솔직한 표현이다.
공중도덕은 전혀 배우지 않는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다. 동방예의지국이니 효행의 나라니 이런 말이 무색하다. 그들은 버스를 전세 내기라도 한 듯 당당하다. 하긴 내 돈 내고 내가 탔는데 누가 뭐라고 한단 말인가. 어른에게 자리 양보는 꿈에 떡 맛보기요, 그들의 소란스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어 외면하고 싶은 불쾌한 모습이다. 꼭 내가 자리양보를 받겠다는 것이 아니다. 나보다 연세가 높은 노파가 서 있어도, 머리가 허연 할아버지가 서 있어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책을 들고 앉은 학생은 눈을 닦고 보아도 없다. 조용히 책을 읽고 있는 모습 같은 것은 나 혼자만 그리는 꿈인가. “X새끼” “X발놈” 같은 말은 일상어로 자리 잡은 듯 무감각하게 욕으로 도배질을 한다. 여학생이 남학생의 볼때기를 잡고 흔들어대며 쌍스러운 욕이 스스럼없는 것을 보고
‘아! 저런 며느리 데려가는 시부모들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하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핸드폰을 가지고 열심히 게임에 몰두하는 학생은 있어도 단어장 하나 들고 있는 학생은 없다. 어느 날 우리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난 학생 얼굴이 떠오른다. 아침 등교시간에 문제지를 들고 열심히 보고 있던 학생 말이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설 때까지의 촌음도 아껴 쓰겠다는 그 학생의 장래는 보지 않아도 보장 되는 것이 아닌가.
오후 세시쯤 버스를 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학생들이 가득하다. 아뿔싸, 이를 어쩌나. 잘 못 탔다는 생각이지만 돌이킬 수 없다. 시험기간인가 짐작하며 학생들 틈에 섰다. 그런데 내 앞에 학생이 자리를 양보 한다. 나는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지만 결국 자리를 양보 받았다. 이런 일도 있구나 싶어 내가 너무 부정적으로만 본 게 아닌가 하는 자성을 한다. 그런데 앞에 앉은 친구와 농담을 주고받던 그 학생이 갑자기
“선생님, 저 자리 양보 했는데 상 탈 수 있지요?”
하고 소리친다. 그 학생이 바라보는 시선을 따라가니 내가 앉은 건너편 자리에 젊은 여선생님이 앉아있다. 그 선생님은 아무 말 없이 고개만 가로 저을 뿐이다. 학생들은 일제히 까르르 웃는다. 그 순간 나는 내가 앉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그 학생을 향하여 ‘학생 여기 도로 앉으시지요.’ 할 뻔 했다. 나는 꾹 참고 눈을 감았다. 그랬다가는 내가 또 그들의 웃음거리가 될 테니 말이다. 그 선생님 무슨 한 말씀 있을 법 하지만 일제히 웃어 제치는 것으로 그 선생님의 위신을 깔아뭉갤 것이 뻔 하기에 말 없는 그 마음을 십분 이해하고도 남았다.
어느 날은 게으름을 피우다가 그 학생들과 맞닥뜨렸다. 학생들 틈에 끼어 서 있는데 앞자리에 학생이 내린다. 나이 먹은 사람은 나 하나뿐이다. 그런데 그 자리 앞에 서있던 학생이 망설일 것도 없이 냉큼 앉아버린다. 물론 그들의 처지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아침 일찍 등교하여 그 시간까지 딱딱한 의자에서 수업을 받았을 테니 왜 피곤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학생 내가 좀 앉아야겠어. 다리가 아프거든.” 학생은 내 눈치를 보며 일어났다. 내가 못 서 있을 처지는 아니었다. 그러나 누군가 가르쳐야 되지 않겠는가.
자리에 앉아 생각하니 다리가 아픈 것 보다 마음이 더 아팠다. 어쩌다가 이런 지경이 되었는가. 모두가 잘 못 가르친 어른들의 책임임을 통감한다. 그러나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어른들이 다독이고 가르치지 않으면 누가 가르친단 말인가. 선생님들은 버스를 잘 이용하지 않는 듯하니 이런 실정을 모르는 것일까. 그 학교 교장선생님께 편지라도 쓰고 싶은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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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문 |
12-01-23 02: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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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자 선생님 요즘 학생들 버릇 없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요즘은 젊은 여자애들도 거리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것을 보면 격세지감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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