失手와 虛点의 受容 

한 동 희

    수필을 써 온 지 스무 해가 됐건만, 다시는 수필을 쓰지 못할 것 같은 막연함에 부딪칠 때가 더러 있다.

  ‘붓 가는 대로 쓰는 게 수필’ 이라는 말이 쉽게 느껴져 수필을 택하게 됐지만, 그것은 수필을 모를 때의 생각이요, 수필의 깊이를 헤아리면 헤아릴수록 그 막막함은 더 해 가는 듯하다.

  수필을 쓰려면 많은 경험과 해박한 지식, 심오한 사상과 풍부한 상상력, 뛰어난 해학… 그 밖에 갖추어야 할 조건이 많다. 그 많은 조건을 두루 갖추지 못한 나로서는 수필을 쓴다는 것이 여간 힘드는 일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그 많은 까다로움에 개의치 않고 나름대로 내 그릇에 담을 수 있는 수필을 쓰기로 작정했다.

  나는 서두르지 않고 수필 곁을 서성이며 수필과 대화를 나눠 본다. 수필이 내 일상이기에 스치는 모든 것에 애정을 갖고 바라본다. 그러다 보면 어떤 사물이나 사건이 가슴에 감동으로 와 닿아 그것이 수필감이 된다.

  하지만 어떤 사건에서 비롯된 격렬한 감정이나 순간적인 감동으로 수필을 쓸 수는 없다. 흥분된 마음으로는 영혼의 소리를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야트막한 자기 변명이나 사실을 기록하는 것일 뿐 진실이 될 수는 없다. 그 어떤 감동이라도 가슴에 농축시켜 놓았다가 감정을 여과 시킨 후 수필로 승화시켜야 된다.  

  주제가 설정되면 거기에 어울리는 더 많은 소재를 얻기 위해 주위에서 보고 느낀 것을 메모해 둔다. 그리고 평소 마음 깊이 담아 두었던 이야기를 꺼내어 주제와 일치되는가를 생각해 본다.

  수필의 서두가 잡힌다 해도 원고지 5, 6매를 넘기지 못할 때가 많다. 처음에는 메모해 둔 것과 내용을 배열해 놓고 표현의 문제를 생각한 다음 나중에 플롯을 정한다.

  글의 서두가 중요하기도 하지만, 나는 마지막 부분에 중점을 두는 편이다. 마지막 한 줄에 그 수필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점을 집약시키려 한다. 거기에는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어 그 어떤 여운을 남기고 싶기 때문이다.

  수필은 개성의 글이다. 수필도 음악과 같은 것이어서 같은 곡을 연주한다 해도 선택된 악기와 다루는 사람의 기법에 따라 울리는 소리와 느낌이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사물을 놓고도 그 사물의 근원을 캐내는 작가의 안목은 모두 다른 것이다.

  나는 마무리된 글을 소리내어 읽지 않는다. 마음속으로 문장의 호흡과 높낮이를 조절하며 읽어 내려간다. 작은 부호 하나에도 느낌과 뜻이 달라지므로 조심스러이 호흡 조절을 한다. 그리고 독자에게 무엇을 전달하려는가를 다시 한 번 확인해 본다.

  이러한 작업을 계속하다 보면 한 편의 수필을 만들기 위해 1, 2년을 고심하는 경우가 허다해서 나에게 수필의 다작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마음에 드는 수필을 만들지도 못해, 나는 언제나 수필 초년생이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가슴을 앓아가며 쓴 수필이 졸작에 머문다 해도 수필을 생각하고 쓰는 과정이 가장 행복하므로 그 작업을 계속할 뿐이다.

  수필을 쓰면서 얻어지는 것은 생활의 폭을 넓게 이해하게 되고 매일 매일 새로운 의미로 자기의 삶을 사랑하게 되며 인간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나의 수필에는 실패담이나 허점을 더 많이 담으려고 한다. 쓰는 이와 읽는 이가 함께 즐거움과 슬픔에 동참하고 내일을 의논하며 자기 반성의 기회를 가졌으면 한다. 또한 삶의 본질은 정(情)이기 때문에 그 情의 세계를 아름답게 묘사해 보고 싶다. 그래서 나의 수필에는 수많은 사람이 등장하기도 한다.  

  나는 수필 문장을 이해하기 싶고 간결하게 쓰려고 한다. 더욱이 통달한 박식이나 해박한 지식을 늘어놓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수필을 쓰려면 많은 지식이 필요하지만 지나치게 드러내어 아는 체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나는 긴 시간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을 위인이 못된다. 때로는 따뜻한 구들목에 등을 대고 한유에 젖기도 할 것이며, 때로는 방 안을 뒹굴며 짜증스러움을 달래도 볼 것이다. 이러한 나의 모습이 품위가 있을 리 없겠지만, 나는 그렇게 살아가는 모습을 이야기하고 싶다. 체면의 껍질이 두터울수록 불임증(不妊症)의 문학이 되므로 자기 자신을 가장 진솔하게 표현하는 것이 수필을 쓰는 자세라고 본다. 그러려면 다소의 용기와 기도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감정으로 이기려 하지 말고 실력(글)으로 이겨라.'

  이 말은 평소 자주 떠올리는 내 생활 철학이다. 얼른 듣기에는 내가 뛰어난 문사(文士)라도 되려는가 하고 오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의미를 알게 될 것이다.

  세상일에 통달하지 못해 사람과의 부딪침에 마음이 상해 버리는 날, 실망과 분노로 어깨가 축 늘어진다. 이렇게 부딪치면서 세상을 배우고 성장하는 것이라고 스스로 달래 보지만, 세상 먼지가 몸에 붙는 것 같아 서글퍼지는 마음을 정녕 떨쳐버릴 수가 없다. 그럴 때 한 번씩 앞의 말을 음미해 본다. 그 말은 ‘좋은 수필은 진실한 생활에서 빚어진다’는 뜻도 되기에 내게 채찍과 위안이 되는 것이다. 나는 마음에 드는 한 편의 수필을 쓰기 위해 삶을 갈고 다져나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수필은 진실한 친구와도 같다. 진정한 친구란 상대방에게 섭섭한 일이 있었다 해도 그 친구가 어려운 심정에 처해 있을 때 목소리를 높여 따져서는 안 된다. 속으로 삭혀 두었다가 옛날이야기 하듯 그때 그 일은 섭섭했노라고 낮은 음성으로 들려 줄 때, 우리는 참다운 우정에 인생의 동반자가 된다.

  침잠된 감정의 응어리를 순백으로 걸러내는 고요의 밀어.

  나는 언제 수필과 그 고요의 밀어를 나눌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