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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임병식 |
날짜 : 09-10-01 09:15
조회 :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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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것을 되짚어 보며
박내여 소설가
남편이 지게를 지고 산으로 오른다. 겨울 땔감을 구하러 가는 것을 눈 바라기 하며 빙긋 웃었다. 지게를 진 남편의 모습이 어색하다. 지게와 사람이 따로 노는 것 같다. 등에 착 붙지 않는 지게를 보며 동네 할아버지나 오래 전 아버지의 지게 진 모습을 떠올린다. 몸에 착 붙은 지게는 농부의 옷 같았다. 농촌에서 지게는 농부와 함께 늙어갔다. 농사꾼에게 지게는 발채를 얹지 않아도 제 몫을 해 내는 노동수단이었다.
그러나 요즘 농촌은 칠순이 넘은 할아버지 외엔 지게 진 농사꾼의 모습을 보기 어렵다. 오십 중반을 넘어선 남편에게도 지게는 등에 붙지 않는 도구다. 걸음을 걸을 때마다 기우뚱거리는 지겟다리가 보는 이를 위태롭게 한다. 어찌 지게뿐이겠는가. 사라진 농기구도 많다. 골동품상에나 가야 볼 수 있는 것도 많다. 그 볼 수 없는 것들을 복원한 수필집 한 권을 읽었다.
임병식 수필가의 신간 <방패연>이다. 임병식 수필가는 전남 보성에서 태어났다. 1989년 한국수필로 등단을 했고 2003년 한국수필문학상을 받았다. 현재 다섯 권의 수필집을 펴낸 바 있고, 여섯 권 째 수필집이 <방패연>이다.
방패연에 실린 1연과 2연의 작품은 주로 어린 시절에 얽힌 추억 줍기다. 현재 사라졌거나 사라져가는 농촌 풍경과 삶의 변화를 되새김하고 반추하는 글이다. 그 중에 <낫과 지게>, <뜬모용 모>에 대한 단상은 흔하지 않지만 아직 시골에서는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사라져가는 풍경 중 하나지만 아직은 농가의 헛간에는 지게와 낫이 걸려 있고, 기계모를 한 논두렁에 남은 모춤이 놓이고, 촌로는 일을 삼고 뜬모용 모를 한 주먹 쥐고 논바닥에 들어선다. 또한 <단원이 그렸음직한 풍경>에는 탈곡하는 과정이 상세하게 그려져 있다. 몇 년 전까지 우리 집도 시부모님과 우리 부부가 달라붙어 타작을 했었다. 바인더로 베어 놓은 나락을 이삼일에 걸쳐 뒤집어 말렸다가 큰 언덕만큼 낟가리를 모았다. 다음날 탈곡기를 논바닥으로 옮겨 경운기의 동력으로 온 식구가 매달려 타작을 했던 것이다. 지금은 모두 콤바인 타작을 하니 내게도 추억이 되어버린 가을걷이 풍경이다. 그 외에도 <눈 내린 날의 정서>, <감나무에 관한 두 생각>, ><문고개>, <삼베 이야기>, <방패연>, <올게심니>, 같은 작품은 읽어가는 내내 아릿하다. 내 추억과 작가의 추억이 맞물려 물레방아처럼 돌아갔기 때문이다.
3연과 4연의 작품은 아픔이다. 주로 아내와 노모, 가족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는데 읽다보면 가슴이 먹먹해지고 목 뒤가 뻐근해져 온다. <울음울기 좋은 곳>, <내 생활의 살얼음판>, <노모의 유품>, <간장종지 단상>, <하루만 활짝 피는 꽃> 같은 작품은 목울대가 울컥한다. 작가의 삶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수작인데 작가의 아픔과 내 아픔은 양상이 조금씩 달라고 사람살이 엇비슷하다는 것을 알기에 그만큼 더 공감을 하게 되는 것일까. 나도 아팠다. 아픈 만큼 안타까웠다. 왜 사람은 다들 크고 작은 아픔들을 지니고 살아야 할까. 그것이 숙명일까. 작가는 그것을 모두 감싸 안는다.
5연은 인연의 순환과 소통 이야기다. <비좁은 창공에 뜬 달>에서는 달을 보면서 작가의 삶을 반추하고 있다. 살아온 날에 비추어 살아갈 날에 대한 다짐 한 줄이 가슴에 닿는다. 또한 <소통>에서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막힌 벽에 대한 이야기가 참 인상적이었다. 아이들을 키우다보면 소통의 부재를 느낄 때가 자주 있다. 특히 성인이 된 아이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사오정이 될 때가 있는데. 작가도 아들과 의사소통이 힘든 것을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그 외 6연에 실린 글은 온통 돌에 대한 작가의 사랑이 얼마나 지극한지 여실히 보여준다. <돌담우물>에서는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촌석>에서는 촌석을 만지며 옛문인의 애석생활을 반추하며 단순한 작은 돌이 아닌 생명체를 느꼈다고 술회한다. <놓일 자리>에서는 애지중지하는 애무석을 돌은 놓일 자리에 놓여야 한다는 생각에 적소를 찾아 기증하기로 작정하면서 부모가 잘 키운 딸을 시집보내는 심정이라 읊고 있다. 수석에 대한 애착은 나도 한 때 가졌었다. 여행 갔던 곳에 대한 추억으로 특이하게 생겼거나 귀한 돌이 보이면 한 두 개씩 주워 모았던 것이다. 시집오면서도 그 돌을 다 버리지 못하고 애지중지하던 돌을 몇 개 챙겨 왔었다. 언젠가 어느 수필에서 쓴 적이 있지만 그 돌을 장독대 담장에 가지런히 올려놓고 들며나며 감상하기를 즐겼다. 어느 날 보니 아끼던 돌이 하나 둘 없어지는 것이었다. 누가 탐을 내서 들고 갔나보다 속상했는데. 그 돌이 고추나 깻잎, 콩잎 등을 소금물에 담가 삭히는 항아리에서도 나오고, 멸치액젓 항아리에서 나오는 바람에 기가 막혔었다. 그 때 내 머리를 탁 치는 것이 있었다. 내게 귀한 돌이지만 시어머님 눈에는 그저 평범한 돌이고, 요긴하게 눌림 돌로 쓸 수 있으니 좋았을 뿐이란 것을. 그 후 돌에 대한 애착을 버렸다.
이렇듯 방패연에 실린 수필은 단 한 편도 건성으로 읽어버리기엔 너무 아깝다. 왕 눈깔사탕을 살살 녹여 빨아먹듯이 음미하면서 읽어야 할 수필집이다.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 줍기는 코스모스처럼 여리고 섬세하지만 현실과 사람살이에 대한 따끔한 일침은 날카롭다.
수필집 <방패연>을 읽은 소감은 묏등을 지키는 아름다운 적송 한 그루를 찬찬히 바라보다 반해버린 심정이다. 수필은 내면을 걸러내는 막걸리 같은 글이 아닐까. 텁텁하면서도 속이 든든해지는 글을 읽을 때면 나는 늘 갈증 날 때 시원한 막걸리 한 사발 들이켠 느낌이다. 막걸리 전주를 체에 걸러 내기 전, 향긋하고 달콤한 향기를 뿜으며 술이 익고 있을 때 술 항아리에 작은 체를 담가 살짝 누르면 맑은 전주가 그 체 안에 고인다. 그 맑은 전주를 한 그릇 떠서 쭉 들이켠 그런 맛이랄까.
임병식 수필가의 수필집 <방패연>을 읽고 소감 한 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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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철 |
09-10-01 09: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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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회장님 저도 지금 열심히 하나하나 읽고 있습니다
전철 타고 가면서도 읽고 차타고 가면서도 뒤에 안자서
읽고 모기때려 잡는시간에도 읽고 건성으로 읽는게 아니라
하나 하나 읽고 생각하고- 그 올게심니는 저도 잘아는 말입니다
어떻든 훌륭한 작품 으로 이가을을 풍성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꼬집을말이 없을까도 궁리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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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09-10-01 09: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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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철 선생님, 한편 한편 꼼꼼히 읽어주신다니 고맙습니다.
위의 글은 올려놓은지도 몰랐는데, 우연히 보여서 여기 옮겨놨습니다.
일전에는 어느 학교 교장선생님이 교사들에게 선물할 만한 것으로
제격이라며 60권을 사가기도 했습니다.
저명한 평론가, 원로 수필가님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보니 황송하기도 하고
기쁘기도 합니다. 추석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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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복희 |
09-10-02 21: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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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정진철 선생님처럼 '방패연'을 아껴가며 읽고 있습니다.
아니 건성으로 읽어버리면 귀중한 것을 놓칠것만 같아서 입니다.
박래여 수필가님은 언제 다 통독을 하시고 이리 훌륭한 감상문을 쓰셨는지요.
상상을 뛰어넘게 많은 독서를 하는 작가라서 그런가 봅니다.
임회장님! '방패연'이 훨훨 날아 많은 독자들의 품에 안겨 사랑을 받으니
어찌 기쁘지 않으시겠어요. 축하 드립니다.
수필의 진수를 맛보며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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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09-10-03 12: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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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생님, 추석 잘 보내고 계시는지요.
저는 집을 다니러왔던 아이들도 다 상경하고 집에서
TV체널 이곳저곳 돌려가며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수필집 정독해주신다니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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