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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운영자 |
날짜 : 03-11-25 20:12
조회 : 2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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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을 위한 충고와 애정과 희망
버지니아 울프의 《나만의 방》
정순인
경제력과 자기만의 공간을 가져야할 여성들
국화꽃에 코를 대면 톡 쏘는 향이 난다. 소리 없이 스펀지에 스며드는 물처럼 서서히 흡습되는 향이 아니라 폭포가 되어 떨어지는 물줄기가 요란한 소리로 소(沼)의 수면을 때리듯 강하게 느껴지는 선명한 향기가. 버지니아 울프의《나만의 방(A ROOM OF ONE'S OWN)》을 읽었을 때도 그랬다.
여성이 가정이나 사회에서 차별 받지 않으려면 무엇이 필요한가를 말할 때 쉽게, 마치 국화꽃 향기처럼 선명하게 설명해 주니까 말이다. 그녀는 남성이 가지고 있는 권한이나 지위를 여성이 똑같이 누리지 못하는 이유가 경제권이 없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이 글이 쓰여졌던 7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성이 돈이 없어 독립적 사고력과 행동을 가질 수 없었던 경우가 종종 있어왔다. 결혼한 여성들 중에는 남편이 가족의 질서를 파괴하는 행위를 했어도 '먹고 살 수가 없어서, 또는 아이들을 위해.'라는 말로 스스로를 구속해 버리고 자기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삶을 살지 않는 걸 본 적 있다. 만약 여성들이 돈이 있어 자립할 수 있다면 남편들의 부당한 대접이나 성적 방황을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다. 해서 '돈(경제력)을 벌고 자기 혼자만의 방(혼자 사고할 수 있는 공간)을 가지라.'고 권고하는 울프의 말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현명한 충고 같다.
이 책은 문학을 공부하고자 하는 여대생들의 강연 요청을 받고 쓴 글이다. 어떤 말을 해야 좋을까를 강가에서 구상하다 그녀들이 원하는 것은 여자와 인생, 여자에게 초점을 맞추어 씌어진 소설, 여자가 쓴 소설 또는 이 세 가지가 미묘하게 합쳐진 의미에 관해서 말해 달라고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고, 이 모든 것이 제대로 되려면 돈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는 것을 먼저 말할 수밖에 없다 결정하고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경위를, 일련의 생각들을 소설형식으로 허심탄회하게 서술한다.
강가에서의 생각―여성은 잔디를 밟으면 안된다는 가공의 옥스브리지 안뜰―여성이 도서관 출입을 하려면 교수와 동행하거나 추천서가 있어야 한다는 것―여성의 기부금으로 지어지지 못한 대학건물 등을 의식의 흐름 따라 나열하면서 어떻게 차별 받는지도 보여준다.
새 천년 시대인 요즘도 사회적 제도와 개인적 인식의 차이로 인한 차별은 분명 있다.
집안에서 일어나는 남편과 아내, 아들과 딸에 대한 성차별은 사소한 것으로, 즉 애정이나 편애라는 말로 멋지게 포장하여 덮어둔다 해도 집밖에서 부딪치는 능력에 대한 차별은 어떤가. 부부가 한 직장에 근무하고 있을 때 해직문제가 발생하면 능력 순위가 아니라 가장의 위치로 아내 쪽을 퇴직하게 만들고, 첨단이라는 반도체 회사에서 뛰어난 영어구사 능력을 인정하여 영업직을 제의해 입사시켜 놓고도 차 심부름이나 시키는 일 등은 지금도 행해진다.
물론 x세대 남성의 사고력은 변화가 있다. 능력을 인정하기도 하고 대등한 파트너로서의 역할도 원한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끼리끼리의 동류의식으로 '이왕이면 남자'라는 우월주의가 있으니 일반적인 윗 세대의 생각들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돈으로 보호받는다면 사물을 사실대로 생각하는 여유와 폭넓은 경험을 쌓을 수 있어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도 많아진다."는 울프의 말은 부유한 가정에서 성장한 스스로의 체험일 게다. 경제적 권한이 생기면 지적 자유를 쉽게 누릴 수 있고, 선택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기에 돈의 필요성을 더욱 더 강조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또한 혼자 사용할 수 있는 방은 정신집중을 하는데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여성들이 주로 소설만 써온 것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고전사전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남녀 차별'
소설을 쓴 여성들은 대부분 중산계급에서 나왔으며 그들은 거실이 하나밖에 없었다. 때문에 공동으로 사용되는 거실과 같은 방해받는 공간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글이 쓰여지지 않아, 소설책 외에는 도서관에 남겨진 책들이 거의 없다했다.
시인 콜리지는 "남녀 양성을 갖춘 정신은 잘 공명하고 잘 침투하는 것이며, 정서를 자유자재로 전달하고 또 본래 창조적이어서 백열(白熱)하고 통합되어 있는 것이다. 위대한 정신은 남녀 양성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시인의 말처럼 되려면, 정신과 사고력을 키우기 위해 혼자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는 울프의 충고가 아직도 유효한 것이 아닐까 싶다.
페미니즘. 이 책에서 표현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것일 것이다. 눈에 보이는 일상이나 사물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성차별을 끌어내어 창작하는데 까지 비유한 것이 그러하고, 독립적 존재성을 확보하려면 이런저런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이 글 속에 있는 걸로 봐서 말이다.
《나만의 방》에는 남녀사이의 사랑이야기가 없다. 울프가 여대생에게 아니 전 여성에게 주는 따뜻한 충고와 애정이 있을 뿐이다. 또한 희망도 말한다.
"우리들 누구나 1년에 5백파운드의 돈과 자기 혼자만의 방을 가질 수 있다면, 만약 우리가 자유에 대한 습관과 자기 생각을 그대로 쓸 용기를 갖게 된다면, 만약 우리가 공동의 거실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 인간을 언제나 상호간의 관계가 아니라 현실과의 관계로 볼 수 있다면, 그래서 하늘이나 나무나 그 밖의 모든 것을 그 자체대로 볼 수 있다면, 그렇게 해서 우리가 사실을 사실대로 볼 수 있다면, 즉 우리들이 매달려야 할 팔은 없으며, 완전히 우리는 혼자서 가는 것이라는 사실, 그래서 우리의 관계는 현실세계와의 관계이지 남녀세계와의 관계는 아니라는 사실, 이러한 엄연한 사실과 그대로 마주칠 수 있다면, 그때 기회가 와서 셰익스피어 누이동생이었던 죽은 시인은 지금까지 종종 내던져 버렸던 육체를 다시 몸에 걸치게 될 것입니다. 일찍이 오빠가 했듯이 그녀도 자기 선구자인 많은 여성의 생명으로부터 스스로의 생명을 빨아들여 새롭게 태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또 그녀가 재생해 올 때는 시를 쓸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우리의 결행 없이 그녀가 나타난다는 것은 도저히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녀를 위해 노력하면 반드시 그녀는 나타날 것이며 또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우리가 빈곤과 불우속에서 노력한다는 것은 보람 있는 일이라고 나는 말하고 싶습니다."
울프가 마지막 페이지에서 원한 것처럼 여성들이 미래의 세대를 위해 현재 노력하고 있는가 생각해 볼일이다. 그리하여 몇 세대를 거쳐도 변함 없이 사용되고 있는 남녀차별이라는 단어를 고어사전에서나 찾아 볼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있기나 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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