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말

-희망하는 수필쓰기 

文 炯 東   

    수필쓰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래도 매력적인 점은 ‘산문의 꽃은 수필’이라고 회자됨에 있습니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맘에 드는 작품을 쓰는 게 너무 어려워 웃고 입문했다가 울며 고민한다고 자책한 적이 여러 번입니다.

  좋은 수필을 쓰고 싶습니다. 그것도 독자가 아껴 읽는 맛깔스러운 산문말입니다. 쓴다고 다 수필은 아니듯이 독자가 허수롭게 여기는 글은, 한 입 먹고 다시 거들떠보지 않는 잔치 음식과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런 줄 알면서 독자를 작품 속으로 끌어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글 쓰는 방법에 문제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보여주기 위해 수필 쓰는 건 아닙니다. 용출하는 감정을 글로 옮기고 나면 마음이 훨씬 홀가분해집니다.

  따라서 글 쓰는 이는 읽어 주는 사람을 동화시키고 기쁘게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쉽게 써서 어렵게 읽힐 게 아니라 어렵게 써서 쉽게 읽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솔직하게 자신을 보여주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나신을 드러내는 부끄러움을 극복해야만 독자와 가까워지고 자신의 영혼은 성숙해집니다. 

  수필쓰기의 첫째 조건은 문장입니다.

  정확한 언어와 간결한 문장으로 된 수필이 쉽게 읽힙니다. 짧은 문장에 깊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으면 절제와 승화의 참맛이 느껴집니다.

  그러므로 수필은 한 편의 이야기는 있으나 결코 설명하지 않아야 합니다. 설명이 많으면 눈은 글을 따라 읽으나 생각은 딴 곳으로 향하게 됩니다. 독자의 몫인 여운이나 상상의 공간을 내주지 못합니다. 오직 글맛이 나는 간결한 문장과 정확한 표현은, 깊고 넓은 관조를 통한 세부 묘사에서 나옵니다.  

  둘째 조건은 글에 마음을 담아 쓰려고 합니다.

  처음엔 기술적인 방법론에만 의존하는 수필작법에 익숙하였습니다. 바탕공부는 하지 않고 문예에만 정신을 쏟았다고나 할까요. 더 좋은 방법이 없을까 궁리하다 글에 마음을 담아야 글과 사람이 나눠지지 않고, 맛과 향이 실리게 됨을 깨달았습니다. 사진작가가 있는 모습만 그대로 찍는 게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작품 속에 담아내는 이치와 같습니다.

대체로 글은 마음의 작용을 언어문자를 이용해 씁니다. 타고난 재능과 개성을 발휘하여 창조적인 작품을 완성하는 일입니다. 감동을 주는 수필은, 깊고 소박한 마음에서 쓰여집니다. 깊음은 사상이요, 소박함은 진실입니다.

  무엇을 쓸 것인지도 문제지만, 어떻게 쓸 것인가는 더욱 중요합니다. 개성적인 글은 새롭게 발견하는 삶의 진실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존재와 인식의 가름에서, 보다(見)는 얕음이고 본다(觀)는 깊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곧 ‘본다(觀)’의 글자를 파자하면 ‘숲 속 새들의 지저귐’을 연상시킵니다. 따라서 사물을 겉만 보고 쓸 게 아니라 깨어 있는 의식으로서 그 너머를 들여다보고, 이와 관련된 것들을 연상하는 깊은 성찰이 요구됩니다.

  아무래도 좋은 수필을 쓰려면 독서와 여행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됩니다. 보고 겪은 것들이 나를 새롭게 변화시킵니다. 진도 운림산방 주인인 허소치의 화문(畵門) 이야기가 매섭습니다. 자손들이 비록 그림에 재질이 있을지라도 시와 서에 능하지 못하면 경지에 오르지 못한다 하여 가르치지 않음과 서로 통합니다.

    셋째 조건은 문학적 상상과 영성입니다.

  상상은 문학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하지만 소설의 허구성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공상적 허구가 아니라 체험을 통한 상상적 허구로서 수필문학 창작성의 필요조건입니다. 유협은 《문심조룡》에서, ‘청각과 시각에 의한 감동과 연상 상상은 심정의 변화에 의해 생겨나는 것(神思)’이라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독서와 여행은 마음 변화의 연상 작용을 하는데 밑거름이 될 만합니다.

  영성은 예술이 갖는 생명입니다. 하지만 나는 대상의 관조 능력이 얕아서인지 독자의 영혼을 울리는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자연과 우주의 법칙을 바라보는 방식이나 삶과 죽음에 대한 인식과 깨달음이 서툰 셈입니다. 영감은 도교적 수양이나 예술적 깊이의 내공이 쌓인 상태에서 보다 쉽게 떠오르는 만큼 빈 마음(虛靜) 상태를 유지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 영감이 고취되면 쓰지 않고는 견뎌내지 못할 정도로 전율이 느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넷째 조건은 써 놓은 글을 항상 의심해야 합니다.

  이 정도의 글 밖에 쓰지 못하는가 자문하는 일입니다. 한 편의 수필을 완성시키고 나면 성취감에 도취되어 함량 미달된 글인지를 미처 깨닫지 못합니다. 이러한 글을 의심하지 않고 송고를 서둘렀다가 후회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작흥의 감정이 사그라질 때까지 잊어버려야 합니다. 되도록 이른 새벽에 일어나 다시 한 번 묵독해 보면, 얼굴이 붉어지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글을 쓰면서 더욱 위험한 것은 비판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며, 공허한 명성(?)과 타성에 젖어 교만해지는 일입니다.

명작은 단번에 쓰여지는 게 아닙니다.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를 이백 번이나 고쳐 썼다고 합니다. ‘피를 잉크’로 쓴 결정(結晶)이 아니겠습니까? 글의 세계만은 아닙니다. 전설의 명창 임방울도 창을 마치고 나서 자신의 목소리가 시원치 않은 경우 피를 말리는 고통을 감내하며 훈련을 거듭하였습니다.

  모름지기 명인들은 그 이름을 그냥 얻지는 않았습니다. 까닭에 좋은 글을 낳으려면, 또 나를 구원하려면, 고치고 또 고치는 퇴고가 최선이라 생각됩니다.

  기왕에 써 온 수필이니, 정직하고 반듯하고 아름답게 쓰고 싶습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수필을 발표하면서도 만족스럽지 못한 나머지 초조해지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