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제 이르면 2006년에 폐지'라는 제목의 신문기사가 요즘 부쩍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법무부는 호주제를 폐지하고 '개인별 신분 등록제' 로 바꾸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민법 개정안을 다음 주 초에 입법 예고할 계획이라고 한다. '개인별 신분등록제'로 전환되면 가족법에서도 양성 평등시대가 열리게 되고, 극도의 남아 선호사상으로 인한 태아 살해의 업을 짓지 않을 수 있어 좋은 점도 있지만. 그럴 경우 혼란의 정도는 가히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고 우리나라에서 그토록 존중해 마지않는 가문이라든가 혈통의 의미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라는 의문이 생긴다.

여성계에서는 호주제가 남성 우월주의와 여성이 남성에게 종속적인 존재라는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제도라고 주장하는 데 반드시 그렇다고만 할 수 있을까. 가정이든 사회든 일단 기둥, 중심, 대표는 필요한 게 아닐까. 이렇듯이 호주, 가장 가족의 개념을 삭제하고 전통적 부계가족의 기본틀을 허문 다는 것은 범사회적으로 많은 변화와 부작용과 파문을 불러 올 게 분명하다. 근본적으로 사회복지제도가 빈약한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아도 1997년 I M F이후 급속도로 가정이 붕괴되고 가족이 해체되어 가고 있는데 국가가 앞장서서 가족 해체를 심화시키고 촉진시키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면 구시대적 발상인가. 남성 우위시대 법적으로 '끝' 이라고 하는 데 이미 남성 우위를 인정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찾아 보기 힘든 상황이다.

또 다른 쪽 호주제 폐지에 대한 찬성 의견은 어떠한가. 다른 나라에서는 호주제 같은 것 없어도 민주주의 잘 되고 잘 살고 있는데 우리나라만 호주제도라는 시대에 뒤떨어지는 제도로 여성들에게 평생 불편한 삶을 살도록 강요할 수 있느냐 라는 거센 반발이 보인다. 배우자가 싫으면 서구처럼 깨끗히 갈라서고 자신에게 맞는 상대를 다시 찾아 보는 게 현명하다는 젊은 여성들의 논리다. 대수롭지 않은 사소한 일만으로도 학연 ,지연, 그밖에 모든 연을 핑게삼아 패거리 만들기 좋아 하는 고질적인 관습도 소멸하는 호기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어느 정치학자의 논문에서 읽은 내용 중에는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로서 유교를 첫째로 꼽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논문에서는 내 문중, 내 가문은 알아도 타인을 챙길 줄 모르는 가족 이기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었다.

'개인별 신분 등록제' 로 전환되면 부모가 자녀를 위하여 대학 교육과 결혼은 필수고 결혼 후에도 거의 10여 년 까지 에프터 써비스를 감수한다거나 자녀 역시 30세가 넘어도 호주-가장의 그늘에서 너무나 당연하게 아무런 죄책감이나 또한 감사함도 없이 무제한 자녀로서의 대접(?)을 받게 될 근거가 사라지게 되는 것, 따라서 그렇게 되면 어려서부터 독립의지를 키울 수가 있다는 것이다. 지금 까지는 재혼한 엄마를 따라 사는 자녀의 경우 새 아버지의 호적에 올릴 수는 있었지만 성을 바꿀 수가 없었다. 이 때문에 재혼 가정의 자녀는 새 아버지와 성이 달라 호적, 주민등록등본 등에 재혼 가정이라는 사실이 노출 됐었다. 그러나 이 번 개정안이 시행되면 가정법원의 허가를 받아 자녀의 성을 바꿀 수가 있다 하여 매우 다행한 일이라고 보는 시각이다. 얼마나 인간적인가!

호주제 폐지에 대한 찬성과 반대의견에는 이론이 분분할 것이고 나름대로 타당한 이유가 내포돼 있을 것이지만 이제 우리나라도 새로운 시대에 맞춰 법령을 바꿔 가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이를테면 호주제 폐지론을 대세의 흐름에 맡겨야 한다는 대범한 수용론도 나온다. 각양각층의 사람들의 의견이 다 다를 수 밖에 없고, 다 다른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성립된다.

그렇다면 불자인 필자의 입장에서는 어떤 견해를 피력함이 타당할 것인가. 효 사상까지, 문중의 뿌리까지 모두 증발하여 없어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가 먼저일까. 시대가 바뀌고 여성들의 권익과 역할이 달라졌으니 마땅히 호주제같은 것은 폐지하는 게 옳다고 깃발을 들어야 하는지 매우 혼미하다. 확실한 것은 변화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시기에 이르렀음을 자각하고 지켜 볼 일이다.

인간은 누구나 개별적으로, 개체로 이 세상에 온 것이다. 개체가 모여 '우리' 가 되었으나 우리 사회엔 '우리' 만 존재하는 듯한 양상을 보여 왔다. '개인별 신분등록제'는 차라리 늦은 감이 있다. 소란을 떨 일은 아닌 것 같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天上天下 唯我獨尊 )부처님의 이 말씀을 깊이 음미해 보자.

[주간불교] 기고