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인들이 두려워 하는 것의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 영화 '올드보이'는 그것을 우리 앞에 가차없이 들이밀고 있다. 자기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고 있고, 어쩌면 무의식의 맨 아래 서랍에 잊혀진 채 버려져 있는 그 무엇에 의해 휘둘리고 끌려가고 있는 지도 모른다. 아니, 그렇다. 그 핵심적인 에너지는 너무도 역동적이라 그 실체를 알아차리지 못할수록 힘이 강하다. 분화되지 않고 엉켜 있을수록 원시적인 에너지를 가지며 눈먼 야수의 감 각처럼 충동적이고 집요하다. 그 영화를 보고 나오는 가슴이 무지근한 것은 인간의 욕망, 분노, 절망, 상실감, 죄책감,무력함, 야비함, 잔인함이 한 덩어리가 되어 쳐들어오기 때문이다. 어쩌 면 말도 안되는 허황된 얘기라고 부정할 수도 있다. 어떻게든 분리하고 싶다. 그 러나 현실이 그보다 낫지 않다는 것을 오늘 종일 계속된 상담학 학술대회에서 제 시된 통계자료를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 (나중에 영화를 볼 분들을 위해 구체 적인 내용과 수치는 밝힐 수없으니 궁금하신 분들은 영화를 본 후에 개별적으로 문의하시길.) 문제는 전염성이 강한 정신적 외상(트라우마)과 만연된 절망감, 우울감으로부 터 우리의 삶을 지켜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으로 지킬 수 있을까, 한 가지씩 리플을 달아주시기 바란다. ----------------------------------- 이 영화를 보고나서 엊그제 다녀온 문학상 시상식을 다시 생각했다. 그 문학상에 서는 이례적으로 대중예술인 영상문예(TV 드라마)를 수상작으로 결정하였다고 한다. 문학의 고유성과 변용에 대해 깊이 고민을 해야할 시대가 온 것 같다. 마찬가지로 영화도 이제 만화적인 상상력을 빌려오지 않을 수 없는 시점에 와 있 다. 소설이나 희곡만 시나리오의 원작이 되는 시대는 지난 것이다. 영화의 시작 화면에 얼핏 지나간 일본 이름이 나중에 알고 보니 올드보이의 원작이 된 만화 의 작가인 츠치아 가롱과 미네기시 노부야키였다. 지난 연말 한 강연에서 이어령교수가 한 말이 생각난다. '이제 순수를 고집하는 민족은 도태되고 문화적으로나 예술적으로 퓨젼에 성공 하는 나라는 힘을 얻게 될 것이며 세계는 문화 강국이 지배를 하게 될 것이다. ' 어둠 속에서 길 없는 길을 걸어가려면 작은 불씨 한 점이 간절히 필요하다.
류인혜:
이진화 선생님
답을 달으라는 주문이 재미있습니다.
지난 번 광주에 갔을 때, 송미심 선생이 이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더군요.
마음의 분노를 삭일 수 없음은 일생의 불행인데,
비밀 처럼 간직한 그 분노는 모든 사람에게 파장이 되나 봅니다.
이야기 만으로 영화를 짐작하기는 어렵지만 단순하게 원수를 갚아나가는
옛날 영화의 기법을 떠나서 이제는 고도의 머리 싸움으로 영화를 만들어 나가는
시대가 되었구나 생각해 보지요.
무엇으로 절망감에서 우리 삶을 지켜갈 수 있을까?
한 가지만 꼽으라면 '관심' 입니다.
진정한 응시는 자신과 이웃을 지켜내는 시작이 될 것이라고 여겨요.
길 없는 길에서는 앞서 나간 사람들의 자취를 찾아내어야 할 것입니다.
주변을 살피는 작은 관심이 사랑으로 번저나가길 소원합니다.
-[12/20-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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