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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강현순 |
날짜 : 03-11-25 23:00
조회 : 2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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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뜻하지 않는 인연을 갖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이 우연이든 필연이든 장소가 어디든 대상이 무엇이든, 어쨌든 인연은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사는 고장 어느 길가의 한 나무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지금껏 지우지 못하고 있다. 오늘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 나무 앞을 지나며 숙연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양심의 가책을 느낀 까닭이다.
그러니까 한창 운전 연습을 하던 어느 봄날이었다. 운전 미숙으로 나는 교차로에서 그만 사고를 내고 말았다. 건너편에서 쏜살같이 달려오는 차를 재빨리 피하지 못하고 맞부딪치면서 그 충격에 의해 가로수를 들이받았던 것이다.
그 가로수는 잘 정비된 도로변에 있는 아름드리 벚나무인데 곁의 또 다른 나무 두 그루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서 행인들에게 기쁨을 선사하는 참 고마운 나무이다.
봄이면 눈부신 연분홍 꽃으로 행인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여름에는 싱그러운 푸르름을 안겨주는가 하면 잎이 예쁘게 물 드는 가을이면 우리를 사색하게 만든다. 그 뿐인가. 앙상한 나목의 계절인 겨울엔 무소유의 아름다움이 어떤 것인지도 가르쳐 준다. 그러다 어이없게도 야생마같이 달려드는 나에게서 달아나지도 못하고 당하기만 한 가엾은 나무, 그 중 세 번째 나무이다.
당시의 충격이 꽤 컸던지 여러 날이 지나도록 상처가 아물지 못하고 있어 내 눈길이 가 닿을 때마다 안쓰럽기 그지없다. 혹여 나로 인해 성장 발육이 늦어진다면 성장촉진 주사라도 주고 싶은 심정이다.
그 나무를 생각해 보며, 살아오면서 나는 사람들의 내면 깊숙한 곳에 위치한 마음에다 그 나무처럼 상처를 준 적은 없었을까 생각해 본다. 내 생각만 하고서, 순간적인 즐거움과 재미만 생각하여 불쑥 내뱉는 말로, 또는 행동으로 상대방에게 씻지 못할 그런 상처를 준 적은 없었을까. 사람의 마음이란 참으로 간사하여 상처를 준 사람은 이내 잊고 말지만 상처를 받은 쪽은 오래도록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상처란 온갖 정성과 인내를 다하여 치료하더라도 예전처럼 그 흠이 완전히 없어지지 않는 법, 아무리 짜깁기를 잘하여도 꿰맨 자리는 항상 눈에 띄게 마련이다. 마음이란 때론 엄하기도 하지만 대개 부끄럽기 마련이어서 쉽게 감동하기도 하고 쉽게 상처도 받는다. 그런데 그 마음이란 것은 눈에 보이지 않으므로 상처의 깊이를 알 수가 없어서 처방을 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미 새까맣게 타버린 뒤여서 치유가 불가능할지도 또 모를 일이다. 얼굴을 비추는 거울은 있지만 마음을 비추는 거울은 없으므로.
사람의 마음은 문 여닫이가 자동이어서 마음 속에는 무엇이고 다 들어온다. 그러나 나는 실망, 좌절, 미움, 원한 같은 감정은 자리잡지 못하도록 경계하고 기쁨, 행복 같은 희망적인 것들로만 가득 채우고 싶다. 설령 남이 듣기 싫은 소리를 할 때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그 사람의 입이 비뚤어진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마음이 불순물이 없는 보석과 같이 순수해야만 정신 건강에 좋지 않을까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곳을 지날 때마다 나는 자신을 질책하면서 다시는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한다. 오늘도 나는 그 나무 앞을 지나면서 그쪽으로 슬쩍 고개를 돌려본다. 생떽쥐베리의 '어린 왕자'에게는 이 세상에 많은 아름다운 장미가 있어도 자신이 직접 물을 주고 병풍으로 비바람을 막아준 그 장미가 자신에게 소중하듯 세 번째 나무는 이제 나와는 무관한 사이가 아니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내 삶의 안전 운행을 깨우쳐 주는 또 다른 푸른 신호등이 된 셈이라고나 할까.
동인지 15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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