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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류인혜 |
날짜 : 03-11-25 20:00
조회 :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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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와 살
이강백 작 전명수 연출
김옥곤
막이 오르면 달이 떠 있는 송천강 댐의 물위로 나룻배가 오고 있다. 뱃사공이 노를 젓는 배 위에는 문신과 영자가 타고 있는데 이들 부부는 댐건설로 수몰된 고향 월출리를 찾아 내려오는 중이다. 영자는 임신한 몸이고 문신은 무엇이 무척 못마땅한 표정이다.
뱃사공은 물 속에 수물된 마을을 본다. 국기 게양대와 양조장의 양철 지붕, 자신이 사랑했던 소녀가 연주하는 피아노 소리도 들린다. 그러나 문신의 눈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도 않는다. 그는 아내가 임신한 배를 보면서 그속에 든 씨앗이 자신의 친구 효식의 것이라고 중얼거린다. 인간적인 욕망과 질투심에 사로잡힌 문신은 물속의 고향 마을을 제대로 볼 수가 없는 것이다. 문신은 영자의 뱃속에 자라고 있는 아기를 없앨 살의마저 품고 있었다.
문신과 영자는 나룻배에서 내린다. 뱃사공은 마치 혼령처럼 배를 저어 멀리 사라져 간다. 문신은 고향으로 내려오라는 형들의 부름을 받고 아내인 영자를 데리고 귀향을 한 것이다. 한때 문신은 친구 효식과 영자를 사이에 둔 삼각관계였다. 문신은 영자와 결혼한뒤 고향 마을을 떠나 도시로 가버렸다. 효식은 영자를 잊지못해 방황하고 헤매다 폐인이 되다시피했다. 효식은 천신만고 끝에 영자를 찾게 된다.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번만 자신을 사랑해 달라고 효식은 영자에게 애원을 했다. 마침 남편이 출근하고 없는 집에서 영자는 효식의 애원을 뿌리치지 못하고 관계를 맺고 말았다.이런 사연들이 강가 나루터에서 문신과 영자가 주고 받는 대사로 관객들에게 전달이 된다.
저 멀리 형들이 등불을 들고 그들을 찾아 온다. 형제들과 동서지간이 만나 얘기꽃을 피운다. 얘기의 촛점은 할아버지의 유골을 찾는 문제였다. 문신의 조부는 후손의 살인을 막기위해 효식의 할아버지 무덤에 몰래 묻혔다는 것이다. 효식의 아비인 최영감은 자신의 아들이 영자 때문에 방황하게 되었고 그때문에 대까지 끊기게 된 것은 문신 할아버지의 뼈 탓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최영감은 고목나무 높이 문신 할아버지의 뼈를 매달고 돌려주지 않는다.
고민하던 문신은 형들에게 자신이 영감을 찾아가 뼈를 찾아 오겠다고 한다. 문신은 최영감에게 영자의 뱃속에 든 아기가 효식의 자식이라고 고백한다. 끊긴 대를 잇게된 최영감은 맺혀 있던 노여움를 풀고 문신 할아버지의 뼈를 내어준다.
뼈를 찾아 등에 지고 형들에게 돌아가던 문신은 효식을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은 꽃나무 아래에서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누고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게 된다. 문신은 효식의 아이를 낳아 기를 결심을 하게 된다. 이때 꿈속처럼 나비가 날아든다. 둘은 누워 잠이 들고 한참 뒤 효식이 일어나 사라져 간다. 이것이 문신에게는 마치 모두가 꿈처럼 이루어진다.
낙태약을 먹고 아이를 떼려하던 영자는 이제 그럴 이유가 없게 되었다. 형제들은 할아버지의 상여가마에 뼈를 모시고 북망산천을 향한다. 무대에는 문신 부부만이 남게 된다. 그들은 자신들이 사는 곳으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 나룻배를 탄다. 나룻배에서 문신은 비로소 물밑의 고향 마을을 보게 된다. 뱃사공이 말하는 국기 게양대도 보이고 양조장의 양철 지붕과 뱃사공이 사랑했다는 소녀의 피아노 소리도 들린다. 누군가가 말한다.
"뼈들이 살을 입고 살들이 뼈를 벗는다."
자욱한 물안개 저편에서 공중에 매달린 뼈들과 그 아래 사람형상의 살들이 춤을 추고 있는 가운데 (이건 관객들에게 상당한 심리적인 효과를 주는 장치였다.) 드디어 무대는 막이 내린다.
이강백의 희곡은, 관객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는 현재와 과거, 미래의 시점을 혼란스러울 정도로 끊임없이 넘나든다. 이 연극에서도 문신의 형제들과 아내들은 현실적인 인물로 등장하는 반면 뱃사공을 비롯한 영자와 효식, 영감, 무악산의 점쟁이 할멈은 어딘가 모르게 비현실적이고 상징적인 인물로 비쳐진다.
뼈와 살은 죽음과 삶을 상징한다. 살의를 갖고 등장한 문신이 뼈를 찾아 오면서 비로소 생명의 소중함에 눈뜨게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말인 것이다. 제임스 조이스의 빼어난 단편 [죽은 자들] 에서 이미 그려졌던 것처럼, 산자들이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죽을 자들과 함께 있기 때문이다. 그걸 깨달을 때 세속적인 욕망에서 벗어난 문신처럼 수몰된 물밑 마을이 훤히 보이게 되는 것이다.
이강백의 희곡은 관객들을 편하게 가만두지 않는다. 이번 연극이 과연 작가의 그런 의도를 얼마나 충실히 잘 살렸는지는 솔직히 나로선 가늠하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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