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명화 <朴貞姬>

남자에게는 어떤 색깔이 있을까? 모르긴 해도 마음의 색깔이 있을 것 같다. 좋아하는 색깔을 보면 성격을 알 수 있다는 한 심리테스트 자료를 본 일이 있다.

초록색을 좋아하는 여성은 자신을 위해주고 심신을 편하게 해주는 남성을 좋아하고, 분홍색을 좋아하는 여성은 자신이 기댈 수 있는 따뜻한 사람, 즉 아버지 같은 남성을 좋아 한다는 그런 색깔론의 이야기다.

그 남자의 헌칠한 이마와 순진해 보이는 눈이 내 가슴을 마구 두근거리게 했다. 한 순간에 큐피드(cupid)의 화살이 꽂혔다고나 할까. 성급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폭죽 속에 묻혔다. 주례도 그 남자를 ‘이렇게 잘 생긴 신랑은 처음’이라며 결혼에 주례를 서게 된 것이 영광이라고 했다.

살아갈수록 그런 외모에 대한 감정은 시들해지고 남편으로서 가장으로서의 엉뚱한 행동이 오히려 문제가 되었다. 가정이란 서로 다른 악기의 협연과 같을 터인데 자꾸 그 화음이 일그러지기 일쑤였으니 말이다. 기댓값을 제대로 못하는 그 남자에게 내가 꽂힌 그 ‘천정배필’이란 판단도 눈에 콩깍지가 씌웠던 것이 아니었나 싶었다.

“살아봐라 니라고 별 수 있나”먼저 결혼한 선배언니가 내게 한 그 말의 의미를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불행의 씨앗은 서로가 서로의 한계를 너무 잘 알게 되는데서 싹튼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 사람이려니 하고 포기하고 살다가도 막상 결혼기념일이나 생일이 닥쳐오면 은근한 기대를 갖게 되니 이 또한 무슨 심사인가. 설마 올해는 달라지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는 그때마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 되었고 ‘허공중에 흩어진 이름’이 되었다’

그 남자가 좋아하는 색이 레드란 것을 후에야 알게 되었다. 살면서 은은한 색깔을 선호하게 되었다고는 하나 처음부터 내내 빨강색을 좋아하는 건 사실이다. 색으로 보는 성격에 의하면 빨강색을 좋아하는 사람은 진취적이고 적극적이며, 운동을 좋아하고 남 돕기에 인색함이 없는 정의파라고 되어있다.

정말 그랬다. 그 남자는 운동이란 운동은 가리지 않고 즐기는 편이다. 어느 운동이든 대체로 쉽게 적응한다. 그래서인지 언제나 건강하고 하는 일도 야심적인 면이 있다. 정의로운 일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럽다 할 만큼 앞뒤 안 가리고 나서길 좋아한다. 그 남자가 직업으로 ‘민중의 지팡이’를 택한 것도 그 색깔과 무관한 것은 아닌 성 싶다.

자기 직업에 만족하는 남자다. 그러나 가장으로서는 얼마나 점수를 주어야 할지 얼른 판단이 서지 않는다. 성격이 털털하고 느긋해서 급할 것이 전혀 없는 것이 장점인지 단점인지도 아내인 내 입장에서 보면 아리송하다. 아내의 앙탈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묵살하는 것인지 포용하는 것인지 겉으로는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내내 그랬으면 긴가민가하며 얼마나 좋으랴.

느닷없이 변덕 많은 여름날처럼 온 집안에 천둥과 번개를 몰아칠 때가 있다. 그 노기는 상대의 자존심을 ‘가뭄에 땅처럼’ 쩍쩍 갈라지게 상처를 입히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내 눈에 콩깍지가 씌웠던 그 ‘필’(feel)이 치솟곤 했지만 소용돌이가 금방 사라지는 소낙비임을 아는 터라 쥐구멍을 찾아버린다. 부글거린 상처를 만지작거리며 뒤늦게 대들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아랑곳 하지 않는다.

그 남자는 아이들에게는 매우 관대하다. 아버지의 권위의식보다는 대체로 아이들 편에 선다. 어지간한 일에는 간섭도 하지 않고 야단도 치지 않는다. 아이들을 한 인격체로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 그 남자의 교육철학이다. 그러니 잔소리만 하는 엄마는 인심을 잃게 되고, 모든 걸 포용하는 아빠는 그 인기도가 가히 스타급이다. 부모가 지나치게 엄격하면 아이들은 오히려 주눅만 든다는 것이 그 남자의 지론이다. 그 점을 인정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 도사린 질투 같은 심정은 뭐란 말인가? 아내의 노예가 되는 것은 한사코 거부하면서도 아이들의 노예로는 기꺼이 자원하는 그 남자.

사람의 기질적인 성정은 평생 변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아니 변하기는커녕 나이 들수록 아집으로 단단하게 굳어져 간다고 한다. 그 남자의 색깔처

럼. 그 남자와 삼십년 가까운 세월을 살았다. 그러나 아직도 그 남자의 색깔은 선명하게 나에게 다가오지 않을 때가 더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