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체질에 맞는 소재를 내 방식대로

유 동 림

  모파상은 어느 단편 서문에 이런 말을 써 놓았다고 한다.

  독자는 여러 가지 사람들이다. 따라서 여러 가지로 요구한다. 나를 즐겁게 해 달라, 나를 슬프게 해 달라, 감동시켜 달라, 공상을 일으켜 달라, 전율케 해 달라, 사색하게 하라, 나를 위로해 달라, 소수의 독자만이 무엇이든지 당신 기질에 맞는 것을 최선의 형식으로 아름다운 것을 지어 달라고 할 것이다.

  모파상이 아니더라도 작가들은 한 번쯤 독자를 위해 쓸 것인가, 나 자신을 위해 쓸 것인가, 아니면 어떤 사명감으로 쓸 것인가, 이 고독한 운명에 갈등을 했을 것이다. 많은 사람이 좋아할 수 있는, 즉 독자들의 기호만을 의식하고 쓴다면 대중의 노예가 되는 글이 된다는 말에 공감이 갔다. 독자에게 아부하는 글을 썼을 때 허탈감으로 후회할 것 같아 나는 내가 잘 아는 이야기, 내가 많이 생각했던 것을 내 방식대로 쓰고 있다. 작품이 개인의 뿌리에서 피는 꽃이라면, 나는 어떤 글을 자신 있게 쓸 수 있는가를 진단하고 자기 것을 자기 투로 떳떳하게 내놓을 때 보람도 따르리라고 생각한다.

  당장 독자가 적어도 개의치 않겠다는 신념을 갖고 독창적인 문체로 쓴다면 그런 글이 생명이 길지 않을까. 그래서 내가 가장 쉽게 쓸 수 있는 것, 또 내 문체에 맞는 것을 찾다 보니 고향 얘기가 주로 나온다. 다행히 내 고향은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어서 쓸 재료가 많은 셈이다. 특히 널리 알려지지 않은 민속적인 것과 음식에 대한 것을 즐겨 쓰고 있다. 음식 만드는 과정과 먹을 때의 분위기를 그려내려 한다.

  내가 소재로 삼는 고향 음식 얘기와 민속은 지금 그 명맥이 끊어진 상태여서 내가 글로 쓰지 않는다면 ‘그런 풍속이 있었던가. 그런 음식이 있었던가’ 하며 아무도 아는 이가 없게 될까 봐 의식적으로 쓴다. 그러니까 고향 얘기는 쉽게 접하게 되어 쓰기도 하지만 어떤 사명감을 갖고 쓰기도 한다. 그처럼 고증을 위해 쓴 글이어서 설명적이다 보니 순수한 문학성은 결여된 느낌을 준다.

  하기야 내 글 솜씨가 뛰어나다면 고증을 위한 목적의식으로 썼든지 내가 자주 다루는 고루하고 진부한 소재로 썼든 간에, 세련된 표현, 절묘한 구성, 여운이 남는 마무리가 되게 쓸 수 있었을텐데 그런 능력이 없어서 안타깝다.

  요즘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수필들은 아름다운 수식어로 수놓은 글, 감각적인 어휘의 나열인 글, 아니면 번역 작품처럼 앞뒤 문장이 바뀌고 깐깐한 문장을 일부에서는 선호한다고 한다. 그렇다고 인기에 영합해서 나에게 맞는 옷을 벗어 버리고 독자층에 부화뇌동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나는 수필을 쓸 때 주제를 미리 정하고 소재를 찾기보다는 ‘저것이 글감이다’ 싶은 소재가 있으면 그것을 먼저 잡아 놓고 그 속에서 주제를 꺼낸다.

  풍속적인 것 외에 요즘 들어 많이 쓰는 주제는 선(善)과 사랑이다. 지금의 사회가 메마르고 살벌하다는 것은 다 아는 얘기다. 그러나 눈을 돌려 찾아보면 썩음을 방지하는 소금의 역할, 어둠을 밝히는 등불의 구실을 하는 이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구석에 묻혀 빛을 보지 못하는 미담들을 캐내어 수필로 써서 널리 알리고 싶다.

  아름다운 사연이 확산되어 그 세력이 커질 때 세상의 악과 어둠은 다소 위축되지 않을까. 또 등불이 밝으면 밝을수록 어둠은 저절로 물러나고, 선이 흥하면 악은 꺾일 것이라고 믿는다. 착한 마음, 아름다운 행위, 거룩한 뜻을 주위에서 찾아 쓰다 보면 재미없는 글이 되고 만다. 또한 문학성과는 거리가 멀다.

  문학의 본령은 비극이 아닐까 싶기 때문이다. 인간의 희노애락 중에서 비극적인 것이나 고뇌를 다루어야 사상과 철학으로 연결되어 있으니까. 내가 밝은 면을 부각시켜 쓴다고 해도, 사회를 보는 내 시각이 긍정적인 면으로만 고정된 것은 아니다.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방향으로 눈을 돌리면 그 대상이 너무나 많고 이미 많은 문인이나 저널리스트들이 그런 면을 많이 다루고 있다. 그래서 나라도 숨어 있는 밝은 보석들을 캐내 보자는 나름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썩고 곪은 데를 파헤치고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역할을 할 때 작가는 당당한 긍지를 느끼고. 독자는 시원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하지만 미담을 발굴해 쓰는 것 또한 작가의 몫일 것이다.

  앞으로는 환경오염에 관심을 갖고 쓰려고 한다. 환경은 우리의 삶터요, 환경 공해는 우리의 생명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이 역시 소명의식을 갖고 수필로 쓸 생각을 하고 있다. 물론 이런 글들은 생경성이나 의외성이 없고 평면적이고, 상식적이어서 독자들에게 외면당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쓸 생각이다.

  나는 수필을 쓸 때 ‘수필 쓰는 작법’같은 이론들에 구속받지 않고 쓴다. 이론을 알아도 이론대로 안 되는 게 글 쓰는 일이고, 이론의 표본에 너무 충실하게 쓰면 개성이 없어질지 모른다고 하면 변명일지도 모르겠다. 대개 제목과 서두를 쓸 때 고민을 많이 한다는데, 나는 제목은 주제나 소재에서 쉽게 선택하고, 서두는 선뜻 생각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즉 멋지고 좋은 제목이나 서두를 생각해 내는 데 그리 많이 생각하진 않는 편이다.

  내 수필쓰기에 있어 고쳐야 할 점이 두 가지가 있다. 평소에 메모를 하지 않는 것과 원고마감에 임박해서야 쩔쩔매며 쓰는 나쁜 버릇이 그것이다. 무엇을 써야겠다고 머릿속에만 넣고 있다가 깡그리 잊기 일쑤다. 쓰려고 했던 걸 뼈대만이라도 써 놓은 것이 있거나, 하다못해 주제나 소재를 한 토막이라도 메모해 놓았다면 큰 도움이 되었을 텐데 후회막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