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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판이 완성되면 지은이 가나다 순서로 정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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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최복희 |
날짜 : 07-09-17 21:56
조회 : 2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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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이 찾아오는 집
최 복 희
봄이다. 울타리 밑에서도 꽃밭에서도 새싹이 돋아나고 있다. 넓은 마당과 집 주위를 훨훨 나는 참새들에게 봄의 왈츠라도 틀어주고 싶다. 울타리 옆 은행나무에 부지런히 신방을 꾸미던 까치는 어느새 알을 품고 있다. 새들이 찾아오는 집
이때쯤이면 어김없이 우리 집을 찾아오는 철새가 있다. 찌르레기다. 올해도 대여섯 쌍이 왔다. 중국 남부지방에서 겨울을 보내고 온다는 이 새들을 반갑게 맞이하며, 상주(常住)하고 있는 텃새들보다 더 관심을 갖는다. 전깃줄과 지붕 위에 앉아 지저귀는 모습이 마치 내게 문안인사를 하는 듯하다. 내 집에 찾아와서 둥지 트는 것은 우리 집이 그들에게는 살만한가 보다. 물총새, 산비둘기, 후투티 등 잠깐 놀다가는 새들도 있다.
새들은 자연 친화력이 있어 인위적으로 깔끔하게 단장된 집보다는 허술하고 조용한 집에 찾아들고, 공해가 심하거나 해를 입을 만한 곳은 피한다고 한다.
우리 집은 야트막한 산자락에 호젓이 자리 잡고 있다. 겉보기엔 그럴듯한 양옥이지만 20여 년의 풍상을 이겨내지 못해 비가 새기도 하고 장마가 지면 지하실에선 물이 솟는다. 울타리와 대문이 있으나 엉성하여 사람들이 사방 드나들 수 있으니 유명무실하다. 수년 전에 심은 몇 그루의 묘목이 제법 자라서 새들의 쉼터가 되고 마당에 그늘을 만든다. 젖소를 기르느라 넓은 마당은 지푸라기와 마른풀 등으로 항상 너저분하다. 그래서 참새와 찌르레기가 그것을 물어다가 기왓장 밑에 집을 짓고 알을 낳는다.
나는 이 집에서 스무 해 이상을 살아왔다. 그런데 봄이 되자 주위에 새 건물이 들어서면서 탁 트였던 집 앞을 가리고, 양 옆엔 비닐하우스가 빽빽이 있어 답답하다. 단열도 잘 안 되는 집이라서 추위에 약한 나는 최신식으로 잘 지은 집들이 부러웠고, 낡을 대로 낡은 살림살이도 바꾸고 싶었다. 불현듯 갈등이 생겼다.
이곳은 그린벨트 지역이다. 몇 해 전만 해도 30평 이내로 집을 지어야만 했는데 얼마 전부터 완화되어 3층까지 허가가 나온다. 남편에게 이 집을 헐고 다시 짓자고 넌지시 말했지만, 내 집 장만을 못하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멀쩡한 집을 왜 허느냐며, 조금만 손질하면 괜찮다고 하는 게 아닌가. 지금까지 근면 성실하고 소박했던 그가 융통성 없는 사람으로 보였다.
그런 일이 있은 지 며칠이 지나서, 우리 지역이 서울 동북부의 마지막 대단위 택지 개발지구로 지정되어 수천 가구의 아파트가 분양된다는 소식이 들렸다. 나는 더욱 들떴다. 아이들도 다 자랐겠다 헌집에 대한 불편함을 훌훌 털어버리고 편하다는 아파트에서 살아보고 싶었다. 남편의 반응을 뻔히 알면서도 이번엔 아파트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예상했던 대로 묵묵부답이다. 할 수 없이 내 마음을 바꾸기로 하고, 속상한 기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소파에 앉아 눈을 감았다. 그때, 창 밖에서 들려오는 새소리와 소들의 울음소리, 전깃줄을 흔드는 바람소리까지 정답게 들려왔다.
벌떡 일어나 안방으로 가서 창문을 활짝 열었다. 은행나무가 까치둥지를 이고 다소곳이 서 있다. 아침 일이 끝나면 남편과 나란히 앉아 휴식을 취할 때, 이 창문은 생동하는 화면이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나뭇가지에 앉아 지저귀는 새들을 바라보며 우리도 새가 되었다. 또한 달과 별이 나뭇가지에 걸려있고 풀벌레가 현악기를 가지고 연주하듯 울어대는 가을밤은 한 편의 시였다. 비록 새 건물이 시야를 막아버렸지만 뒷동산에 올라서면 불암산이 하얀 이를 드러내고 미소 지으며 다가오고, 태릉을 품고 있는 능선이 꿈틀거리는 고래등같다. 우리 마을도 한눈에 볼 수 있으니 우리 집이 낮아졌다고 해서 문제될 게 없지 않은가.
사람들은 내 아이들을 보고 맑고 고운 심성을 지녔다고 칭찬을 한다. 그것은 풀밭에서 뒹굴며 풀벌레소리와 새소리를 듣고 자랐기 때문이리라.
문명은 사람을 병들게 하고 자연은 사람을 소생시키며 자연과 더불어 살 때, 사람은 시들지 않고 삶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고 한다. 최첨단 아파트를 조성한다고 유혹하지만, 그보다 문명엔 좀 뒤져 있어도 공해가 덜하고 조용해서 새들이 찾아오는 내 집이 더 귀하게 느껴졌다. 나는 우리 가족이 자연과 함께 건강하게 살아온 삶의 무게보다도 인공미와 편안함에 현혹되어 소중함을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다. 들떴던 마음을 제풀로 가라앉힌 나를 보고 남편의 얼굴도 환해졌다.
백낙천(白樂天)은 이사 가서 오동나무에 걸린 달을 보고 흥에 겨워 집값을 더 주었다고 하고, 윤오영(尹五榮)은 동산에 올라가 아름다운 풍광에 ‘이 동산이 이웃에 있음으로 해서 내 집은 만금이나 비싸다’고 자부했다. 우리 집도 달을 걸어 놓는 나무가 있고, 풍광 좋은 뒷동산이 있고, 철따라 새들이 찾아와서 노래를 불러주는데 부러울 게 뭐람.
“깍깍! 찌리릭! 짹짹!”
새들의 합창이 봄바람을 타고 창문으로 막 쏟아져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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